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6일 화요일

[박노자칼럼] 통합진보당 탄압과 민주주의의 증발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를 명기해 두어야 한다. 나는 의회 활동에 중점을 두는 정당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며,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한국 진보정당들의 의회주의적 경향에 대해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집권 극우파는 '민중'과 같은 단어를 문제 삼아 통합진보당을 '사회주의'로 몰고 있지만, 내가 본 통합진보당은 '한국 특색의 온건 사민주의 정당'에 가깝다. 요즘 논란이 된 통합진보당의 강령이라도 한 번 정독해보라. 통합진보당은 자본주의 그 자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폐해'를 극복하려고 한다고 거기에 명기돼 있다. 그렇다면 폐해가 없는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또 거기에서 통합진보당이 노동자·농민과 함께 중소상공인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고 나오는데, 중소상공인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아무 언급도 없다. 비정규직들에게 한달에 100여만원을 주는 여느 재벌 하청공장의 주인도 중소상공인이라면 그와, 그가 착취하는 노동자들의 이해를 정말 동시에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의 기준으로는 통합진보당이 좌파라면 한참 온건해 빠진, 현존의 사회와 거의 제대로 대립의 각을 세우지 못하는 좌파다.

그렇다면 이석기 의원의 체포부터 시작해서 이번의 전례 없는 정당해산심판 청구까지, 왜 하필이면 이 온순하기 짝이 없는, 거의 우파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형 사민주의자들이 극우정권 공안몰이의 첫 희생물이 됐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 돈밖에 아무것도 없는 요즘 세상에 우습게 들리지만, 박근혜 정권과 통합진보당 사이에 엄연히 이념갈등은 존재한다. 박근혜는 극단적인 대북대립을 피하는 등 전 정권의 실패를 교훈 삼아 처신하려 하는 듯하지만, 다소 타협적인 대북접근이라 해도 이는 박근혜 정권 차원에서는 철저하게 적대적 타자에 대한 접근일 뿐이다. 곧, 현실 국제정치를 어떻게 한다 해도, 박정희의 파시즘을 계승한 현 지배자들에게 북한은 이념 차원에서는 근원적으로는 언젠가 '우리'에게 흡수당해야 할 적일 뿐이다. 이 적과 대결해서 결국 적을 이겨야 하는 것은 '우리 국민'이라는, 배타적 충성을 요구하는 집단인데, 이 집단의 경계선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관리는 파쇼적이라고 할 만큼 철저하다. 적에 대해서 약간이라도 '대다수와 다른 생각'을 한다면 벌써 '적과의 내통자', 곧 배제·탄압 대상인 비국민이다. 통합진보당 이외의 진보정당들은 대체로 '우리 국민' 집단 안에서의 계급갈등만을 문제 삼는 것이고, 일단 '국민'이라는 집단의 경계선을 대놓고 전복하려 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민족주의적인 사민주의 정당인 통합진보당은 '같은 민족'인 북한을 적이 아닌 통일의 한 주체로 보고 북-미 갈등 구조에서 북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친화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만큼 '국민'의 경계선을 가장 크게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만큼 배타적 이념으로 무장된 지배집단의 정치보복을 당한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민족주의적인 사민주의 정당인 통합진보당은 '같은 민족'인 북한을 적이 아닌 통일의 한 주체로 보고 북-미 갈등 구조에서 북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친화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만큼 '국민'의 경계선을 가장 크게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만큼 배타적 이념으로 무장된 지배집단의 정치보복을 당한다.

