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7일 목요일

[프레시안] 곽노현 사건 대법원 판결에 대한 박동천 교수 글

결국 대법원은 곽노현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나는 대법원이 법의 목소리를 외면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면서도, 그래도 진실과 이치와 양심의 흔적이 이번에 표현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런 바람은 일단 짓밟혔다.

하지만 이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가깝게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남아 있지만,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사건이야말로 역사의 법정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재판한 이상훈, 신영철, 김용덕은 대법관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곽노현의 선의를 함부로 처벌했지만, 역사의 법정에서는 바로 이 세 사람이 피고인석에 서게 될 것이다.

법관의 지위를 이용해 함부로 법을 무시한 사례는 무척 많지만, 세 가지만 예시한다.

1975년 대한민국 대법원은 소위 "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 피고인들에게 사형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주지하다시피 이 나라 사법의 역사상 가장 큰 오점으로 기록되었다. 2007년 서울중앙지법에 의해 판결이 뒤집혔고, 박근혜조차도 며칠 전에 이를 인정했다. 박근혜가 즐겨 쓰는 문구 "역사의 판단"이란 이를 말하는 것이다.

프랑스 현대사에서 사법부의 수치는 드레퓌스 판결이 대표한다. 드레퓌스 대위는 1894년 조작된 증거에 의해 유죄 선고를 받았고, 1896년에 증거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오히려 그 사실을 밝혀낸 피카르 중령이 좌천당하고 말았다. 이를 항의하던 에밀 졸라는 궐석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1906년 재심에서 모든 혐의가 풀리고, 과거의 재판이 잘못이었음이 만천하게 공표되었다.

미국 사법의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 중에는 드레드 스코트 사건이 있다. 스코트는 노예제가 금지된 위스콘신 주 등지에서 거주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자기는 이미 자유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대법원은 미국에 거주하는 흑인은 미국 시민이 아니라 노예 소유주의 사유 재산이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 사건은 사회 안에 격렬한 분쟁을 일으키고, 결국 남북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 수정헌법 제13, 14, 15조에 의해서 무효가 되었다. 연방대법원 판결은 7대 2로 이뤄졌는데, 소수의견을 낸 매클린 대법관은 "법이 아니라 다수파의 입맛에 따른 판결"이라고 자리매김했다.

곽노현을 재판한 항소심 판결이 법이 아니라 입맛에 휘둘렸다는 사실을 나는 전에 밝힌 바 있다. (☞관련 기사 : "곽노현 항소심 판결문에는 논리가 없다") 대법원 판결문에서도 이 치명적인 결함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판결문은 이렇게 올바른 전제에서 출발하는 척 가장한다.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는 후보자이었던 사람이 후보자를 사퇴한 후 그에 대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이익 제공·수수 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후보자를 사퇴한 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이었던 사람에게 이익 등을 제공하는 행위와 후보자이었던 사람이 위와 같은 이익 등을 수수하는 행위에 한하여 이를 처벌한다."모든 이익 제공·수수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대가를 목적으로' 제공하는 행위에 한하여 처벌한다는 말이다. 이는 맞는 말이지만 가장에 불과하다. 가장이 아니려면, 곽노현이 건넨 돈이 '대가를 목적으로' 준 것인지를 따져야 하는데, 1심에서도 2심에서도 이를 따지지 않고 넘어가 버렸다. 따라서 법률심인 대법원은 마땅히 1심과 2심 재판이 근대 형사 재판에서 가장 기초적인 형식 요건도 갖추지 못했으므로 파기했어야 맞는다. 아니면 대법원 스스로 '대가를 목적으로' 돈이 건너갔다는 논증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판결문 어디를 봐도 이 핵심 쟁점이 논의되는 기미가 없다. 단지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위 규정의 적용 대상자와 구체적으로 금지되는 행위의 내용을 충분히 알고 이에 비추어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다고 우길 뿐이다.

나는 "위 규정의 적용 대상자와 구체적으로 금지되는 행위의 내용"을 전혀 모르겠다. 곽노현은 이렇게 물었다. 만약 문재인과 안철수가 상호 합의한 절차에 따라 단일화해서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가정할 때, 그가 취임한 후에 상대방을 국무총리에 임명한다면 "사후 매수 죄"에 걸리는가 안 걸리는가? 나는 이 질문의 답을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한 명도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곽노현을 재판한 1심과 2심의 판사들은 물론이고, 대법원의 이상훈, 신영철, 김용덕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를 "안다"고 말할 사람은 꽤나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아는" 것과 "안다고 우기는" 것을 분간하지 못하는 자폐증 환자일 뿐이다.

인혁당 재건위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판결했다. 당시 대법원은 민복기·홍순엽·이영섭·주재황·김영세·민문기·양병호·이병호·한환진·임항준·안병수·김윤행·이일규 등, 열세 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도 자기들이 한국 사법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판결을 내리고 있는 줄은 몰랐을 것이다. 드레퓌스를 재판한 프랑스 군사법원도 수치를 몰랐고, 스코트를 재판한 미국 연방대법원장 태니도 수치를 몰랐다.

왜 수치를 몰랐을까? 법을 자기들이 재단한다는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위가 역사의 법정에서 심판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이를 깨닫지 못했을까? 증거에 충실하지 않고 시류에 영합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진실과 정의와 양심의 목소리가 내면에서 올라오는 데도 억누르고, 법관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한다. 사후 매수라는 개념이 형사법적으로 성립하려면 사전 합의를 반드시 전제해야 한다. 곽노현 사건에서 이보훈과 양재원 사이에 오간 대화는 자체로 어떤 의무를 수반하는 합의일 수 없을 정도로 엉성하고 애매모호할 뿐만 아니라, 애당초 이보훈이 곽노현을 대리했다고 볼 여지도 전혀 없다. 판결문들을 읽어보면 1심과 2심 그리고 이번 대법원의 재판부조차, 사전 합의가 없었다는 취지를 백분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엉뚱하게 사후 매수가 성립한다는 듯이 우겨대고만 있다. 이것은 법이 아니라, 판사 개인들의 사리사욕일 뿐이다. 보수파의 기득권과 보수파가 지어낸 여론에 굴복한 것 말고는 어떤 의미도 여기에는 없다.

이 나라에서는 이렇게 인혁당 사건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인혁당 사건의 재판부가 역사의 법정에서 심판받는 데는 32년이 걸렸다. 드레퓌스 재판의 경우는 12년, 스코트 재판의 경우는 8년이 걸렸다. 판결은 뒤집혔지만, 법의 이름으로 불의를 자행한 어떤 판사도 개인적으로 처벌받지는 않았다.

나는 곽노현 재판은 이보다 빠르게 역사의 법정에서 심판받을 것으로 믿는다. 그날, 이상훈, 신영철, 김용덕에게 잘못한 만큼 개인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면, 한국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서 정의의 표준이 크게 향상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박동천 전북대학교 교수




1. 무엇이 쟁점인가?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재판에서 배경이 되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은 이렇게 정리된다. ① 양재원, 이보훈, 최갑수 사이에 있었다고 하는 소위 "합의"라는 것은 합의의 명색만 갖추고자 했던 양재원의 시나리오에 이보훈과 최갑수가 별 생각 없이 따른 결과, 따라서 막연할 뿐만 아니라 서로 부정합적인 단어들을 무의미하게 연결한 데에 불과하다. ② 이런 무의미한 이야기가 오갔다는 사실조차 곽노현은 몇 달 후에 자체 조사를 통해서나 알게 되었다. ③ 한편 박명기는 양재원으로부터 "합의"가 있었다고 전해 들었고, 그래서 한 때 합의 이행을 요구했다. ④ 진상을 파악한 이후 곽노현은 강경선에게 부탁해서 박명기의 오해를 풀었다. ⑤ 이 와중에 강경선은 박명기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되어 곽노현에게 부조를 조언했고, 곽노현은 강경선의 신앙심에 감화되어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음을 무릅쓰고 2억 원 가량을 건넸다.
이와 관련되는 법조문은 공직선거법 232조 1항의 1호(사전매수죄)와 2호(사후매수죄)이다 (지금부터는 이를 줄여서 각각 1호와 2호라고 부른다). 그런데 검찰은 공소시효 때문에 1호로 기소하지 못하고 2호로 기소했다. 그러면서도 2호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곽노현의 금전 공여가 "사후매수"에 해당한다는 논거로서는, ①을 사실상 두 후보자간의 합의였다고 보며, 곽노현이 이를 몰랐다는 ②를 부정한다. 검찰은 곽노현의 인지에 관해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곽노현이 이를 알게 된 것이 몇 달 후임이 1심의 사실심리를 통해 명백하게 밝혀졌으므로, 1심과 2심에서 공히 재판부는 ②에 관해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2억 원의 공여는 2호 사후매수죄에 해당한다고 보아,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 재판에서 핵심 쟁점은 곽노현의 금전 공여가 2호에 규정하고 있는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였던 자에게" 금전을 제공한 행위가 되느냐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곽노현의 행위가 법이 금지하는 행위인지를 판정하기 위해서는 사퇴할 당시까지 모종의 합의나 묵계 또는 이심전심의 양해가 없었더라도 사후매수라는 범죄가 구성될 수 있는지 여부, 그리고 위에서 ①이라고 표시한 대화가 합의나 묵계나 이심전심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반드시 엄밀하게 따져야 한다. 그런데 이번 재판에서는 1심에서도 2심에서도 재판부가 이와 같은 핵심 쟁점을 전혀 따져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쟁점을 두루뭉수리로 얼버무림으로써 마치 곽노현이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돈을 건넸다는 듯한 착시현상을 만들어내고는 스스로 그러한 착각에 빠지고 말았다. 이 착각의 본질을 지금부터 파헤치기로 한다. 이 논의는 이미 상당히 길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그리고 1심의 유죄 논거와 2심의 유죄 논거는 대동소이하므로, 여기서는 2심 판결문만을 대상으로 삼는다.

