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7일 목요일

[한겨레 김종구칼럼] 대통령에 대한 관음증을 부추기는 청와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50168.html?_fr=mt1

2001년 9월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테러 공격을 받고 있던 순간 조지 부시 대통령은 플로리다주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중이었다. 그리고 그는 워싱턴으로 바로 복귀하지 않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나중에 9·11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 부시 대통령의 행적과 동선에서는 애초 알려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 많이 발견됐다. “초등학교 대기실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했다는 보도를 봤다”는 주장과 달리 당시 대기실의 텔레비전에는 전원조차 연결돼 있지 않았다는 식이다.
케네디가 백악관에서 가끔 자취를 감추는 것이 딴 여성과 밀회를 즐기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골프를 치기 위해서인지를 미국 국민이 꼭 알아야 할지는 의문이다. 그것은 대중의 호기심이요 일종의 관음증이다. 하지만 9·11 사태 당시 부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궁금증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미국은 부시 대통령의 거짓말을 포함해 모든 사실을 꼼꼼히 조사해 밝히고 기록했다.
세월호 참사 발생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가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는 자명하다. 이런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이 어떻게 보고를 받고 어떻게 판단을 하고 어떤 조처를 내렸는지를 국민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분명히 ‘부시형 궁금증’이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청와대 부속실장의 국정조사 증인 채택을 거부하며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문제”라고 말했다는데, 결론은 다르지만 국가안보라는 말은 맞다. 국가에 중대한 변고가 일어났는데 대통령의 소재를 몰라 대면보고를 못 했다면 국가안보에 큰 구멍이 뚫려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행적 문제를 스스로 ‘케네디형 스캔들’로 만들어버렸다. 새누리당 역시 “대통령의 사생활”이니 뭐니 하는 말로 대통령을 ‘관음증’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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