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1일 수요일

[한겨레/정석구 칼럼] ‘종북 대통령’을 위하여

용어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수구언론이 ‘종북 콘서트’라고 규정한 행사의 공식 명칭은 ‘평양에 다녀온 그녀들의 통일이야기-신은미&황선 전국순회 토크문화콘서트’다. 이를 둘러싼 논란은 ‘종북 공안몰이’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떻게 확대 재생산 되는지를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였다. 처음부터 되짚어 보자.

‘통일 토크콘서트’는 지난해 11월19일 서울 조계사에서 처음 열렸다. 100여명의 청중이 모인 콘서트에서 두 사람은 평양 방문 때 보고 들은 경험을 풀어놓았다. 이미 알려진, 그렇고 그런 내용들이었다. 북한 사람들의 김정은에 대한 평가, 세쌍둥이 출산 얘기 등등. 어디에도 ‘종북’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종편들이 가세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보수(수구) 논객들과 탈북자들이 종편에 출연해 두 사람이 북한을 찬양했다며 통일 콘서트를 ‘종북 콘서트’로 규정했다. 티브이조선은 급기야 신씨 등이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찬양”했다(경찰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몰아붙였다.

그 뒤 보수단체들이 두 사람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고, 경찰은 기다렸다는 듯 수사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종북 콘서트” 운운하며 종북몰이에 가세했다. 그 뒤 검찰이 본격 수사에 나서 지난 10일 신씨를 미국으로 추방하고, 14일 황씨를 구속했다. 경찰은 ‘종북 콘서트’의 배후를 캐겠다며 황씨의 남편까지 조사하고 있다.

사건 경과에서 보듯 종북몰이의 발단은 수구언론이다. 수구언론은 때때로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내심으론 북한을 전쟁 상태에 있는 적국으로 상정한다. 이런 수구언론의 시각에서 보면, 북한과 화해하고 협력하려는 세력은 모두 적국과 내통해 아국을 괴멸시키려는 첩자로 비친다. 적국인 북한을 ‘비난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종북 세력’이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정보기관 안에 공안(수구냉전)세력은 수구언론과 같은 뿌리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주류 기득권층과 이해를 직간접적으로 공유하면서 북한이란 존재를 기득권 유지에 최대한 활용한다. 일부 보수단체는 공안몰이를 일으키는 바람잡이 노릇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들은 때로는 국가 안보와 정권 안보를 동일시하면서, 때로는 정권 안보를 국가 안보로 교묘히 위장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해 나간다. 전가의 보도인 국가보안법은 공안세력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수구언론과 공안세력의 부침은 집권 세력의 속성에 좌우된다. 남북 화해를 주창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아래서 수구냉전 세력은 잠시 힘을 잃은 듯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그들은 다시 살아나 점점 몸집을 불려왔다. 이제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힘을 실어주는 정권의 비호까지 받고 있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되풀이되는 종북 공안몰이의 작동 방식이다. 참으로 단세포적이고 유치하지만 이게 바로 21세기 대한민국의 수준이다. 이 가운데 어느 한 고리라도 깨어지지 않는 한 종북몰이는 계속될 것이다.

물론 남북이 휴전선에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대치 상황을 무시할 수는 없다. 튼튼한 국방력을 키워 북한의 위협에 대처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북한에 당당히 대응하는 것과 레드 콤플렉스를 악용해 국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파괴하면서 수구반공세력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건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다. 국가 지도자라면, 이 둘의 차이를 혼동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해선 안 된다.

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통일 대박’을 원한다면 남북 화해의 물꼬를 트려 했던 통일 콘서트를 종북이라고 처벌할 게 아니라 오히려 권장해야 한다. 박 대통령도 2002년 방북 때 파격적인 환대를 받았고, “김정일 위원장은 솔직하고 거침없는 사람”이라고 호평하지 않았던가. 신은미와 황선이 종북이면 박 대통령도 종북이다. 그런 의미에서의 종북이라면, 박 대통령도 더욱 치열한 ‘종북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종북몰이’의 굴레를 하나씩 벗겨내야 한다. 적과 아군을 가르는 이분법적인 ‘종북몰이’와 ‘통일 대박’은 양립하기 어렵다.
정석구 편집인 twin8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