2. 공직선거법 232조 1항 2호의 취지

사퇴 당시까지 대가를 제공하기로 합의나 묵계나 이심전심이 없는 한 사후매수가 성립할 수 없다고 보고 생각해 보자. 이랬을 때 2호의 입법취지는 만약 사전매수죄만을 규정했을 때 공직선거법의 공소시효 6개월만 지나가면 설령 사전매수 합의가 있어서 그에 따라 금전 공여가 나중에 행해지더라도 혹시 처벌할 수 없게 될까봐 금전의 공여가 사전매수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을 검찰이 인지하게 된 시점부터 공소시효를 산정하도록 2호가 삽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는 제268조와 연결해서 읽을 때 더욱 명확해진다. 선거일 후 6월로 공소시효를 정하고 있으면서도 괄호 안에 "선거일 후에 행하여진 범죄는 그 행위가 있는 날부터 6월"이라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제232조 1항 1호가 금지하는 행위는 "후보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거나 후보자가 된 것을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나 후보자에게 제230조(매수 및 이해유도죄)제1항제1호에 규정된 행위"이고, 2호는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것을 중지하거나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가 되고자 하였던 자나 후보자이었던 자에게 제230조제1항제1호에 규정된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2호의 취지는 사전에 매수합의가 있었고 이후에 합의에 따라서 금품의 공여가 이뤄질 때, 선거일 후 6개월이라는 공소시효 때문에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를 예방하기 위함이라고 보면 가장 명확한 해석이 된다.
이와 같은 내용은 이미 판결문 안에서도 암시되고 있다. 판결문에서는(40쪽) 2호를 검찰의 주장처럼 해석한다면 공소시효가 무한정 늘어나지 않겠느냐는 박명기 측의 항변에 대해, "'금품 등을 제공ㆍ수수한 시기'가 선거일부터 장기간이 경과한 후에 이루어진다면,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그 대가성을 인정하기 쉽지 않아 범죄행위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그러한 우려가 근거 없다고 배척하고 있다. 하지만 대가성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아서 범죄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은 대가성이 인정된다면 범죄가 성립된다는 말이 된다. 가장 명백한 사례 하나를 가상해 보자. 가령 곽노현이 2020년에 박명기에게 10억 원을 건넸는데, 이에 대해 의혹을 가지고 수사를 해보니 "10년 후에 10억 원을 사퇴한 후보 본인 또는 그 상속자에게 제공한다"는 합의가 선거전에 있었다는 부정할 수 없는 물증이 발견된다면 범죄가 성립된다는 말이며, 이럴 때는 사퇴한 후보에게 사퇴한 대가를 선거일 후에 제공한 경우이기 때문에 1호를 적용하지 못하고 2호를 적용하라는 뜻이 된다.
이처럼 사후매수라는 행위가 성립하기 위해 사퇴 당시의 합의나 묵계나 이심전심이 필수적이라고 보면, 2호는 금품의 제공이 나중에 이뤄질 때에 대비한 조항으로 쉽게 이해가 된다. 반면에 사퇴 당시의 합의나 묵계나 이심전심이 없더라도 사후매수라는 행위가 있을 수 있는가? 이것은 내 상상력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도저히 불가능하다. 실제로 검찰 역시 2호를 적용해서 기소하면서도 줄기차게 양재원, 이보훈, 최갑수 사이에 있었던 ①의 대화가 매수합의였다고 주장하며, 이를 곽노현이 인지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사전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사후매수"라는 문구에 들어맞을 만한 행위를 형상화하는 데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재판부는 곽노현이 무슨 합의 따위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2억 원이라는 돈이 "대가성"이었다고 판단할 때에는 ①의 대화를 하나의 정황증거로 끼워 넣고 있다. 다시 말해, 재판부 역시 사전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사후매수가 가능하다는 예시나 논증에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재판부는 2호의 사후매수가 성립하기 위해 사전합의가 필수요건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사후대가성을 인정해야 할 논거로서는 지속적으로 ①의 대화가 "금전 지급 합의"였다는 정황을 언급하고 있다. 단, 그 대화가 어떻게 "합의"가 되는지에 관해서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정확히 검찰의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기소전략에 재판부가 휘둘리고 있다는 증좌이다. 검찰은 ①의 대화가 사전합의라고 주장은 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사전합의임을 입증할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논쟁의 초점이 사전합의 여부로 모이지 않고, 사후대가성이라고 하는 막연한 개념에서 범죄구성요건을 구하고자 하는 편의주의적 전략인 것이다.
재판부는 이와 같은 검찰의 강변에 부지불식간에 굴복하고 말았다. 만약 사전에 합의나 묵계나 이심전심이 없는 상태에서도 사후매수라는 것이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려면 어떤 경우가 그런지를 예시할 수 있어야 하고, 나아가 이 사건이 그러한 경우와 마찬가지임을 또한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검찰은 2호로 기소하고 있으면서도 ①의 대화가 사전합의에 해당한다고 해석하는 것이며, 그러면서 또한 동시에 사전합의가 사후매수에 필수요건은 아니라면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재판부는 바로 이와 같은 검찰의 전략을 충실히 수용해서 사전합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전혀 따지지 않고 말았다.

3. ①의 대화가 합의나 묵계나 이심전심에 해당하는가?

이 문제는 이미 남경국 박사가 정리한 바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략한 요지만을 적는다 (관련기사 ☞ "강경선, 곽노현, 박명기 사건 의견서" 가운데 III). 양재원, 이보훈, 최갑수 사이에 있었던 대화는 금전 지급의 주체부터가 불명확한 상태였다. 양재원은 박명기에게 보고하면서 그 합의라는 것을 이보훈과 한 것이 아니라 김성오와 했다고 말했다. 이보훈과 최갑수는 이 대화 내용을 곽노현이 나중에 조사할 필요를 느껴서 추궁하기 전까지 곽노현에게 전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 대화에서 이보훈과 최갑수는 곽노현의 대리인으로서 자격이 없고, 그 대화 내용이라는 것 역시 너무나 엉성해서 후보매수를 구성할 만한 어떤 합의나 묵계가 될 수 없다. 더군다나 곽노현은 그 전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사퇴의 대가를 제공하는 형태의 합의는 단호하게 배격한다는 입장을 여러차례 밝혔다.
백보를 양보해서 이것이 변호인 측의 입장에 불과하다고 한 번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검찰의 입장은 무엇인가? 앞에서도 논급했듯이, 검찰은 이것을 합의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이것이 합의일 수 없다는 변호인 측의 항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2호와 관련해서는 사전합의가 필수요건이 아니라면서 쟁점을 회피할 뿐이다.
그러므로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판결을 내리기 전에 마땅히 ①의 대화가 합의나 묵계나 이심전심에 해당하는 행위였는지를 철저하게 따져서 명확한 판단을 내렸어야 했다. 그럼에도 판결문은(15쪽) "최갑수와 이보훈이 양재원의 제안을 받아들여, 후보 단일화를 위한 금전 지급 합의(이하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라 한다)가 이루어졌다"고만 선언할 뿐, 어떻게 그 대화가 곽노현이 책임져야 할 금전 지급 합의가 되는지에는 아무런 논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판결문은 바로 뒤이어 "구체적으로 5억 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지급 시기는 언제인지, 이와 관련하여 책임자인 이보훈과 보증인인 최갑수의 역할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관하여 양재원과 이보훈, 최갑수는 명확하게 논의하지 않았다"고 인정하며, 나아가 액수가 5억 원인지 7억 원인지도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재판부는 이보훈이 곽노현에게 "박명기가 조건 없이 후보자를 사퇴하기로 하였다"고 보고했음도 인정한다. 이처럼 이것이 합의인지 여부, 그리고 이것이 곽노현과 박명기 사이에 (대리인을 통해) 이뤄진 합의인지 여부는 이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쟁점이다. 하지만 판결문에는 선언만이 있지 이를 뒷받침하는 어떤 논거도 없다. 이처럼 핵심 쟁점을 체계적으로 회피한 상태에서 내려진 판결은 법의 목소리가 아니라 법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유령의 목소리에 불과하다.

4. 사후대가성의 구성

지금까지 밝혔듯이, ①의 대화는 후보사퇴를 조건으로 곽노현 또는 그 대리인이 금전을 지급하기로 약속한 합의일 수가 없다. 그 까닭은 단순히 곽노현이 몰랐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보훈, 최갑수, 곽노현 사이에 어떤 위임이라 할 만한 요건은 물론이고, 어떤 이심전심이라고 할 만한 요건도 없으며, 애당초 이보훈, 최갑수, 양재원 사이에도 무슨 정합적인 내용의 합의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급 주체도 없고, 지급 시기와 액수도 정해지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금전 지급 합의 따위는 곽노현이 그전까지 완강하게 배격한 형태의 행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이 대화를 (아무런 법리적 검토도 없이) "금전 지급 합의"였다고 선포해 버림으로써, 마치 그런 합의가 실재했다는 듯한 혼동을 초래한다. 그러면서도 실제 제공된 2억 원의 대가성 여부를 검토하는 대목에 가서는 "비록 피고인 박명기와 피고인 곽노현이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의 이행으로서 2억 원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피고인 곽노현은 후보자를 사퇴함으로써 채무초과상태에 빠진 피고인 박명기를 도와주고 향후 자신의 교육감직을 보전하기 위하여 금전을 제공하였고, 피고인 박명기는 자신의 사퇴로 말미암아 피고인 곽노현이 교육감에 당선되었으니 피고인 곽노현 측에서 부채의식을 가지고 도와준다고 생각하며 2억 원을 수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33-34쪽, 금전수수의 경위에 관한 판단)고 말하며, "비록 2억 원이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와 무관하다고 하더라도, 피고인 곽노현은 위 돈을 피고인 박명기의 후보 사퇴행위에 대한 대가로서 지급한다는 사정을 충분히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37쪽, 대가성의 인식에 관한 판단)고 말한다.
재판부는 여기서도 문제의 2억원이 소위 "금전 지급 합의"의 이행인지 아닌지를 따져서 밝히지 않고 쟁점을 회피하고 있다. 금전수수의 경위를 판단하는 33쪽의 문언은 재판부도 "합의의 이행으로서 2억 원을 주고받지는 않았"다고 보는 것으로 읽힌다. 반면에 37쪽은 단순한 양보구문으로서 그것이 합의의 이행이었는지 여부는 접어두고, 설사 무관하다고 하더라도 대가성의 인식을 구성하기에는 충분하다는 취지로 읽힌다. 나는 재판부가 여기서 상당한 혼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본다.

4-1. 합의의 이행이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대가성이 구성되는가?