둘째 이유는 현실 정치에 있는 듯하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겠지만, 지난 19대 총선 때 통합진보당이 발표한 당원 수는 7만5000명 정도였다. 다수의 유령당원 등이 있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는 나머지 모든 진보정당보다 두 배 이상의 숫자다.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보인 득표율은 10.3%였는데, 이 정도라면 비교적 덜 알려진 나머지 진보정당들과 달리 마이너이긴 하지만 '주요 정치세력'의 반열에까지 오를 수 있다. 참고로, 동아시아의 가장 유서 깊은 진보정당인 일본 공산당의 경우에도 올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의 득표율은 10% 정도였다. 최근의 주류 언론 비방 캠페인 등으로 잠재 득표율이 떨어졌다 해도 5~10%의 유권자를 동원할 수 있는 정당이라면 예컨대 야권연대 건설 등에서는 꽤나 중요한 일을 해낼 수 있으며 정권에 대한 상당한 압박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박근혜 정권의 입장에서는 통합진보당만 제대로 제거한다면 나머지 진보정당들은 그저 게토화되어서 이렇다 할 정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보일 것이다. 통합진보당이 몰락할 경우에는 진보정치 섹터 그 자체는 일부 이념형 사회주의자나 노동운동가만의, 대중성이 결여된 게토가 될 것이며, 정권에 대한 상당한 잠재적 위협이 제거되는 셈이다. 이승만 시절의 진보당 간첩조작·박살내기와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진보당의 강제된 몰락과 조봉암의 법살은 한국 진보정치의 발전을 거의 40년 동안 정지시켜 놓았다. 그 뒤에도 몇 군데의 군소 혁신정당들은 명맥을 유지했으며 그중 하나인 사회당 출신의 이재문과 김병권은 1970년대 후반에 남민전을 조직해 유신정권에 대한 가장 치열한 지하투쟁을 전개했지만, 대중적인 혁신정치는 2000년에 이르러서야 민주노동당의 결성과 함께 복구된 것이다. 40여년 만에 말이다. 지금 박근혜 정권이 바라는 대로 통합진보당이 탄압을 버티지 못해 죽어버리면 그 결과는 마찬가지로 파멸적일 듯하다. 그렇다면 왜 나머지 진보진영은, 아무리 통진당과 이런저런 실천과 이념 차원의 모순이나 갈등 등이 있다 하더라도, 탄압받는 동지들에게 연대의 손을 제대로 내주지 못하고 있는가? 나는 여기에 두 가지 이유가 있으리라고 추측한다. 하나는 '통합진보당만이 희생되면 우리야 무사하겠지'라든가 '인기 없는 북한 편들기에 민심을 잃을 수밖에 없는 통합진보당을 옹호해봐야 득 될 게 없고, 차라리 통합진보당이 없어지면 그 틈새를 우리가 장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와 같은 약삭빠른 계산이다. 그러나 이 계산에는 진보정치의 영혼이라고 할 도덕성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정확한 예측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역사 속의 전례로 봐서는 통합진보당의 몰락은 진보정치 자체의 대중성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고 사회의 전체적 우경화에 보탬이 될 것이다. 그런 타산보다 더 자세히 다루어봐야 할 것은 둘째 이유, 곧 이념적 이유다. 통합진보당의 당권파를 '주사파'로 파악하는 일부 좌파들은 '북한 민중을 억압하는 북한 지배자들의 어용 사상에 동조하는 정당'에 대한 동류의식 자체를 아예 갖고 있지도 않다. '주사파'의 민족주의는, 모든 민족주의들이 다 그렇듯이, 그 본질상 위험하다는 경계의식도 여기에 같이 깃들어 있다.

나는 통합진보당의 당원도 지지자도 아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만큼 정권의 탄압으로부터 통합진보당을 지켜야 한다고 본다. 그 탄압 속에서 진보의 가능성들이 죽고 민주주의가 증발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야 그 위험성을 백번 이야기해도 부족할 정도지만, 모든 이데올로기가 다 그렇듯이 민족주의의 함의도 상황적이다. 같은 민족주의라 하더라도 이라크 침략에서의 참전을 '애국'으로 보는 미국 백인 지배자의 헤게모니적 민족주의와, 미 침략군에 목숨을 걸고 맞섰던 이라크 애국자들의 민족주의를 과연 같은 선상에서 논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들(이라크보다 강한 북한의 군사력부터 후견국가로서의 중국의 존재까지) 때문에 같은 '악의 축' 국가들 중에서 이라크는 미국의 침략을 이미 당했고 북한은 아직도 당하지 않았지만, 미 제국주의를 국제주의적 입장에서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그 침략을 언제 당할지 모를 북한의 민족주의 속에서 반제적이고 저항적인 요소들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한 요소들을 발견하고 긍정해야 결국 우리가 북한과 동등한 대화를 나누고,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평등하고 민중 본위의 통일로 갈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삼성 경영권의 3대 세습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바로 그만큼 북한의 3대 세습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삼성 사내의 이병철가 숭배 분위기를 역겹게 여기듯이 주체사상의 수령론에 반대한다. 그러나 국내에서 주체사상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북한 지배자들과 달리 권력자들이 아닌 무력하고 가난한 아웃사이더들이며 그들의 '주사' 지향은 결국 남한 지배계급과 그 사대주의적 풍토에 대한 반감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과 북한 지배자들을 동일시하는 것도, 소수의 주체사상 애호가와 통합진보당 전체를 동일시하는 것도 아주 위험한 일이다. 통합진보당을 찍은 유권자들이 다 '주사파'인가?

