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한겨레 세상읽기] 알에 갇힌 혁거세?/진중권

“그분은 세상과 단절된 삶을 너무 오래 살아오셨다.” 박근혜 후보의 기자회견을 보며 지인이 내게 한 말이다. 신문만 보고 살았어도, 정수장학회의 헌납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얘기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사안은 박 후보 자신이 관련된 문제다. 게다가 그는 검증을 앞둔 대통령 후보가 아닌가. 그런 분이 어떻게 이런 기초적인 사실조차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실수(?)이기에, 일각에서는 “박 후보가 알아듣게 판결문을 좀더 쉽게 써야 한다”며 농으로 사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게다가 이게 어디 처음이던가? 지난번 인혁당 사건에 관해서도 “두 개의 판결” 운운하며 역사적 문제에 관해 철저한 무지를 드러낸 바 있다. 세상이 다 아는 얘기를 박 후보 혼자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의 근원은 유신 시절에 형성된 박 후보의 이 ‘개인 이데올로기’다. 그는 아예 처음부터 자신이 정치를 하는 목적이 “부모님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라 밝히며 정치에 나섰다. 한마디로 ‘부친이 이룬 업적을 바탕으로 그가 채 이루지 못한 유업을 자신이 대를 이어 완성한다’는 사명의식, 이것이 그가 삶을 사는 이유이자, 동시에 정치를 하는 목적이다.
박 후보가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그토록 힘겨워하는 것은 이 허황한 자의식 때문이다. 아버지 박정희는 그의 존재이유 자체이기 때문에, 5·16과 10월 유신을 부정하는 것이 그에게는 곧 자기부정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마지못해 사과를 했지만, 자꾸 강박적으로 사과하기 이전의 스탠스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 속에 자신을 유폐해 버렸다. 이 정치적 자폐가 특정한 맥락에서 그의 자산이기도 했다. ‘박근혜=박정희’라는 동일시 기제가 1970년대의 고도성장을 그리워하는 보수층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지지를 끌어내는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분들이 (그에게는 불행하게도) 국민의 전체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사실 박근혜 후보의 리더십은 정상적인 당적 지도력이라 하기 힘들다. 그것은 차라리 아버지와의 동일시 기제에 근거한 개인의 카리스마에 가깝다. 후보에 대한 당적 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은 그와 관련이 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새누리당의 박근혜가 아니라, 박근혜의 새누리당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그는 아버지의 후광 속에 살아왔다.
경제적으로는 어떤가? 그가 관계한 재단이 얼마나 많은가? 육영재단, 정수장학회, 영남대학, 한국문화재단 등에서 이사로 활동한 것이 자연인 박근혜의 거의 유일한 경제활동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가치로 수십억원에 이르는 전두환의 6억, 전두환 정권이 마련해준 것으로 보이는 성북동 자택 등은 정상적 경제활동의 성과가 아니었다.
우리를 경악하게 하는 것은, 박 후보가 사과나 반성은커녕, 피해자인 고 김지태씨를 공격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설사 그가 친일을 하고 부정축재를 했더라도 친일파를 왜 친일파가 단죄하며, 부정축재를 왜 군인이 강탈하나? 법에 따라 적절히 처벌하고, 적법하게 환수할 일이다. 박근혜 후보가 강제헌납이라는, 헌법을 무시한 초법적 조처를 정당화하는 것은, 그가 여전히 5·16이 ‘혁명’이라는 생각을 벗어버리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국민이 기대한 것은 그가 과거를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며, 문제의 해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국민의 소박한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혁거세는 알을 깨고 나와 왕이 되었다. 그 역시 아비의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와야 하나, 알 속이 따뜻해 영 부화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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