재판부가 이렇게 생각하는 주요 논거는 첫째, 곽노현과 박명기는 2억 원이라는 큰 돈을 선거와 무관하게 선의로 부조할 정도로 특수한 관계가 아니었고, 둘째, 곽노현이 스스로 대가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으로 요약된다.
우선 재판부는 여기서 "후보를 사퇴한 사람에게 도움을 제공한 행위"와 "후보를 사퇴한 행위에 대한 대가를 제공한 행위"를 혼동하고 있다. 돈이 건너갈 때 박명기는 곽노현에게 생면부지의 인물이 아니었고, 스스로 후보의 지위에서 사퇴함으로써 곽노현의 당선에 기여했는데, 선거 빚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로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이었다. 즉, 곽노현은 세상에서 경제적으로 궁핍을 겪는 아무나에게 부조를 한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박명기, 후보로서 경쟁관계가 될 뻔했다가 후보에서 사퇴한 사람이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는다고 해서 도움을 준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사퇴에 대한 대가"인지 아닌지에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황 중 하나로서 재판부는 박명기의 사퇴로 인해 곽노현이 "향유한 정치적 이익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31쪽)다는 점을 들고 있다. 구체적인 수치로는 단일화 이전(5월 17일)에 여론조사에서 이원희 7.0% 곽노현 6.7%로 나타났다가, 단일화 이후(5월 27일)에 곽노현 11.8% 이원희 8.6%로 나타났고, 최종 투표 결과 곽노현이 1.1%의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었다는 정황을 소개한다. 그러나 곽노현은 6.7%나 11.8%와는 거리가 먼 34.34%를 득표했다. 아주 막연하고 일반적인 수준에서 곽노현이 박명기의 사퇴 덕분에 당선되었다고 말한다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곽노현이 박명기의 사퇴에 막연한 수준의 고마움을 느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선거가 끝나고 9개월이 지나 2억원을 준 것이 "사퇴의 대가"였음을 증명하는 데에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정황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보는 견지에서 곽노현은 후보에서 사퇴해서 자기에게 막연한 수준에서 도움을 줬다고 볼 수 있는 박명기가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자 2억원을 제공했다. 이를 가지고 곧바로 "사퇴의 대가"를 유추한다는 것은 "후보를 사퇴한 사람에게 도움을 제공한 행위"와 "후보를 사퇴한 행위에 대한 대가"를 혼동하는 셈이다. 뇌물죄를 판단할 때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에 대한 공여"를 "그가 행한 특정한 행위에 대한 대가"로 혼동하면 선의의 공여라고 하는 미풍양속을 처벌하게 된다는 법리는 1999년 미국 연방대법원에 의해서 확립된 바 있다 (바로가기 ☞United States v. Sun Diamond Growers of California). 이 판례는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매우 드물게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대법관 9명의 만장일치로 내려졌다. 한국 법원이 이 판례의 법리를 따라야 할 실정법적 의무는 없지만, 적어도 법과 사회와 인간에 관한 일반적인 이치를 고려한다면 아주 진지하게 참고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곽노현이 대가성을 인식했다고 판단한 재판부의 근거는 기본적으로 박명기가 합의의 이행을 요구했다는 사실에 의존하고 있다. 다시 말해, 박명기가 합의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곽노현이 알고 있었다는 데서 바로 곽노현이 제공한 돈은 사퇴의 대가였다고 추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위에 인용한 37쪽의 문언은 논리적으로 자가당착이다. "금전 지급 합의와 무관하더라도" 대가성이라고 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문에서 박명기가 합의의 이행을 요구했다는 사실 때문에 대가성이라고 봐야 한다는 말을 동시에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한 부주의일 수도 있겠다. 즉, "금전 지급 합의와 무관하다고 곽노현은 생각했더라도"라고 써야 할 것을 주어를 생략함으로써 마치 그 양보구문의 화자가 재판부인 것처럼 오해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곽노현이 합의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더라도, 박명기가 그 돈을 합의 이행이라고 봤다는 사실 때문에, 그리고 그와 같은 박명기의 생각을 곽노현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곽노현이 대가성을 인식했다는 결론은 가당한가? 그 돈의 성격을 한 쪽에서는 합의 이행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특히 박명기 쪽의 진술은 이와 관련해서 다소 갈팡질팡하는 면이 있는 반면에 곽노현은 일관되게 합의와 무관한 선의의 부조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박명기가 대가성으로 인식했다는 사실 때문에 어떻게 곽노현도 대가성으로 인식했다는 결론이 나올 수가 있는가?
재판부는 여기서도 다시 "사퇴한 사람이기 때문에 도와준 행위"와 "사퇴한 행위에 대한 대가"를 체계적으로 혼동하고 있다. 대가라는 단어가 사용될 수 있는 일상어의 모든 용례를 고려하기로 한다면, "사퇴한 사람이기 때문에 도와준 행위"와 "사퇴한 행위에 대한 대가"를 얼렁뚱땅 섞어 쓰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문제되는 대가는 죄형법정주의에 의해 그 의미가 엄밀하게 획정되어야 하는 종류이다. 곽노현은 합의 따위는 없었고 단지 선의의 부조였다고 주장하며, 박명기는 합의의 이행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을 때, 재판부가 박명기의 진술에 일방적으로 무게를 실어주려면, 곽노현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왜 그것이 합의의 이행이었는지를 논증해야 맞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애당초 ①의 대화가 어떻게 "금전 지급 합의"가 되는지, 그리고 나아가 2억 원이 왜 그 대화와 연관이 있는지를 막연한 정황이 아니라 증거와 논리를 특정해서 밝혔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핵심 쟁점들을 재판부는 체계적으로 묵살 내지는 간과하고 있다.

4-2. 합의의 이행이 아니었더라도 대가성이 구성되는가?

위에 인용한 판결문 33-34쪽에서 재판부는 2억 원의 수수가 합의와는 무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가성을 판단하기에는 부족하지 않다고 본다. 여기서도 나는 "비록 피고인 박명기와 피고인 곽노현이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의 이행으로서 2억 원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이라고 쓴 문언이 어쩌면 단순한 부주의의 소산일 수 있다고 본다. 재판부는 2억원이 합의의 이행이 아니었다고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기보다는 그 쟁점을 지속적으로 회색지대에 남겨두고 있다고 읽는 편이 판결문의 선량한 독해에 가까울 수도 있을 가능성을 나는 인정한다.
여하간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취지는 변하지 않는다. 금전 수수가 합의의 이행은 아니었다고 보면서 재판부가 대가성을 인정했든지, 합의의 이행이었는지 여부를 제쳐두고 대가성을 인정했든지 마찬가지로 자가당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살펴 보자.
같은 문장에서 재판부는 곽노현이 "교육감직을 보전하기 위하여 금전을 제공"했다고 보고 있다. 이 문구는 36쪽 대가성의 인식에 관한 판단에서도 나오고 49쪽 양형부당에 관한 판단에서도 나온다. 이것이 대가성을 판단하게 된 주요 논거 중 하나이며 원심의 벌금형을 징역1년으로 강화하게 된 주요 논거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교육감직을 보전하기 위해 돈을 줬다는 말은 만약 돈을 주지 않았다면 교육감직을 상실하게 되었을 확률이 높았다는 가정을 함축하고 있다. 그런데 돈을 받지 못했을 때 박명기가 어떻게 곽노현의 교육감 지위에 손상을 줄 수 있었을까? 다시 이야기의 초점은 내가 ①의 대화라고 부르고 재판부는 임의적으로 "5월 19일자 금전 지급 합의"라고 부르는 사태로 모아진다. 돈을 받지 못했을 경우, 박명기의 입장에서 곽노현의 교육감직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전에 후보 매수가 있었다"고 폭로하는 길뿐이다. 그런데 판결문에 따르면 곽노현이 강경선의 제안에 동의한다는 명시적인 의사를 표시하고, 부인에게 현금을 모아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하는 것이 12월 초순이다. 그리고 박명기와 강경선이 액수에 관해 논의한 것은 12월 6일에서 12월 22일 사이이다.
잠깐 형식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백보를 양보해서 합의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만약 돈을 주지 않았다면, 범죄 행위인 매수합의는 선거일 전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12월 2일이면 공소시효가 끝난다. 돈을 주지 않는 한, 선거일 후에 어떤 범죄 행위도 없었기 때문에 12월 2일이 지나면 1호로도 2호로도 기소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박명기가 무슨 폭로를 하더라도, 그리고 그 폭로가 설사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12월 2일이 지나면 기소할 수가 없다. 곽노현이 구설수에 오르기는 하겠지만,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게 되는 일은 12월 2일 전에 돈을 주지 않았더라면 일어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곽노현의 교육감직이 돈을 주지 않은 이유로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12월 2일 전에 박명기가 재판부의 용어로 "5월 19일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폭로해서 검찰이 기소하는 경우뿐이다. 그런데 실제로 돈은 12월 2일이 한참 지나서 2011년 2월부터 4월에 걸쳐서 전달되었다. 그러니까 돈을 주지 않았더라면 교육감직이 사법적으로 위태로웠을 가능성은 없었다. 단, 정치적으로 상당한 곤경에 처했을 가능성은 있다. 이 점에서 곽노현이 염려했던 것은 이런 저런 일들이 공연한 추문으로 비화되어 교육감으로서 추진하려고 했던 여러 가지 시책들에 지장이 생길지 모른다는 데 있었지, 교육감직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데 있지 않았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다시 마지막 가상적 가능성으로서, 선거일 전에 행해진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완성 이전에 박명기가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폭로했다면 어땠을지를 검토해보자. 그랬을 경우에는 당연히, 지금까지 이 글에서 누차 강조하고 지적해 왔듯이, ①의 대화가 공직선거법 232조 1항 1호에서 금지하고 있는 후보매수 행위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되었을 것이다. 검찰이 지금 그러하듯이 후보매수라고 하는 범죄의 성립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곽노현은 구설수에는 올랐을지 몰라도 유죄라든지 실형 같은 것은 선고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곽노현이 1심 재판에서 검찰이 공소시효를 악의적으로 계산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할 때 자신은 "소란시효"를 염두에 뒀을 뿐이라고 응수한 대답은 완전히 적확하다.
여기까지만 살펴 보더라도 재판부가 "교육감직을 보전하려는" 의도를 곽노현으로부터 읽어내면서, 동시에 합의의 이행이 아니었지만 대가성이 그로써 입증된다거나 합의의 이행 여부과 상관없이 대가성이 그로써 입증된다고 본 것은 자가당착임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곽노현이 "교육감직을 보전하기 위해서" 돈을 줬다는 의도의 해석이 가능하려면, 그 돈의 성격은 합의의 이행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돈이 합의의 이행이려면 먼저 합의가 있었어야만 한다. 그래서 이 재판이 법리에 따른 재판으로서 형식적 구색이라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내가 ①의 대화라고 부르고 재판부가 임의로 "금전 이행 합의"라고 부르는 그 5월 19일의 사태가 공직선거법 232조 1항 1호에서 금지하는 후보매수에 해당하는지를 반드시 따져서 그 여부를 확정했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를 회피하고서야 어떤 재판도 법의 이름으로는 성립할 수가 없다.

