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7일 목요일

[프레시안] 곽노현 사건 대법원 판결에 대한 박동천 교수 글

결국 대법원은 곽노현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나는 대법원이 법의 목소리를 외면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면서도, 그래도 진실과 이치와 양심의 흔적이 이번에 표현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런 바람은 일단 짓밟혔다.

하지만 이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가깝게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남아 있지만,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사건이야말로 역사의 법정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재판한 이상훈, 신영철, 김용덕은 대법관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곽노현의 선의를 함부로 처벌했지만, 역사의 법정에서는 바로 이 세 사람이 피고인석에 서게 될 것이다.

법관의 지위를 이용해 함부로 법을 무시한 사례는 무척 많지만, 세 가지만 예시한다.

1975년 대한민국 대법원은 소위 "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 피고인들에게 사형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주지하다시피 이 나라 사법의 역사상 가장 큰 오점으로 기록되었다. 2007년 서울중앙지법에 의해 판결이 뒤집혔고, 박근혜조차도 며칠 전에 이를 인정했다. 박근혜가 즐겨 쓰는 문구 "역사의 판단"이란 이를 말하는 것이다.

프랑스 현대사에서 사법부의 수치는 드레퓌스 판결이 대표한다. 드레퓌스 대위는 1894년 조작된 증거에 의해 유죄 선고를 받았고, 1896년에 증거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오히려 그 사실을 밝혀낸 피카르 중령이 좌천당하고 말았다. 이를 항의하던 에밀 졸라는 궐석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1906년 재심에서 모든 혐의가 풀리고, 과거의 재판이 잘못이었음이 만천하게 공표되었다.

미국 사법의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 중에는 드레드 스코트 사건이 있다. 스코트는 노예제가 금지된 위스콘신 주 등지에서 거주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자기는 이미 자유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대법원은 미국에 거주하는 흑인은 미국 시민이 아니라 노예 소유주의 사유 재산이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 사건은 사회 안에 격렬한 분쟁을 일으키고, 결국 남북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 수정헌법 제13, 14, 15조에 의해서 무효가 되었다. 연방대법원 판결은 7대 2로 이뤄졌는데, 소수의견을 낸 매클린 대법관은 "법이 아니라 다수파의 입맛에 따른 판결"이라고 자리매김했다.

곽노현을 재판한 항소심 판결이 법이 아니라 입맛에 휘둘렸다는 사실을 나는 전에 밝힌 바 있다. (☞관련 기사 : "곽노현 항소심 판결문에는 논리가 없다") 대법원 판결문에서도 이 치명적인 결함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판결문은 이렇게 올바른 전제에서 출발하는 척 가장한다.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는 후보자이었던 사람이 후보자를 사퇴한 후 그에 대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이익 제공·수수 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후보자를 사퇴한 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이었던 사람에게 이익 등을 제공하는 행위와 후보자이었던 사람이 위와 같은 이익 등을 수수하는 행위에 한하여 이를 처벌한다."모든 이익 제공·수수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대가를 목적으로' 제공하는 행위에 한하여 처벌한다는 말이다. 이는 맞는 말이지만 가장에 불과하다. 가장이 아니려면, 곽노현이 건넨 돈이 '대가를 목적으로' 준 것인지를 따져야 하는데, 1심에서도 2심에서도 이를 따지지 않고 넘어가 버렸다. 따라서 법률심인 대법원은 마땅히 1심과 2심 재판이 근대 형사 재판에서 가장 기초적인 형식 요건도 갖추지 못했으므로 파기했어야 맞는다. 아니면 대법원 스스로 '대가를 목적으로' 돈이 건너갔다는 논증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판결문 어디를 봐도 이 핵심 쟁점이 논의되는 기미가 없다. 단지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위 규정의 적용 대상자와 구체적으로 금지되는 행위의 내용을 충분히 알고 이에 비추어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다고 우길 뿐이다.

나는 "위 규정의 적용 대상자와 구체적으로 금지되는 행위의 내용"을 전혀 모르겠다. 곽노현은 이렇게 물었다. 만약 문재인과 안철수가 상호 합의한 절차에 따라 단일화해서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가정할 때, 그가 취임한 후에 상대방을 국무총리에 임명한다면 "사후 매수 죄"에 걸리는가 안 걸리는가? 나는 이 질문의 답을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한 명도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곽노현을 재판한 1심과 2심의 판사들은 물론이고, 대법원의 이상훈, 신영철, 김용덕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를 "안다"고 말할 사람은 꽤나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아는" 것과 "안다고 우기는" 것을 분간하지 못하는 자폐증 환자일 뿐이다.

