2012년 7월 29일 일요일

[프레시안 데스크 칼럼] 혁신에 실패한 야당의 붕괴

그날 한강 백사장에 운집한 인파는 30만을 넘었다고 한다. 서울 유권자가 80만 명이던 시절이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폐부를 찌르는 민주당 대선후보 신익희의 사자후가 백사장을 뒤흔들었다. 민주당이 내건 구호 '못살겠다 갈아보자'가 전국을 휘몰아쳤다. 3대 대통령 선거가 한창이던 1956년 5월 3일, 자유당 정권의 몰락은 거부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었다. 이틀 뒤, 해공 신익희가 대선을 열흘 앞두고 급서하지만 않았더라면.

신익희의 죽음은 또 다른 비극을 잉태했다. 그가 사라진 자리, 진보당 대선후보인 죽산 조봉암이 얻은 216만 표가 이승만의 위기감을 자극해 이태 뒤 벌어진 '진보당 사건'의 정치적 동기가 된다. 이승만의 위협적인 정적으로 떠오른 조봉암은 결국 간첩죄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59년 7월 31일. 내일이면 죽산이 서거한 지 꼭 53주기가 되는 날이다.

부질없고 단선적인 역사의 가정이지만 신익희가 급서하지 않았다면 우리 정치사의 물줄기가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50년 전에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민주주의의 토대가 마련됐다면 5.16 쿠데타를 비롯한 그악스런 정변들은 최소한 비껴갈 수 있지 않았을까? 당시로선 혁명적이었던 '평화통일론'을 내건 조봉암이 살아 진보정치의 뿌리를 내렸다면 빨갱이로 몰려 고초를 당하고 죽임을 당한 후대의 인물들은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았을까?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이 두 장면이 요즘 자꾸 떠오르는 까닭은 이들의 후예들이 소극(笑劇)으로 야당 몰락의 역사를 반복하는 듯 보여서다.
▲ 죽산 조봉암(왼쪽)과 해공 신익희

신익희의 민주당을 법통의 뿌리로 삼는다는 민주통합당엔 '못살겠다 갈아보자'만큼 대중의 심금을 찌르는 구호도, 한강 백사장을 뒤흔들만한 사자후의 주인공도 없다. 제일 앞서있다는 문재인 후보는 고작 '대한민국 남자'라는 민망한 슬로건을 내놓았다가 빈축만 사고 접었다.

'혁신'이라는 단어가 민주당에서 사라진 지도 오래. 혁신에 실패해 총선을 망쳤음에도 당은 여전히 고만고만한 기득권 연합체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사회경제적 의제는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에게, 대중들의 이목은 안철수 교수에게 빼앗겼다. 민주당이 사활을 걸고 매달리는 일은 오로지 '박지원 지키기' 뿐이다.

검찰이 여권의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물타기용으로 박지원 원내대표를 겨냥했다는 의심이 짙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검찰의 출석 요구를 번번이 묵살하며 결백을 주장하는 박 원내대표의 태도 역시 국민적 눈높이와는 사뭇 동떨어져 있다. 검찰이 곧 체포영장을 청구해 '박지원 방탄 국회' 논란이 대선정국 악재로 번질 게 뻔한데도 박 원내대표가 자진해 검찰 수사에 응해야 한다는 소리는 소주잔 앞에서만 들린다.

사정이 이럴진대 누구인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열망을 품을 것이며 민주당에서 선출된 후보가 '가을의 반전'을 거쳐 '겨울의 승자'가 되리라고 낙관할 수 있을까. 오히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후보조차 내지 못한 민주당의 수모가 대선에서 반복돼 식물정당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통합진보당의 사정은 이보다도 참담하다.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안이 의원총회에서 부결된 지난주,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언론이 통합진보당에 사실상 사망 선고를 내렸다.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하고 패권을 일삼은 구주류와의 결별을 통해 전면적 쇄신의 기대를 모았던 강기갑 체제는 쇄신의 입구에서 좌절했다.

"중단 없는 혁신"을 위해 기권표를 던졌다는 김제남 의원의 궤변, 득의양양한 웃음을 머금고 "진실이 승리하고 진보가 승리했다"는 이석기 의원의 발언과 함께 진보정치는 무덤으로 들어갔다. 지난 2004년, 박정희 시대가 시작된 이후 40년 만의 원내진출로 한국 정치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던 진보정당이다. 그 당을 뿌리로 한 당이 가장 진보적이지 않은 과정을 거쳐 제 발로 낭떠러지로 향한 꼴이다.

제1야당이 지리멸렬하고 진보정당이 몰락했으니 안철수 교수가 답인가? 대통령은 정당에 기반한 정치인이 해야 한다는 식의 안철수 교수에 대한 비판은 전무후무한 야당의 위기라는 현실 앞에 왜소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초단위로 판매부수가 집계될 정도로 열풍을 일으킨 그의 책 <안철수의 생각> 어느 장에서도 야당을 '낡은 체제'의 한 축으로 규정해버린 냉소는 있을지언정, 정당구조를 어떻게 혁신해 새 체제의 기둥으로 삼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그가 미덥지 않다.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았을 때가 위기라고 했다. 무엇보다 이 모든 일들이 5.16 쿠데타를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박정희의 생물학적 정치적 적통, 반공의 본령을 상대로 두고 벌어지는 난맥상이라는 점에서 56년 대선의 역사가 자꾸 머리에 맴도는 것이다.
/임경구 편집국장

2012년 7월 3일 화요일

[프레시안] 진보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자를 고발한다! [나는 반론한다] 정태인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서평에 답한다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4·11 총선 결과에 가장 활짝 웃었을 사람은 누구일까?

지난 4월 11일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의회 권력을 수성했다. 이로써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이 목소리 높였던 재벌 개혁 추진이 힘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설사 대선에서 야권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새로운 정부가 재벌 개혁을 추진할 때 새누리당이 큰 장애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나온 책 두 권이 눈에 띈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대담을 엮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쾌도난마 한국 경제>(부키 펴냄)와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오마이북 펴냄).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는 지난 2005년 펴낸 <쾌도난마 한국 경제>(부키 펴냄)에서 참여연대의 소액 주주 운동을 정면 비판했다. 이들은 '복지 국가'를 전면에 내세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도 "재벌 개혁을 말하며 한국 경제를 주주 자본주의로 재편하려는 '시장 경제론자' 혹은 '경제 민주화론자'"를 겨냥했다.

이들이 이 책에서 비판하는 "시장 경제론자" 혹은 "경제 민주화론자"의 대표 주자가 바로 민주통합당의 재벌 개혁 정책을 만드는데 참여한 유종일, 홍종학 그리고 <종횡무진 한국 경제>의 저자 김상조다. (이 중 홍종학은 민주통합당의 비례 대표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 지점에서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가 눈에 띈다. 김상조는 이 책에서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등이 중심이 되어 추진해온 소액 주주 운동을 비롯한 재벌 개혁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성찰하고, 좀 더 진전된 재벌 개혁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야권이 패배한 가장 큰 이유로 시민들의 고달픈 삶을 개선할 비전, 정책의 제시가 없었다는 점이 꼽힌다. 그렇다면 앞으로 여덟 달 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개혁 진영이 국민들의 사회 경제적 삶의 개선을 위해 제시할 미래 비전은 무엇일까?

진보 개혁 진영이 그간 제시한 프레임은 복지 국가론과 경제 민주화론이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복지 국가론을 대변한다면,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경제>는 경제 민주화론을 대변한다. 물론 양자 간의 접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양자 간에는 본질적인 견해 차이도 적지 않다.