5. 법이 염결하지 않은데 교육이나 선거가 염결할 수 있는가

판결문은 "숭고한 교육"의 이념과 "교육의 염결성"을 강조하면서, 곽노현의 행위가 거기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에 엄벌에 처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명백하게 드러났듯이, 이 재판은 범죄 행위가 과연 있었느냐고 하는 핵심 쟁점을 체계적으로 회피하고, 지극히 막연한 정황들을 반복적으로 나열한 결과 마치 범죄가 있었다는 듯한 인상을 자아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말았다.
착각과 혼동의 꺼풀을 뚫고 법의 목소리에만 정밀하게 귀를 기울인다면 곽노현은 후보에서 사퇴한 사람이 곤경에 처해 있는 것을 보고 선의의 부조를 행한 것이 분명하다. 단순히 선거가 있었고 9개월 후에 금전이 제공되었다는 것만으로 뇌물죄를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사퇴한 후보에 대한 사후매수죄가 성립하려면 제공된 돈이 "사퇴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퇴한 행위의 대가"로 건너갔다는 점을 검찰이 입증해야 한다. 이 사건은 그 돈이 어떤 성격이었는지가 1심 재판의 상세한 조사에 의해서 완벽하게 밝혀진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 재판부가 벌금형을 선고한 것도 법리에 관한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거니와, 항소심이 무죄를 선고하지 않고 오히려 실헝을 선고한 것은 법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은 결과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다면 선거에서 돈거래가 횡행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그러나 곽노현을 무죄로 선고했을 때 선거판이 매수로 혼탁해질 위험은 오히려 훨씬 줄어들고 법의 엄정함이 우뚝 명확해지는 효과가 막대하리라고 나는 장담할 수 있다. 법이 진실과 양심의 소리를 경청한다는 하나의 사례만으로 정의의 표준이 엄격하게 설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사건에서 곽노현이 유죄 판결을 끝내 받고야 만다면, 남을 돕기 전에 먼저 구설수를 피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찌든 개인들을 양산하는 결과만을 낳을 것이다. 교육이나 선거만이 아니라 법도 사람이 다른 사람을 선의로 돕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타인의 곤경에 대한 선의는 그렇기 때문에 지식이나 권력이나 정의보다도 당연히 우선시되어야 하는 최고의 덕성이다. 나는 2012년의 대한민국 대법원이 이와 같은 당연한 이치를 통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가 가진 모든 지식과 모든 논리와 모든 선의와 모든 신앙을 한데 모아서 기도한다.
/박동천 전북대 교

[한겨레 기사] 곽노현사건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


학계 “법리 바뀌면 파기환송 원칙”
형 확정을 서둘렀나 의구심 일어

대법원은 27일 곽노현(58) 서울시교육감 사건에서 1·2심과는 다른 법리를 대면서도 유·무죄 여부와 형량에서는 같은 결론을 냈다. 중요한 법리 오해가 있을 때는 다시 심리하도록 파기환송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원심이 다른 법리에 근거해 채택한 사실관계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또 공직선거법 232조 1항2호(사후매수죄)에 대한 곽 교육감 쪽의 위헌 주장을 판결문을 통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 법리를 오해했지만 파기환송은 필요 없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인 사후매수죄의 해석 문제에 대해, 대법원은 이 죄를 단순 고의범으로 본 원심과 달리 “목적범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목적범으로 보게 되면 단순 고의범의 경우보다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 대법원도 판결문에서 “대가를 지급한다는 ‘목적’은 검사가 증명해야 한다”며, 돈을 주고받은 행위나 그에 대한 인식(고의)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목적성을 추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그러면서도 “원심이 사후매수죄를 목적범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적절하다고 할 수 없지만, 원심의 판단은 결국 곽 교육감이 ‘대가를 지급할 목적’으로 경쟁후보였던 박명기씨에게 2억원을 제공했다고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유죄 확정의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은 이런 판단을 하면서 원심의 사실관계를 그대로 인용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원심의 사실만으로도 그런 ‘목적’이 있다고 인정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리 오해가 있다면 법률심인 대법원이 아니라 사실심인 하급심에서 법리에 맞게 다시 심리하는 게 옳다는 비판이 많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리가 바뀌면 파기환송해 다시 심리하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1·2심에선 목적범이 아니라고 못박고 심리를 하는 바람에 목적 여부가 전혀 증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함께 기소된 강경선 방송대 교수에 대해선, 사후매수죄에 대한 법리 오해를 이유로 파기환송했다. 곽 교육감에게만 파기환송 대신 형 확정을 서두른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또 다른 이유다.

■ 사후매수죄 위헌 주장 조목조목 반박 대법원은 판결문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사후매수죄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 책임과 형벌의 비례원칙 등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나하나 판시했다. 합리적인 해석 기준을 쉽게 도출해낼 수 있고 자의적 해석의 우려도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으로서는 곽 교육감 쪽의 위헌 주장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고서는 유·무죄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곽 교육감 쪽이 지난 1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낸 터여서, 헌재에서 다른 결론이 나온다면 재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부담도 안게 됐다. 헌재가 결정할 문제를 앞서 판결했다는 점에서, 헌재와의 관계도 한층 껄끄러워질 전망이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한겨레] 박근혜의 사과, 언어의 가면/ 박창식

몇일 전, 박근혜의 "사과"가 사과로 읽히지 않는데 여기저기서 사과로 받아주는 것이 심히 못마땅한 와중에 이 글을 접하게 되어 이렇게 전한다. 우리의 언론, 매체와 소셜 네트워크의 주역들이 왜 그렇게 너그러워졌는지 심히 개탄스럽다. 너그러워진 것이라기 보다는 나름대로의 인기관리를 위하여 "위치선정"하는 것인가?

[한겨레] 박근혜의 사과, 언어의 가면/ 박창식

엊그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박정희 정권의 잘못을 사과한다고 사용한 표현이 영 걸린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우국충정과 진정성을 한참 강조한 다음에,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남들이 알아서 이것을 사과라고 받아주니까 사과가 된 것이지, 무슨 말인지 알아먹기가 힘들다. 에둘러 논점을 피하는, 교묘한 완곡어법을 썼기 때문이다.

박 후보의 사과 발언은 첫째, 행위 주체를 고의적으로(?) 빼먹었다. 5·16이나 유신,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 대통령과 그의 추종자들이 저질렀다. 그런데도 사람이 아닌 사건을 주어로 삼아 가해자를 은근히 흐리고 있다. 둘째, 헌법 가치를 훼손했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다거나 인권을 짓밟았다고 하는 것과 비교해 ‘헌법 가치 훼손’은 표상하는 담론이 훨씬 거대하다. 큰 게 반드시 좋은 게 아니라 그럼으로써 언어의 구체성이 약해지고 비난 가능성과 혐오감을 줄여준다.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켰다는 표현도 그렇다. 5·16이나 유신은 역사를 송두리째 후퇴시켰다고 보는 게 옳다. 그런데도 ‘정치발전 지연’으로 해악의 범위를 축소시켰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정치불신이 심하다. 그래서 정치발전쯤은 지연시키더라도 큰 죄로 여길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박 후보가 그런 측면까지 고려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완곡어법이 매우 특별한 언어효과를 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완곡어법은 정치언어에서 이따금 쓰인다. 가령 미국 국방부는 ‘민간인이 사살되었다’고 발표할 뿐, ‘미군이 그들을 살해했다’고는 표현하지 않는다. 민간인 사망은 보통 ‘부수적 피해’라고 표현한다. 강제수용소는 ‘화해를 위한 시설’, 그라나다를 침공한 육해공군은 ‘카리브해 평화유지군’, 침략은 ‘급습’으로 완곡하게 표현을 바꾸곤 한다. 완곡어법은 불쾌한 느낌을 감추기 위해 덜 부정적인 뜻을 내포한 단어로, 언어의 가면을 씌우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 고르기아스는 “말은 무척 강력한 폭군이다…진실이 아닌 말도 교묘하게 재주껏 쓰이면 똑같은 효과를 낳는다”고 했다.

모호한 화법은 의문을 낳기 마련이다. 박 후보가 이렇게 말할 거라면 불과 얼마 전까지는 왜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옹호했는지, 그 옹호 발언을 지금은 취소하겠다는 건지, ‘아버지 복권이 박근혜가 정치를 하는 이유’라고 한 측근 김재원 의원의 말과 이번 사과 발언은 어떤 관계인지. 심지어 얼마 전 인혁당 사건을 놓고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한 것처럼, 혹시 뒷날 집권할 경우에 “두 개의 역사인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지…. 그의 에두른 표현이 한편으로 지지율이 떨어져 고민스럽지만 기왕의 태도를 송두리째 바꾸기도 싫다는 복잡한 생각의 결과물이 아닌지. 궁금증이 이렇듯 뭉게뭉게 피어오르는데도, 박 후보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고 회견장을 빠져나간 것은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의 현대사 발언은 종전에 비해 진일보했다. 하지만 국가 지도자의 언어로는 부족하다. 정치인이 국정 현안을 표현할 때는 완곡어법보다는 직설법을, 비유나 풍자보다는 구체적인 사실과 의지를, 피동형 문장보다는 능동형 문장을 쓰는 게 옳다. 당장 엊그제 그것을 “박정희 대통령은 5·16, 유신 등 불법적인 쿠데타를 저질렀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후퇴시켰습니다. 저는 이 점을 인정하고 그동안의 태도를 고치겠습니다”로 바꿔 말하면 어떤가? 진정성 시비나 의문이 확 줄지 않겠는가?