인혁당 재건위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판결했다. 당시 대법원은 민복기·홍순엽·이영섭·주재황·김영세·민문기·양병호·이병호·한환진·임항준·안병수·김윤행·이일규 등, 열세 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도 자기들이 한국 사법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판결을 내리고 있는 줄은 몰랐을 것이다. 드레퓌스를 재판한 프랑스 군사법원도 수치를 몰랐고, 스코트를 재판한 미국 연방대법원장 태니도 수치를 몰랐다.

왜 수치를 몰랐을까? 법을 자기들이 재단한다는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위가 역사의 법정에서 심판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이를 깨닫지 못했을까? 증거에 충실하지 않고 시류에 영합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진실과 정의와 양심의 목소리가 내면에서 올라오는 데도 억누르고, 법관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한다. 사후 매수라는 개념이 형사법적으로 성립하려면 사전 합의를 반드시 전제해야 한다. 곽노현 사건에서 이보훈과 양재원 사이에 오간 대화는 자체로 어떤 의무를 수반하는 합의일 수 없을 정도로 엉성하고 애매모호할 뿐만 아니라, 애당초 이보훈이 곽노현을 대리했다고 볼 여지도 전혀 없다. 판결문들을 읽어보면 1심과 2심 그리고 이번 대법원의 재판부조차, 사전 합의가 없었다는 취지를 백분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엉뚱하게 사후 매수가 성립한다는 듯이 우겨대고만 있다. 이것은 법이 아니라, 판사 개인들의 사리사욕일 뿐이다. 보수파의 기득권과 보수파가 지어낸 여론에 굴복한 것 말고는 어떤 의미도 여기에는 없다.

이 나라에서는 이렇게 인혁당 사건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인혁당 사건의 재판부가 역사의 법정에서 심판받는 데는 32년이 걸렸다. 드레퓌스 재판의 경우는 12년, 스코트 재판의 경우는 8년이 걸렸다. 판결은 뒤집혔지만, 법의 이름으로 불의를 자행한 어떤 판사도 개인적으로 처벌받지는 않았다.

나는 곽노현 재판은 이보다 빠르게 역사의 법정에서 심판받을 것으로 믿는다. 그날, 이상훈, 신영철, 김용덕에게 잘못한 만큼 개인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면, 한국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서 정의의 표준이 크게 향상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박동천 전북대학교 교수




1. 무엇이 쟁점인가?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재판에서 배경이 되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은 이렇게 정리된다. ① 양재원, 이보훈, 최갑수 사이에 있었다고 하는 소위 "합의"라는 것은 합의의 명색만 갖추고자 했던 양재원의 시나리오에 이보훈과 최갑수가 별 생각 없이 따른 결과, 따라서 막연할 뿐만 아니라 서로 부정합적인 단어들을 무의미하게 연결한 데에 불과하다. ② 이런 무의미한 이야기가 오갔다는 사실조차 곽노현은 몇 달 후에 자체 조사를 통해서나 알게 되었다. ③ 한편 박명기는 양재원으로부터 "합의"가 있었다고 전해 들었고, 그래서 한 때 합의 이행을 요구했다. ④ 진상을 파악한 이후 곽노현은 강경선에게 부탁해서 박명기의 오해를 풀었다. ⑤ 이 와중에 강경선은 박명기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되어 곽노현에게 부조를 조언했고, 곽노현은 강경선의 신앙심에 감화되어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음을 무릅쓰고 2억 원 가량을 건넸다.
이와 관련되는 법조문은 공직선거법 232조 1항의 1호(사전매수죄)와 2호(사후매수죄)이다 (지금부터는 이를 줄여서 각각 1호와 2호라고 부른다). 그런데 검찰은 공소시효 때문에 1호로 기소하지 못하고 2호로 기소했다. 그러면서도 2호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곽노현의 금전 공여가 "사후매수"에 해당한다는 논거로서는, ①을 사실상 두 후보자간의 합의였다고 보며, 곽노현이 이를 몰랐다는 ②를 부정한다. 검찰은 곽노현의 인지에 관해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곽노현이 이를 알게 된 것이 몇 달 후임이 1심의 사실심리를 통해 명백하게 밝혀졌으므로, 1심과 2심에서 공히 재판부는 ②에 관해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2억 원의 공여는 2호 사후매수죄에 해당한다고 보아,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 재판에서 핵심 쟁점은 곽노현의 금전 공여가 2호에 규정하고 있는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였던 자에게" 금전을 제공한 행위가 되느냐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곽노현의 행위가 법이 금지하는 행위인지를 판정하기 위해서는 사퇴할 당시까지 모종의 합의나 묵계 또는 이심전심의 양해가 없었더라도 사후매수라는 범죄가 구성될 수 있는지 여부, 그리고 위에서 ①이라고 표시한 대화가 합의나 묵계나 이심전심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반드시 엄밀하게 따져야 한다. 그런데 이번 재판에서는 1심에서도 2심에서도 재판부가 이와 같은 핵심 쟁점을 전혀 따져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쟁점을 두루뭉수리로 얼버무림으로써 마치 곽노현이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돈을 건넸다는 듯한 착시현상을 만들어내고는 스스로 그러한 착각에 빠지고 말았다. 이 착각의 본질을 지금부터 파헤치기로 한다. 이 논의는 이미 상당히 길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그리고 1심의 유죄 논거와 2심의 유죄 논거는 대동소이하므로, 여기서는 2심 판결문만을 대상으로 삼는다.

