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8일 수요일

[경향신문] 조국교수 칼럼

안녕하십니까. 저는 실장님의 까마득한 대학 후배로, 많은 부족함에도 모교에서 형사법을 가르치고 있는 '백면서생(白面書生)'입니다.

실장님의 이력, 대단합니다. 1960년 서울대 법대 3학년 재학 중 고시에 합격하여 1964년 검사가 된 후, 1979년 청와대 법률비서관을 거쳐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1988년, 1991년 연달아 역임했습니다. 보안사 세력과의 갈등으로 관운이 약해진 전두환 정권 시기를 빼고는, 박정희 정권 이후 지금까지 승승장구하였습니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후에도 요직을 거쳤고, 최근의 국정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여전한 신뢰를 받으며 사실상 '부통령'으로 국정운영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이 국무총리로 지명되었지만, 그는 실장님이 검찰총장 시절 평검사 아니었습니까. 안 후보자는 "김 실장에 비하면 나는 발바닥이다. 우리 아이큐가 130~140 수준이라면 그분은 170대"라고 칭송하였더군요.

그런데 실장님의 화려한 경력 뒤에는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30대 초반 검사로, 박정희 영구집권을 보장하고 시민의 기본권 행사를 금압(禁壓)한 '유신헌법' 초안 작업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1972년 12월 대검찰청이 발간한 '검찰' 48호에 발표된 '유신헌법 해설'이라는 글, 기억나십니까. 실장님은 "유신헌법은 우리의 현실에 가장 알맞은 민주주의 제도를 이 땅 위에 뿌리박아 토착화시키는 일대 유신적 개혁의 시발점"이며, 국민은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구국영단"을 지지한다고 강변하였지요. 박정희에 대한 충성심, 유신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은 실장님 자기정체성의 핵심일 것입니다. 이는 육영수 여사 살해범 문세광의 자백을 받아냈던 '공훈'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이 실장님에게 혈육적(血肉的) 신임을 주는 이유일 것입니다.

1974년 실장님은 35세에 유신체제의 폭압과 공작의 요새였던 중앙정보부의 대공수사국장이 되었습니다. 박근혜 정권하에서 공안검사 출신들이 곳곳의 요직에 발탁되는 것이 실장님의 이런 성향 및 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장님 직할 친위부대의 위세가 대단합니다.

14대 대통령 선거 직전인 1992년 12월, 실장님은 전 법무부 장관으로 '초원복국집'에 부산 지역 주요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관권부정선거를 추진했습니다. 제19대 대선 국정원 선거개입의 원조 격인 범죄였습니다. 당시 실장님의 놀라운 발언 중 지금도 회자되는 최악의 지역감정 조장 발언이 있습니다. "우리가 남이가."

'아방'을 묶어세우고 '타방'은 쪼개고 찌르고 베는 냉혹한 정치전술은 계속되었습니다. 2004년 3월,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의 선봉에 서서 대통령의 목에 칼끝을 들이댔습니다. 탄핵이 실패한 이후에도 실장님은 2006년 12월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노무현은 사이코다"라는 발언을 하여 '적장'(敵將)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표명했습니다. 최근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노무현 대통령을 수사한 우병우 전 대검수사기획관이 발탁된 이유가 짐작됩니다. 믿을 만한 '살수(殺手)'로 일찌감치 찍어두셨겠지요.

지금 제 책상 위에는 <형법개정시론>(1984)이란 두꺼운 책이 놓여 있습니다. 실장님이 '5·16 장학금'을 받으며 쓴 서울대 박사논문을 출간한 책이지요. 학생 시절 이 책을 읽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과잉도덕화'되고 '과잉범죄화'된 형법을 비판하고 개정방향을 제시한 이 책은 당시는 물론 지금도 의미 있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실장님은 "시민사회의 질서원리는 최소한의 자유의 제약을 통하여 최대한의 자유를 보호하는 데 있다"(26쪽), "국가권력을 '절대적 정의의 집행자'가 아니라 오로지 '시민적 행복의 옹호자'로서 이해"(36쪽)한다고 썼습니다. 동의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실장님은 이 명제를 실천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윗분의 뜻"을 대대로 받들며 '연성(軟性) 유신체제'를 도모하고 있습니까?

박근혜 정권의 국정기조, 바뀌어야 합니다. 그 첫걸음은 실장님의 사퇴입니다. 실장님이 끌고 온 공안통치 방식으로는 대한민국은 물론 박근혜 정권도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실장님은 이미 박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1972년 유신헌법이 아니라 1987년 민주헌법의 정신에 충실한 대통령 비서실장과 참모진이 필요합니다. 간명히 말씀 드립니다. 실장님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물러나십시오. 후배의 직언이 무례하였더라도 혜량해주시길 바랍니다.