앞으로 이 두 접근 간에는 치열한 논쟁이 진행될 것이며, 이 논쟁이 생산적으로 진행될수록 진보 개혁 진영의 미래 비전은 더 명확해지고 더 구체적으로 될 것이다. 따라서 양자 간의 견해 차이를 어설프게 봉합하는 것보다 양자 간의 견해 차이를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논쟁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재벌 개혁 더 나아가 한국 경제의 미래를 둘러싼 이 두 진영 사이의 논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는 게 바람직할까? 지난 4월 13일 발행된 '프레시안 books' 86호에 실린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 원장의 서평을 놓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공저자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이 반론을 보내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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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회장님 얼굴에 웃음꽃 핀 까닭은?

저자가 자신의 책에 대한 서평을 놓고 다시 평을 한다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더구나 서평을 쓴 사람이 완전히 다른 생각의 소유자도 아니고 많은 사안에서 입장을 함께 하는 사람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부키 펴냄)의 공저자인 나, 장하준, 이종태 등 3명의 견해는 이미 420쪽에 달하는 그 책에서 밝혀 놓았다. 따라서 정태인의 서평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는 우선 독자들의 현명한 판단에 맡기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하지만 독자의 문제 제기에 성실한 답변을 하는 것 또한 저자의 책무라는 생각에서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첨예한 정치적 대립이 일상화되어 있고, 특히 올해처럼 총선과 대선을 두고 보수와 진보 사이에 '너는 틀렸고 나만 옳다' 식의 진영 논리, 흑백 논리가 판치는 세상에서 양쪽 모두의 견해를 비판하는 책을 내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럼에도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우리 3명의 공저자는 보수와 진보 양쪽 모두의 논리를 비판했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해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더 많은 비판을 가한 것은 이른바 진보 개혁 세력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치적으로 진보에 가깝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독자들을 위하여, 사이비 진보가 아닌 진짜 진보적인 정치경제학이 뭔지를 제시하려고 바로 이 책을 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맨 앞에서 우리는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에서 세계 인류의 미래를 향한 희망을 본다고 썼다. 실제로 우리는 10년 전부터 신자유주의와 금융 자본주의, 주주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해온 사람들이다. 2004년에는 '투기자본감시센터'의 설립에도 함께 참여했었다. 공저자 중 한 사람인 장하준은 최근 런던의 '점령하라' 운동가 앞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었다.

이상하게 우리나라에서는 '점령하라' 운동이 왜곡되어 전개되었다. '1퍼센트에 맞서는 99퍼센트의 운동'이 투기적인 세계 금융 자본과 재테크 자본 시장에 대한 비판의 맥락에서 전개된 것이 아니라 반재벌 운동의 맥락에서 전개된 것이다. 마치 한국 경제는 금융 자본과 주식 자본과는 무관하며 오직 재벌과 이명박 정부만 타도하면 99퍼센트를 위한 세상이 도래할 것처럼 사람들은 말한다.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장하준·정승일·이종태 지음, 부키 펴냄).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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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한국의 진보 개혁 세력이 주장하는 '반재벌'은 정치경제학적 견지에서 볼 때 "좌파 신자유주의"에 불과하다고, 그것을 '진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보 진영의 거대한 '착각'이라고 썼다.

따라서 지난 해 12월 <나는 꼼수다> 팀이 미국까지 날아가 '점령하라' 운동가와 함께 반재벌 운동을 선언한 것은 이런 착각이 만든 일종의 블랙 코미디였다. 주주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 체제를 반대하는 운동의 한 복판으로 날아가 반재벌 담론으로 포장된 주주 자본주의와 좌파 신자유주의를 외쳐댔으니 말이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분량을 할애한 부분이 좌파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논쟁 이래 우파 신자유주의 즉 오리지널 신자유주의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이젠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문제는 좌파 신자유주의인데, 현재 진보 개혁 세력의 정치경제학적 사고방식의 핵심에는 좌파 신자유주의가 뱀처럼 똬리를 틀고 들어서 있다. 그것은 반재벌론, 반모피아론, 반토건주의론, 반복지 공정·공평론 등 다양한 외피를 쓰고 나타나는데, 결국은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을 정치경제학적 토대로 삼고 있다.

재벌 개혁 운동의 성공 비결 : 신자유주의와의 야합
정태인은 서평에서 "나는 김상조가 지난 10여 년간 해온 재벌 개혁 운동에 찬사를 보낸다. 구체적인 정책과 실천이라는 점에서 김상조가 해 온 일은 가히 경이롭다"고 썼다. 그리고 "거대 담론의 실패 경험을 되풀이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성공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확립하고, 이를 통해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김상조가 대표로 있는) 경제개혁연대 창립 선언문을 극찬했다.

실제로 김상조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한국의 진보 진영에게 결여된 것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작은 성공 경험들의 축적이다. 특히 재벌 개혁과 금융 개혁은 노동 대중과 시민 사회의 주도 하에 구체적 성공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그럼으로써 진보적 대안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축적할 수 있는 과제다."
그런데, 정말로 진지하게 물어보자.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서 추진되었던 재벌 개혁과 금융 개혁이 과연 '진보적'이었던가? 그리고 그것이 과연 노동 대중과 시민 사회의 주도 하에 수행되었던가? 재벌 개혁과 금융 개혁은 한국의 최대 대기업과 은행, 종합금융회사, 증권사, 자산 운용사 등에 대한 개혁이었고 말하자면 '대자본'에 대한 개혁이었다.

그런데 '노동' 영역에서 벌어지는 정리 해고와 비정규직 양산 사태에 대응하기에도 급급할 정도로 취약했던 한국의 진보 진영이 언제부터 '대자본'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주도'할 정도로 성숙했었나? 정태인은 특히 장하성이 참여연대에서 시작하고 김상조가 경제개혁연대에서 이어받은 재벌 개혁 운동이 "한 줌도 안 되는 지식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야말로 혁혁한 성과를 거뒀다"고 칭찬하는데, 과연 그랬던가?

진실은 이렇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서 재벌 개혁과 금융 개혁처럼 철두철미하게 앵글로색슨 식으로, 즉 신자유주의적 방향으로 추진된 분야가 없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그것을 주도한 것이 우리나라의 '노동 대중'과 '시민 사회'가 아니라 바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그리고 미국 재무부-월스트리트 복합체였기 때문이다.

시민 사회, 구체적으로는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같은 시민단체들이 "구체적인 작은 성공 경험들의 축적 사례"를 유별나게 재벌 개혁과 금융 개혁 분야에서 달성하는 혁혁한 성과를 거둔 것은 바로 그 시민단체들이 요구한 재벌 개혁과 금융 개혁이 근본적으로 미국의 재무부-월스트리트 복합체의 요구와 서로 일치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정태인이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의 "혁혁한 성과"라고 칭찬하는 사외 이사제와 집중 투표제, 증권 집단 소송제 등은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미국 재무부-월스트리트 복합체의 공식적인 해외 전략 목표였다. IMF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과 함께 골드만삭스와 스탠더드 앤 푸어스, 켈퍼스 같은 금융 자본과 펀드 자본의 적극적 후원을 받았던 덕택에, 재벌 개혁과 금융 개혁 분야에서 김상조와 참여연대(경제개혁연대), 경실련 등은 "구체적인 성공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한국 경제에서는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근본적인 변화"가 실제로 발생하였다. 즉, 주주 자본주의와 금융 자본주의가 한국 경제의 핵심 논리로 정착하게 되었고, 거대 재벌 기업 역시 주주 자본주의와 야합하여 주가 상승과 배당금 인상, 단기 수익과 현금 흐름(cash flow) 등을 중시하는 '글로벌 스탠더드 경영'(즉 월스트리트 자본주의)을 내재화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정태인은 마치 사외 이사제와 집중 투표제 같은 여러 재벌 개혁 조치들이 별 효과가 없었다는 듯이 말하는 김상조의 말에 동의를 표명하고 있다. 별 효과가 없었다고? KT&G를 보라. 월스트리트에서 한국으로 날아온 칼 아이칸이 KT&G에 대해 적대적 경영권 위협을 가했을 때 그가 동원한 제도적 무기들이 바로 집중 투표제 같은 '진보적' 재벌 개혁이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보라.)

