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5일 수요일

[한겨레 시론] 한국의 의견시장과 대선 여론왜곡 / 방정배

[시론] 한국의 의견시장과 대선 여론왜곡 / 방정배

천동설은 중세시대의 지배적 여론이었다. 다수 의견이었고 믿음이었다. 참 인식과 거리가 먼 거짓이었다. 감정·비합리성·충동이 동반된 다수의 여론이, 지성과 합리성을 갖춘 지식과 과학을 압도하고 이긴 것이다.

개인의 사적 의견이 공적 집합의견이 될 때 그것을 여론이라고 칭한다. 독재사회는, 의견이 공적으로 집합할 수 있는 의견시장이 닫혀 있어 폐쇄사회라 하고, 힘 있는 자의 독단적 의견이 공식 여론으로 행세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선 의견의 자유시장이 열려 있어 누구나 개별 의견과 주장을 이 공개장에 내놓을 수 있고 공개리에 검증되고 동의나 거부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거짓과 악의 의견이 여론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아주 낮다. 그런데 이 의견시장의 장터 제공과 의견 제출, 의견 중재 등 여론 형성의 거간꾼 역할 담당자가 언론매체다. 의견소비자로서의 국민들은 뉴스·해설 등 언론정보에 의존해 의견을 형성하기도 하고 바꾸기도 하는데 언론이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의견 중재를 못하면 여론 왜곡이 발생한다.
이런 의미에서 언론매체는 여론의 모태에 비유할 수 있고, 모태가 건전해야 건강한 아기가 태어나듯 건전한 언론활동에 기대어서만 튼실한 여론이 형성된다.

민주주의를 위해 정부와 언론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언론을 선택하겠다는 제퍼슨 대통령의 명언은 언론에 의해서만 여론이 형성되고 여론에 의해서만 민주적 지배가 행해지기 때문이다. 이 경우, 언론은 건전한 여론 형성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에 의해 거짓과 왜곡 여론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견시장에서 언론의 정론 직필과 공정하고 중립적인 보도활동은 건강한 여론 형성의 충분조건이다. 지명도 높은 학자나 논객 등 오피니언 리더의 이름으로 5·16을 무혈혁명이라느니, 유신정권을 산업화를 위한 불가피한 구국이라느니, 4대강 파괴 공사를 4대강 살리기 공사라느니 하며 의견소비자인 국민을 기만한 것이 주류 언론들이다.

천하의 춘원도 친일을 애국으로 착각했듯 오늘의 저명 지식인도 착각과 망조의 의견 자유는 있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인식과 의견을 곡필로 의견시장에 내놓는 순간, 그것은 정신적 오염상품이 되어 대중여론을 오도한다. 목하 대선 의견시장에서 어용 언론인이나 학자들의 곡필과, 독단적이고 편파적인 의견들이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다자대결이니 대세론이란 주류 언론의 허구성 논리가 그 대표적 실례다.

여야 후보가 대선에서 맞붙게 돼 있지 어떻게 다자대결이 가능한가. 그래서 다자대결 때 ㅂ후보가 월등하게 1위다라는 언표는 의견소비자 기만이다. ㅇ이라는 잠재후보가 인기리에 티브이에 한번 출연하니, 지지도 1위가 주르르 무너지는 것이 대세론의 허구성이며, 한국적 천동설과 무엇이 다른가. 5·16이나 10월유신 같은 불법수단으로 용꿈을 이루겠다는 후보를 주류 언론이 띄우기 하려니 온갖 정치수사를 동원하고 곡필을 휘두른다. 이런 추태는, 의견시장을 어지럽히고 왜곡 여론을 선전하여 대선에서 의견소비자 대중의 바른 선택행위를 저해한다. 언론의 자유가 곡필과 아세의 특권으로 착각되는 현금의 언론자유는 경계돼야 한다. 그것이 대선 여론을 심히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래서, 계몽된 의견소비자의 매체 선택과 거부운동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지금의 한국 소비대중은 에스엔에스(SNS)와 연대하여, 충동에 휘둘리는 비합리적 대중이 아니다.
방정배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