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31일 일요일

[한겨레 사설] 이게 우리 사회의 도덕수준이란 말인가?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슬픔을 ‘참척’(慘慽)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근심이란 뜻이다.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겐 살릴 수도 있었던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더해진다. 누구보다 아픔이 크고 위로가 절실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더라도 상처를 헤집고 소금을 뿌려대는 일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사람의 도리다.

세월호 특별법 교착국면이 길어지자 유족을 향해 마구 돌팔매질을 해대는 이들이 있다. 여야의 대치가 전적으로 유족 책임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롱하고 손가락질하며 야유를 보낸다. 이들에겐 술집에 손님이 뜸한 것도, 부동산 거래가 한산한 것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것도 모두 세월호 탓이고 유족이 양보를 하지 않아서다. 유족이 철저한 진상규명에 더해 돈을 요구하는가, 보상을 더 해달라고 떼를 쓰는가. 참으로 본말이 전도된 상황 인식이요, 매몰차고 야박한 인심이다.

여론으로부터 유족을 고립시켜 냉소적 시선을 유발하는 데 크게 기여한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지방선거와 재보선 이후 눈에 띄게 유족과 거리를 뒀다. 한 번이라도 만나달라는 유족의 요구를 아직까지 외면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나서달라는 요구도 “국회가 결정할 일”이라며 단칼에 거부했다. 수많은 공식 행사에서 세월호를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경제 살리기’ 메시지만 되풀이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세월호와 거리를 두려는 의지가 묻어난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통령은 유족들이 청와대 앞으로 찾아간 바로 그날 민생 행보를 이유로 부산 자갈치시장으로 떠나버렸다. 유족이 단식하고 농성하는 광화문광장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영화를 보고 뮤지컬을 감상하기 위해 극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치 이런 일정을 보란 듯이 공개해 대통령이 관심을 쏟는 문제는 세월호가 아니라는 ‘무언의 시위’라도 벌이는 것처럼 비친다.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1일 유족은 새누리당과 3차 만남을 이어갈 예정이지만 타결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거리두기가 계속되는 한 새누리당도 소극적 태도를 따라갈 것이며, 유족을 향한 이유 없는 멸시와 냉소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유족의 뜻을 최대한 수용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박 대통령이었다. 이 말에 조금의 진심이라도 담겨 있었다면 박 대통령은 당장에라도 유족의 손을 맞잡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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