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4일 월요일

[프레시안 기사] 장하준 강연 질의 응답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21일 오후 7시 30분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경제 민주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프레시안> 창간 11주년 기념 특별 강연회'를 했다. 1시간에 걸친 이날 강연에서 장 교수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시민권에 바탕을 둔 보편적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 기사 : 장하준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 공동구매")

강 연 후, 장 교수와 청중 사이의 질의응답이 다시 1시간여 동안 이뤄졌다. 우선 참가자들이 사전에 보낸 약 850개의 질문 중 핵심 사항들을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장 교수에게 물었다. 그 다음에는 여고생, 대학생, 회사원 등 다양한 청중이 무대에 올라 장 교수와 즉석에서 문답을 주고받았다.

다음은 질의응답의 주요 내용이다.

박인규 : 정치 할 뜻은 없나?
장하준 : 없다. 정치는 굉장히 중요하고 뜻있는 직업인데 적성에 맞아야 한다. 난 책 보고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고 남들이 안 하는 생각을 하는 게 좋아서 교수가 됐다. 그걸 버리기 싫다. 그리고 무엇보다 잠이 많다. 4시간 이상 자면 정치인으로서 도태된다. 부친은 정치인으로서 잘했지만 난 잠이 많아 못 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이건 지킬 자신이 있다.

박인규 : 장 교수는 재벌의 긍정적 측면을 살려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재벌이 법 위에 있는 상황에서 재벌과 타협이 되겠나?
▲ 장하준 교수. ⓒ정기훈
장하준 :
재벌들을 규제하고 혼낼 게 많이 있다. 그런데 그걸 하기 위해서 지배구조를 바꿀 필요가 없다. 골목상권을 침입하면, 못하게 하면 된다. 왜 자꾸 복잡하게 순환출자로 문제를 돌려 시간을 낭비하나? 탈세하면, 잡아넣으면 된다. 걸핏하면 '경제가 어렵다'는 핑계 대고 풀어주는 그런 짓을 안 하면 된다. 순환출자가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 고치려면 몇 십 년 걸릴 수도 있고 그 사이에 자칫하면 국제 금융 자본이 접수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이해하지 못하겠는 게 있다. 왜 (재벌에게) 백기투항을 하라고 하나? 저쪽(재벌 개혁론자) 이야기는 백기투항을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재벌을 국민이 한판에 잡아 누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내가 무엇 하러 타협하자고 하겠나. 누가 순진한 건지 잘 모르겠다. 나도 순진하지만 그런 이들이 더 순진한 것이다. 타협도 안 하는 재벌들이 무엇 하러 백기투항을 하겠나?

박인규 : 재벌과 대타협,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장하준 : 재벌이 국민경제의 이익을 위해 쓰이는 게 중요하다. 재벌들의 형태가 어떻게 되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 사람들이 투자를 많이 하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노동자를 제대로 대해주고 무엇보다 세금을 많이 내서 복지국가 만들어주고 법을 잘 지키고 하면, 어떤 구조로 갖고 있건 상관없다.

몇 년 전 어떤 신문에 대타협론에 대해 썼더니, 한 독자가 댓글로 '사카린 밀수한 놈들과 무슨 타협이야'라고 하더라. 그 댓글 보고 '안 되겠다' 싶어 그 다음 달에 다시 칼럼을 썼다. 더 화난 건, '장 교수가 외국에 오래 살아서 삼성이 얼마나 나쁜지 모르는 모양인데' 하는 것이다. 내가 왜 모르겠나. 그래서 '사카린 밀수는 물론 더 나쁜 짓도 많이 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근원을 따지면 깨끗한 자본은 없다'(는 글을 썼다).

미국과 영국의 자본에 비하면 삼성은 천사다. 노예 썼지, 아동노동 시켰지, 제국주의 했지, 사설 탐정단을 고용해 파업하는 노동자들 쏴 죽였지, 미국 원주민들 다 쫓아내고 죽였지…. 비교가 되나? 삼성을 용서해주자는 게 아니다. 지금 가능하고 필요한 게 뭐냐(를 보자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것(한국 기업)이 국제 금융 자본에 접수되지 않도록 하고, 국제 금융 자본과 야합을 못 하게 해야 하는데, 지금 하고 있다. 그전에 빨리 그걸 떼어내 '너희는 국민의 기업이야, 너희 일부는 국민 것이야'라고 하고, 어떻게 하면 국민 경제에 묶어 국민에게 진 빚을 갚게 할 것인지 그 방법을 모색하고 싶은 것이다.