2. 공직선거법 232조 1항 2호의 취지

사퇴 당시까지 대가를 제공하기로 합의나 묵계나 이심전심이 없는 한 사후매수가 성립할 수 없다고 보고 생각해 보자. 이랬을 때 2호의 입법취지는 만약 사전매수죄만을 규정했을 때 공직선거법의 공소시효 6개월만 지나가면 설령 사전매수 합의가 있어서 그에 따라 금전 공여가 나중에 행해지더라도 혹시 처벌할 수 없게 될까봐 금전의 공여가 사전매수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을 검찰이 인지하게 된 시점부터 공소시효를 산정하도록 2호가 삽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는 제268조와 연결해서 읽을 때 더욱 명확해진다. 선거일 후 6월로 공소시효를 정하고 있으면서도 괄호 안에 "선거일 후에 행하여진 범죄는 그 행위가 있는 날부터 6월"이라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제232조 1항 1호가 금지하는 행위는 "후보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거나 후보자가 된 것을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나 후보자에게 제230조(매수 및 이해유도죄)제1항제1호에 규정된 행위"이고, 2호는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것을 중지하거나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가 되고자 하였던 자나 후보자이었던 자에게 제230조제1항제1호에 규정된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2호의 취지는 사전에 매수합의가 있었고 이후에 합의에 따라서 금품의 공여가 이뤄질 때, 선거일 후 6개월이라는 공소시효 때문에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를 예방하기 위함이라고 보면 가장 명확한 해석이 된다.
이와 같은 내용은 이미 판결문 안에서도 암시되고 있다. 판결문에서는(40쪽) 2호를 검찰의 주장처럼 해석한다면 공소시효가 무한정 늘어나지 않겠느냐는 박명기 측의 항변에 대해, "'금품 등을 제공ㆍ수수한 시기'가 선거일부터 장기간이 경과한 후에 이루어진다면,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그 대가성을 인정하기 쉽지 않아 범죄행위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그러한 우려가 근거 없다고 배척하고 있다. 하지만 대가성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아서 범죄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은 대가성이 인정된다면 범죄가 성립된다는 말이 된다. 가장 명백한 사례 하나를 가상해 보자. 가령 곽노현이 2020년에 박명기에게 10억 원을 건넸는데, 이에 대해 의혹을 가지고 수사를 해보니 "10년 후에 10억 원을 사퇴한 후보 본인 또는 그 상속자에게 제공한다"는 합의가 선거전에 있었다는 부정할 수 없는 물증이 발견된다면 범죄가 성립된다는 말이며, 이럴 때는 사퇴한 후보에게 사퇴한 대가를 선거일 후에 제공한 경우이기 때문에 1호를 적용하지 못하고 2호를 적용하라는 뜻이 된다.
이처럼 사후매수라는 행위가 성립하기 위해 사퇴 당시의 합의나 묵계나 이심전심이 필수적이라고 보면, 2호는 금품의 제공이 나중에 이뤄질 때에 대비한 조항으로 쉽게 이해가 된다. 반면에 사퇴 당시의 합의나 묵계나 이심전심이 없더라도 사후매수라는 행위가 있을 수 있는가? 이것은 내 상상력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도저히 불가능하다. 실제로 검찰 역시 2호를 적용해서 기소하면서도 줄기차게 양재원, 이보훈, 최갑수 사이에 있었던 ①의 대화가 매수합의였다고 주장하며, 이를 곽노현이 인지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사전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사후매수"라는 문구에 들어맞을 만한 행위를 형상화하는 데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재판부는 곽노현이 무슨 합의 따위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2억 원이라는 돈이 "대가성"이었다고 판단할 때에는 ①의 대화를 하나의 정황증거로 끼워 넣고 있다. 다시 말해, 재판부 역시 사전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사후매수가 가능하다는 예시나 논증에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재판부는 2호의 사후매수가 성립하기 위해 사전합의가 필수요건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사후대가성을 인정해야 할 논거로서는 지속적으로 ①의 대화가 "금전 지급 합의"였다는 정황을 언급하고 있다. 단, 그 대화가 어떻게 "합의"가 되는지에 관해서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정확히 검찰의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기소전략에 재판부가 휘둘리고 있다는 증좌이다. 검찰은 ①의 대화가 사전합의라고 주장은 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사전합의임을 입증할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논쟁의 초점이 사전합의 여부로 모이지 않고, 사후대가성이라고 하는 막연한 개념에서 범죄구성요건을 구하고자 하는 편의주의적 전략인 것이다.
재판부는 이와 같은 검찰의 강변에 부지불식간에 굴복하고 말았다. 만약 사전에 합의나 묵계나 이심전심이 없는 상태에서도 사후매수라는 것이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려면 어떤 경우가 그런지를 예시할 수 있어야 하고, 나아가 이 사건이 그러한 경우와 마찬가지임을 또한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검찰은 2호로 기소하고 있으면서도 ①의 대화가 사전합의에 해당한다고 해석하는 것이며, 그러면서 또한 동시에 사전합의가 사후매수에 필수요건은 아니라면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재판부는 바로 이와 같은 검찰의 전략을 충실히 수용해서 사전합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전혀 따지지 않고 말았다.

