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0일 수요일

[중앙시평] 왜 대북정책은 실패하는가/ 김병연교수

급조한 정책은 실패한다. 지난 정부 초기 때 이야기다. 비핵·개방·3000 정책을 표방한 정부 부처 고위직을 몇 명의 전문가와 함께 만났다. 전문가들은 이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이를 현실화시킬 어떤 방안이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 공직자는 모든 준비는 완료됐고 이제 실행만 하면 된다고 장담했다. 그런데 다음 날 부처 실무자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다. 비핵·개방·3000을 실현시킬 방안에 대해 연구 용역을 수행해 달라는 것이었다. 조금이나마 우리 정부의 실력을 믿고 싶었던 희망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아마 선거 캠프에서 주로 보수 성향 유권자의 표를 의식해 단기간에 만든 정책이었을 것이니 그 실현 가능성을 얼마나 고려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지난 정부 대북정책의 성과가 있었다면 준비되지 않은 정부의 원칙론은 빈약한 성과로 귀결됨을 확인시켜 준 정도였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위의 경험에서 배웠어야 했다. 사실을 기초로, 학습을 통해 구체적이고도 치밀한 정책과 전략을 세워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신뢰프로세스라는, 창조경제만큼이나 개념이 모호하고 작동 가능성이 의심스러운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다 보니 기회의 시기인 정권 초기에 대북정책을 적극적으로 펴지 못하고 미적거렸다. 그 후 드레스덴선언을 통해 내용을 일부 구체화했고 통일대박론으로 통일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확산한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이 제안이 오히려 북한으로 하여금 현 정부의 통일론을 흡수통일로 믿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신뢰라는 것은 서로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지만 대통령은 “우리는 급진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발언조차 아까워했다. 우방인 미국의 전문가마저도 과연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통일 방안과 전략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것도 전략적 모호성인가. 아니면 학습하지 않고 소통하지 않는 정책결정자의 실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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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왜 대북정책은 실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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