"미국·영국 자본에 비하면 삼성은 천사…잘못 용서하자는 건 아니다"
박인규 :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안철수 후보의 경제 민주화 방안을 어떻게 평가하나.
장하준 : 자세히 나온 게 아직 없어서…. 안철수는 이헌재를 옆에 앉힌 것 말곤 특별히 발표한 것도 없다.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의 정책들은 큰 틀에서 비슷한 것 아닌가? 순환출자 제약 등인데 미흡하다. 민주통합당이 복지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재원 확보를 위해 세금을 올리겠다는 말은 안 한다. 조금 올리겠다고 하는 정도다. 그러나 복지국가를 하겠다고 하는 당이라면, 30-40년 목표치를 제시하고 그에 맞춰 매년 1%씩이라도 올리겠다고 해야 한다.

박인규 : 한국은 스웨덴과 달리 사민주의 정당도, 노조도 약해 복지국가를 추진할 주체가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장하준 : 보기 나름이다. 스웨덴도 처음부터 그렇게 전망이 좋은 건 아니었다. 1920년대에 스웨덴은 세계에서 파업률 1위였다. 노사관계가 세계에서 제일 나빴다. 그때 노조 조직률이 30% 정도였다. 지금의 한국보다는 높지만, 오늘날 스웨덴(80%)보다는 훨씬 낮다. 하나하나 해 간 것이다. 시간을 갖고 하면 할 수 있다. 국민소득 80불짜리 나라가 20000불이 됐는데 복지국가 못 만들겠나? 하려고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노조가 없어서? 노조를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박인규 : 세계 경제 위기 상황에서 한국만의 경제 민주화가 가능하겠냐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리고 세계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나.
장하준 : 위기라서 더 어려운 면도 있지만, 더 가능한 면도 있다. 2008년 금융 위기가 날 때까지는 신자유주의를 대세로 봤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안다. 얼마나 엉터리인지도 드러났다. 그러니 더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다. IMF가 후진국 자본통제를 이야기하는 것도 IMF에서 미국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졌기 때문이다. 위기라서 새 틀을 짤 수 있다.

세 계 경제? 많은 부분이 미국 선거에 달렸다. 롬니는 사실 무원칙주의자다. 돈이 된다면 무조건 하는 사람이다. 더 무서운 건 극단적 시장주의자인 부통령 후보 폴 라이언이다. 롬니가 요즘 속된말로 '닭짓'을 많이 해서 (당선이) 안 될 것 같긴 한데, 만약 되어서 미국 재정을 급격히 삭감하면 세계 경기가 냉각될 수 있다. 이게 당장 제일 큰 문제다. 그 다음에 유로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독일이 '유럽중앙은행을 강화하고 재정 통합을 하지 않으면 유지가 안 되겠다'는 것을 점점 인식하는 듯한데, (그래도 여전히) 어렵다. 시간 싸움이다. 잘 해결되더라도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같은 시간이 10여 년 지속되지 않을까 한다.

▲ 장하준 교수가 무대에서 청중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정기훈

"업그레이드 다각화와 다운그레이드 다각화 구분해야"
박혜민(광주 대성여고 2학년) : 얼마 전 삼성에 가서 기업 다각화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런데) 우리 동네만 봐도 이마트가 들어온 후 다 망했다. 서민 경제를 파탄시키고 승자 독식 사회를 고착화하는 데 (재벌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기업 다각화의 사회적 악영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책을 보면 그런 주장을 할 분이 아닌 듯한데….
장하준 : 다각화에 분명히 좋은 점이 있다. 사람들이 자꾸 오해하는데, 내가 이야기하는 건 업그레이드하는 다각화다. 다각화가 없었으면 삼성은 계속 양복점을 하고 현대는 길 닦고 있었을 텐데, 그걸 전자, 자동차에 넣어 기업도 크고 나라 경제도 잘됐다는 이야기였다. 재벌들이 또 업그레이드를 하는 것에 (역량을) 써야 한다. 신소재산업이 됐건 생명공학이 됐건 태양열 전지가 됐건 해야 하는데, 그건 안 하고 치킨집 잡아먹고 소매업 같은 걸 자꾸 하려는 건 문제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해도, 재벌 측은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듣고 '다각화가 무조건 좋다더라' 이렇게 쓰고, 날 싫어하는 재벌 개혁론자들은 '골목상권 침해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더라' 이렇게 반응한다.