2014년 5월 23일 금요일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
차마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났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고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던 천진난만한 학생들, 무고한 시민들이 배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가족들과 함께 온 국민이 지켜보아야 했다. '나라초상'을 당하여 참으로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오월'이었다. 무책임한 어른들 때문에 졸지에 자신의 꿈을 난파당한 어린 영혼들이 저 세상에서나마 평화와 안식을 얻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유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겠지만, 3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낳은 이 대재난을 근원적으로 성찰하는 길만이 희생자들에 대한 최선의 애도이고, 또 이 땅에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져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가 지닌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드러냈다. 세월호 침몰에는 생명과 안전을 도외 시하고 오직 돈만을 추구한 '청해진 해운'의 천박한 기업행태와 함께, 감독기관의 부패와 행정 공백, 그리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를 위한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더 근본적으로 온갖 종류의 '관피아'로 지칭되는 일련의 '연줄관계망'의 구조적 폭력과 이윤, 결과, 속도, 효율성만을 강조해온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의 논리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작동했다.

하지만 국민을 진정으로 분노하게 만든 것은 세월호 구조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국가'의 부재였다. 승객들과 선박을 돌보지 않고 제일 먼저 탈출한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스스로 '재난의 컨트롤 타워(관제탑)'임을 부정한 청와대의 대응과 판박이거니와, 사고 발생 직후 해양경찰의 초기 대응 실패는 이번 참사가 무엇보다도 인재(人災)임을 보여준다. 정부의 재난관리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은 채 해양경찰이 해군 및 민간잠수사의 활동을 방해하고, '언딘'이라는 일개 민간업체가 구난과 구조 업무를 사실상 이끌었으니 해양경찰과 해양수산부는 직무유기를 넘어 그 존재가치를 스스로 부정하였다. 이는 그간 정부 자체가 공공성을 허물면서 '기업 프렌들리'를 외쳐온 '기업국가'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것도 나라인가?' 하는 자조가 국민의 분노를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고 이후 정부 및 정권의 대응은 분노를 넘어서 정부와 국가에 대한 신뢰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다. 정부는 자신의 무능은 아랑곳 하지 않고 언론과 국민 여론을 통제하고 사건을 축소·은폐하려고 했고, 사복경찰을 동원하여 피해자 가족의 동정을 살피고 심지어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등 피해 가족 및 시민들을 부당하게 감시했으며, 비판자들에게 압력과 협박을 가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정부 관리와 여당 의원, 언론사 간부는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은 정부의 부실하고, 무능하며, 무성의한 사태 해결 노력에 대해 정부의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기보다는 유족 대신 조문객을 위로하는 보여주기식 정치와 행정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정부의 구조 행위에 대하여 '살인행위'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지만, 대통령과 정부는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의 몫을 과거 정부로 떠넘기며 적폐(積弊)를 운운하고 있다. 현 정권 들어서 국정원의 선거 개입, 간첩 조작 등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사건이 연이었고, 그에 대해 우리 사회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시종일관 요구했지만 그러한 국민적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위기의 징후는 곳곳에 있었으나 그 경고음을 현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현 정부에 의한 민주주의의 훼손과 비판·감시 기능의 상실이야말로 적폐를 키울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적폐의 온상은 현 정부의 비민주성과 무능, 무책임성이고, 그 정부를 이끌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적폐' 그 자체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세월호 참사를 취재하던 기자들이 희생자 가족들은 물론 온 국민으로부터 '기레기' 취급을 받았고, 유가족들은 국내 언론을 불신하고 외국 언론을 상대하였다. 해외 교포들은 세월호 참사에서 나타난 한국 정부와 언론의 행태를 비판하는 전면광고를 세계적으로 유수한 신문들에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든 데 대해 언론인들의 자성과 자기개혁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시급한 것은 정부의 언론 통제 철폐와 권언유착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KBS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정부의 방송 장악 기도, 언론 통제와 권언 유착의 실상이 낱낱이 폭로되고 있지만 청와대를 비롯하여 관련 기관 어느 곳도 사실을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대통령 인수위원회 관여 인물을 방통심의위원장에 내정하는 등 정부의 언론 장악 획책은 지칠 줄을 모른다. 이제 국민들은 언론을 정부의 홍보 대행기구, 선전도구 정도로 여기게 되었다. 실상이 그렇다면 국민의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세월호 참사 수습의 중심에 언론 통제 철폐와 언론 개혁이 있다.