2012년 9월 25일 화요일

[한겨레기사] 2013년 복지예산


뒷걸음질 치는 복지정책

늘어난 4조5천억중 공무원·군인·사학연금이 8820억원
다른 증가분도 건보료·노령연금 등 대부분 ‘자동 증가분’

전체 예산에서 복지의 비중이 감소한 데 이어, 증가된 복지의 상당 부분이 ‘돈의 꼬리표’를 따라가다 보면 일반 국민이 아닌 공무원과 군인 등에 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도 복지 예산 가운데 가장 크게 증가한 부분은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금’이다. 공적 연금은 지난해보다 1조8704억원 늘어난 33조1382억원에 이른다.
내용을 더 들여다보면, 국민연금 급여 증가분은 9884억원에 그쳤다. 나머지 8820억원은 공무원, 군인, 사학 연금 증가분이었다. 전체 복지비 증가분의 20%가 공무원들에게 돌아간 것이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경희대 교수)은 “누구를 위한 복지인지를 묻고 싶다”며 “복지 예산 중 공적 연금이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에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4조5000억원에 이르는 복지 증가액의 적지 않은 부분은 ‘자동’증가분이다. 공적연금 다음으로 증가폭이 큰 보건 분야에선 1조1737억원의 예산이 늘었지만, 이 가운데 건강보험료 ‘손실 보전’이 7412억원에 이른다. 정부 관계자는 “이는 건강보험법에 따라, 정부가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를 충당해주는 것”이라며 “자동적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복지 확대 의지와 큰 관련 없이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할 부분인 셈이다.
기초노령연금도 이와 마찬가지다. 정부는 기초노령연금을 내년도에 2432억원 늘어난 3조2097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고 밝혔지만, 증가분은 고령자 증가 등 자동적으로 연계된 부분이 크다.
기초생활보장 예산도 9383억원이 증가했지만, 증액분 대부분은 2011년과 2012년 의료급여 미지급금(약 5000억원)에 쓰일 예정이다. 의료급여는 2008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2747억원의 추경예산을 편성해 미지급금을 해소한 뒤 지금까지 계속 적자가 쌓여왔다. 내년 의료급여 수급자는 156만여명으로 이 가운데 대부분이 기초수급자이며, 13만여명만이 국가유공자와 인간문화재 등이다.
일자리 분야에선 ‘명암’이 갈린다. 정부는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새롭게 65살 이상 구직자 4만명과 영세 자영업자 3만5000명에게도 실업급여를 지급하기로 했다. 또 저임금근로자 사회보험료 지원도 2654억원에서 4797억원으로 80% 이상 확대할 계획이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내년도 복지정책 가운데 그나마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가 가장 평가해줄 만하다”고 말했다.
일자리 확대와 관련한 예산도 늘렸지만 일자리의 ‘질’은 크게 낮은 수준이다. 중장년 재도약 일자리 예산으로 298억원을 처음으로 편성했지만, 1인당 300만원도 안 되는 금액이다. 재정지원 ‘직접 일자리’도 올해보다 2만5000명 늘어난 58만9000명으로 확충됐지만, 1인당 453만원에 불과했다.
류이근 이유진 기자 ryuyigeun@hani.co.kr

[한겨레 사설] 무원칙·무철학의 영유아 무상보육 폐기

정부가 0~2살 영유아에 대한 무상보육 정책을 6개월 만에 사실상 폐기하기로 했다. 어제 보건복지부가 기획재정부 등과 협의를 거쳐 내놓은 보육지원체계 개편안을 보면, 소득 상위 30% 가구는 보육비 전액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전업주부 가구의 보육비 지원은 절반 수준으로 축소하겠다고 한다. 당장 혜택이 줄어들게 된 소득 상위 30% 가구와 전업주부 가정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더 큰 문제는 정치권의 합의로 도입된 보편복지가 원칙과 철학 없이 선별복지로 후퇴하고, 정책에 혼란을 가져오게 됐다는 점이다.
가장 큰 변화는 현재 0~2살 시설이용 아동 모두에게 주는 보육료를 바우처와 양육보조금으로 나눠, 소득 하위 70%의 부모에게만 양육보조금을 준다는 것이다. 연령별로는 0살 20만원, 1살 15만원, 2살 10만원의 양육보조금을 매달 지급한다. 또 전면 무상보육 폐기에 따라 전업주부 가구에는 하루 6시간의 반일반 바우처를, 맞벌이 가구 등에는 하루 12시간의 종일반 바우처를 제공하기로 해 차별 논란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3~5살의 경우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소득 하위 70%에 한해 양육보조금 10만원을 매월 지급하기로 했다. 결국 0~2살 보육지원 대상을 축소하고 월 10만원의 가정양육보조금 지원을 조건으로 3~5살 무상보육 축소를 꾀하려는 것이다.
정부는 가정양육 확대를 위해 양육수당 제도를 확대 개편하고 실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보육지원체계를 구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지원 확대가 아니라 명백한 지원 축소다. 전 계층에 지급하던 0~2살 보육료 지원 금액을 양육보조금과 보육료 지원으로 나눠, 보육료 지원 대상자를 전 계층에서 소득 하위 70%로 축소했기 때문이다. 가정양육 활성화는 저소득 가구에서 양육보조금을 지급받고 시설보육을 포기해 발생하는 지원예산을 절감하겠다는 얕은수다.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한 무상보육 정책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지난 총선에서도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도 0~5살 아이를 둔 전 계층에 양육수당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재원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올해 0~2살 무상보육이 급작스럽게 도입되면서 지방정부의 재정 고갈 문제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그렇다고 예산에 맞춰 보육지원을 축소하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보육은 국가의 책임이자 아동의 권리다. “재벌가 손자에게도 보육비를 지원하는 것이 맞느냐”는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낮은 복지인식으로 저출산 고령화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을 결코 타개할 수 없다.

2012년 9월 24일 월요일

[한겨레] 0~2살 무상보육, 6개월만에 폐기

0~2살 무상보육, 6개월만에 폐기
정부 “소득하위 70% 가구에만 양육보조금”
민주당 강력 반발…새누리당도 “수용 못해”




정부 “소득하위 70% 가구에만 양육보조금”
민주당 강력 반발…새누리당도 “수용 못해”

정부가 만 0~2살 무상보육을 내년 3월부터 폐지하고, 대신 소득 하위 70% 가구에 양육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여야 정치권은 무상보육을 포기한 정부의 방침을 수용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보건복지부는 24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이런 내용의 보육지원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지난 3월22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만 0~2살 무상보육 실시 방안을 발표한 지 6개월 만이다. 개편안을 보면,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만 0~2살 어린이 모두에게 보육료를 지원하는 전면 무상보육 정책은 사실상 폐지된다. 대신 보육료 지원체계가 현금 지급 방식인 양육보조금과 바우처(서비스 이용권)로 이원화된다. 양육보조금은 소득 하위 70% 가구에 한해 0살은 20만원, 1살은 15만원, 2살 이상은 10만원씩 지급된다. 이에 따라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소득 상위 30% 가구의 반발이 예상된다. ‘아이사랑카드’를 통해 지원되는 보육료 바우처도 맞벌이와 전업주부로 차별을 둬, 만 0~2살의 경우 맞벌이는 하루 12시간, 전업주부는 6시간 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바우처를 준다. 전업주부 처지에서는 보육 혜택이 현재의 절반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그러나 이번 개편안에 대해 야당은 물론 여당인 새누리당까지 반발하고 있어 실제 시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진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당은 정부의 발표에 동의한 바 없고, 절대 수용할 수도 없다”며 “새누리당은 전계층 무상보육 공약을 반드시 관철하겠다”고 말했다. 진 의장은 “총리실 등에서 사전 설명을 제안했지만, 새누리당은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며 이를 거부했다”며 “왜 다음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일방적으로 추진해 국민에게 혼란을 주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민주통합당도 “정부 조처를 무효화하고 무상보육 정책을 원상회복하라”고 촉구했다. 오제세·이목희 의원 등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 개편안은 보육정책의 후퇴이자 국가 책임의 회피”라며 “정부·여당은 이번 방안을 전면 개편하고 소득 상위 30%에도 무상보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사과문

[전문]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기자회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한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18대 대선 후보로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과거사와 관련해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번 대선이 우리 대한민국 미래 비전과 민생 정책을 놓고 경쟁하는 장이 돼야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런데 과거사 논쟁으로 인해 사회적 논란이 지속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많은 고뇌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녀가 부모를 평가한다는 것, 더구나 공개적으로 과오를 지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상 이 부분에 대해서 보다 냉정하게 국민과 공감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우리 현대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세계가 인정하듯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한 나라는 우리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저는 이러한 성취를 이뤄낸 우리 국민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하지만 압축적인 발전 과정에서 많은 상처와 아픔이 있었고 때론 굴곡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1960년, 70년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듯이 60년대, 70년대 우리나라는 보릿고개라는 절대 빈곤과 북한 위협에 시달렸습니다. 아버지한테는 경제발전과 국가안보가 가장 시급한 국가 목표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적적인 성장 뒤편에 열악한 환경으로 고통받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고 북한에 맞서 안보를 지켰던 이면에 공권력에 의해 인권을 침해받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5.16 이후 아버지는 다시는 나와 같은 불행한 국민이 없어야 한다고 하셨고 유신 시대는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후일 비난과 비판을 받을 것을 아셨지만 반드시 국민을 잘 살게 하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목표와 고뇌가 진심이었다고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수 없음은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민주주의 가치라고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킨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저 역시 가족을 잃은 아픔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저의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제가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되면서 말씀드린 국민 대통합 100% 대한민국 국민 행복은 저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비전입니다. 100% 대한민국은 1960, 70년대 인권침해로 고통받았고 현재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분들이 동참해 주실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힘드시겠지만 과거에 아픔 가진 분들 만나고 더 이상 상처로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국민 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해 과거사 문제를 비롯한 국민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국민 대통합을 위해, 더 발전된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해 힘을 쏟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민들께서 저에게 진정 원하시는게 딸인 제가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은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도 대통령을 아버지로 두었기에 역사의 소용돌이를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을 흉탄에 보내드리고 개인적으로 절망의 바다까지 내려갔다 왔습니다. 돌아보면 산업화와 민주화를위해서 참 많은 분들이 노력했습니다.

이제는 서로 존중하면서 힘을 합쳐 더 큰 국가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증오에서 관용으로, 분열에서 통합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이제 국민을 저의 소중한 가족으로 여기면서 국민의 삶과 행복을 지켜드리는 것이 저의 마지막 정치적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깨끗하고 올바른 정치로 국민 여망에 부응하는 국민 대통합 시대를 열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국민 대통합 정치로 함께 나아가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장하준 강연 질의 응답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21일 오후 7시 30분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경제 민주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프레시안> 창간 11주년 기념 특별 강연회'를 했다. 1시간에 걸친 이날 강연에서 장 교수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시민권에 바탕을 둔 보편적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 기사 : 장하준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 공동구매")

강 연 후, 장 교수와 청중 사이의 질의응답이 다시 1시간여 동안 이뤄졌다. 우선 참가자들이 사전에 보낸 약 850개의 질문 중 핵심 사항들을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장 교수에게 물었다. 그 다음에는 여고생, 대학생, 회사원 등 다양한 청중이 무대에 올라 장 교수와 즉석에서 문답을 주고받았다.