참 어렵다. 흑백 논리를 이야기하면 쉬운데…. 내가 말하는 건 '적당량의 음식과 함께 적당량의 알코올을 섭취하면 몸에 좋을 수 있습니다'인데, 한쪽은 '알코올 중독 권장하는 거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다른 쪽은 '아무 규제 없이 알코올을 다 마셔도 된다는 이야기다'라고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나도 흑백 논리를 개발하면 얼마나 편할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 학자로서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업그레이드하는 다각화와 다운그레이드하는 다각화는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박인규 : 혜민 양, 오해가 풀렸나?
박혜민 : 네.

차동욱(회사원) : 경영자가 읽어야 할 책 중에 <나쁜 사마리아인>이 있더라. 우린 버스에 탄 건가, 아니면 사다리를 걷어차인 건가.
장하준 : 버스에 아직 탄 건 아니고 뒤에 매달린 상태다. 어떻게든 창문으로 기어들어가려 하면서, 발 하나 정도는 넣은 것 같다. 강조한다. 한국은 세계 역사적으로 그러지(사다리 걷어차기) 않을 의무가 있는 나라다. 지금까지 선진국들은 선진국이 된 후 다 사다리 걷어차기를 했다. 식민지에서 독립한 후 버스에 올라탈 정도가 된 게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이다. 이 중 후진국의 설움과 선진국이 되면 좋은 게 뭔지 알면서 국제무대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한국뿐이다. 이런 역사적 사명을 망각하고 '우리도 차버리자', 그렇게 안 살면 좋겠다.

김유경 :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고, 저개발국에 관심이 많다. 아까 복지와 성장이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저개발국은 경제 민주화와 성장이 같이 가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성장을 하고 나서 민주화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가?
장하준 : 좋은 질문이다. 한국은 기술이 많이 발전해, 복지를 제대로 안 하면 구조조정과 성장이 안 되는 단계가 됐다. 이것은 후진국에 적용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이 다르다. 예컨대 인도는 문맹률이 30%인데, 이걸 고치지 않으면 성장이 안 된다. 유아 사망률 등 여러 문제도 있다. 어느 시대든 그런 것들이 최소한 갖춰지지 않으면 성장을 할 수 없다. 저개발 상태일 때도 그런 것의 기초를 차근차근 쌓아야 한다.

ⓒ정기훈

"새누리당 영입설? 홍사덕의 자가발전"
김인산(서강대 경제학과) :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에 취업하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미친놈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멍청한 놈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중소기업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장하준 : 중소기업은 한국의 현 단계에서 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부품소재 산업은 한국이 제일 취약한 지점이다. 이건 세계적으로 중소기업 고유 업종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혼자서 클 수는 없다. (중소기업에는) 특히 연구개발 자금이 없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을 쥐어짜지만 말고, 1950년대 일본처럼 중소기업이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서강대 대학원생 :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지원을 요청하면 어느 쪽을 택할 생각인가?
장하준 : 내 방식으로 지난 10년간 강연 등을 통해 정치 참여를 해왔다. 어느 한 군데에 매이고 싶지 않다. 부친은 민주당 의원이었지만, 내가 민주당에 들어간다 해도 재벌 문제에서 엄청나게 대립할 것이다. (좁은 의미의) 정치를 할 생각이 없기도 하다. 지금처럼 밖에서 이야기하고, 남들이 취할 게 있으면 취하게 하는 게 내가 한국 정치에 도움을 주는 길이다.
박인규 : 사전에 들어온 850개 정도의 질문 중 30-40개가 '새누리당 영입설의 내막을 밝혀달라'는 것이었다.
장하준 : 홍사덕 전 의원의 자가발전이다. 홍 전 의원과는 옛날에 새누리당에 강연을 갔을 때 인사한 적이 있다. (얼마 전)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다. 그때 홍 전 의원이 '내 생각엔 우리 당에서 장 교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야 하는데…'라고 덕담을 하더라. 그래서 '감사합니다' 하고 헤어졌는데, 갑자기 그런 기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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