많은 분들이 현 대통령의 복지 공약을 보고 그녀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 정권의 복지공약은 어디로 갔는가? 현 정부는 복지는커녕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책임지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임을 세월호 참사가 증명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안보가 어디 있을 것이며, 그 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정부로서 자격도 없는 것이 아닌가. 또 현 정부는 대선부정 문제를 비롯하여 자신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종북으로 몰거나, 전 검찰총장의 실례에서 보듯 개인적 문제를 트집 잡아 인격살인을 통해 비판자를 몰아내는 일 따위를 자행함으로써 사회구성원들이 사회적 현안에 대해 정당한 문제제기를 하고 자기교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거해 왔다. 정부가 돌아봐야 할 것은 과거의 적폐나 일개 기업의 비리, 한낱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들의 무능력과 공약 위반, 그러한 사태를 낳은 자신들의 허물과 국정철학, 그리고 집권 이래 현 정부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훼손해가며 쌓고 있는 적폐들이다. 이번 참사는 근본적인 인적 쇄신 없이 부서 이름 바꾸기 차원의 재난 대응과 말만 번지르르 한 안전대책들로 수습될 문제가 아니다. 담당 부서와 안전대책들이 없어서 눈앞에서 어린 영혼들을 수장시킨 것이 아니지 않는가?

대통령이 뒤늦게 책임을 인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해경해체만으로 모든 책임을 면하려는 태도는 스스로의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철저한 진상조사와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진단을 통해서 책임소재를 밝히고, 그에 상응한 개혁을 즉각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 그 전에 이 정부의 국정을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는 청와대와 권력기관들의 인적쇄신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구시대적인 적폐의 근원이 되고 있는 청와대 비서실장, 국정원장, 안보실장, 홍보수석, 그리고 검찰총장의 자리를 쇄신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숨 쉬기도 미안한 4월, 또 미래세대의 교육을 담당한 사람으로서 제자들 얼굴 보기가 부끄러운 5월을 보내고 있다. 침몰 현장에서 인명 구조를 위해 대기했던 민간 잠수사들, 진도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밤을 지새운 자원봉사자들, 분향소마다 길게 줄을 이어 늘어선 조문객들, 어린 영혼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켜진 촛불들, 그리고 이 모든 사태를 묵묵히 지켜본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앞장서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줄 줄 아는 정부, 의사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언론통제가 없는 나라, 그리고 이 땅의 모든 부모형제들이 더 이상 슬픔과 분노로 자신의 눈자위가 붉어지지 않는 사회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온 국민의 비탄과 공분을 받들어 우리는 다음 사항을 요구한다.

1. 해경해체 등 조직개편 이전에 철저한 진상규명이 우선이다. 정부는 진상 조사의 주체 이전에 조사 대상이니 유가족 대표와 시민 대표가 주도하는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좌초와 침몰의 원인, 각 단계별 인명구조가 지연되고 실패한 원인, 무책임한 정부 대응을 한 점 의혹 없이 규명해야 한다.

1. 청와대부터 정부 각 부처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이고 철저한 인적 쇄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1. 정부는 그동안 자행한 언론 통제에 대해서 사과하고, 언론 통제 철폐를 약속해야 한다. 또한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1. 세월호 사건의 뿌리는 지난 정권부터 계속된 무분별한 친기업 규제 완화이다. 정부는 제2의 참사를 예고하는 과잉친기업 정책을 즉각 폐기하고 생명과 안전을 중심에 두는 국정을 운영하여야 한다.

1. 대통령은 이번 사고 대처에서 나타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최고책임자일 뿐만 아니라 이번 참사의 근원적인 수습에 대해서도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위의 요구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대통령은 다시 국민적 사퇴 요구에 부딪힐 것이다.

2014년 5월 20일
서울대 민주화 교수협의회 

2014년 5월 17일 토요일

KBS 김시국 보도국장 발언내용과 언론노조 KBS본부 성명서


[KBS본부에서 낸 성명서 전문]



김시곤 전임 보도국장의 사의 표명 과정에 청와대, 아니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세월호 보도에서도 해경을 비판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전 국장은 오늘 KBS 기자협회 총회에 참석해, 재임 기간 중에 벌어진 청와대가 KBS 뉴스와 인사에 직접 개입했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제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이 답하라!