3. ①의 대화가 합의나 묵계나 이심전심에 해당하는가?

이 문제는 이미 남경국 박사가 정리한 바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략한 요지만을 적는다 (관련기사 ☞ "강경선, 곽노현, 박명기 사건 의견서" 가운데 III). 양재원, 이보훈, 최갑수 사이에 있었던 대화는 금전 지급의 주체부터가 불명확한 상태였다. 양재원은 박명기에게 보고하면서 그 합의라는 것을 이보훈과 한 것이 아니라 김성오와 했다고 말했다. 이보훈과 최갑수는 이 대화 내용을 곽노현이 나중에 조사할 필요를 느껴서 추궁하기 전까지 곽노현에게 전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 대화에서 이보훈과 최갑수는 곽노현의 대리인으로서 자격이 없고, 그 대화 내용이라는 것 역시 너무나 엉성해서 후보매수를 구성할 만한 어떤 합의나 묵계가 될 수 없다. 더군다나 곽노현은 그 전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사퇴의 대가를 제공하는 형태의 합의는 단호하게 배격한다는 입장을 여러차례 밝혔다.
백보를 양보해서 이것이 변호인 측의 입장에 불과하다고 한 번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검찰의 입장은 무엇인가? 앞에서도 논급했듯이, 검찰은 이것을 합의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이것이 합의일 수 없다는 변호인 측의 항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2호와 관련해서는 사전합의가 필수요건이 아니라면서 쟁점을 회피할 뿐이다.
그러므로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판결을 내리기 전에 마땅히 ①의 대화가 합의나 묵계나 이심전심에 해당하는 행위였는지를 철저하게 따져서 명확한 판단을 내렸어야 했다. 그럼에도 판결문은(15쪽) "최갑수와 이보훈이 양재원의 제안을 받아들여, 후보 단일화를 위한 금전 지급 합의(이하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라 한다)가 이루어졌다"고만 선언할 뿐, 어떻게 그 대화가 곽노현이 책임져야 할 금전 지급 합의가 되는지에는 아무런 논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판결문은 바로 뒤이어 "구체적으로 5억 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지급 시기는 언제인지, 이와 관련하여 책임자인 이보훈과 보증인인 최갑수의 역할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관하여 양재원과 이보훈, 최갑수는 명확하게 논의하지 않았다"고 인정하며, 나아가 액수가 5억 원인지 7억 원인지도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재판부는 이보훈이 곽노현에게 "박명기가 조건 없이 후보자를 사퇴하기로 하였다"고 보고했음도 인정한다. 이처럼 이것이 합의인지 여부, 그리고 이것이 곽노현과 박명기 사이에 (대리인을 통해) 이뤄진 합의인지 여부는 이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쟁점이다. 하지만 판결문에는 선언만이 있지 이를 뒷받침하는 어떤 논거도 없다. 이처럼 핵심 쟁점을 체계적으로 회피한 상태에서 내려진 판결은 법의 목소리가 아니라 법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유령의 목소리에 불과하다.