나는 통합진보당의 강령과 달리 '자본주의 폐해'도 아닌 자본주의 자체의 극복을 바란다. 그러나 서로간에 차이가 있어도, 오히려 그만큼 탄압으로부터 통합진보당을 지켜야 한다. 그 탄압 속에서는 진보의 가능성들이 죽고 민주주의가 증발하기 때문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2013년 11월 25일 월요일

[김종구칼럼] 조국이 어디냐고 묻는 당신에게

불불통 비보통(不不通 非普通). 불통이 아니고 보통이 아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김지하 시인이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를 한자 여섯 글자로 표현한 말이다. 박 후보가 원주로 김 시인을 찾아와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고 지학순 주교의 묘소를 참배했다는 소식을 듣고 흐뭇해진 김 시인은 박 후보가 불통하는 사람이 아니며 정치 단수가 높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김 시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박 대통령의 취임 이후 행태를 보면 실로 ‘비보통’이라는 말이 합당하다. 무소불위의 권력 행사, 웬만한 일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담대함, 교묘한 여론몰이 등의 정치행보는 보통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렇지만 소통은 제로다. ‘불통 비보통’, 소통하지 않으면서 보통이 아닌 국정운영 행보를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지금의 박 대통령에 대한 가장 적절한 묘사일지도 모른다.

사실 박 대통령이 눈 덮인 베론성지의 지학순 주교 묘소를 찾은 것은 유신에 대한 반성도, 피해자에 대한 속죄도, 통합을 위한 과거 껴안기도 아니었다. 단지 표를 얻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했음은 그 뒤의 행적이 웅변한다. 반유신운동의 정신적 지주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탄생의 모태였던 지 주교를 기리는 경건한 마음이 있다면 지금 정의구현사제단을 대하는 태도가 이럴 수는 없다.

박창신 원로신부의 연평도 포격 발언 등에 대해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그 사람들의 조국이 어디인지 의심스럽다”고 비난했고,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부대표는 “사제복 뒤에 숨어 대한민국 정부를 끌어내리려는 반국가적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박 신부 발언의 진의를 따질 겨를은 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 수석이나 윤 부대표가 박 신부를 향해 ‘조국’이니 ‘반국가적 행위’니 하는 말을 할 자격은 없다는 점이다.

박 신부는 신군부가 저지른 광주학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하다 무자비한 테러를 당했고 그 결과 평생 한쪽 다리를 저는 고통스런 삶을 살아왔다. 그때 두 사람은 무엇을 했는가. 한 사람은 광주의 선연한 핏자국 위에 전두환씨가 건설한 민정당을 위해 투신했고, 다른 한 사람은 한때 그의 사위로 부귀영화를 누렸다. 39년간의 사제 생활 동안 박 신부가 그려온 조국의 모습은 선명하다. 민주화된 나라, 소외된 이웃이 없는 나라,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다. 지금 박 신부를 향해 종북몰이를 하는 이들이 추구해온 조국은 과연 어떤 나라였던가.

여권은 박 신부 발언 중 몇 대목을 꼬투리 잡아 사제단에 대한 붉은색 덧칠하기에 열중하고 있다. 그렇지만 문제의 본질이 그것이 아님은 권력 스스로 잘 알 것이다. 지학순 주교는 40년 전 양심선언문에서 이렇게 포효했다. “(유신헌법은) 민주헌정을 배신적으로 파괴하고 국민의 의도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폭력과 공갈과 국민투표라는 사기극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무효이고 진리에 반대되는 것이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행위 역시 민주헌정의 파괴요, 국민의 의도와는 관계없는 일종의 사기극이며, 그래서 지난 대선은 무효이고 진리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박 신부는 느낀 듯하다. 야당도 시민사회단체도 결코 입 밖에 내지 못한 ‘대통령 사퇴’라는 말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으리라.

