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5일 화요일

[한겨레 사설] 무원칙·무철학의 영유아 무상보육 폐기

정부가 0~2살 영유아에 대한 무상보육 정책을 6개월 만에 사실상 폐기하기로 했다. 어제 보건복지부가 기획재정부 등과 협의를 거쳐 내놓은 보육지원체계 개편안을 보면, 소득 상위 30% 가구는 보육비 전액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전업주부 가구의 보육비 지원은 절반 수준으로 축소하겠다고 한다. 당장 혜택이 줄어들게 된 소득 상위 30% 가구와 전업주부 가정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더 큰 문제는 정치권의 합의로 도입된 보편복지가 원칙과 철학 없이 선별복지로 후퇴하고, 정책에 혼란을 가져오게 됐다는 점이다.
가장 큰 변화는 현재 0~2살 시설이용 아동 모두에게 주는 보육료를 바우처와 양육보조금으로 나눠, 소득 하위 70%의 부모에게만 양육보조금을 준다는 것이다. 연령별로는 0살 20만원, 1살 15만원, 2살 10만원의 양육보조금을 매달 지급한다. 또 전면 무상보육 폐기에 따라 전업주부 가구에는 하루 6시간의 반일반 바우처를, 맞벌이 가구 등에는 하루 12시간의 종일반 바우처를 제공하기로 해 차별 논란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3~5살의 경우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소득 하위 70%에 한해 양육보조금 10만원을 매월 지급하기로 했다. 결국 0~2살 보육지원 대상을 축소하고 월 10만원의 가정양육보조금 지원을 조건으로 3~5살 무상보육 축소를 꾀하려는 것이다.
정부는 가정양육 확대를 위해 양육수당 제도를 확대 개편하고 실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보육지원체계를 구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지원 확대가 아니라 명백한 지원 축소다. 전 계층에 지급하던 0~2살 보육료 지원 금액을 양육보조금과 보육료 지원으로 나눠, 보육료 지원 대상자를 전 계층에서 소득 하위 70%로 축소했기 때문이다. 가정양육 활성화는 저소득 가구에서 양육보조금을 지급받고 시설보육을 포기해 발생하는 지원예산을 절감하겠다는 얕은수다.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한 무상보육 정책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지난 총선에서도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도 0~5살 아이를 둔 전 계층에 양육수당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재원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올해 0~2살 무상보육이 급작스럽게 도입되면서 지방정부의 재정 고갈 문제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그렇다고 예산에 맞춰 보육지원을 축소하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보육은 국가의 책임이자 아동의 권리다. “재벌가 손자에게도 보육비를 지원하는 것이 맞느냐”는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낮은 복지인식으로 저출산 고령화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을 결코 타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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