거대 담론은 없다 : 좌파 신자유주의자들의 궤변
1980년대의 한국 진보는 거대 담론이 판치는 곳이었다. 민족해방(NL)과 민중민주(PD), 민족민주(ND) 또는 사회주의 같은 용어를 일상어로 달고 살 정도였고 그래야만 요즘 말로 '개념 있는' 인물로 대접받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에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하면서 그 거대 담론의 시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리하여 거대 담론 회피 풍조가 1990년대부터 한국 사회를 지배하였다. 경실련과 참여연대 같은 진보적 시민 단체는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창립되었다. 일상적 삶의 개선에 별 쓸모도 없는 거대 담론보다는 삶의 작은 개선과 개혁에 주력하자는 뜻에서였다. 그리고 거대 담론 기피증은 김상조가 주도하는 경제개혁연대의 창립 선언문에도 나와 있다. (그러나 뒤에서 보겠지만, 김상조는 한편으로 거대 담론을 배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고전적 자유주의라는 거대 담론을 적극 옹호한다.)

그렇지만, 과연 이 모든 사조가 거대 담론과 무관했을까? 거대 담론 기피증이 한국과 세계의 진보 세력 내에서 만연한 1990년대는 동시에 신자유주의의 압도적 지배 시대이기도 했다. 특히 실리콘벨리와 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미국 자본주의가 최고조의 번영을 누린 1990년대 말은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도 신자유주의를 감히 반박할 수 없었다. 미국 자본주의는 곧 동시에 '글로벌 스탠더드'였다. 그런데 참여연대(경제개혁연대)와 경실련 등의 진보적(?) 시민 단체들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시기 역시 바로 이 때였다. 이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였을까?

여기서 두 가지 불편한 진실을 짚어야 한다. 첫째, 김상조 등에게서 발견되는 거대 담론 기피증의 배후에는 특정 거대 담론 즉 신자유주의가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뼈아픈 현실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둘째, 김상조 등의 인물이 지금까지 이끌어온 한국의 진보적 시민 단체들은 신자유주의를 (그리고 주주 자본주의를) 용인하고 때로는 그것과 적극적으로 협력한 덕택에 "혁혁한 성과"를 거두며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신자유주의와 주주자본주의를 용인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그와 협력하는 진보를 우리는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지적했듯이, 좌파 신자유주의는 이른바 경제 민주화라는 외투를 쓰고 나타난다(유종일, 홍종학, 선대인). 때로는 진보적 자유주의(최태욱) 또는 진(眞) 자유주의(김대호)라는 외투를 쓰고 나타나기도 한다. 때로는 반토건주의 또는 반토지 소유주의(헨리 조지주의자)의 외양을 쓰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외피를 쓴 좌파 신자유주의의 사고방식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민주통합당의 박영선과 문재인, 이해찬과 김두관, 안희정과 송영길 같은 유력 정치인의 사고방식과 발언에서 자주 등장한다. 진보 정당을 자처하는 통합진보당의 이정희와 유시민과 같은 유력 정치인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더욱 절망적이다. 지난 20년간 보수 진영의 우파 신자유주의와 진보 개혁 진영의 좌파 신자유주의가 번갈아가며 집권하면서 나라 살림과 서민 살림을 결딴냈다. 언제까지 이런 절망적인 악순환을 계속하겠다는 건가?

고전적 자유주의는 여전히 진보적인가?
이들 모든 좌파 신자유주의자의 공통점이 있다. 자신들이 옹호하는 것은 신(新)자유주의가 아니라 구(舊)자유주의(즉 고전적 자유주의)라는 것이다.

김상조는 <한국 경제 새판 짜기>(미들하우스 펴냄)와 <종횡무진 한국 경제>(오마이북 펴냄)를 비롯한 여러 책과 발언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 경제적 과제는 바로 '고전적 자유주의'의 실현이라고 말한다. 토지 불로 소득 과세와 종합부동산세 대폭 강화를 주장하는 헨리 조지주의자들 역시 고전적 자유주의자이다.

이들은 박정희식 '관치'와 재벌 체제로 대표되는 '중상주의' 체제를 넘어서 진보적 경제 개혁을 위해서 애덤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헨리 조지 등으로 대표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정치경제학이 오늘날의 한국에서 여전히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의 교주인 시카고학파의 밀턴 프리드먼이 가장 격찬하는 것 역시 애덤 스미스와 존 스튜어트 밀의 고전적 자유주의이다.

장하준은 <국가의 역할>(이종태·황해선 옮김, 부키 펴냄)에서 오늘날 신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을 오스트리아 학파(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의 야합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러한 야합의 핵심 인물이 바로 밀턴 프리드먼과 로버트 루카스처럼 오늘날 경제학계의 주류를 이루는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이다.

그리고 그 시카고학파 경제학의 전통 속에서 출현한 것이 바로 주주 자본주의론 등 현대적 금융 재무 이론이고, 바로 이것이 월스트리트 금융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정당화시키는 정치경제학적 이데올로기로서 역할을 한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역시 고전적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중상주의(보호 무역과 금융 시장 보호)를 배격하고 자유 무역과 자유로운 금융 시장을 옹호한다.

밀턴 프리드먼이 인정하듯이 구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간에 본질적인 차이점은 없다. 그러나 김상조, 유종일, 정운찬 등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는 반동적인 시카고학파 경제학도 한국 경제 개혁의 관점에서 보면 진보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며 그 긍정성을 살리자고 말한다. 이런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김상조는 모든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1) 중상주의 단계, (2) 자유주의 단계, (3) 사회(민주)주의 단계 또는 복지 국가 단계의 3단계 발전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쳐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한국 경제는 현재 중상주의(박정희 체제와 재벌 체제)를 넘어서는 자유주의 단계를 거쳐야 하며 따라서 자유주의적 개혁 과제(즉 재벌 개혁, 모피아 타파, 토건주의 타파 등의 경제 민주화의 과제)가 사회민주주의적인 복지 국가적 과제보다 논리적, 시간적으로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유종일, 정운찬, 김대호, 김동춘, 선대인 등 역시 이 점에 관한 한 김상조와 의견이 같다. 정태인 역시 큰 틀에서 비슷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점에서 본질적으로 의견이 다르다.

장하준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순희 옮김, 부키 펴냄). <국가의 역할>,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김희정·안세민 옮김, 부키 펴냄) 등에서 18세기 영국(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비판한 바로 그 영국)만이 아니라 모든 선진국이 19세기에도 그리고 20세기에도 중상주의적인 국가 개입 즉 적극적인 산업 육성 정책과 기술 정책을 활용하여 선진국으로의 도약에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프랑스, 오스트리아, 핀란드, 하물며 복지 국가 스웨덴 역시 이러한 '중상주의적' 정부 개입을 통해 선진 공업국으로 도약하였다. 따라서 3단계 역사 발전론은 그야말로 허구에 불과하다. 최근에 출간된 에릭 라이너트의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김병화 옮김, 부키 펴냄) 역시 이 점을 풍부한 역사적 자료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준다.