역사는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반복된다는데 지금은 비극의 시대다. 박정희 시대에 귀가 닳도록 들었던 “체제전복세력”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일부 종교인들”은 이제 ‘종북구현사제단’ 따위의 다른 버전으로 대체됐다. “정치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사목자가 할 일이 아니다”라는 대주교의 말씀은 지학순 주교 구속 사건을 접하고도 모호한 태도를 취했던 당시 주교단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사회정의를 위한 종교계 활동을 대하는 박정희-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은 참으로 닮은꼴이다. “국민분열 발언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박 대통령의 분노에 찬 발언은 민주화운동에 노발대발하며 “모두 잡아넣으라”고 다그친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 다가온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또다시 신부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될지 모르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대통령의 불통·비보통이 빚어내는 비극의 끝은 어디인가.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2013년 11월 23일 토요일

[법륜스님] 네 마음이 어떤데?

한겨레 -> 휴심정에 올라온 법륜스님 글: 원본 링크  http://well.hani.co.kr/434315?_fr=mb2

달마대사가 중국에 왔을 때 양무제가 인도에서 도인이 왔다 하니까 당연히 궁중으로 초빙해 식사대접을 하고 나서 물었어요. “지금 이 나라 불교 상황은 어떻고, 제가 절을 몇 백 개 짓고, 탑도 세우고, 경전도 번역하고, 스님들도 교육시켰습니다. 이 정도면 공덕이 얼마만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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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대사와 양무제

달마대사가 딱 한 마디로 “무!” 이랬어요. 양무제는 화가 확 올라오지만 그래도 도인이라니 “너 누구냐?” 하고 물었어요. 속마음은 ‘도대체 네가 누구인데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하느냐?’ 이 말이죠. 달마대사가 “나도 모르오” 했어요. 임금이 참다못해 감정이 폭발해서 칼을 빼려고 했어요. 절을 몇 백 개나 지은 불자가 제 맘에 안 든다고 칼을 빼 고승을 죽여 버리려고 하는 그게 그 사람의 수준이지요. 그건 불자가 아닙니다. 어떻게 제 마음에 안 드는 말을 한다고 큰스님을 죽이려 합니까? 절만 지으면 불자입니까? 탑만 세우면, 경전만 유포하면 불자입니까? 마음을 닦아야 불자이지요.

그래서 달마대사는 양나라를 떠나 소림사에 가서 침묵했단 말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달마권법 가르쳐 달라, 산스크리트어 가르쳐 달라, 경전 번역해 달라, 전부 다 무엇인가를 얻으러 왔는데 이 깨달음의 법은 줄래야 줄 게 없으니까 침묵할 수밖에. 사람들은 얻으러 와서 못 얻으니까 결국 하루 만에 가는 사람도 있고, 한 달 만에 가는 사람도 있고…….

9년을 침묵하니까 수많은 사람이 왔다가 다 떨어졌어요. 그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이 안 가고 대사가 일하면 자기도 같이 일하고, 참선하면 같이 참선하고, 밥 먹으면 같이 밥 먹고, 아무 말도 안 하고 늘 같이 있는 거예요. 온갖 떨거지가 다 떨어져나갔는데 오직 한 사람이 안 가고 있으니까 9년이 지난 어느 날 대사께서 물어봤어요. ‘너는 왜 왔니?’ ‘안심입명의 도를 얻으러 왔습니다.’ ‘네 마음이 어떤데?’ ‘예, 제 마음이 심히 불안합니다.’ ‘그래? 불안한 마음 이리 내놔라. 내 편안하게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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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먼저 돌아봐야 깨달음도 얻을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EBS

불안한 마음 내어 놓으려면 어디를 봐야 해요? 자기를 봐야 되겠죠? 한참 후에 ‘내놓을래야 내 놓을 게 없습니다’ 했어요. 그래서 대사께서 ‘내 이미 네 마음을 편안하게 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스승은 밖으로 향한 제자의 눈을 안으로 돌려준 거예요. 눈이 안으로 향했을 때 이미 편안해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