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3일 수요일

[한겨레 사설] 투표시간 연장 반대 새누리당과 박근혜 반대이유: 혼란?, 태만한 유권자?

[한겨레 사설] 

투표시간 연장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을 무산시킨 새누리당의 태도가 점입가경이다. 그동안 사회적 비용이 더 든다거나 선거를 앞두고 룰을 바꾸면 혼란만 야기한다(이철우 원내대변인) 따위의 방어적 논리를 앞세우더니 이젠 ‘투표는 시간이 아니라 성의의 문제’(이정현 공보단장)라고 유권자를 직접 겨냥했다. 1일 2교대 근무자, 격일 전일 근무자 등 주권 행사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을 태만한 자로 꾸짖은 셈이다.
지난해 한국정치학회가 조사한 비정규직 근로자 투표 참여 실태를 보면, 자발적 미투표자는 35.9%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투표할 수 없어서 못한 사람들이었다. 셋 중 둘은 고용계약상 근무시간 중 외출이 불가능해서(42.7%), 임금이 감액되기 때문에(25.8%), 고용주나 상사의 눈치 때문에(9.8%) 주권 행사를 못했다. 성의의 문제가 아니라 생계가 문제였다. 앞서 새누리당은 투표 불참의 원인을 정치 불신이라고 둘러댔다. 투표시간을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의 유권자 의식조사를 보면, 투표 불참의 가장 큰 원인은 ‘출근 등 개인적인 일’이었다. 18대 총선에서 27.8%였던 것이 19대 총선에선 39.4%로 늘었다. 자발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집단이 날로 많아지는 것이다. 투표시간 연장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부분적인 보완책일 수 있다. 이웃 일본에선 최근 투표마감시간을 2시간 늘린 결과 투표율을 10% 가까이 높였다.
유권자 태만론엔 ‘투표일은 공휴일’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투표하라고 쉬게 했더니 놀러만 다닌다는 것이다. 실제 새누리당은 투표일은 공휴일이니 투표시간을 연장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투표일은 관공서와 공무원에게만 공휴일이다. 일반 기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단체협약으로 정할 뿐이다. 19대 총선 때 직장인 절반이 정상 근무했다.(한국갤럽 조사) 집권여당의 한심한 수준만 보여주는 주장이다.
고용관계 등으로 말미암아 투표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집단이 수백만명이나 존재하는 한 보통·평등선거는 물론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국가가 앞장서 투표 방해 요소들을 제거해야 하는 까닭이다. 낮은 투표율은 대표성의 위기를 가져오고, 이는 정치 불안, 국정 혼란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박근혜 후보는 공정한 사회, 100%의 나라 등 국민통합을 최고의 슬로건으로 삼았다. 수백만 유권자를 주권 행사도 못하게 하면서 국민통합을 말하는 건 속임수다. 성의를 보여야 하는 건 박 후보와 새누리당이지 투표 못하는 유권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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