초지일관 시장주의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정태인은 우리의 책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내용이 앞뒤가 안 맞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비판했다. 예컨대 "강만수는 앞부분에서는 환율 방어에 나선 산업 정책의 화신이 되었다가 뒤에 가면 시장 개혁론자로, 그리하여 김상조와 같은 집단에 속하게 된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 개혁론자(즉, 나도 포함된다)들도 관료와 함께 주주 자본주의를 만들려고 노력한 사람들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목숨 걸고 싸운 사람들이 실은 한편이었다니 이 얼마나 극적인가?"라고 지적한다.

맞다. 당연히 앞뒤가 안 맞는다. 그런데 그렇다면 우리가 강만수를 제대로 관찰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앞뒤가 안 맞는가? 그렇지 않다. 강만수 같은 모피아 관료들은 시장주의자이면서 동시에 경제 관료(모피아)로서 정부 개입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이 앞뒤가 안 맞는다. 그에 반해 그들 모피아를 비판하는 초지일관된 시장주의자들이 바로 김상조와 이동걸 같은 진보적(?) 시장주의자들이다.

김상조, 이동걸 같은 반재벌론자들을 '시장주의자'라고 부르는데 반발하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내에서 (김진표, 권오규 등의 모피아 블록에 맞서는) '진보 블록'을 형성하고 있던 이동걸 그리고 정태인 본인도 자신을 결코 반시장주의자라고 지칭하지 않았다.

당시 금융 개혁과 재벌 개혁에 관한 수많은 공개 국정 토론회에서 이동걸, 김우찬, 김선웅, 장하성을 비롯한 대다수 시장 개혁론자들은 스스로를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그냥 시장주의자"로 불러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늘 일관된 시장주의의 입장에서 관치 금융을 비판하고, 재벌 개혁을 이야기했다.

물론 중상주의(관치와 재벌 체제)가 지배하며 따라서 고전적 자유주의가 여전히 역사적 과제라고 보는 관점에서는 시카고학파의 시장주의(신자유주의)조차도 '진보'의 정치경제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장하준과 나는 이런 사고방식을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누가 금리 인상 문제를 놓고 제2의 환란을 말했나?
정태인은 "예컨대 2008년 금리 논쟁에서 장하준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금리 인상에 반대하였지만 당시 인상론자들이 IMF의 요구처럼 두 자릿수로 올리자는 건 결코 아니었다. 내 기억으론 기껏해야 0.25퍼센트에서 0.5퍼센트 인상을 주장한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그 말이 맞다.

2008년에 한국은행 총재 박승과 전성인, 김상조, 유종일 등의 경제 민주화론자들이 1998년의 IMF처럼 무려 30퍼센트 대의 초금리를 요구한 것은 결코 아니었으며 기껏해야 0.5퍼센트 인상을 요구한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런 사소한 금리 인상을 하지 않는다고 강만수를 비판하면서 "그로 인해 곧 제2의 환란이 터질 것"이라고 침소봉대하며 난리법석을 떤 것이 누구였던가?

게다가 2009년 초에는 마치 한국의 외환 보유고가 곧 바닥날 것처럼 침소봉대하면서 또 다시 "제2의 환란이 터질 것"이라는 해프닝을 연출한 것이 누구였던가? 바로 경제 민주화론자들이었다. (누리꾼 경제 논객 미네르바를 둘러싼 웃지못할 해프닝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발생하였다.)

게다가 정태인은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경제 민주화론자들의 금리 인상론을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제시한 금융 규제와 자본 통제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다. 그는 "금리가 둔탁한 정책 수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대안이 자본 통제라면 누구나 고개를 내두를 것이다. 갑자기 도입할 수 있다거나 미세 조정에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동아시아가 공동의 환율 정책, 외환 보유고 관리 정책을 사용한다면 자본 통제도 수월하게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정태인은 자본 통제(금융 규제)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 첫째, 노무현 정부는 이미 2006년부터 은행권의 부동산 담보 대출에 엄격한 금융 규제를 가하고 있다. 이 역시 일종의 자본 통제이다. 게다가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한국 은행들이 2008년 말에 겪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해외 단기 차입 연장의 실패) 문제에 대처하고자 이명박 정부가 도입한 은행세(은행의 해외 단기 차입에 대해 부과하는 거래세) 역시 일종의 자본 통제이다.

이렇듯 자본 통제(금융 규제)는 노무현, 이명박 정부도 도입하여 금융 시장의 미세 조정에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IMF조차 2007년 이후부터는 캐리 트레이드 등 핫머니의 이동에 대한 통제(자본 통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공공연하게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점은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금융연구원 같은 보수적인 국책 연구소에서 주최하는 국제 세미나에서도 이미 수년 전부터 논의되고 있다.

오히려 자본 통제 논의에 무관심한 측은 진보 개혁적인 경제학자들이며 이들은 마치 재벌 금융만 규제하면 만사형통인 듯이 말한다. 게다가 정태인이 전제하듯이 모든 자본 통제가 반드시 한·중·일 등 동아시아 공동의 환율 정책과 외환 보유고 관리 공동 정책을 전제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자본 통제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자본 통제도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정태인은 마치 주주 자본주의 규제 역시 일국적으로 해서는 별 효과가 없으며 반드시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조와 세계적인 금융 규제의 강화의 진행에 맞추어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예컨대 주주 자본주의를 억제하는 차등 의결권 주식 제도는 이미 한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에 존재한다. 즉, 이미 국제 공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동아시아만 국한해서 보더라도, 일본 대기업에는 순환 출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기업 및 금융 관련 제도가 우리만큼 미국화되어 있지 않고 따라서 주주 자본주의가 우리만큼 심하지 않다. 더구나 타이완과 중국의 대다수 대기업은 공기업이다. 한국에서만 주주 자본주의와 금융 자본주의가 유별나게 심하다. 따라서 굳이 그 나라와 공조할 필요도 없이 바로 주주 자본주의를 억제하는 법률들을 만들 수 있다.

정태인이 불가능하다고 비판하는 황금주 제도는 대다수 선진국에서 공기업 민영화시에 정부의 비토권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마저 상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그 결과 KT와 KT&G가 저 모양이 되었다. 서울지하철 9호선의 요금 인상 문제 역시 서울시가 황금주 제도를 도입하여 9호선 운영 회사의 이사회에서 비토권을 행사했다면 이렇게 제멋대로 요금을 인상한다 떼를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있지도 않은 괴물을 만들었다고?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헨리 조지주의자와 그들이 주장한 종합부동산세를 비판한 것을 놓고 정태인은 이렇게 비난했다.

"이런 논법이라면 중앙은행이 물가를 넘어 자산 가격 안정 등 전반적인 경제 안정을 떠맡아야 한다고 주장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역시 신자유주의자이며 주주 자본주의론자다. 중앙은행의 역할을 강조하면 보수주의자인데 거기다 자산 가격까지 떠맡으라니…. 말하자면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 괴물을 만들어 놓고, 또 모두를 괴물로 만들어서 신나게 두드려 팬 것이다."
이 부분은 정태인이 우리의 견해를 왜곡해 평가한 부분이기에 답변을 안 할 수 없다.

먼저 "중앙은행(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 물가 관리를 넘어 자산 가격 안정 등 전반적인 거시 경제의 안정도 떠맡아야 한다"고 말한 스티글리츠의 주장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2008년 말 미국에서 금융 위기가 발생하자 가장 큰 논란이 된 것의 하나가 사태가 이 지경이 되는 동안 미국의 금융 감독 당국은 뭘 했느냐는 비판이었다.

그런데 미국에는 연방 차원에서만 열일곱 개의 금융 감독 기관이 존재한다. 시중 은행의 경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 통화감독청(OCC),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 5개 기관이 감독 업무를 분담했다. 하지만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중앙은행 격인 연준이 컨트롤 타워로서의 제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스티글리츠의 발언은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된 것이다.

