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9일 목요일

[프레시안 사회] 최악의 녹조

불과 한 달 반 만에 찾은 창녕·합천보 일대 낙동강은 물감을 뿌려놓은 듯했다. 연녹색 도화지 위에 형형색색의 무늬가 마치 쇠고기의 마블링처럼 그려져 있었다. 강 근처에서 손으로 물을 휘휘 저으니 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십 종의 녹조류가 묻어나왔다. 악취도 심했다. 구제역 지역에서 나오는 살처분 냄새가 났다. 생수로 손을 씻었으나 악취는 가시지 않았다.

"어제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오늘 아침에 확인해보니 이렇게 돼 있더군요."

임희자 마산·창원·진해환경연합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하며 혀를 찼다. 전날만 해도 녹조가 썩는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녹조가 썩고 있는 건 강에 나타난 마블링 무늬로 알 수 있었다. 장하나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렇게 상황이 심각한지 몰랐다"며 "지난번(6월 말)에 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낙동강 등 전국 하천이 녹조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영산강부터 낙동강, 이젠 한강 중류까지 녹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근래에 보기 드문 현상이다. 이러한 원인을 두고 여러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폭염을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반면, 환경단체는 4대강 사업으로 설치된 '보'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정부가 폭염을 원인으로 꼽는 이유는 북한강 상류와 한강 중류에서 발생하는 녹조 현상 때문이다. 북한강과 한강은 4대강 사업과 관련이 없는 지역이다. 이를 두고 녹조 현상은 4대강 사업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 합천보 인근 낙동강. 녹조가 썩어 악취를 풍기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하늘만 탓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9일 장하나 민주통합당 의원이 창녕·합천보를 찾은 자리에서도 정부는 똑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이 자리에서 김상배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은 현재 발생하는 녹조 현상 원인으로 '폭염'을 꼽았다.

김 청장은 "최근 낙동강 하류(달성보, 합천·창녕보, 창녕·함안보)와 중류(낙단보, 구미보, 칠곡보, 강정고령보)에서 남조류(독성 녹조)가 발생했다"며 "상류 지역인 상주보만 제외하고는 낙동강 7개 보 모두에서 남조류가 발생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 청장은 "현재의 녹조 현상, 특히 남조류 현상은 수온 상승으로 발생한 것"이라며 "30도가 넘는 수온이 유지되는 이상 녹조 현상은 지속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수온이 상승한 이유를 두고 김 청장은 "장마 기간이 짧았고 무더위가 지속된 게 가장 큰 원인"이라며 "과거 3년의 평균에 비해 비가 79% 왔고, 이에 더해 폭염으로 수온은 27도에서 29도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반면, 장하나 의원은 녹조 현상의 원인으로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보를 지적했다. 보가 설치되면서 물이 고이게 됐고, 부영양화가 심화해 녹조현상이 발생했다는 것. 장 의원은 "1994년 당시 지금보다 훨씬 심한 폭염이 있었을 때도 낙동강 하구에만 녹조가 발생했다"며 "지금과 같은 녹조 현상은 전대미문"이라고 주장했다.

장 의원은 "낙동강 인근에서 수십 년 넘게 사시던 분들도 이런 녹조 현상은 처음 본다고 혀를 두른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폭염 탓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 의원은 "4대강 사업이 있고 나서, 지금과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면 정부는 4대강 사업도 지금의 원인 중 하나로 판단하고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며 "하지만 하늘 탓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초록정책실장도 "보가 설치되지 전에는 녹조 현상이 낙동강 하류에만 발생했다"며 "하지만 보가 설치된 이후엔 정체 현상이 심화해 녹조 현상이 중류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수온 상승과 관련해서도 이 처장은 "물이 흐르면 수온은 자연히 내려간다"며 "하지만 보로 인해 물이 정체하니 수온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처장은 "더구나 낙동강 바닥에 쌓여있는 모래를 다 긁어내 물을 필터링 하는 장치도 사라진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녹조 현상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좌관 교수 "4대강 사업과 녹조현상과 상관관계 있다"

환경단체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는 보고서도 발표됐다. 9일 김좌관 부산 카톨릭대 환경공학과 교수가 발표한 '4대강 녹조 현상의 원인과 문제점'이란 보고서를 보면 4대강 사업이 지금의 녹조현상과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 녹조가 썩어 마불링을 띄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보고서를 보면 낙동강의 경우, 1987년 하구둑 완공 이후 하류구간 유속이 낮아지고 체류시간이 길어지면서 조류번성이 큰 문제가 되어 왔다. 하지만 현재 강정보나 달성보 지점에는 조류현상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 이유를 두고 김 교수는 강정보나 달성보 지점에서의 총인농도(녹조현상을 발생시키는 부영양화 유발물질 농도)가 높지만 강 흐름을 막는 큰 구조물, 즉 보가 없어 조류발생을 유발할 수리학적 조건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이에 현재 낙동강 중류부에 발생한 녹조현상은 최근 완공된 보로 인해 긴 체류시간이 보장되면서 생긴 걸로 김 교수는 파악했다. 김 교수는 현재 녹조현상은 보의 수문을 개방해 하천 흐름이 과거와 같이 이뤄진다면 억제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김 교수는 북한강에서 발생한 녹조현상을 근거로 "조류가 빠르게 증식하는 조건이 갖춰졌을 경우, 체류시간이 녹조발생을 결정하는 걸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녹조현상의 주요 발생원인은 높은 수온과 높은 총인농도로 알려졌지만, 남·북한강 중 총인농도가 낮은 북한강에서 먼저 조류가 대규모로 발생했다는 게 근거였다. 북한강에 설치된 7개의 댐이 남한강보다 상대적으로 긴 체류기간을 갖도록 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한강, 낙동강 등 우리나라 하천은 충분한 체류시간만 보장되면 강에서도 녹조가 언제든 번성할 수 있는 수질여건을 가지고 있다"며 "강에 보를 건설해 체류시간을 증가시키는 일은 녹조가 확산되도록 유도할 수 있는 여건조성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진실을 보려 하지 않는 정부가 안타깝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유속과 관련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공정옥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대구 가창댐과 운문댐 인근에서는 녹조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낙동강 중류에서는 녹조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옥 처장은 "이것만 봐도 녹조현상은 단순히 폭염 등 하나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며 "우리 역시 4대강 사업 하나 때문에 녹조현상이 발생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공정옥 처장은 "폭염도 녹조현상을 일으키는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또한, 4대강 사업도 이번 녹조현상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정옥 처장은 "하지만 정부는 한사코 4대강 사업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며 "원인을 알아야 문제도 해결하는데 아예 4대강 사업은 빼놓으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공정옥 처장은 "만능이라고 이야기했던 4대강 사업을 부정해야 하니 현 정부로선 환경단체의 지적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하지만 현재의 문제는 매년 반복될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임에도 진실을 보려 하지 않는 정부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 녹조현상으로 죽은 물고기. ⓒ프레시안(허환주)