4. 사후대가성의 구성

지금까지 밝혔듯이, ①의 대화는 후보사퇴를 조건으로 곽노현 또는 그 대리인이 금전을 지급하기로 약속한 합의일 수가 없다. 그 까닭은 단순히 곽노현이 몰랐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보훈, 최갑수, 곽노현 사이에 어떤 위임이라 할 만한 요건은 물론이고, 어떤 이심전심이라고 할 만한 요건도 없으며, 애당초 이보훈, 최갑수, 양재원 사이에도 무슨 정합적인 내용의 합의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급 주체도 없고, 지급 시기와 액수도 정해지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금전 지급 합의 따위는 곽노현이 그전까지 완강하게 배격한 형태의 행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이 대화를 (아무런 법리적 검토도 없이) "금전 지급 합의"였다고 선포해 버림으로써, 마치 그런 합의가 실재했다는 듯한 혼동을 초래한다. 그러면서도 실제 제공된 2억 원의 대가성 여부를 검토하는 대목에 가서는 "비록 피고인 박명기와 피고인 곽노현이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의 이행으로서 2억 원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피고인 곽노현은 후보자를 사퇴함으로써 채무초과상태에 빠진 피고인 박명기를 도와주고 향후 자신의 교육감직을 보전하기 위하여 금전을 제공하였고, 피고인 박명기는 자신의 사퇴로 말미암아 피고인 곽노현이 교육감에 당선되었으니 피고인 곽노현 측에서 부채의식을 가지고 도와준다고 생각하며 2억 원을 수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33-34쪽, 금전수수의 경위에 관한 판단)고 말하며, "비록 2억 원이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와 무관하다고 하더라도, 피고인 곽노현은 위 돈을 피고인 박명기의 후보 사퇴행위에 대한 대가로서 지급한다는 사정을 충분히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37쪽, 대가성의 인식에 관한 판단)고 말한다.
재판부는 여기서도 문제의 2억원이 소위 "금전 지급 합의"의 이행인지 아닌지를 따져서 밝히지 않고 쟁점을 회피하고 있다. 금전수수의 경위를 판단하는 33쪽의 문언은 재판부도 "합의의 이행으로서 2억 원을 주고받지는 않았"다고 보는 것으로 읽힌다. 반면에 37쪽은 단순한 양보구문으로서 그것이 합의의 이행이었는지 여부는 접어두고, 설사 무관하다고 하더라도 대가성의 인식을 구성하기에는 충분하다는 취지로 읽힌다. 나는 재판부가 여기서 상당한 혼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본다.

4-1. 합의의 이행이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대가성이 구성되는가?