물론 스티글리츠의 생각과는 반대로 오바마 정부는 연준 등 5개 기관을 총괄하는 금융안정감시위원회(FSOC)를 새로 설립했고 미국 재무부 장관이 그 의장을 맡도록 했다. 여러 기관들로 분권화된 미국의 금융 감독 시스템을 하나의 중앙 집중제로 새로이 일원화했다. 미국과는 달리 우리는 이미 1998년 금융(감독)위원회가 탄생하면서 물가 관리는 한국은행이 맡고 (금융) 자산 가격 관리는 금융위원회가 맡는 이중화된 체제가 성립되었다.

그런데 과연 정태인과 김상조, 정운찬 등 경제 민주화론자들이 주장하듯이 그리고 경실련과 참여연대의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금융위원회의 권한을 축소하고 중앙은행(한국은행)에 자산 가격 관리 등 금융 감독 권한을 넘긴다고 해서 한국 경제가 그토록 '진보적'으로 민주화되고 더구나 금융 위기 발생(부동산 자산 가격 버블의 형성)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인가?

우리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며, 이 점은 본질적인 견해 차이이다.

ⓒ프레시안

재벌 계열사가 무너지면 한국 경제가 무너진다?
마지막으로 재벌 문제에 관한 흔한 오해를 지적하면서 글을 끝내기로 한다. 정태인은 "재벌 계열사 중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면 한국 경제는 시스템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대마불사와 시스템 위기(대규모 경제 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출자 총액 제한 제도와 순환 출자 금지 같은 조치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명백한 오해다. 1997년 이전처럼 재벌 계열사들의 부채 비율이 높고, 더구나 그 부채에 대해 계열사들이 상호 지급 보증을 할 때는 한 계열사의 부도가 다른 계열사의 부도를 일으켜 재벌 그룹이 통째로 부도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바람에 은행권 역시 큰 위기에 직면하였다.

그렇지만 김대중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계열사 간 지급 보증을 금지했고 대기업의 부채 비율을 현격하게 낮추도록 했다. 따라서 오늘날 재벌 계열사의 부채 비율은 미국 대기업보다 더 낮으며 더우나 계열사 간 지급 보증은 아예 없다. 그러므로 정태인이 염려하는 것과 같은 재벌 계열사 하나가 망한다고 해서 시스템 위기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2008년 이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주요 20개국(G20) 차원에서 논의된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 기관"에 대한 규제 이야기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제1장과 제2장에서 이미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예컨대 은행 등 금융 기관에 대한 '동태적 바젤 규제'와 임직원 보너스 규제, 스톡옵션 규제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금융 규제들은 모두 금융 시장의 주주 자본주의 이익에 반한다.

그런데 김상조를 비롯한 한국의 경제 민주화론자들은 전 세계적인 금융 시장 규제와는 동떨어진 이야기에 더욱 큰 관심이 있다. 즉, 금융 기관들의 주주 자본주의와 단기 수익성 지상주의를 규제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로지 출자 총액 제한 제도와 순환 출자 금지 같은 재벌 규제와 재벌 금융 규제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여전히 김상조 등은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규제, 신용파생상품 규제 같은 이야기들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재벌들만 규제하면 한국에서는 금융 위기가 재발하지 않을 것처럼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말한 것처럼, 그리고 다들 이미 직감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 만일 앞으로 제2의 금융 위기가 발발한다면 그것은 재벌 그룹 계열사들의 위기 , 특히 그 금융 계열사들의 위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은행들에서, 은행 대출(가계 대출)의 부실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계 대출 거품의 형성과 붕괴에는 (미국 월스트리트와 마찬가지로) 은행들의 주주 자본주의가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은행권의 주주 자본주의화를 경제 민주화의 이름으로 밀어붙인 이들이야말로 앞으로 닥칠 제2의 금융 위기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좌파 신자유주의자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애초 2012년 4월 20일 처음 발행한 글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참여연대를 이끌던 1997년 5월 신자유주의 정치 단체 '경제 자유 찾기 모임'에 참여했고, 이런 사실이 지난 2011년 10월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 논란이 되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관계를 확인한 결과, 선거 과정에서 그런 공방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일부 언론의 잘못된 보도에 근거한 해프닝이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애초 '경제 자유 찾기 모임'에 참여한 적이 없습니다. 이에 필자의 허락을 얻어 해당 부분을 삭제하고, 정정 공지합니다. <편집자>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프레시안기사] 4월 11일, 회장님 얼굴에 웃음꽃 핀 까닭은?

4·11 총선 결과에 가장 활짝 웃었을 사람은 누구일까?

지난 4월 11일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152석으로 의회 권력을 수성했다. 이로써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이 목소리 높였던 재벌 개혁 추진이 힘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설사 대선에서 야권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새로운 정부가 재벌 개혁을 추진할 때 새누리당이 큰 장애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나온 책 두 권이 눈에 띈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대담을 엮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쾌도난마 한국 경제>(부키 펴냄)와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오마이북 펴냄).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는 지난 2005년 펴낸 <쾌도난마 한국 경제>(부키 펴냄)에서 참여연대의 소액 주주 운동을 정면 비판했다. 이들은 '복지 국가'를 전면에 내세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도 "재벌 개혁을 말하며 한국 경제를 주주 자본주의로 재편하려는 '시장 경제론자' 혹은 '경제 민주화론자'"를 겨냥했다.

이들이 이 책에서 비판하는 "시장 경제론자" 혹은 "경제 민주화론자"의 대표 주자가 바로 민주통합당의 재벌 개혁 정책을 만드는데 참여한 유종일, 홍종학 그리고 <종횡무진 한국 경제>의 저자 김상조다. (이 중 홍종학은 민주통합당의 비례 대표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 지점에서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가 눈에 띈다. 김상조는 이 책에서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등이 중심이 되어 추진해온 소액 주주 운동을 비롯한 재벌 개혁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성찰하고, 좀 더 진전된 재벌 개혁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야권이 패배한 가장 큰 이유로 시민들의 고달픈 삶을 개선할 비전, 정책의 제시가 없었다는 점이 꼽힌다. 그렇다면 앞으로 여덟 달 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개혁 진영이 국민들의 사회 경제적 삶의 개선을 위해 제시할 미래 비전은 무엇일까?

진보 개혁 진영이 그간 제시한 프레임은 복지 국가론과 경제 민주화론이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복지 국가론을 대변한다면,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경제>는 경제 민주화론을 대변한다. 물론 양자 간의 접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양자 간에는 본질적인 견해 차이도 적지 않다.

앞으로 이 두 접근 간에는 치열한 논쟁이 진행될 것이며, 이 논쟁이 생산적으로 진행될수록 진보 개혁 진영의 미래 비전은 더 명확해지고 더 구체적으로 될 것이다. 따라서 양자 간의 견해 차이를 어설프게 봉합하는 것보다 양자 간의 견해 차이를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논쟁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재벌 개혁 더 나아가 한국 경제의 미래를 둘러싼 이 두 진영 사이의 논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는 게 바람직할까?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 원장이 두 책을 읽고 새로운 논쟁의 출발점이 될 만한 서평을 보내왔다. <편집자>

과연 합의가 가능할까?

인터넷 언론에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대담을 엮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쾌도난마 한국 경제> 광고가 뜨나 했더니 이어서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가 발간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올해의 이슈로 재벌 개혁을 꼽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입장에서는 이 두 진영 간의 논쟁을 어떻게든 정리해야 할 참이었다.