김 전 국장의 발언 내용을 다음과 같이 공개한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하라! 길환영 사장은 즉각 사퇴하라!



다음은 KBS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이날 발언을 정리한 것이다.



● 김시곤 전임 보도국장은 오후 7시 30분 기자협회 총회가 열리는 KBS 신관 5층 국제회의실에 도착했고, 곧바로 조일수 기자협회장의 안내가 있었습니다. 본사 촬영 카메라가 녹화를 시작했고, 김시곤 국장의 모두 발언과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기자회견 형식으로 진행된 질의 응답은 약 2시간 가량 이어졌고, 이후 김시곤 국장은 퇴장, 기자들만 남아서 향후 기자협회의 대응 방안을 놓고 총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기자협회는 오늘 밤 뉴스라인에 이와 관련된 보도를 하기로 하고 야간발생 아이템에 준하는 계통을 밟아 당직국장 주간 등과 협의를 하고 있습니다. 



■ 모두 발언



먼저 보도책임자로서 제 소명을 다하지 못해서 죄송스럽다. 외부의 보이기에 너무나 부끄러운 이야기를 후배들에게 할 수 있게 한데 기회를 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후배들도 마찬가지이고 외부에서 가장 궁금해 하는 사항은 보도 독립성 침해 사례, 또 하나는 5월9일 무슨 일이 있었나. 보도 독립성 침해 사례는 정확히 1년 5개월 보도국장했는데 가장 최근에 5월 사례만을 정리해서 기자협회에 넘겼다. 나머지 14개월 동안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유추하면 되겠다.



■ 보도국장 사임 관련 청와대 인사 개입



5월 9일 있었던 일만 설명하겠다. 유가족들이 회사 앞에 몰려와서 KBS를 강력히 비난하면서 제 이름을 불렀고, 저희 사퇴와 사장의 사과를 요구하는 농성이 있었다. 농성 끝난 게 새벽 2시 40분. 새벽 3시에 6층 임원 회의실에서 사장. 부사장. 임원, 보도본부 국장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 요구에 대해 본부노조 일방적 주장이기 때문에 정면 돌파하는 것으로 사장이 결정하고 확인했다. 당일 오후 2시에 본부노조 주장을 반박하는 공식 기자회견을 하기로 확정. 5시간 후인 오후 8시 같은 장소에서 비상 임원회의 열렸고, 새벽 3시 방침을 재확인했다. 



오후 12시 25분 사장 비서로부터 사장이 면담하겠다는 연락 와서 6층에 올라갔다. 사장의 전언은 "주말에 대규모 촛불집회가 예정돼 있어 위기국면이다. 기자회견 잘 해 주길 바란다" 이야기 들었다. 정확히 1시간 뒤인 오후 1시 25분, 즉 기자회견 35분 남은 시각에 휴대전화로 사장 휴대전화 왔다. 올라오라고 했다. 사장은 BH, 청와대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제게 회사를 그만 두라고 했다. 잠시 3개월만 쉬면 일자리를 찾아보겠다고 회유를 했다. 그러면서 이걸 거역하면 자기 자신도 살아남을 수 없고, 이건 대통령의 뜻이라고 까지 말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너무도 부끄럽고 창피하고 참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분노했다. 이 말을 어디에 가서 할 수 있겠나. 저 자신도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 사람이 과연 언론기관의 수장이고, 이곳이 과연 언론기관 인가하는 자괴감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했다.



■ 구체적인 보도 개입 사례



분야를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있다. 정치를 제외하고는 거의 개입이 없었고, 매우 독립적이었다고 자평한다. 정치 부분은 통계를 봐도 금방 아는데 대통령 비판은 단 한 차례도 없었고, 새로 정부 출범하는 1년 동안 허니문 기간은 비판 자재. 2월 25일 허니문 끝나고 대통령 비판은 단 한 차례도 없다. 정부 여당 비판도 제가 기억하기로는 한 차례만 있었다. 서울시당의 내부 문제 비판했었고, 마찬가지로 민주당 비판 못했다. 민주당도 비판의 대상에서 성역이 돼버린 측면 있다.