재판부가 이렇게 생각하는 주요 논거는 첫째, 곽노현과 박명기는 2억 원이라는 큰 돈을 선거와 무관하게 선의로 부조할 정도로 특수한 관계가 아니었고, 둘째, 곽노현이 스스로 대가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으로 요약된다.
우선 재판부는 여기서 "후보를 사퇴한 사람에게 도움을 제공한 행위"와 "후보를 사퇴한 행위에 대한 대가를 제공한 행위"를 혼동하고 있다. 돈이 건너갈 때 박명기는 곽노현에게 생면부지의 인물이 아니었고, 스스로 후보의 지위에서 사퇴함으로써 곽노현의 당선에 기여했는데, 선거 빚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로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이었다. 즉, 곽노현은 세상에서 경제적으로 궁핍을 겪는 아무나에게 부조를 한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박명기, 후보로서 경쟁관계가 될 뻔했다가 후보에서 사퇴한 사람이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는다고 해서 도움을 준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사퇴에 대한 대가"인지 아닌지에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황 중 하나로서 재판부는 박명기의 사퇴로 인해 곽노현이 "향유한 정치적 이익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31쪽)다는 점을 들고 있다. 구체적인 수치로는 단일화 이전(5월 17일)에 여론조사에서 이원희 7.0% 곽노현 6.7%로 나타났다가, 단일화 이후(5월 27일)에 곽노현 11.8% 이원희 8.6%로 나타났고, 최종 투표 결과 곽노현이 1.1%의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었다는 정황을 소개한다. 그러나 곽노현은 6.7%나 11.8%와는 거리가 먼 34.34%를 득표했다. 아주 막연하고 일반적인 수준에서 곽노현이 박명기의 사퇴 덕분에 당선되었다고 말한다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곽노현이 박명기의 사퇴에 막연한 수준의 고마움을 느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선거가 끝나고 9개월이 지나 2억원을 준 것이 "사퇴의 대가"였음을 증명하는 데에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정황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보는 견지에서 곽노현은 후보에서 사퇴해서 자기에게 막연한 수준에서 도움을 줬다고 볼 수 있는 박명기가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자 2억원을 제공했다. 이를 가지고 곧바로 "사퇴의 대가"를 유추한다는 것은 "후보를 사퇴한 사람에게 도움을 제공한 행위"와 "후보를 사퇴한 행위에 대한 대가"를 혼동하는 셈이다. 뇌물죄를 판단할 때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에 대한 공여"를 "그가 행한 특정한 행위에 대한 대가"로 혼동하면 선의의 공여라고 하는 미풍양속을 처벌하게 된다는 법리는 1999년 미국 연방대법원에 의해서 확립된 바 있다 (바로가기 ☞United States v. Sun Diamond Growers of California). 이 판례는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매우 드물게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대법관 9명의 만장일치로 내려졌다. 한국 법원이 이 판례의 법리를 따라야 할 실정법적 의무는 없지만, 적어도 법과 사회와 인간에 관한 일반적인 이치를 고려한다면 아주 진지하게 참고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곽노현이 대가성을 인식했다고 판단한 재판부의 근거는 기본적으로 박명기가 합의의 이행을 요구했다는 사실에 의존하고 있다. 다시 말해, 박명기가 합의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곽노현이 알고 있었다는 데서 바로 곽노현이 제공한 돈은 사퇴의 대가였다고 추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위에 인용한 37쪽의 문언은 논리적으로 자가당착이다. "금전 지급 합의와 무관하더라도" 대가성이라고 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문에서 박명기가 합의의 이행을 요구했다는 사실 때문에 대가성이라고 봐야 한다는 말을 동시에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한 부주의일 수도 있겠다. 즉, "금전 지급 합의와 무관하다고 곽노현은 생각했더라도"라고 써야 할 것을 주어를 생략함으로써 마치 그 양보구문의 화자가 재판부인 것처럼 오해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곽노현이 합의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더라도, 박명기가 그 돈을 합의 이행이라고 봤다는 사실 때문에, 그리고 그와 같은 박명기의 생각을 곽노현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곽노현이 대가성을 인식했다는 결론은 가당한가? 그 돈의 성격을 한 쪽에서는 합의 이행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특히 박명기 쪽의 진술은 이와 관련해서 다소 갈팡질팡하는 면이 있는 반면에 곽노현은 일관되게 합의와 무관한 선의의 부조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박명기가 대가성으로 인식했다는 사실 때문에 어떻게 곽노현도 대가성으로 인식했다는 결론이 나올 수가 있는가?
재판부는 여기서도 다시 "사퇴한 사람이기 때문에 도와준 행위"와 "사퇴한 행위에 대한 대가"를 체계적으로 혼동하고 있다. 대가라는 단어가 사용될 수 있는 일상어의 모든 용례를 고려하기로 한다면, "사퇴한 사람이기 때문에 도와준 행위"와 "사퇴한 행위에 대한 대가"를 얼렁뚱땅 섞어 쓰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문제되는 대가는 죄형법정주의에 의해 그 의미가 엄밀하게 획정되어야 하는 종류이다. 곽노현은 합의 따위는 없었고 단지 선의의 부조였다고 주장하며, 박명기는 합의의 이행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을 때, 재판부가 박명기의 진술에 일방적으로 무게를 실어주려면, 곽노현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왜 그것이 합의의 이행이었는지를 논증해야 맞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애당초 ①의 대화가 어떻게 "금전 지급 합의"가 되는지, 그리고 나아가 2억 원이 왜 그 대화와 연관이 있는지를 막연한 정황이 아니라 증거와 논리를 특정해서 밝혔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핵심 쟁점들을 재판부는 체계적으로 묵살 내지는 간과하고 있다.