다음은 질의응답의 주요 내용이다.

박인규 : 정치 할 뜻은 없나?
장하준 : 없다. 정치는 굉장히 중요하고 뜻있는 직업인데 적성에 맞아야 한다. 난 책 보고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고 남들이 안 하는 생각을 하는 게 좋아서 교수가 됐다. 그걸 버리기 싫다. 그리고 무엇보다 잠이 많다. 4시간 이상 자면 정치인으로서 도태된다. 부친은 정치인으로서 잘했지만 난 잠이 많아 못 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이건 지킬 자신이 있다.

박인규 : 장 교수는 재벌의 긍정적 측면을 살려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재벌이 법 위에 있는 상황에서 재벌과 타협이 되겠나?
▲ 장하준 교수. ⓒ정기훈
장하준 :
재벌들을 규제하고 혼낼 게 많이 있다. 그런데 그걸 하기 위해서 지배구조를 바꿀 필요가 없다. 골목상권을 침입하면, 못하게 하면 된다. 왜 자꾸 복잡하게 순환출자로 문제를 돌려 시간을 낭비하나? 탈세하면, 잡아넣으면 된다. 걸핏하면 '경제가 어렵다'는 핑계 대고 풀어주는 그런 짓을 안 하면 된다. 순환출자가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 고치려면 몇 십 년 걸릴 수도 있고 그 사이에 자칫하면 국제 금융 자본이 접수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이해하지 못하겠는 게 있다. 왜 (재벌에게) 백기투항을 하라고 하나? 저쪽(재벌 개혁론자) 이야기는 백기투항을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재벌을 국민이 한판에 잡아 누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내가 무엇 하러 타협하자고 하겠나. 누가 순진한 건지 잘 모르겠다. 나도 순진하지만 그런 이들이 더 순진한 것이다. 타협도 안 하는 재벌들이 무엇 하러 백기투항을 하겠나?

박인규 : 재벌과 대타협,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장하준 : 재벌이 국민경제의 이익을 위해 쓰이는 게 중요하다. 재벌들의 형태가 어떻게 되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 사람들이 투자를 많이 하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노동자를 제대로 대해주고 무엇보다 세금을 많이 내서 복지국가 만들어주고 법을 잘 지키고 하면, 어떤 구조로 갖고 있건 상관없다.

몇 년 전 어떤 신문에 대타협론에 대해 썼더니, 한 독자가 댓글로 '사카린 밀수한 놈들과 무슨 타협이야'라고 하더라. 그 댓글 보고 '안 되겠다' 싶어 그 다음 달에 다시 칼럼을 썼다. 더 화난 건, '장 교수가 외국에 오래 살아서 삼성이 얼마나 나쁜지 모르는 모양인데' 하는 것이다. 내가 왜 모르겠나. 그래서 '사카린 밀수는 물론 더 나쁜 짓도 많이 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근원을 따지면 깨끗한 자본은 없다'(는 글을 썼다).

미국과 영국의 자본에 비하면 삼성은 천사다. 노예 썼지, 아동노동 시켰지, 제국주의 했지, 사설 탐정단을 고용해 파업하는 노동자들 쏴 죽였지, 미국 원주민들 다 쫓아내고 죽였지…. 비교가 되나? 삼성을 용서해주자는 게 아니다. 지금 가능하고 필요한 게 뭐냐(를 보자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것(한국 기업)이 국제 금융 자본에 접수되지 않도록 하고, 국제 금융 자본과 야합을 못 하게 해야 하는데, 지금 하고 있다. 그전에 빨리 그걸 떼어내 '너희는 국민의 기업이야, 너희 일부는 국민 것이야'라고 하고, 어떻게 하면 국민 경제에 묶어 국민에게 진 빚을 갚게 할 것인지 그 방법을 모색하고 싶은 것이다.

"미국·영국 자본에 비하면 삼성은 천사…잘못 용서하자는 건 아니다"
박인규 :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안철수 후보의 경제 민주화 방안을 어떻게 평가하나.
장하준 : 자세히 나온 게 아직 없어서…. 안철수는 이헌재를 옆에 앉힌 것 말곤 특별히 발표한 것도 없다.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의 정책들은 큰 틀에서 비슷한 것 아닌가? 순환출자 제약 등인데 미흡하다. 민주통합당이 복지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재원 확보를 위해 세금을 올리겠다는 말은 안 한다. 조금 올리겠다고 하는 정도다. 그러나 복지국가를 하겠다고 하는 당이라면, 30-40년 목표치를 제시하고 그에 맞춰 매년 1%씩이라도 올리겠다고 해야 한다.

박인규 : 한국은 스웨덴과 달리 사민주의 정당도, 노조도 약해 복지국가를 추진할 주체가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장하준 : 보기 나름이다. 스웨덴도 처음부터 그렇게 전망이 좋은 건 아니었다. 1920년대에 스웨덴은 세계에서 파업률 1위였다. 노사관계가 세계에서 제일 나빴다. 그때 노조 조직률이 30% 정도였다. 지금의 한국보다는 높지만, 오늘날 스웨덴(80%)보다는 훨씬 낮다. 하나하나 해 간 것이다. 시간을 갖고 하면 할 수 있다. 국민소득 80불짜리 나라가 20000불이 됐는데 복지국가 못 만들겠나? 하려고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노조가 없어서? 노조를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박인규 : 세계 경제 위기 상황에서 한국만의 경제 민주화가 가능하겠냐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리고 세계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나.
장하준 : 위기라서 더 어려운 면도 있지만, 더 가능한 면도 있다. 2008년 금융 위기가 날 때까지는 신자유주의를 대세로 봤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안다. 얼마나 엉터리인지도 드러났다. 그러니 더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다. IMF가 후진국 자본통제를 이야기하는 것도 IMF에서 미국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졌기 때문이다. 위기라서 새 틀을 짤 수 있다.

세 계 경제? 많은 부분이 미국 선거에 달렸다. 롬니는 사실 무원칙주의자다. 돈이 된다면 무조건 하는 사람이다. 더 무서운 건 극단적 시장주의자인 부통령 후보 폴 라이언이다. 롬니가 요즘 속된말로 '닭짓'을 많이 해서 (당선이) 안 될 것 같긴 한데, 만약 되어서 미국 재정을 급격히 삭감하면 세계 경기가 냉각될 수 있다. 이게 당장 제일 큰 문제다. 그 다음에 유로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독일이 '유럽중앙은행을 강화하고 재정 통합을 하지 않으면 유지가 안 되겠다'는 것을 점점 인식하는 듯한데, (그래도 여전히) 어렵다. 시간 싸움이다. 잘 해결되더라도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같은 시간이 10여 년 지속되지 않을까 한다.

▲ 장하준 교수가 무대에서 청중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정기훈

"업그레이드 다각화와 다운그레이드 다각화 구분해야"
박혜민(광주 대성여고 2학년) : 얼마 전 삼성에 가서 기업 다각화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런데) 우리 동네만 봐도 이마트가 들어온 후 다 망했다. 서민 경제를 파탄시키고 승자 독식 사회를 고착화하는 데 (재벌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기업 다각화의 사회적 악영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책을 보면 그런 주장을 할 분이 아닌 듯한데….
장하준 : 다각화에 분명히 좋은 점이 있다. 사람들이 자꾸 오해하는데, 내가 이야기하는 건 업그레이드하는 다각화다. 다각화가 없었으면 삼성은 계속 양복점을 하고 현대는 길 닦고 있었을 텐데, 그걸 전자, 자동차에 넣어 기업도 크고 나라 경제도 잘됐다는 이야기였다. 재벌들이 또 업그레이드를 하는 것에 (역량을) 써야 한다. 신소재산업이 됐건 생명공학이 됐건 태양열 전지가 됐건 해야 하는데, 그건 안 하고 치킨집 잡아먹고 소매업 같은 걸 자꾸 하려는 건 문제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해도, 재벌 측은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듣고 '다각화가 무조건 좋다더라' 이렇게 쓰고, 날 싫어하는 재벌 개혁론자들은 '골목상권 침해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더라' 이렇게 반응한다.

참 어렵다. 흑백 논리를 이야기하면 쉬운데…. 내가 말하는 건 '적당량의 음식과 함께 적당량의 알코올을 섭취하면 몸에 좋을 수 있습니다'인데, 한쪽은 '알코올 중독 권장하는 거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다른 쪽은 '아무 규제 없이 알코올을 다 마셔도 된다는 이야기다'라고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나도 흑백 논리를 개발하면 얼마나 편할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 학자로서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업그레이드하는 다각화와 다운그레이드하는 다각화는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박인규 : 혜민 양, 오해가 풀렸나?
박혜민 : 네.

차동욱(회사원) : 경영자가 읽어야 할 책 중에 <나쁜 사마리아인>이 있더라. 우린 버스에 탄 건가, 아니면 사다리를 걷어차인 건가.
장하준 : 버스에 아직 탄 건 아니고 뒤에 매달린 상태다. 어떻게든 창문으로 기어들어가려 하면서, 발 하나 정도는 넣은 것 같다. 강조한다. 한국은 세계 역사적으로 그러지(사다리 걷어차기) 않을 의무가 있는 나라다. 지금까지 선진국들은 선진국이 된 후 다 사다리 걷어차기를 했다. 식민지에서 독립한 후 버스에 올라탈 정도가 된 게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이다. 이 중 후진국의 설움과 선진국이 되면 좋은 게 뭔지 알면서 국제무대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한국뿐이다. 이런 역사적 사명을 망각하고 '우리도 차버리자', 그렇게 안 살면 좋겠다.

김유경 :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고, 저개발국에 관심이 많다. 아까 복지와 성장이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저개발국은 경제 민주화와 성장이 같이 가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성장을 하고 나서 민주화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가?
장하준 : 좋은 질문이다. 한국은 기술이 많이 발전해, 복지를 제대로 안 하면 구조조정과 성장이 안 되는 단계가 됐다. 이것은 후진국에 적용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이 다르다. 예컨대 인도는 문맹률이 30%인데, 이걸 고치지 않으면 성장이 안 된다. 유아 사망률 등 여러 문제도 있다. 어느 시대든 그런 것들이 최소한 갖춰지지 않으면 성장을 할 수 없다. 저개발 상태일 때도 그런 것의 기초를 차근차근 쌓아야 한다.