■ 청와대 직접 지시 여부



청와대로부터 전화는 받았다. 그건 내가 판단하기에는 어떻게 보면 그쪽 사람들의 소임이기도 하고, 그건 우리뿐만 아니라 타사에도 할 거다. 진보지에도 할 거다. 소화를 하거나 걸러 내거나 하는 건 바로 보도책임자, 경영진의 소임이라고 생각. 그 자체를 문제 있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 역대 사장들의 뉴스 개입 여부



기본적으로 사장 선임 구조 자체가 대통령 임명 구조여서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회 될 때마다 얘기했듯이 선임 구조 바뀌어야 하고, 정권에 유리한 보도 해 달라고 요청 있겠지. 뉴스에 대한 개입을 안 했던 사장이 정연주, 이병순 전 사장이었다. 두 사람은 가편집, 큐시트 받지 않아. 이병순 전 사장도 뉴스 관여 안한다고 천명. 외부 전화도 하지 말라고 반드시 이야기한 걸로 알고 있다. 뉴스 큐시트를 받기 시작한 게 김인규 사장이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다만, 사장은 그런 전화를 받게 되면 걸러내고 저항할 건 해야 하는데 그걸 더 증폭시켜서 100의 내용을 200, 300배 증폭시키는 사장이 있는 반면, 50 정도로 걸러서 내려보내는 사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 최근 문제 제기된 지하철 사고 확대 보도 



완전 코미디다. 그런 조작은 절대 한적 없다. 우리 뉴스 블록화 돼 있기 때문에 꼭지를 늘린 건 맞다. 2꼭지 늘었는데 본부장이 제안했고, 그 뉴스는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안전불감증의 연속, 세월호 이후 이어진 사고여서 키울만한 가치가 있었다. 절대로 뉴스를 조작해서 선거에 개입하겠다는 건 무시무시한 생각이다. 하느님 믿지 않지만 하늘에 걸고 맹세한다.



■ 세월호 보도 관련 청와대 개입



세월호 참사 관련해서 가장 비판적인게 K, 그다음 s, m은 반 밖에 안 됐다. 후배들도 많이 발제했고, 세월호 참사에 관한한 우리 보도가 결코 뒤지지 않고 비교적 잘한 보도라고 자평한 적 있다. 다만, 정부쪽에서는 해경을 비난하지 말 것을 여러 번 요청, 받아들이기 나름이고 우리가 많이 비판했다. 밖에서 연락이 오더라도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전화 받을 때, 보도국장 방이 비상상황실 비슷해서 내가 앉아있으면 오른쪽 편집주간. 왼쪽 제작2부장, 취재주간, 4명이 같이 일을 했는데 청와대 연락이 왔다. 오픈해서 받았고, 항의해도 받아 들이냐의 문제다. (청와대 요청 내용은?) 한참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니까 해경 비판을 나중에 하더라도 자제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해경 관련 보도가 꾸준히 나갔고, 그런 요청이 잘 안 받아들여지니까 다른 루트를 통해서 전달된 것 같다. (다른 루트라면?) 사장을 통한 루트인데 5월 5일에 사장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보도본부장실을 방문, 사장 주재 작은 모임이 있었는데 보도본부장. 나. 취재. 편집주간 4명이 해경에 대한 비판은 하지 말라달라는 지시가 있었다. (청와대에서는 보통 누가 연락했나?) 당연히 대 언론 역할을 맡은 자리가 있다. (홍보수석?) 끄떡..



■ 청와대 출입기자 관련 인사 개입



(새 정부 들어서고 청와대 모 인사가 이화섭 전 본부장에게 특정 기자를 청와대 출입기자로 발령 낼 것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자 사장과 불화 시작돼서 자리를 그만 둔 사실 있나?) 인사 문제는 대상자가 있어서 말할 수 없지만, 당시 보도국장, 본부장까지 보도본부에 있는 간부들은 다 그 의견(청와대 요청)에 반대했다.



■ 길환영 사장, 대통령-정치 관련 보도 원칙



길환영 사장이 대통령을 모시는 원칙이 있었다. 대통령 관련 뉴스는 러닝타임 20분 내로 소화하라는 원칙이 있었다. 정치부장도 고민 했는데 순방 때마다 몸살을 앓았다. 이른바 꼭지 늘리기 고민이지. 뉴스 전반에 있어서 사장이 개입한 부분은 다른 건 거의 없었고, 정치 아이템이다. 분명히 짚어야 할 부분인데 여당의 모 의원이 TV에서 얘기하는 날은 반드시 전화가 왔다. 어떤 이유가 있든 그 아이템을 소화해라. 일방적으로 할 수 없으니까 야당과 섞어서라도 해라. 누구라고 말을 안 해도 정치부 기자들이라면 모두 알 것이고, 화면에 가장 많이 등장한 사람 헤아려보면 금방 알 것이다.