4-2. 합의의 이행이 아니었더라도 대가성이 구성되는가?

위에 인용한 판결문 33-34쪽에서 재판부는 2억 원의 수수가 합의와는 무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가성을 판단하기에는 부족하지 않다고 본다. 여기서도 나는 "비록 피고인 박명기와 피고인 곽노현이 2010. 5. 19.자 금전 지급 합의의 이행으로서 2억 원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이라고 쓴 문언이 어쩌면 단순한 부주의의 소산일 수 있다고 본다. 재판부는 2억원이 합의의 이행이 아니었다고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기보다는 그 쟁점을 지속적으로 회색지대에 남겨두고 있다고 읽는 편이 판결문의 선량한 독해에 가까울 수도 있을 가능성을 나는 인정한다.
여하간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취지는 변하지 않는다. 금전 수수가 합의의 이행은 아니었다고 보면서 재판부가 대가성을 인정했든지, 합의의 이행이었는지 여부를 제쳐두고 대가성을 인정했든지 마찬가지로 자가당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살펴 보자.
같은 문장에서 재판부는 곽노현이 "교육감직을 보전하기 위하여 금전을 제공"했다고 보고 있다. 이 문구는 36쪽 대가성의 인식에 관한 판단에서도 나오고 49쪽 양형부당에 관한 판단에서도 나온다. 이것이 대가성을 판단하게 된 주요 논거 중 하나이며 원심의 벌금형을 징역1년으로 강화하게 된 주요 논거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교육감직을 보전하기 위해 돈을 줬다는 말은 만약 돈을 주지 않았다면 교육감직을 상실하게 되었을 확률이 높았다는 가정을 함축하고 있다. 그런데 돈을 받지 못했을 때 박명기가 어떻게 곽노현의 교육감 지위에 손상을 줄 수 있었을까? 다시 이야기의 초점은 내가 ①의 대화라고 부르고 재판부는 임의적으로 "5월 19일자 금전 지급 합의"라고 부르는 사태로 모아진다. 돈을 받지 못했을 경우, 박명기의 입장에서 곽노현의 교육감직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전에 후보 매수가 있었다"고 폭로하는 길뿐이다. 그런데 판결문에 따르면 곽노현이 강경선의 제안에 동의한다는 명시적인 의사를 표시하고, 부인에게 현금을 모아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하는 것이 12월 초순이다. 그리고 박명기와 강경선이 액수에 관해 논의한 것은 12월 6일에서 12월 22일 사이이다.
잠깐 형식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백보를 양보해서 합의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만약 돈을 주지 않았다면, 범죄 행위인 매수합의는 선거일 전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12월 2일이면 공소시효가 끝난다. 돈을 주지 않는 한, 선거일 후에 어떤 범죄 행위도 없었기 때문에 12월 2일이 지나면 1호로도 2호로도 기소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박명기가 무슨 폭로를 하더라도, 그리고 그 폭로가 설사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12월 2일이 지나면 기소할 수가 없다. 곽노현이 구설수에 오르기는 하겠지만,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게 되는 일은 12월 2일 전에 돈을 주지 않았더라면 일어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곽노현의 교육감직이 돈을 주지 않은 이유로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12월 2일 전에 박명기가 재판부의 용어로 "5월 19일자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폭로해서 검찰이 기소하는 경우뿐이다. 그런데 실제로 돈은 12월 2일이 한참 지나서 2011년 2월부터 4월에 걸쳐서 전달되었다. 그러니까 돈을 주지 않았더라면 교육감직이 사법적으로 위태로웠을 가능성은 없었다. 단, 정치적으로 상당한 곤경에 처했을 가능성은 있다. 이 점에서 곽노현이 염려했던 것은 이런 저런 일들이 공연한 추문으로 비화되어 교육감으로서 추진하려고 했던 여러 가지 시책들에 지장이 생길지 모른다는 데 있었지, 교육감직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데 있지 않았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다시 마지막 가상적 가능성으로서, 선거일 전에 행해진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완성 이전에 박명기가 "금전 지급 합의" 사실을 폭로했다면 어땠을지를 검토해보자. 그랬을 경우에는 당연히, 지금까지 이 글에서 누차 강조하고 지적해 왔듯이, ①의 대화가 공직선거법 232조 1항 1호에서 금지하고 있는 후보매수 행위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되었을 것이다. 검찰이 지금 그러하듯이 후보매수라고 하는 범죄의 성립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곽노현은 구설수에는 올랐을지 몰라도 유죄라든지 실형 같은 것은 선고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곽노현이 1심 재판에서 검찰이 공소시효를 악의적으로 계산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할 때 자신은 "소란시효"를 염두에 뒀을 뿐이라고 응수한 대답은 완전히 적확하다.
여기까지만 살펴 보더라도 재판부가 "교육감직을 보전하려는" 의도를 곽노현으로부터 읽어내면서, 동시에 합의의 이행이 아니었지만 대가성이 그로써 입증된다거나 합의의 이행 여부과 상관없이 대가성이 그로써 입증된다고 본 것은 자가당착임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곽노현이 "교육감직을 보전하기 위해서" 돈을 줬다는 의도의 해석이 가능하려면, 그 돈의 성격은 합의의 이행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돈이 합의의 이행이려면 먼저 합의가 있었어야만 한다. 그래서 이 재판이 법리에 따른 재판으로서 형식적 구색이라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내가 ①의 대화라고 부르고 재판부가 임의로 "금전 이행 합의"라고 부르는 그 5월 19일의 사태가 공직선거법 232조 1항 1호에서 금지하는 후보매수에 해당하는지를 반드시 따져서 그 여부를 확정했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를 회피하고서야 어떤 재판도 법의 이름으로는 성립할 수가 없다.