ⓒ정기훈

"새누리당 영입설? 홍사덕의 자가발전"
김인산(서강대 경제학과) :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에 취업하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미친놈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멍청한 놈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중소기업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장하준 : 중소기업은 한국의 현 단계에서 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부품소재 산업은 한국이 제일 취약한 지점이다. 이건 세계적으로 중소기업 고유 업종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혼자서 클 수는 없다. (중소기업에는) 특히 연구개발 자금이 없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을 쥐어짜지만 말고, 1950년대 일본처럼 중소기업이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서강대 대학원생 :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지원을 요청하면 어느 쪽을 택할 생각인가?
장하준 : 내 방식으로 지난 10년간 강연 등을 통해 정치 참여를 해왔다. 어느 한 군데에 매이고 싶지 않다. 부친은 민주당 의원이었지만, 내가 민주당에 들어간다 해도 재벌 문제에서 엄청나게 대립할 것이다. (좁은 의미의) 정치를 할 생각이 없기도 하다. 지금처럼 밖에서 이야기하고, 남들이 취할 게 있으면 취하게 하는 게 내가 한국 정치에 도움을 주는 길이다.
박인규 : 사전에 들어온 850개 정도의 질문 중 30-40개가 '새누리당 영입설의 내막을 밝혀달라'는 것이었다.
장하준 : 홍사덕 전 의원의 자가발전이다. 홍 전 의원과는 옛날에 새누리당에 강연을 갔을 때 인사한 적이 있다. (얼마 전)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다. 그때 홍 전 의원이 '내 생각엔 우리 당에서 장 교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야 하는데…'라고 덕담을 하더라. 그래서 '감사합니다' 하고 헤어졌는데, 갑자기 그런 기사가 났다.

[프레시안 기사] 장하준강연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 공동구매"

장 교수는 "경제 민주화가 왜 이렇게 갑자기 유행하게 됐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일어난 구조조정, 신자유주의의 결과"라는 것이 장 교수의 생각이다.

장 교수는 행복도 조사, 자살률, 출산율, 비정규직 비율, 가계부채 비율 등에서 한국이 안 좋은 쪽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1, 2위를 다투면서 "국민의 불만이 쌓일 대로 쌓였다"고 말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고용 불안과 복지 부족인데, 모두 "IMF 체제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자영업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것과 관련, 장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에서 떨려난 사람들이 갈 곳이 없어 하는 치킨집"이 늘면서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은 세계 10위 정도인데 치킨집 수는 세계 1위"라는 심각한 현상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과당 경쟁으로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에 몰려 있는데, 재벌들이 그것마저 먹겠다고 뛰어오는 상황이라는 진단이다. 장 교수는 "처음부터 유지가 불가능한 것을 경제학에서는 자기 착취라고 하는데, 이젠 그것도 어려운 지경"이라고 말했다.

불안정한 일자리에 더해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복지 태부족" 현실이다. 장 교수는 "한국은 복지 지출이 국민소득 대비 10% 될까 말까 한 수준으로 OECD 국가들 중 밑에서 2번째"라며 "복지가 없다고들 하는 미국도 국민소득 대비 20%는 복지에 지출하고, 스웨덴 등은 30-35%에 이른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런 체제가 만들어진 것은 IMF 위기 직후인데 왜 이제 와서 그런 이야기가 나올까?"

장 교수는 역대 정부가 거듭해서 놓은 "마약 주사"에 주목했다. 신용카드를 남발하도록 부추겨 "성인 7명 중 1명을 신용불량자"로 만들고, 재테크 열풍에 편승해 "빈곤과 실패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렸다"는 비판이다. 이 대목에서 장 교수는 안철수 캠프에 합류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비판했다.

"일자리는 자꾸 불안정해지고, 떨어지면 받쳐줄 복지 제도마저 없어 너무나 불안한 상황이다. (…) 이런 체제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 중 하나가 이헌재 전 부총리다. 그런데 다시 정계에 등장했다. 제발 그 양반, 어떻게 해주세요. 이런 나쁜 체제를 만들어놓고, 사과도 없이 다시 나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청중 박수)"
장 교수는 노무현·이명박 정부도 비판했다. "한미 FTA, 금융 허브 등 노무현 대통령이 잘못 잡아놓은 방향을 이명박 대통령이 불도저처럼 몰고 갔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한국이 그래도 운이 조금 있어서, 금융 허브를 하기 전에 세계 경제 위기가 왔다"고 말했다. "그때 한국이 벤치마킹했던 게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두바이"였는데, 만약 세계 경제 위기가 늦게 터지고 그 사이에 한국이 아일랜드 등처럼 금융 규제를 다 풀어버렸으면 경제가 박살났을 것이라는 말이다.

장 교수는 역대 정부가 놓은 "마약 주사"가 다 떨어지고 이제 "국민이 '도대체 이걸 왜 했는데? 부자 된다며?'라고 묻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 노무현 대통령 말기에 대통령이 '주가 2000 됐다'는 걸 굉장한 치적이라고 이야기했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그게 샘나니까 '난 주가 5000을 만들겠다'고 했다. 온 나라가 다 이것에 홀렸다. 주식 사고, 재테크 해볼까 하는 식이었다. 이제 그 바닥이 드러났다. 그래서 요즘 경제 민주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 장하준 교수. ⓒ정기훈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시민권에 바탕을 둔 보편적 복지국가"
장 교수는 경제 민주화의 개념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장 교수가 생각하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시민권에 바탕을 둔 보편적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민주주의 원리인 '1인 1표'로 '1원 1표'의 시장 원리를 제약하는 것이 경제 민주화라는 이야기다. 장 교수는 시장 원리에 대해 제약업계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전 세계에서 매년 100만 명씩 말라리아로 죽는데, 선진국에서는 말라리아 연구 기금이 살 빼는 약 연구 기금의 20분의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어 장 교수는 "주주권을 강화해서 재벌을 통제하자는 것은 경제 민주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그건 '1원 1표' 원리를 더 철저하게 관철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나쁘게 말하면 삼성과 외국 금융 자본이 싸우는데, 지금 삼성에 더 유리하게 돼 있으니 '1원 1표'를 확실히 해서 외국 금융 자본에 더 유리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 자본 분파 간의 싸움이다. (…) 국민의 삶과 연결된 '1인 1표'의 경제 민주화와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이다. 관계가 있다면, 거기서 외국 자본이 이길 경우 국민이 더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삼성) 이 씨, (현대) 정 씨네는 (국민들이) 얼굴도, 이름도 알지만 국제 금융 자본은 (국민들이) 가서 싸울 실체가 없다"며 "금융 자본에 의한 잠식을 걱정하는 건 재벌이 예뻐서가 아니라 국민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재벌 문제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거기에 묻혀 더 중요한 것이 이야기되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복지를 경제 민주화 논의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장 교수는 "이재용이 쫓겨나 쪽박 차는 것을 보면 하루 기분이 좋겠지만, 복지국가를 잘못 만들면 일생 고생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장 교수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복지국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여성들이 왜 출산 파업을 하겠나? 탁아 시설, 교육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고령화가 되면 이민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난 이민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 나도 이민 노동자다. (그런데) '여성은 집에서 애나 더 낳아라'라고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이민을 제일 반대한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물어야 한다. 나중에 혈통적으로 한국인의 30%를 방글라데시나 필리핀 출신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복지국가를 만들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또한 장 교수는 "복지국가가 약하니 계층 상승이 점점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장 교수는 "복지가 강한 나라일수록 사회적 이동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덴마크, 스웨덴 등은 부모와 자식의 계층 상관관계가 매우 낮은 데 반해 '기회의 땅'과는 거리가 멀어진 미국과 포르투갈은 90% 가까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장 교수는 복지국가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재기의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보수화한다고 지적했다. 외환위기 이후 의대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것도,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장 교수는 구조조정과 경제성장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한미 FTA와 한-EU FTA로 인해 생겨날 희생자들을 위해서도 복지국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 '<프레시안> 창간 11주년 기념 장하준 교수 특별 강연회'에 자리한 청중. ⓒ정기훈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 공동 구매…담세율 높여야"
장 교수는 이렇게 "복지국가를 만드는 게 핵심인 시대가 왔다"며, 복지 개념을 잘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 '공구'(공동 구매)"라고 강조했다.

"' 무상급식' 논쟁에서 '왜 이건희 회장 손자와 가난한 아이들이 똑같이 돈을 안 내고 밥을 먹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온 적이 있다. (…) 실제로는 공짜가 아니다. (…) 이 회장은 누진세 원칙에 따라 세금을 많이 냈다. 그 손자는 더 비싸게 먹는 것이다. 돈 없는 사람들은 부가가치세를 냈고. (…) 이걸 두고 '부자 복지'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예컨대 가난한 사람에게는 1000원, 부자에게는 5000원을 받으면 '부자 구박한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두 가지는 논리적으로 똑같은 것이다."
장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닥에 떨어진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는 잔여적 복지가 아니라 시민권에 바탕을 둔 보편적 복지가 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옳을 뿐만 아니라, 그래야만 정치적으로 지속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장 교수는 가난한 사람에게만 선별적으로 복지를 하자는 건 "폭동이 안 날 정도로만 밥을 먹여주자는 것"으로서 "복지국가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선별적 복지를 하면, 행정 비용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생각하는 것만큼 많이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복지와 성장은 상충한다"는 신화를 깨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언론 등에서 걸핏하면 '복지병'을 운운하고 '경제 위기인데 무슨 복지냐'는 반응을 보이지만,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 복지와 성장이 그렇게 상충하는 것이라면 스웨덴, 핀란드가 어떻게 미국보다 성장률이 높겠나? 불평등이 경제성장에 그렇게 좋은 것이면, 불평등한 미국은 왜 성장률이 떨어졌나? 유럽은 복지로 망하고 미국은 복지가 없어서 (경제가) 잘된다? 1990년대 후반에 미국에 거품이 들어왔을 때를 제외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더 성장률이 높았다."