때마침 '프레시안 books'에서 이 두 책의 서평을 쓰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왔고 기꺼이 수락했다. 쾌도난마와 종횡무진이라…. 출판사가 붙인 제목이겠지만 패기가 넘친다. 더구나 두 책은 같은 디자이너가 한 건지 의심이 갈 정도로 표지 분위기까지 비슷하다. (실제로 두 책은 같은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 편집자)
김상조와 장하준은 내가 잘 알고 또 존경하는 후배들이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이론적으로 장하준 쪽에 속하고 다른 경제 정책에 관해서도 거의 의견이 같다. 단, 재벌 개혁과 중앙은행 문제를 빼고…. 이해 당사자 자본주의라든가, 산업 정책의 중요성, 제조업 중시, 사업 서비스의 강조에서 그렇다.

동시에 나는 김상조가 지난 10여 년간 해온 재벌 개혁 운동에 찬사를 보낸다. 구체적인 정책과 실천이라는 점에서 김상조가 해 온 일은 가히 경이롭다. 아래와 같은 경제개혁연대의 창립 선언문은 그의 이런 정신을 잘 보여준다.

"거대 담론의 실패 경험을 되풀이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성공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확립하고, 이를 통해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종횡무진 한국 경제>, 18쪽)"
삼성과의 피를 말리는 싸움에서 정확한 수치와 법적 근거에 매진한 김상조가 보기에 추상적인 거대 담론이나 청사진은 허망할 것이고, 또 그 때문에 진보 진영이 실패를 되풀이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여 공공 토론 장소에서도 진보 쪽의 추상적인 주장에 그는 과도한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고백하건대 나도 그 대상 중 하나이다.

▲ <종횡무진 한국 경제>(김상조 지음, 오마이북 펴냄). ⓒ오마이북
{#8996430587#}<종횡무진 한국 경제>는 이런 김상조의 고민이 잘 드러난 책이다. 특히 그는 자신의 지난 운동을 통렬하게 반성한다.

"지난 10여 년간 진행된 이른바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 모델 중심의 지배 구조 개선 노력이 후하게 평가돼도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에서 헤매고 있으며, 박하게 평가하자면 정상 궤도를 이탈해 사실상 실패에 이른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196쪽)
나아가서 김상조는 제도의 상호 보완성이나 경로 의존성을 고려해서 새로운 운동 방향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다.

아! 이렇다면 이른바 참여연대 대 대안연대(나도 회원이었던 이 단체는 2010년 2월 25일 해체했다) 간의 오랜 논쟁, 그러나 별로 생산적이지 못했던 논쟁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종횡무진 한국 경제>를 덮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첫 몇 쪽을 읽었을 때 분위기는 절망적이었다.

생각이 비슷한 세 사람이 대담을 한 기록이라서 아마도 분위기의 증폭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제일 곤혹스러웠던 것은 이들이 말하는 "시장 경제론자" 또는 "경제 민주화론자"가 누군지 떠올릴 수 없었다는 점이다. 맨 마지막 쪽에 이르러서야 유종일, 김상조 등이 펴낸 <박정희의 맨얼굴>(시사IN북 펴냄)이 주된 표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늦었다. 원고 마감시간이 지났으니까….

세세한 얘기는 생략하겠지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약 100쪽까지는 장을 넘길 때마다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어떻게 김상조가 신자유주의자란 말인가? 토빈세의 도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시장 만능론자가 있을까? 앞뒤가 안 맞는 경우도 많이 있다.

강만수는 앞부분에서는 환율 방어에 나선 산업 정책의 화신이 되었다가 뒤에 가면 시장 개혁론자로, 그리하여 김상조와 같은 집단에 속하게 된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 개혁론자(즉, 나도 포함된다)들도 관료와 함께 주주 자본주의를 만들려고 노력한 사람들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목숨 걸고 싸운 사람들이 실은 한편이었다니 이 얼마나 극적인가?

구체적인 사실이 어긋나는 것도 꽤 많이 눈에 뜨인다. 예컨대 2008년 금리 논쟁에서 장하준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금리 인상에 반대하였지만 당시 인상론자들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처럼 두 자릿수로 올리자는 건 결코 아니었다. 내 기억으론 기껏해야 0.25퍼센트에서 0.5퍼센트 인상을 주장한 것이었다.

물론 장하준의 말대로 금리는 둔탁한 정책 수단이라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 그러나 그 대안이 자본 통제라면 누구나 고개를 내두를 것이다. 갑자기 도입할 수 있다거나 미세 조정에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은 아니기 때문이다. (곧 나올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의 새 책에서 소개했지만 동아시아가 공동의 환율 정책, 외환 보유고 관리 정책을 사용한다면 자본 통제도 수월하게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도 꽤 많은데 예컨대 종합부동산세 비판이 그러하다. 자산세와 소득세가 꼭 대립적인 것도 아닐 것이고, 장하준의 주장대로 "주주 자본주의" 때문에 자산 투기가 일어나는 세상에서, 그리하여 실물 투자가 감소하는 상황이라면 자산 가격의 규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헨리 조지가 부동산 빼곤 시장이 완벽하다고 보았으니 종합부동산세 역시 틀린 처방이라는 식인데 이렇게 이 세상 모두를 시장 만능론자로 만드는 방식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쾌도난마 한국 경제>(장하준·정승일·이종태 지음, 부키 펴냄). ⓒ부키
{#8960512125#}이런 논법이라면 중앙은행이 물가를 넘어 자산 가격 안정 등 전반적인 경제 안정을 떠맡아야 한다고 주장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역시 신자유주의자이며 주주 자본주의론자다. 중앙은행의 역할을 강조하면 보수주의자인데 거기다 자산 가격까지 떠맡으라니…. 말하자면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 괴물을 만들어 놓고, 또 모두를 괴물로 만들어서 신나게 두드려 팬 것이다.

다행히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중간부터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어쩌면 타협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심사숙고하면서 단어를 골라 쓴 책과 그야말로 격정적인 대담의 구체적인 논리와 통계를 하나하나 비교하는 건 아무래도 불공정하다. 하여 여기선 재벌 개혁과 관련해서 타협점이 있는지만 살펴본다.

특히 장하준의 이론으로 재벌 개혁론을 만들면 어떤 모습이 될까가 책을 읽으면서 주로 한 생각이다.

이해 당사자 이론과 주주 이론 그리고 재벌개혁
나는 금융 세계화 그리고 주주 자본주의가 양극화의 근원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앞에서 언급한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에서 곧 나올 책에도 자본 통제와 거시 건전성 규제에 한 장씩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만악의 근원인 주주 자본주의를 규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은 과연 무엇일까?

허망하게도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재벌의 경영권 보호를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과연 경영권을 보호해 주면 재벌들이 배당금을 줄여서 투자를 늘리고 하청 단가도 올려주며 노동자 임금도 끌어 올릴까? 만일 주주 자본주의 규제, 예컨대 황금주 제도를 도입하여 장하준이 원하는대로 적대적 인수·합병의 가능성이 사라진다면 이제 "재벌 해체"를 해도 무방할까?

불행히도 한 나라에서 당장 이런 효과를 낼 뾰족한 정책은 별로 없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조와 세계적인 금융 규제의 강화의 진행에 맞춰서 주주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시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장하성이 참여연대에서 시작하고 김상조가 경제개혁연대에서 이어받은 재벌 개혁 운동은 주주 이론(shareholder theory)에 근거한 소액 주주 운동이었다. 사실 소액 주주 운동은 집단 행동의 딜레마(비용은 어마어마한데 나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거의 없다)에 속하기 때문에 실패할 운명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한 줌도 안 되는 지식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야말로 혁혁한 성과를 거뒀다. 증권 집단 소송제라든가, 사외 이사 제도의 도입, 주주 대표 소송제, 집중 투표제 등의 도입을 그 누가 폄하할 수 있으랴. (정작 김상조는 제도의 보완성 문제 때문에 별 효과가 없었다고 반성하지만!)