5. 법이 염결하지 않은데 교육이나 선거가 염결할 수 있는가

판결문은 "숭고한 교육"의 이념과 "교육의 염결성"을 강조하면서, 곽노현의 행위가 거기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에 엄벌에 처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명백하게 드러났듯이, 이 재판은 범죄 행위가 과연 있었느냐고 하는 핵심 쟁점을 체계적으로 회피하고, 지극히 막연한 정황들을 반복적으로 나열한 결과 마치 범죄가 있었다는 듯한 인상을 자아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말았다.
착각과 혼동의 꺼풀을 뚫고 법의 목소리에만 정밀하게 귀를 기울인다면 곽노현은 후보에서 사퇴한 사람이 곤경에 처해 있는 것을 보고 선의의 부조를 행한 것이 분명하다. 단순히 선거가 있었고 9개월 후에 금전이 제공되었다는 것만으로 뇌물죄를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사퇴한 후보에 대한 사후매수죄가 성립하려면 제공된 돈이 "사퇴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퇴한 행위의 대가"로 건너갔다는 점을 검찰이 입증해야 한다. 이 사건은 그 돈이 어떤 성격이었는지가 1심 재판의 상세한 조사에 의해서 완벽하게 밝혀진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 재판부가 벌금형을 선고한 것도 법리에 관한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거니와, 항소심이 무죄를 선고하지 않고 오히려 실헝을 선고한 것은 법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은 결과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다면 선거에서 돈거래가 횡행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그러나 곽노현을 무죄로 선고했을 때 선거판이 매수로 혼탁해질 위험은 오히려 훨씬 줄어들고 법의 엄정함이 우뚝 명확해지는 효과가 막대하리라고 나는 장담할 수 있다. 법이 진실과 양심의 소리를 경청한다는 하나의 사례만으로 정의의 표준이 엄격하게 설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사건에서 곽노현이 유죄 판결을 끝내 받고야 만다면, 남을 돕기 전에 먼저 구설수를 피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찌든 개인들을 양산하는 결과만을 낳을 것이다. 교육이나 선거만이 아니라 법도 사람이 다른 사람을 선의로 돕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타인의 곤경에 대한 선의는 그렇기 때문에 지식이나 권력이나 정의보다도 당연히 우선시되어야 하는 최고의 덕성이다. 나는 2012년의 대한민국 대법원이 이와 같은 당연한 이치를 통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가 가진 모든 지식과 모든 논리와 모든 선의와 모든 신앙을 한데 모아서 기도한다.
/박동천 전북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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