장 교수는 복지국가 시스템을 충실히 갖추려면 담세율(소득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지금의 20%에서 최소한 40%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 스웨덴, 핀란드는 50-55%다. 말하자면 (한국도) 지금보다 세금을 두 배 이상 올려야 제대로 된 복지를 한다는 뜻이다. 누진세 원칙에 따라 부자가 더 많이 내야 하지만, 그래도 모든 사람이 세금을 더 많이 낼 각오를 해야 한다."
이 를 위해 "세금 개념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 장 교수 생각이다. 미국과 달리 스웨덴 등에서 '복지국가를 없애자'는 말이 안 나오는 것은 세금을 내면 복지 제도를 통해 그 혜택을 "다 내가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육아, 교육, 건강, 실업, 노후 등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에 대비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장 교수는 "정부가 세금을 거둬 태워버리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세금이 길이고 병원이고 학교"이라며 "세금이 낮은 게 그렇게 좋은 것이면, 왜 세계의 부자와 기업들이 세율 5%인 자메이카나 법인세율 10%인 알바니아로 안 가겠나"라고 물었다. 다만 장 교수는 정부가 세금을 거둬 "강바닥 파는 것 같은 일을 하지" 말고 잘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기훈

"금융 상품은 무서운 무기…자본시장 통제해야"
이와 함께 장 교수는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위해 자본시장 통제, 노동권 강화, 작은 경제 주체들(노조, 소비자, 소생산자 등)의 '민주적 담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 원 1표'의 핵"인 자본시장 통제와 관련, 장 교수는 2008년 금융 위기를 통해 그 위험성이 만천하에 드러난 투기 행위(공매도, "이해 불가능한" 파생상품, 내부자 거래 등)를 제약하거나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런 버핏조차 파생상품을 "금융계 대량 살상 무기"로 규정하고 시장주의의 본산인 IMF마저 '후진국은 자본 통제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그 폐해가 심각하다는 말이다.

"'계약의 자유가 있는데 어떻게 금지한다는 말인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선 매일 일어나는 일이다. 약은 안전성을 입증해야 팔 수 있다. 그런데 금융 상품은 왜 그렇게 안 하나? 얼마나 무서운 건데. (…) 이번 금융 위기로 전 세계에서 8000만 명이 실업자가 됐다. 그중에서 가정이 깨지고 자살한 사람이 얼마나 많겠나. 그런데 이런 '무기'를 (규제 없이) 그냥 판다? 통제해야 한다."
장 교수는 노동권 강화와 관련, 정리해고를 어렵게 하고 비정규직 대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비정규직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려면 복지국가를 잘 만들어야 하지만, 그 이전이라고 해서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또한 "어떤 식으로든 기업 경영에 노동자가 참여하게 하는 것이 민주화"라고 말했다. 법적으로는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지만, 실제로는 "언제든 떠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에 대한 주인의식이 가장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노동자처럼 "기업을 간단히 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줘야" 하며 그것이 기업에도 좋은 일이라는 것이 장 교수의 판단이다.

장 교수는 '1인 1표' 원칙과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경제 민주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기업의 하청기업 착취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로 놔두면 한국 기업이 업그레이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일본이 결정적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던 계기는 1950년대 말에 하청기업법을 강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이 강화되자 도요타 등의 대기업이 하청기업에 투자도 하고 기술도 이전하면서 함께 도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에 더해 장 교수는 중소기업고유업종을 지정해 경제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지 상태에서 시작한다고 가정할 경우 치킨집과 두부공장을 영세업자만 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과거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경제적 약자들이 특정 업종에 몰려 있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말이다. 장 교수는 "30년 후 복지국가가 잘 이뤄지고 산업구조가 더 좋아지면 그때는 재벌이 치킨집을 해도 되지만, 그런 세상이 오지 않는 한 제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주변에 계속 이야기해서 복지를 정치권의 최고 의제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청중에게 요청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강의가 끝난 후에는 장 교수와 청중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질의응답 내용은 <"타협도 안 하는 재벌이 백기투항하겠나?"> 참조).

2012년 9월 17일 월요일

[경향/한국] 사자 명예훼손 조현오 기소

 

檢, 조현오 전 경찰청장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 거액의 차명계좌를 보유했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형사 1부(조상철 부장검사)는 조 전 청장을 사자 명예훼손 혐의와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17일 밝혔다.

조 전 청장은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이던 2010년 3월 31일 경찰기동대 대상 특강에서 “200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하기 전날 10만원권 수표가 입금된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되어 자살하기에 이르렀고 권양숙 여사가 차명계좌를 감추기 위해 민주당에 말하여 특검을 못하게 하였다”고 발언해 노 전 대통령 및 권 여사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같은 사실이 2010년 8월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자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는 조 전 청장을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발언이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하고, 권 여사와 관련해서는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또 강연 내용을 CD로 제작해 경찰 간부들에게 배포한 데 대해서도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은 조 전 청장의 발언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없어 기소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사자 명예훼손 혐의와 관련해 “조 전 청장은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거액의 차명계좌 자료가 중수부에서 보관중인 수사기록에 들어있으며 수사내용을 알 수 있는 유력인사로부터 그 내용을 들었다’고 주장했지만 대검에 보관중인 노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종결된 수사기록에는 위와 같은 내용이 없었으며, 조 전 청장이 유력 인사의 인적사항을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면서 “권 여사가 민주당에 말해 특검을 못하게 했다는 발언도 피의자는 같은 유력인사로부터 그 내용을 들었다고 주장하나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러나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당시 현장 교육에 참석치 못한 내부 직원 교육용으로 강연 영상을 담은 CD 5매가 제작돼 서울지방경찰청 산하 5개 기동단에 배포됐으며, 이는 인쇄물 등과 동일한 정도의 높은 전파성이나 신뢰성, 보존가능성을 갖고 유통될 수 있는 출판물이라 보기 어렵다고 보고 불기소 처분했다고 밝혔다.

<백인성 기자 fxman@kyunghyang.com>

입력 : 2012-09-17 12:06:27수정 : 2012-09-17 16: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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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기사] 


'노무현 대통령의 차명계좌' 발언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던 조현오(57) 경찰청장이 대통령 부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다. 청장이 언급한 차명계좌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고, 청장은 발언 내용을 전했다는 유력 인사에 대해서도 끝내 밝히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 조상철) 17 청장에 대해 사자(死者) 명예훼손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치적 이슈로까지 번졌던 이번 사건 수사는 청장에 대한 고소ㆍ고발이 제기된 2년여 만에 마무리됐다. 민주통합 대선 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후보는 지난해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사건의 신속 수사를 촉구하는 1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청장은 2010 331 서울경찰청장 재직 당시 내부 직원들을 상대로 강연에서 '2009 523 대통령이 사망하기 전날 10만원권 수표 입금된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돼 자살하기에 이르렀고, 권양숙 여사가 차명계좌를 감추려고 민주당에 특검을 못하게 했다' 허위사실 적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청장은 '대검 중수부가 우리은행 서울 삼청동지점에서 청와대 여직원 사람 명의로 거액의 차명계좌 2개를 발견했으며, 중수부에서 보관 중인 수사기록에 이러한 내용이 들어 있다' 주장했지만, 대검에 보관 중인 대통령 수사기록에는 청장이 언급한 내용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중수부 기록 우리은행 관련 자료 복사본을 전달받아 분석 결과 청장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결론내렸다고 밝혔다.

검찰은 청장이 '차명계좌 관련 내용을 검찰 관계자 2명으로부터 들었다' 주장하면서도 해당 인사의 인적 사항을 밝히지 않아 당시 수사팀 관계자를 상대로 확인작업을 거쳤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책임자인 이인규 중수부장과 수사 검사, 계좌추적 전담 직원에게까지 모두 문의했지만 청장에게 해당 내용을 전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 청장이 유력 인사에게 들은 같지도 않다" 말했다. 청장은 시종일관 발언의 근거는 밝히지 않고 "검찰이 알아서 확인하라" 입장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청장은 최근 펴낸 자신의 저서를 통해 "법원에서 차명계좌의 존재를 밝히겠다" 언급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검찰 수사를 통해 청장의 주장이 허위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청장이 도덕적 비난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2012년 9월 12일 수요일

[한겨레 사설] 박근혜, 사실관계 오류와 사법체계에 대한 무지

[사설] 박근혜, 사실관계 오류와 사법체계에 대한 무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어제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인혁당 사건을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할 이유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이 나온 것도 있지만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 여러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박 후보의 이런 말을 접하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것은 그가 정확한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 판결을 내린 것은 대법원이 아니라 서울중앙지법이다. 검찰이 지법의 무죄 판결에 승복해 항소를 포기해 무죄가 확정된 것이다. 박 후보가 계속 ‘같은 대법원’ 운운하는 것도 실소를 자아내지만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증언’ 발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박 후보가 말한 증언자는 박범진 전 신한국당 국회의원과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등을 지칭하는 듯하다. 박 전 의원은 2010년 “나 자신이 인혁당에 입당해 활동했다. 인혁당 사건은 조작이 아니다”고 증언했고, 안 교수 역시 “인혁당 사건과 통혁당 사건 등은 대부분 실체가 있는 사건”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박 후보는 이들의 주장을 근거로 자신의 발언을 정당화하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박 후보는 이 대목에서 중대한 사실관계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박 전 의원 등이 말한 사건은 1964년에 일어난 ‘1차 인혁당 사건’이다. 1975년 4월 도예종씨 등 8명에게 대법원이 사형을 선고해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한 ‘2차 인혁당 사건’(인혁당 재건위 사건)과는 다른 것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은 바로 2차 인혁당 사건인데도 박 후보는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관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주장을 앞세우는 것은 지도자로서는 치명적 결함이다. 박 후보는 아버지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집착이 워낙 강하다 보니 기본적인 사실관계마저 무시하며 모든 것을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박 후보가 우리 사법체계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은 더욱 충격적이다. 뒤에 나온 판결이 앞의 판결보다 효력이 우선이며, 재심 제도는 앞선 확정판결에서 중대한 흠이 발견됐을 때 이를 바로잡는 비상구제 절차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도 ‘인혁당 판결이 두 개’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모습을 보면 박 후보가 과연 기본적인 법의식을 갖추고 있는지조차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한심한 것은 박 후보의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아부성 발언과 눈치 살피기에만 급급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태도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박 후보에게 부친 문제를 묻는 건 연좌제”라고 했고, 판사 출신인 여상규 의원은 “과거 유죄 판결이 내려진 걸 훗날 무죄로 뒤집는 등의 사례는 사법부의 자기부정이 아니냐”고까지 말했다. 이처럼 소신도 줏대도 없는 인사들이 당에 득실거리는 것은 박 후보 용인술의 한계를 보여준다.


박 후보는 인혁당 사건과 관련한 자신의 발언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어제 오후에는 “대법원 판결(재심 판결)을 존중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렇지만 이번 사안은 그런 말로 어물쩍 넘어갈 수도, 넘어가서도 안 되는 문제다. 재심 판결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두 개의 상반된 판결’을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증언’ 중에 과연 2차 인혁당 사건이 조작이 아니라는 증언이 있는지 등을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사법체계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있는지를 명백히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