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2일 수요일

[한겨레: 정석구 칼럼] 경제 쏠림, 공멸의 길로 가고 있다

최근 보도된 '삼성·현대차그룹 쏠림' 현상에 대한 반응은 우리 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만큼이나 다양했다. 통계에 대한 해석에서부터 해법까지 제각각이었다.
삼성·현대차 쏠림 현상은 우리 경제가 처하고 있는 현실과 문제점, 그리고 과제가 무엇인지를 응축적으로 보여준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기관인 시이오(CEO)스코어에 따르면,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의 2012년 매출액 합계는 476조원으로 규모만 단순 비교할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35%에 이른다. 이 비율이 2008년에는 23.1%였던 점에 비춰 보면 두 그룹으로의 쏠림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경제 쏠림 현상이 이처럼 심해졌을까. 그 원인을 정확히 계량하긴 쉽지 않겠지만 정부의 대기업 편향적 경제 정책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명박 정부 때의 고환율 정책이나 감세 정책은 재벌에 직접적인 혜택을 주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2.9%로 부진했지만 삼성그룹 매출액은 51.7% 늘었고, 현대차그룹은 76.2% 증가했다. 또 이 기간 중 삼성전자의 세액공제금액은 무려 6조7113억원이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기업 세액 공제액의 16.7%나 된다. 이런 정책적 배려 외에 휴대폰이나 자동차 등을 세계 일류 제품으로 만든 해당 기업의 피나는 노력도 기업 성장에 큰 기여를 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쏠림 현상이 우리 경제 성장에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이를 실증적으로 검증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간접적인 방법으로 확인할 수는 있다. 지난해 <경향신문>이 국내 500대 기업을 전수 조사해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12년 이들 기업의 노동소득분배율(인건비/영업이익 + 인건비 x 100)은 53.7%였다. 그런데 이를 20대 기업으로 압축했을 때는 49.9%로 줄었다. 대기업일수록 총부가가치에서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인건비 비율이 더 낮아진 것이다. 물론 대기업일수록 자본 투입 비중이 높아 노동소득분배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긴 하다. 하지만 프랑스 등 선진국의 경우 노동소득분배율이 60~70%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낮은 건 사실이다. 이는 우리의 경우 기업 수익 증대가 노동자 소득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더 이상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대기업 쏠림 현상 심화는 노동소득분배율을 저하시켜 소득 불평등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리고 소득 불평등이 심화할수록 소비가 위축된다. 소비성향이 높은 소득 하위 계층의 소득이 줄어들면 당연히 이들의 소비가 줄고 전체 소비 또한 감소하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 쏠림은 소비를 위축시켜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1999년부터 노동소득분배율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경제성장률도 동시에 하락하고 있음은 이를 입증한다.
경제 성장이 일정 단계에 이르면 성장률 하락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우리의 최근 경제성장률은 그런 식으로 둘러댈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 2012년의 경우는 경제성장률이 2.0%까지 하락했는데, 경제 규모 10위권인 나라의 성장률 순위가 세계 100위권 밑으로 추락했다는 건 정상이 아니다. 유독 우리나라의 성장률 하락이 지속되는 이유를 깊이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삼성·현대차 쏠림' 현상이 이슈화되자 우리 사회는 이념 성향에 따라 서로 다른 반응을 내보였다. 보수 쪽에서는 '제2, 제3의 삼성·현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장밋빛 해법을 제시했고, 진보 쪽에서는 '삼성·현대차 쏠림을 억제할 제도적 장치 마련'을 주문했다. 정부는 재벌 눈치를 보는지 머뭇거리며 선뜻 나서려 하지 않고 있다. 이래선 경제 쏠림 해소는 요원하고, 그 폐해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우선 정부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 게 시급하다. 그리고 우리나라만의 기형적인 재벌 체제, 그리고 재벌로의 경제 쏠림 심화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아닌지 면밀히 따져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그러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 공멸할 수도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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