그러나 주주가 회사의 주인이며 회사는 주주의 이익 극대화라는 단일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주주 이론의 한계도 이 운동에 반영되었다. 물론 그렇게 짜여 있는 법적 현실에서 주로 소송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이 이론을 택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김상조는 케인스주의자이고 원래 이론이나 이번 책으로 봐서는 이해 당사자 이론에 더 가깝다) 더 큰 범위의 재벌 개혁을 꾀한다면 주주 자본주의라는 협소한 틀은 정책을 옥죄는 차꼬가 될 수 있다.

이 점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 장하준 등(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장하준은 장하성의 사촌동생이다!)의 이해 당사자 이론(stakeholder theory)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장하준은 본격적인 이해 당사자 이론을 전개하기보다 외국 자본의 재벌 매수를 걱정하고 주주 자본주의의 단기주의를 비판하는데 그치고 있으며 대안은 경영권과 복지의 교환이라는 사회적 대타협이다.

이미 모든 세력을 다 장악한 재벌이 왜 이런 타협안을 받아들일까? 한 몸처럼 움직이는 재벌과 관료 그리고 보수 언론의 힘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백보 양보해서 장하준의 주장과 같은 사회적 타협을 위해서라도 강력한 재벌 규제는 필수적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래야 재벌도 움찔해서 한 발자국이라도 물러서지 않겠는가?

만일 이해 당사자 이론에 입각하면 재벌 개혁은 어떤 모습이 될까?

나는 재벌을 '팀 생산(team production)'으로 본다. 재벌 시스템을 구성하는 이해 당사자 즉 총수 등 지배 주주, 경영자, 노동자, 하청 기업(supplier), 은행 등 채권자와 같은 1차 이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재벌의 영향을 받는 소비자나 지역 공동체 등 2차 이해 당사자가 모두 참여해서 공동의 성과를 거두는 생산 시스템으로 보는 것이다.

팀 생산도 사회적 딜레마에 속하기 때문에 어떻게 이해 당사자 간의 협동을 자아내서 최선의 성과를 거둘 것인가가 핵심적 과제가 된다. 그동안 행동 경제학·실험 경제학, 진화 심리학, 진화 생물학 등이 밝혀낸 협동 진화의 규칙들이 잘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재벌 문제의 해법이 될 것이다.

각 이해 당사자의 권한, 즉 탈출이나 목소리에 의한 견제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협동은 사라지고 일방적인 수탈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팀 생산 전체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소액 주주 운동이 그동안 이뤄낸 성과는 지배 주주에 의한 소액 주주의 수탈, 즉 터널링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수탈의 말단을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하청 기업들의 권한을 강화하고 이익을 공유하게 하는 정책은 주주 자본주의 이론에서 도출될 수 없다.

팀 생산 이론과 협동의 규칙을 응용한다면 이해 당사자의 세력화(empowerment)와 이윤 공유가 전체 효율성 제고의 전제라는 사실을 도출할 수 있다. 협동이 이뤄지려면 무임 승차자(free rider, 여기서는 재벌 기업)에 대해 구성원들의 자발적 응징(punishment)이 가능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합 설립, 최저 임금 인상, 하청 기업의 집단 교섭권, 공정거래위원회의 강화, 소비자 권리 강화 등이 이해 당사자 세력화에 해당하는 제도들이다. 즉, 나는 현재의 재벌 체제를 그대로 놔두어서는 과거와 같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바로 경제 민주화에 의해서 재벌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둘째, 이익 공유다. 팀 생산의 결과를 어떻게 분배하느냐는 분배 정의의 문제일 뿐 아니라 팀의 효율성 제고도 결정한다. 조지 애컬로프의 '선물로서의 임금 이론' 그리고 실험 경제학의 임금 게임(투자 게임)에서 잘 드러났듯이 생산과 분배는 분리되지 않는다. 예컨대 준거 임금(reservation wage)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은 노동자는 더 열심히 일한다.

1980년대 이래 리처드 프리먼 등 미국의 '공유 자본주의론(shared capitalism)'자들은 종업원 지주제, 이윤 공유제 등이 이해 당사자의 경영 참가와 결합될 때 가장 성과가 좋다는 것을 장기간에 걸쳐 실증했다. 이 이론을 재벌 시스템의 하청 기업과 지역 공동체에까지 적용하는 것이 이해 당사자 이론에 입각한 재벌 개혁의 핵심 중 하나이다. 노동자와 하청 기업이 모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고 경영에 참여한다면 장하준 등이 걱정하는 적대적 인수·합병 문제도 일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재벌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점은 시스템 위기의 가능성을 따지는 것이다. 이미 재벌의 규모는 너무나 커져서 대마불사의 경지에 이른 지 오래다. 즉, 재벌 계열사 중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면 한국 경제는 시스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과연 장하준의 생각대로 주주 자본주의의 압력만 없애주면 재벌들이 효율적으로 신산업에 진출해서 과거와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만일 그 신산업 진출이 실패해서 조조의 선단처럼 화공 한 방에 무너져 버린다면? 새로운 산업의 진출이나 연구개발(R&D) 투자 증대, 기초과학이나 인력의 양성이야말로 국가의 산업 정책이 할 일이지 재벌에 맡겨 둘 일이 아니다.

이런 인식은 세계 금융 위기 때 세계 주요 20개국(G20)이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 기관"의 거시 건전성 규제를 논의한 배경과 동일하다. 이때는 국민 전체가 이해 당사자가 된다. 이 관점에서는 시스템 위기의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하는 규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출자 총액 제한 제도나 순환 출자 금지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런 제도가 재벌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가능성도 면밀히 검토해서 수량 규제의 폭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즉, 이해 당사자 이론에 입각해서도 이해 당사자의 세력화, 이윤 공유제, 사전 규제로 구성되는 종합적인 재벌 개혁 이론을 만들 수 있다. 김상조는 이미 새로운 재벌 개혁 이론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만일 장하준이 재벌의 효율성에 대한 선험적 가정을 완화한다면 다같이 재벌 개혁에 나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희망적인 것은 김상조와 장하준이 모두 '기업 집단 법' 제정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 집단 법이란 재벌의 실체를 인정하고 일부 규제는 약화시키되 총수 권한의 크기만큼 책임도 지도록 하는 것이다. 또 장하준 등도 재벌이 영리 병원을 주장하는 등 공공 서비스 분야에 진출하는 데 적극 반대하고 있으며 법의 엄정한 집행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도 동일하다.

우리는 이해 당사자 이론에 입각한 재벌 개혁을 위해 '기업 집단 법', '이윤 공유에 관한 법' 등을 제정하고 상법, 공정거래법을 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향으로 한 목소리를 내야 재벌도 그리고 한국 경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김상조, 장하준 두 경제학자가 이렇게 타협하기를 바라지만 어쩌면 둘로부터 동시에 협공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프레시안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The End [Doors]

This is the end
Beautiful friend
This is the end
My only friend, the end
Of our elaborate plans, the end
Of everything that stands, the end
No safety or surprise, the end
I'll never look into your eyes...again
Can you picture what will be
So limitless and free
Desperately in need...of some...stranger's hand
In a...desperate land

Lost in a Roman...wilderness of pain
And all the children are insane
All the children are insane
Waiting for the summer rain, yeah

There's danger on the edge of town
Ride the King's highway, baby
Weird scenes inside the gold mine
Ride the highway west, baby
Ride the snake, ride the snake
To the lake, the ancient lake, baby
The snake is long, seven miles
Ride the snake...he's old, and his skin is cold
The west is the best
The west is the best
Get here, and we'll do the rest
The blue bus is callin' us
The blue bus is callin' us
Driver, where you taken' us