ⓒ프레시안(허환주)


▲ 녹조현상이 심화돼 녹조가 썩고 있다.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합천




녹조 현상으로 먹는 물에 비상이 걸렸다. 낙동강에 이어 북한강, 팔당 취수장까지 녹조 현상이 번져 심각한 상황이다. 그간 환경단체는 4대강 사업이 진행되면 물이 고여 녹조 현상이 심화할 거라고 경고해 왔다. 환경단체의 예견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번 녹조 현상이 폭염에 의한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환경부의 녹조 관련 대책을 보고받은 이명박 대통령은 "기후변화로 장기간 비가 오지 않고 폭염이 지속해 발생하는 불가피한 현상"이라며 관련 부처의 적극 대응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국민의 걱정이 많으니 국민 건강과 안전에 문제없도록 잘 관리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안내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유영숙 환경부 장관은 이날 낙동강 수계에는 고도정수처리시설이 갖춰져 있고, 정수처리 등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 크게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보고했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이 말한 바로는 이날 회의에선 4대강 사업과 녹조 발생의 연관성에 대해선 어떤 언급도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녹조 원인은 폭염과 가뭄으로 한정됐고, 기후변화가 그 원인으로 지목됐다.

박 대변인은 녹조 현상의 원인으로 정부의 4대강 사업이 지목되고 있는 것을 두고 "녹조와 4대강 사업은 관련이 없다"며 "이런 식의 호도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 낙동강 본류에서 하루 28만t의 물을 취수하는 경남 창원시 본포취수장 인근 강이 4일 초록빛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녹조현상이 심하다. 수자원공사측이 보트를 동원해 물을 순환시키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물이 고여 있으니 녹조 현상이 발생한다"

환경단체는 이런 청와대의 반응을 두고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비판했다. 황인철 녹색연합 4대강 현장팀장은 "이명박 대통령도 그렇고 환경부 관계자도 녹조 현상이 4대강 사업과 관련 없다고 한다"며 "그 이유는 녹조 현상은 호수 같은 고여 있는 물에서 발생하는 걸 전제로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 팀장은 "실제 녹조 현상은 물이 흐르는 하천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고 호수 등에서 문제가 된다"며 "정부는 이것을 근거로 4대강 사업이 녹조와 관련이 없다고 이야기한다"고 덧붙였다.

황 팀장은 "하지만 4대강 사업은 보로 하천을 막아 고이게 해놓은 사업"이라며 "낙동강 하류 등에서 녹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강물이 이미 호수처럼 고여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폭염이 계속돼 녹조 현상이 심화했다는 정부의 주장도 반박했다. 황 팀장은 "기온과 수온은 다른 개념"이라고 전제한 뒤 "남조류는 수온이 높아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황 팀장은 "물이 흐르면 기온이 높아도 수온은 높아지지 않는다"며 "수온이 오를 때는 물이 정체됐을 때"라고 주장했다.

황 팀장은 "낙동강이 과거처럼 흘렀다면 지금 상황은 발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높은 기온만 가지고 4대강 사업과 무관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전제 자체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젠 하늘만 탓하는 정부"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명호 생태지평 사무처장은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면서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다고 했다"며 "하지만 정작 사업 완료 이후엔 되레 조류 현상 등 아주 낯선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호 처장은 "이전엔 벌어지지 않았던 일들이 벌어졌고, 그 중간에는 4대강 사업이 진행됐지만, 정부는 무조건 4대강 사업은 이런 현상과는 관련이 없다고만 한다"며 "만약 관련이 없다면 근거를 가지고 없다고 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명호 처장은 "낙동강 지역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폭염이 발생했지만 지금처럼 상류 지역까지 녹조가 확산하거나 상류 수질이 안 좋아지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에 발생한 전국적인 녹조 현상을 오로지 하늘 탓만으로 돌리기에는 심각한 무리가 따른다"며 "올해 초에는 한겨울임에도 녹조 현상이 4대강 곳곳에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4대강 사업의 부작용은 국민의 안녕과 직결한다"며 "매번 '하늘 탓, 남 탓'만 하는 이명박 정부에게 더는 신뢰가 있을 수 없다"며 "4대강 사업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19대 국회와 대선 후보들이 환경단체와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허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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