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4일 월요일

[경향신문] 세습사회의 오늘/ 김민아

2006년 2월 외국 기자들과 터키 이스탄불을 방문했다. 일정 가운데 70여개 기업을 거느린 거대그룹 회장과의 간담회가 있었다. 50대로 보이는 여성 총수의 영어 실력은 원어민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재벌이라 그렇겠거니 여겼다. 아니었다. 다른 자리에서 만난 관료와 교수, 언론인도 영어 실력이 탁월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살 만한’ 집 자녀들은 대부분 외국어로 가르치는 사립고교를 졸업한 뒤 현지의 외국계 대학에 진학하거나 해외 유학을 떠나는 게 관행이라고 했다. 반면에 평균적인 고교 졸업률은 해당 연령대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교육이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아니라 계층을 공고화하는 장벽이 되고 있었다. 이상한 나라, 라고 생각했다.

7년이 흘렀다.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로 10시간 걸리는 대한민국도 터키를 닮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을 청와대에서 보낸 영애(令愛)는 아버지의 ‘잘살아보세’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로 돌아갈 예정이다. 차기 정부의 요직으로 가는 길목은 ‘박정희 키드’가 선점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서승환·장순흥·안상훈 위원과 대선 이후 최대 미스터리의 주인공이 된 최대석 전 위원이 ‘유신 2세’다. 정계만 이런 것도 아니다. 개교한 지 30년도 안된 대원외국어고 출신 현직 판검사 수가 개교 100년이 넘은 경기고 출신을 앞질렀다.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으로 무장한 아이들이 파워엘리트로 성장하는 사이, 해마다 3만명이 넘는 고교생은 학교를 떠나고 있다. 뭐가 새로운 얘기냐고 시덥잖아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몇 해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딸에게 직장을 ‘선물’했다가 국사 교과서에나 등장하던 ‘음서’(고려시대의 특권적 채용제도)를 포털 검색어 순위에 올려놓은 일도 있었으니.

신(新) 세습사회가 만개했다. 가진 것 없는 부모들은 자식에게 미안한 시대다. 특히 50대 후반 이상에겐 ‘철없는 운동권’의 대명사이고 20~30대에겐 ‘이기적 변절자’의 상징인 386세대는 미안함을 넘어 죄스러워해야 할지 모른다. 386세대의 상당수가, 그토록 증오하던 독재자 덕분에 계층상승을 이뤘기 때문이다. 한 지인이 그런 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아버지를 잃었다. 위로 언니와 오빠가 있었다. 지금처럼 사교육이 기승을 부렸다면 대학 문턱도 밟기 어려운 처지였다. 학살을 저지르고 권좌에 오른 독재자가 과외금지라는 ‘포퓰리즘’적 조치를 취하는 바람에 ‘교과서 위주로 충실히 예습·복습해’ 대학에 갔다.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했고 거기서 미래의 남편을 만났으며 지금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여고 시절의 한 급우는 조금 다른 경우다. 모 재벌가의 셋째딸이었는데, 조개탄 난로 피우는 교실에서 함께 도시락 먹고 자율학습을 했다. 지금 같으면 이 친구가 서울 강북의 평범한(사실은 열악한) 일반고에 다녔을 리 없다. 외국어고나 자율형 사립고, 최소한 강남의 명문고를 택했을 것이다. 조기유학을 떠났을 수도 있겠다.

요즘 10대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이 되고 싶기는 한데요, 저는 안될 것 같아요’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 정도는 꿈꿔야 할 푸른 나이에 세상을 향해 금을 그어버리다니. 계층상승과 소셜믹스의 신화가 무너진 자리는 참혹하다. 2000년 헌법재판소가 과외금지에 위헌을 선고할 때 유일하게 반대(합헌)의견을 낸 이영모 전 재판관의 말을 곱씹어본다. “과외는 교육을,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화하고 후대에까지 세습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킬 것이다.” 13년 전 경고는 적확했다. 위헌 결정을 뒤집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비상한 각오로 세습사회를 완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출발점은 가난한 아이들, 부모의 보살핌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좋은 대학에 가는 길을 넓혀주는 데 있다. 대학 졸업장 없이도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게 이상적이지만, 당장은 가능한 일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사교육을 받지 않고는 입학하기 힘든 외고·국제고·자사고 체제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대입 전형을 단순화하고 지역·기회균형선발 비율을 대폭 늘려야 한다. 부모나 전문가 도움 없이 준비하기 어려운 수시모집과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축소하고, 논술 가이드라인도 부활시켜야 한다. 특별히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교육에 조금만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떠올릴 만한 해법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세습사회의 도래가 내심 반가울 기득권층은 변화를 반대하거나 최소한 외면할 것이다. 덜 배우고 덜 가진 부모들이, 먹고사는 일이 힘겹더라도, 어깨를 겯고 정부와 국회를 압박해야 한다. 노후자금 털어 자녀 사교육에 퍼붓는 식의 각개약진으로는 백전백패다.

터키 얘기로 돌아가자. 지난해 이내찬 한성대 교수가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삶의 질 구조에 관한 연구’를 보면, 한국의 삶의 질 순위는 34개 회원국 중 32위다. 한국 뒤에 있는 나라는 터키와 멕시코뿐이다. 세 나라는 모두, 부자는 점점 더 부유해지고 빈자는 점점 더 가난해지는 병을 앓고 있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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