The killer awoke before dawn, he put his boots on
He took a face from the ancient gallery
And he walked on down the hall
He went into the room where his sister lived, and...then he
Paid a visit to his brother, and then he
He walked on down the hall, and
And he came to a door...and he looked inside
Father, yes son, I want to kill you
Mother...I want to...WAAAAAA
C'mon baby,--------- No "take a chance with us"
C'mon baby, take a chance with us
C'mon baby, take a chance with us
And meet me at the back of the blue bus
Doin' a blue rock
On a blue bus
Doin' a blue rock
C'mon, yeah
Kill, kill, kill, kill, kill, kill

This is the end
Beautiful friend
This is the end
My only friend, the end
It hurts to set you free
But you'll never follow me
The end of laughter and soft lies
The end of nights we tried to die
This is the end





In 1969, Morrison stated:
Everytime I hear that song, it means something else to me. It started out as a simple good-bye song.... Probably just to a girl, but I see how it could be a goodbye to a kind of childhood. I really don't know. I think it's sufficiently complex and universal in its imagery that it could be almost anything you want it to be.[4]
Shortly past the mid-point of the nearly 12-minute long album version, the song enters a spoken-word section with the words, "The killer awoke before dawn... " That section of the song reaches a dramatic climax with the lines, "Father/ Yes son?/ I want to kill you/ Mother, I want to ..." (with the next words screamed out unintelligibly).[5] This is often considered a reference to the Oedipus complex. Ray Manzarek, the former keyboard player for the Doors explained:
He was giving voice in a rock 'n' roll setting to the Oedipus complex, at the time a widely discussed tendency in Freudian psychology. He wasn't saying he wanted to do that to his own mom and dad. He was re-enacting a bit of Greek drama. It was theatre![6]
In John Densmore's autobiography "Riders on the Storm" he recalls when Jim explained the meaning:
At one point Jim said to me during the recording session, and he was tearful, and he shouted in the studio, 'Does anybody understand me?' And I said yes, I do, and right then and there we got into a long discussion and Jim just kept saying over and over kill the father, fuck the mother, and essentially boils down to this, kill all those things in yourself which are instilled in you and are not of yourself, they are alien concepts which are not yours, they must die. Fuck the mother is very basic, and it means get back to essence, what is reality, what is, fuck the mother is very basically mother, mother-birth, real, you can touch it, it's nature, it can't lie to you. So what Jim says at the end of the Oedipus section, which is essentially the same thing that the classic says, kill the alien concepts, get back reality, the end of alien concepts, the beginning of personal concepts.[7]

Bohemian Raphsody [Queen]

Is this the real life?
Is this just fantasy?
Caught in a landslide
No escape from reality
Open your eyes
Look up to the skies and see
I'm just a poor boy (poor boy), I need no sympathy
Because I'm easy come, easy go
little high, little low
Anyway the wind blows, doesn't really matter to me, to me

Mama, just killed a man
Put a gun against his head
Pulled my trigger, now he's dead
Mama, life had just begun
But now I've gone and thrown it all away
Mama, ooo
Didn't mean to make you cry
If I'm not back again this time tomorrow
Carry on, carry on, as if nothing really matters

It's too late, my time has come
Sends shivers down my spine
Body's aching all the time
Goodbye everybody - I've got to go
Gotta leave you all behind and face the truth
Mama, ooo - (anyway the wind blows)
I don't want to die
I sometimes wish I'd never been born at all



I see a little silhouetto of a man
Scaramouche, scaramouche, will you do the fandango?
Thunderbolts and lightning - very very frightening me
Galileo, Galileo,
Galileo, Galileo,
Galileo Figaro - magnifico-o-o-o

I'm just a poor boy nobody loves me
He's just a poor boy from a poor family
Spare him his life from this monstrosity
Easy come easy go - will you let me go
Bismillah! No - we will not let you go - let him go
Bismillah! We will not let you go - let him go
Bismillah! We will not let you go - let me go
Will not let you go - let me go (never)
Never let you go - let me go
Never let me go - ooo
No, no, no, no, no, no, no -
Oh mama mia, mama mia, mama mia let me go
Beelzebub has the devil put aside for me
for me
for me
for me



So you think you can stone me and spit in my eye?
So you think you can love me and leave me to die?
Oh baby - can't do this to me baby
Just gotta get out - just gotta get right outta here



Ooh yeah, ooh yeah
Nothing really matters
Anyone can see
Nothing really matters, nothing really matters, to me

Anyway the wind blows...







http://en.wikipedia.org/wiki/Bohemian_Rhapsody

Africa [Toto]

I hear the drums echoing tonight
But she hears only whispers of some quiet conversation
She's coming in 12:30 flight
The moonlit wings reflect the stars that guide me towards salvation
I stopped an old man along the way,
Hoping to find some old forgotten words or ancient melodies
He turned to me as if to say, Hurry boy, It's waiting there for you

CHORUS:
It's gonna take a lot to take me away from you
There's nothing that a hundred men or more could ever do
I bless the rains down in Africa
Gonna take some time to do the things we never have


The wild dogs cry out in the night
As they grow restless longing for some solitary company
I know that I must do what's right
As sure as Kilimanjaro rises like Olympus above the Serengeti
I seek to cure what's deep inside, frightened of this thing that I've become

CHORUS

(Instrumental break)

Hurry boy, she's waiting there for you

It's gonna take a lot to take me away from you
There's nothing that a hundred men or more could ever do
I bless the rains down in Africa, I bless the rains down in Africa
I bless the rains down in Africa, I bless the rains down in Africa
I bless the rains down in Africa
Gonna take some time to do the things we never have

Down Under [by Men at Work]

Traveling in a fried-out combie
On a hippie trail, head full of zombie
I met a strange lady, she made me nervous
She took me in and gave me breakfast
And she said,

"Do you come from a land down under?
Where women glow and men plunder?
Can't you hear, can't you hear the thunder?
You better run, you better take cover."

Buying bread from a man in Brussels
He was six-foot-four and full of muscles
I said, "Do you speak-a my language?"
He just smiled and gave me a vegemite sandwich
And he said,

"I come from a land down under
Where beer does flow and men chunder
Can't you hear, can't you hear the thunder?
You better run, you better take cover."



Lyin' in a den in Bombay
With a slack jaw, and not much to say
I said to the man, "Are you trying to tempt me
Because I come from the land of plenty?"
And he said,

"Do you come from a land down under?
Where women glow and men plunder?
Can't you hear, can't you hear the thunder?
You better run, you better take cover."
Yeah!

Living in a land down under
Where women glow and men plunder
Can't you hear, can't you hear the thunder?
You better run, you better take cover!

Living in a land down under
Where women glow and men plunder
Can't you hear, can't you hear the thunder?
You better run, you better take cover!







Background and writing

Colin Hay told Songfacts: "The chorus is really about the selling of Australia in many ways, the over-development of the country. It was a song about the loss of spirit in that country. It's really about the plundering of the country by greedy people. It is ultimately about celebrating the country, but not in a nationalistic way and not in a flag-waving sense. It's really more than that."[4]

[edit] Content

The lyrics are about an Australian traveller circling the globe, proud of his nationality, and about his interactions with people he meets on his travels who are interested in his home country.
One of the verses refers to Vegemite sandwiches, among other things; the particular lyric "He just smiled and gave me a Vegemite sandwich" has become a well-known phrase.[5]
Slang and drug terms are used in the lyrics:
Travelling in a fried-out Kombi, on a hippie trail, head full of zombie.
Here "fried-out" means overheated,[6] Kombi refers to the Volkswagen Type 2 combination van,[5][6] and having "a head full of zombie" refers to the use of a type of marijuana.[5][6] Cultural slang is also used: after the second verse the refrain is "where the beer does flow and men chunder"; "chunder" means vomit.[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