■ 국정원 관련 보도 개입

(국정원 관련 기사에도 영향력이 있던 건지?) 사장의 개입이 다른 부분에 거의 없었는데. 국정원 수사에는 일부 있었다. 순서를 좀 내리라던가, 이런 주문이 있었지. (단독 빼는 건?) 단독을 뺀 적은 없는 걸로 안다. 그건 문제가 크지.

■ 채동욱 검찰총장 관련 TV조선 보도 인용 문제

(TV조선 인용 보도 관련해서 지시 있었나?) 결코 없었다. 양심에 걸고. 두 번째인가 올라갔는데 본부장실에서 최종 라인업하는데 본부장이 톱 이야기했고, 모두 올릴만하다고 판단했다. 끝.

2014년 5월16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2014년 5월 3일 토요일

[한겨레] 도올 김용옥 세월호 참사 특별 기고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35544.html?_fr=mt1

[세월호 참사 특별 기고] 도올 김용옥

조선의 창공이 원혼의 피눈물로 물들어
잿빛 같은 암흑을 드리우고
온생명의 분노가 열화같이 치솟아
암흑의 장막을 불태울 때
원망조차 잊어버린 순결한 여린 혼령들은
신단수의 하늘에서 소리친다
엄마 아빠
홍익인간의 천부인은
어디로 사라졌나요
 


대전으로 도망친 이승만, 국민들에겐 "나도 서울을 지키고 있다"


1950년 6월25일, 국민 전체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었던 이승만은 새벽부터 전쟁 발발의 소식을 듣고 우선 자기 혼자 도망갈 생각부터 했다. 26일 아침 8시 신성모 국방장관이 방송에 나와 "국군이 인민군을 물리치고 북진중에 있다"는 담화를 발표한다. 그런데 27일 새벽부터 비상국무회의가 열렸지만 이승만은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고 열차편으로 이미 몰래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대전 도피에 관해 각료는 물론, 국회의원, 하물며 육군본부에까지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승만은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곧 특별담화를 녹음한다. 27일 밤 9시부터 서울중앙방송국에서 전파를 타고 전국민에게 전달되었다: "우리 국군이 용감하게 적을 물리치고 있습니다. 국민과 공무원은 정부 발표를 믿고 동요하지 마십시오. 나 대통령 본인도 서울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함께 서울을 지키고 있습니다." 생거짓말이었다.

이날 정훈국장교의 말만 믿은 모윤숙은 밤늦게까지 가두선전방송을 하고 다녔다. 이승만의 파렴치한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8일 새벽 2시30분 아무 예고도 없이 한강대교를 폭파시켜 버렸다. 사전 통보나 통제가 없었기에 50대 이상의 차량이 물에 빠지고 그 다리를 건너가던 시민 500여명이 폭사하였다. 군사전략적으로 볼 때도 이것은 터무니없는 실수였다. 서부전선에 배치되었던 우리 국군이 퇴로를 차단당하고 와해, 희생된 것이다.

이승만은 7월1일 대전에서 또다시 도망갈 때도 목포로 가서 부산으로 배를 타고 갔다. 경부가도가 이미 위험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전 서울 시민을 서울에 가두어놓고 자기 혼자만 살 생각을 했다. 그리고 9·28 서울수복을 했을 때 서울에 남아 고생한 뭇 시민들을 부역했다고 죽이고 고문하고 연좌제로 묶어놓았다. 우리는 이러한 이승만을 성스러운 통치자로 모시는 기나긴 정치사적 이념의 굴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역사의 비극적 상황이란 모든 함수가 최악의 길을 재촉하도록 협동을 한 필연·우연의 사태이기 때문에 그 인과를 단선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사태의 해결이나 반성에 크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인과계열 중에서도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들이 있다.


자기만 먼저 탈출한 선장, 승객들에겐 "동요 말고 제자리를 지켜라"


