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7일 토요일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오적’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오적’ 
이이화

요즘 역사학계에서는 ‘역사 오적’의 이름이 심심찮게 떠돌고 있다. 한국사 국정화의 주역인 박근혜 대통령(아래에서는 존칭 생략)을 비롯해 그 하수인인 김무성과 황교안, 황우여, 김정배를 두고 일컫는다. 박근혜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깔아놓은 뉴라이트의 대안교과서를 찬양하더니 갑자기 역사학자 80%가 좌파라고 외치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들고나왔다. 그 의도를 짚어보면 5·16쿠데타와 10월 유신을 합리화하는 것일 테다.

유신시기 국정교과서였던 국사엔 “정부는 1972년 10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고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고자 헌법을 개정하고 10월유신을 단행하였다. 우리는 이제 한국 민주주의를 정립하고 사회의 비능률과 비생산적 요소를 불식하여야 할 단계에 와 있다”라고 기술돼 있다. 이런 내용을 국정교과서에 복원하고 싶을 것이다.

김무성은 뉴라이트 계열 학자를 초빙해 강의를 들으면서 자신의 아버지인 김용주의 친일 행각을 미화시키려 했다. 그는 국정화의 선봉에 서서 반대하는 시민을 상대로 “김정은의 지령을 받았다”고 시대착오적 또는 선동적인 언사를 뇌까렸고, 김일성이 한국전쟁을 도발하면서 스탈린의 지원을 받으려 회담하면서 찍은 사진을 두고 김일성을 찬양하는 사진이라고 얼토당토않는 말을 내뱉었다.

황교안은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민국 건국을 정부 수립이라고 잘못 기술하면서 조선인민공화국을 건국이라고 했다고 왜곡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은 헌법에 명기돼 있고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이라고 했지, 건국이라는 용어는 들어 있지도 않았다. 황우여는 온갖 불법·탈법으로 국정화 과정을 밀어붙이면서 규정에 따른 행정예고조차 왜곡했다.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설치한 팩스를 닫아놓고 예고기간을 이틀 앞당겨 마감하는 따위 사술을 쓰고 있다. 독재정권의 수법이다. 김정배는 전두환 신군부 집권 시기 국정교과서의 집필진에 참여했고, 오류투성이인 교학사 교과서 옹호에 나서기도 했다. 게다가 중립적인 학자를 필진으로 동원하겠다고 공언해 놓고는 신형식·최몽룡 같은 극우 계열 학자를 대표 집필자로 영입했다. 하지만 최몽룡은 성추행 의혹으로 필진에서 자진사퇴했다.

이와 함께 방계 하수인이 된 세력도 있다.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은 “일제의 쌀 공출은 수출이었다”고 기술했다. 쌀 생산자인 농민에게 자유판매를 금지하고 강제로 가격을 매겨 수탈해 일본의 군인과 노동자를 먹이려는 정책을 엉뚱하게 해석하고 있다. 교학사 집필자인 이들은 국정화의 선봉장이 되고 있다. 또 재향군인회, 어버이연합, 자유총연맹에 관계하는 인사들은 쉴 새 없이 종북 좌파와 빨갱이를 외치면서 행동대로 나서고 있다. 이들이 과연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세력인가? 절차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극심한 가치의 전도를 보여주고 있다. 종북 좌파를 외쳐대는 언사들은 거의 진실과 거리가 먼 문맹수준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아무튼 이를 묶어서 반민족적·반민주적·반헌법적·반통일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정화의 폐단은 역사 진실의 다양한 접근을 막고 비판기능을 저하시키며 역사적 상상력을 가로막는 결과를 빚는다. 긍정사관은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따위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검인정 교과서의 내용은 이런 폐단을 줄일 수 있다. 그러면 역사교과서 국정제도는 어느 국가에서 지정하고 시행하고 있는가? 해방이 된 뒤 미 군정 당국에서는 검인정 제도를 채택해 교과서를 발행하게 하였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에도 검인정 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런 교과서 정책은 2차대전 이후 유럽의 여러 국가 등 민주제도를 수립한 나라에서 공통으로 수용했던 것이다. 군국주의 국가였던 일본에서도 이 제도를 수용하였다. 다만 소련, 북한, 베트남 등 공산권 국가와 중동의 이슬람을 받드는 국가 등 일부 나라에서만 국정교과서를 고수하였을 뿐이다.

박근혜는 지난 5일 통일준비위원회 회의에서 “통일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과 역사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처럼 교과서를 국정으로 해야 민족통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요즘 박근혜를 두고, 어질용문(魚質龍紋)에 비유한다고 한다. 곧 물고기 바탕인데도 용의 무늬를 지녔다는 뜻이다. 을사오적은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오늘날의 오적은 우리 역사를 말아먹은 인물로 기록될 것인가? 미래의 역사학자들은 이를 범상하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당사자들은 한쪽 눈으로만 시대를 바라보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오적’이라는 오명을 쓰지 말고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이화 | 역사학자>

입력 : 2015-11-06 21:19:54ㅣ수정 : 2015-11-06 21:2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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