우선 배에 관하여 정확한 구조적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끝까지 남아서 승객의 안위를 책임지어야 할 선박직 승무원 15명 전원이 먼저 탈출하여 쌩쌩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장 비극적인 사실은 이준석 선장과 일등항해사가 탈출하면서도 학생들에게 동요하지 말고 객실 속에서 제자리를 지킬 것을 명령하였고 그것을 계속 강요하였다는 가슴 아픈 일련의 사태에 내재한다. 모든 비극은 이 하나의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로부터 연역되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다. 위기상황에 누구든지 나 먼저 살고보자는 본능적 움직임은 충분히 요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과 이준석의 경우 도덕적 양심을 운운치 않더라도 이러한 생존본능의 논리조차 적용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승만의 서울 탈출이나 이준석의 세월호 탈출은 전혀 시민, 승객의 탈출과 충돌을 일으키는 사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서울을 빠져나오면서도 서울시민들에게 탈출을 권고할 수 있었고, 이준석은 세월호를 빠져나오면서도 승객들에게 같이 탈출하자는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자신의 탈출이 학생들의 탈출로 인하여 저지되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본 도호쿠지진 때 미야기농고의 학생들은 다급한 상황에서도 소·돼지 축사의 문을 열어주고 피신했다. 하물며 인간이랴! 이것은 이승만과 이준석의 디엔에이 심층구조 속에까지 사람은 존엄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와 관리의 수단일 뿐이라고 하는 비인성적 무책임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전제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다. 이들이 생각하는 코스모스는 다중의 죽음이다. 죽음의 질서인 것이다. 이것은 우발적인 사태가 아니라 우리 민족사의 구조적인 사태인 것이다.


의주로 도망간 선조, 임진강변 건물과 배 다 태워버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도 선조는 대책 없이 먼저 도망쳤다. 사실 왜군은 이순신에게 해로를 차단당해 보급이 끊겼기 때문에 식량이 없었고 지쳐 있었다. 서울은 한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다. 그리고 당시 서울에는 화약이 2만7천 근이나 저장되어 있었다. 한강의 대형 수송배들과 지형을 활용하고 강북 강변에 군사를 배치하여 대처했더라면 왜군의 도강을 쉽사리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선조는 가마를 메어줄 사람도 없어 우중에 말을 타고 쫄쫄 비 맞고 굶으면서 북상에 북상을 거듭했다. 그러면서 이승만처럼 자기가 건넌 임진강변의 건물과 배는 다 태워버렸다. 한번 생각해보라! 그가 의주까지 도망갈 때, 그의 말을 이끌었던 말단 관리 이마와 임란을 승리로 이끈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 장군 두 사람의 공훈을 평가할 때, 누굴 더 높게 평점했을까? 왜란이 끝나고 전체 훈공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선조는 이순신이 일적추(一賊酋)의 목도 베지 못했고, 일적진(一賊陳)도 함락시키지 못했다고 생거짓말을 하면서, 왜란을 토평한 것은 오로지 자기가 의주에서 요청하여 온 천병(天兵) 덕분이라고 말한다. 선조의 의식 속에서는 이순신이나 왜적과 피 흘리며 싸운 의병들보다 자기 말몰이꾼이 더 위대한 것이다.(<호성선무청난삼공신도감의궤>)

지금 전국민의 애간장을 끓게 만드는 것은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최초의 시각으로부터 적게는 20분, 넉넉하게는 2시간 정도, 충분히 사태 해결을 위한 구명결단의 여백이 있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이 최초 절명의 황금시간에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 언론은 부정확한 보도로 사태를 흐리게 했을 뿐 아니라, 모든 관련된 국가행정부서의 사람들은 혼선을 빚기만 하는 다양한 대책본부를 꾸리기만 하면서 황금시간을 허송했고, 또 거짓말만 남발했으며, 그 사건 현장에 당도한 그 어느 누구도 학생들이 애처롭게 죽어간다는 것을 목도하면서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순신이 좌수사로서 당시 세태의 관행에 역행하여 임란 직전에 수군과 화포와 전술과 전함을 정렬해놓았다는 이 사실은 오로지 그의 독자적 판단에 의거한 것이다. 이러한 이순신에게 선조는 원균의 모함을 빌미로 종적죄를 씌워 서울로 끌어올리자마자 심한 고문을 가했다. 삼도수군통제사로서 5년 동안 나라를 구한 명장을 함부로 나국한 것이다.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할 때까지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우리 역사는 구조적으로 책임을 질 줄 아는 결단의 인물을 키우지 않았다. 호걸이란 성군문왕의 다스림이 없이도 태어난다고 맹자가 말한 그 리더십의 주인공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 오로지 민중의 직감적 판단 속에서만 우리 사회의 정의는 지켜져 내려온 것이다.


이 시대 총체적 부실의 주체는 다름 아닌 박근혜 정부이다


이러한 사태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역사가 총체적 부실 속에서 결정권자가 부재한 상태로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총체적 부실의 주체는 다름 아닌 박근혜 정부이다. 그리고 이 박근혜 정부의 구조적 죄악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모두 박근혜 본인에게 돌아간다. 세월호 참변의 전과정을 직접적으로 총괄한 사람은 박근혜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의 정부의 사람과 이념, 그 모든 것이 박근혜가 창조한 것이다. 그만큼 통치의 정점은 국가의 안위에 막중한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진심어린 전면적인 사과의 한마디도 없었다. 과거의 황제인 한(漢)나라의 문제(文帝)조차 불상사가 일어날 때마다 거느리고 있는 신하를 탓하지 않고 자기가 국민 앞에 직접 사죄했다. 맹자는 통치자가 진정 생도(生道)의 원리를 가지고 다스리면 죽는 사람도 죽음을 원망치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사도(死道)의 원리로써 생사람까지 죽이고 있다. 이 불상사는 99.99%의 대중을 희생시켜 0.01%의 부귀권세가들을 봉양하려는 이명박 정부 이래의 줄기찬 신자유주의적인 정책기조가 교육·경제·정치·행정·법률·문화 전반에 끼친 영향이 만들어낸 것이다. 세월호의 실소유주 유병언은 이윤 극대화를 위하여 승객을 짐짝화한 것이다.

이 사회의 주류 언론들이 이 기회에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소재가 있는 모든 행정조직, 또 세모-청해진과 같은 음흉한 범죄기관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과격한 주장을 펴지만 이것은 사태의 본질적 해결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박근혜에게 무소불위의 과거 독재자가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박근혜와 그 주변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태를 활용하여 도덕적 제스처의 칼자루를 휘두르기만 하면 목전의 선거에서 승리를 구가할 수 있다는 계산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민족지도자가 되길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선교사 김선일 사건 때에 박근혜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건 국가가 아니며 국민 한 사람을 못 지켜낸 그러한 정부에 대하여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다는 논조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도올은 선포한다: "박근혜, 그대의 대통령의 자격이야말로 근본적인 회의의 대상이다." 그대가 설사 대통령의 직책을 맡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허명이다. 그대의 대통령이라는 명분은 오로지 선거라는 합법적인 절차에 의하여 정당화되는 것인데, 그 정당화의 법률적 근거인 선거 자체가 불법선거였다는 것은 이미 명백한 사실로서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이 땅의 종교지도자들이 이미 그대에게 대통령 사직의 권고를 한 바 있다. 트위터상에 올라오는 어린 학생들의 문구 속에도 항변의 언사들이 많다.

국민들이여! 더 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의기소침하여 경건한 몸가짐만에 머물지 말라! 국민들이여! 분노하라! 거리로 뛰쳐나와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 박근혜여! 그대가 진실로 이 시대의 민족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차마 여의치 못하다고 한다면, 정책의 근원적인 기조를 바꾸고 거국적 내각을 새롭게 구성하여 그대의 허명화된 카리스마를 축소하고 개방적 권력형태를 만들며, 주변의 어리석은 유신잔당들을 척결해야 한다. 그들은 통치능력이 부재한 과거의 유물이라는 사실이 이미 명백히 드러났다. 그대의 양신(良臣)은 민적(民賊)이다.

규제를 왜 푸는가? 그대의 규제풀음은 가진 자를 위한 것이다. 그대가 풀어야 할 규제는 사상통제의 규제이며, 언론의 규제이다. 유통을 장악하고 골목상권까지 독점하는 모든 대자본에 대하여 규제를 강화하라! 중소자영업의 생활세계를 보호하라! 그것이 민중의 갈망이다! 언론을 바로 세워라!

그대는 "국가개조"를 말했다. 그러나 그대가 중심이 된 국가개조는 악순환만 초래한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의 근원적 변화는 그대의 시녀가 되어버린 검찰이나 행정체계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원칙에 따른 국민적 합의가 창출한 새로운 기관에 의하여, 다시 말해서 국민이 주체가 되어 국민 스스로의 미래를 개혁해 나가는 과정을 그대가 적극 도와주는 그런 변화이어야 한다.

김용옥 교수
이제마는 말했다. 투현질능(妬賢疾能) 이상의 대환(大患)이 없고 호현낙선(好賢樂善) 이상의 대약(大藥)이 없다. 맹자는 호선(好善)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천하를 다스리기에 넉넉함이 있다 했다. 호선이란 낙문고언(樂聞苦言)이다. 쓴 말을 듣기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애타게 챙겨주며 질서를 지킨 단원의 학생들, 그들을 보호하며 목숨을 던진 선생님들, 선박직이 아닌 헌신적 승무원들, 그리고 책임을 통감하고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라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강민규 교감님, 우리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 민족의 도덕성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민족 구원의 빛줄기는 있다. 세월호 희생자 302명은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