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0일 토요일

'헌재의 시계'는 유신인가?/홍윤기[한겨레 시론]

박한철 헌재 소장이 기각 사유를 읽은 시간은 인용 사유를 읽은 시간보다 약간 길었다. 그리고 박 소장이 결정문 낭독을 시작하면서 먼저 읽어준 헌법 제8조 ④항의 민주적 기본질서의 훼손이라는 정당해산 요건을 “최대한 엄격하고도 협소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르면, 진보당은 해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더 합당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은 해산한다”는 박한철 소장의 주문이 낭독되자 깜박했던 나의 의식은 돌연 42년 전인 1972년 10월17일 아침으로 날아갔다. 햇빛 찬란했던 그날 방송에 낭독되었던 박정희 대통령의 이른바 ‘10·17 특별조치’는 “1972년 10월17일 19시를 기하여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정치 활동의 중지 등 현행 헌법의 일부 조항 효력을 정지시킨다”로 시작하였다. 대한민국 제3공화국을 일거에 파괴한 이런 반헌법 조치를 발표한 동기는 딱 한 가지였다. 즉, 국회를 해산하고 그 업무를 대신하는 비상국무회의는 “1972년 10월27일까지 조국의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헌법개정안”을 만든다는 것뿐이었다. 당시 청년 검사로서 지금 대통령 비서실장인 김기춘의 주도로 작성된 유신헌법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 피격 때까지 공포통치의 명분을 제공했다.
42년 전과 포개진 박 소장의 음성
나는 그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을 과거 유신통치의 부활로 보지 않으려고 개인적으로 무진 애를 썼다. 체육관에서 투표 흉내만 했던 선친과 달리 그는 합법적·합헌적 선거로 정당하게 당선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국정원, 기무사 등 관권 개입으로 이루어진 댓글 공작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선거 공약을 하나하나 폐기하다가, 측근과 관련된 온갖 추문이 터지는 과정에서 소통을 거부하고 청와대에 들어앉아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그 모습에서 유신전체주의의 옛 그림자가 서서히 덮쳐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19일) 아침,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는 박한철 소장의 음성에 “국회를 해산한다”는 42년 전의 그 목소리가 마치 메아리처럼 포개졌다. 진보당 해산에 찬성한 재판관 8명은 자신들의 판결이 이 국가와 지구사회의 시민들에게, 그리고 미래 대한민국과 인류의 역사에 어떤 의미를 가질지 과연 제대로 생각해 보았을까?
진보당 해산에 찬성한 8명의 재판관은 진보당 소속 이석기 의원과 경기도당 당원들이 북한과 연계하여 아르오(RO) 조직을 결성하였다는 애초의 검찰 주장이 재판 과정에서 입증되지 않아 내란 음모죄 부분은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오늘의 결정에서 이들은 단지 이 의원이나 회합 당원 정도가 아니라 진보당 전체가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을 논의하는 회합을 개최하는 등 활동을 한 것”이라고 했다. 진보당 당헌이나 공식 문건 등에 기재되지 않은, 즉 공중에 공식적으로 공표된 바가 전혀 없는 “숨은 목적”에 따라 그들이 내란을 음모하는 회합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회합한 이들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한 “숨은 목적”에 따라 “회합”한 것을 두고,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험성”을 야기하는 “활동”으로 판정했다. 또 그런 현재의 상황은 “헌법을 수호한다는 방어적 민주주의 관점에서 비롯된” “비상상황”이므로 진보당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을 박탈한다고 선고하였다. 앞의 72년 10·17 조치에서 300명에 가까운 국회의원의 직을 일거에 박탈한 것에 비하면 규모는 5명으로 줄었지만 그 모양새는 왜 그렇게 닮았는가?
그렇다. 오늘부터 몇사람 모여 “대한민국에서 못 살겠다. 누구 물러나라 하자”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도 바로 이렇게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험성을 야기하는 활동”으로 간주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더 큰 문제는 위의 8명을 포함해 누구나 이렇게 나가면 안 된다는 점을 잘 알지만, 위와 같이 불만을 토로하다가 정권 담당자에게 미운털이라도 박히면 이번 헌재 결정을 근거로 진보당과 같은 혐의를 임의로 뒤집어씌울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런 점이 긴급조치를 남발하여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무한 유린하고, 인혁당 사건을 조작하여 관련자들을 일거에 사형시킨 과거 유신을 떠올린 연유이다.
난국에 처했다! 국민만 몰랐다!
물론 이번 결정에 법무부가 꽤 정성 들여 정당해산의 판례로 제시한 1956년 8월의 독일공산당(KPD) 해산 결정은 판례로 인용되지 않았다. 당시 서독의 연방헌법재판소는 정당해산이 청구된 1951년 당시의 독일공산당 강령에 명시된 “프롤레타리아 혁명” 노선을 문제삼았다. 5년이 지나 해산 결정을 내릴 때 독일공산당은 이 강령을 삭제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해산 결정을 내린 1956년의 서독 헌재의 평결은 독일 민주주의의 미숙한 운용 사례로 꼽힌다. 그리고 이렇게 해산된 독일공산당은 당 이름의 단어들 순서만 바꾸어 1968년 9월 다시 독일공산당(DKP)으로 12년 만에 재창당되어 지금까지 존립한다. 누가 봐도 유사한 당명인데도 현재의 성숙한 독일 민주주의에서는 누구도 과거 KPD 해산을 근거로 DKP를 해산하자고 하지 않는다. 헌재는 독일 민주주의가 가장 약했던 1950년대의 판례로 21세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재단했다.
무슨 변명을 하든 대한민국 헌재의 이번 진보당 해산 결정은 42년 전 단 한명의 독재에 의한 10월 유신과 거의 상응하는 8명의 헌재 재판관이 발포한 12월 유신이다. 헌재는 국가와 국제사회에 잘못된 시그널을 보냈다. 헌재는 최고법인 헌법의 최종 해석권을 휘둘러 “명백하게 현존하는 위험성”이 없는 정당을 강제 해산하고 “비상상황”을 공표했다. 대한민국은 단 한줌도 안 되는 몇몇 진보당원 때문에 난국에 처했다! 우리 국민만 몰랐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스스로 비상상황이라면 주변국들은 긴장하지 않을까?
이미 종편 방송이나 일베의 부추김 정도로도 “종북” 토크쇼에 살상용 화염물질이 투척되고, 공공연히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헌재가 10여년 합법정당으로 활동한 진보당에 종북 낙인을 찍어 해산했으니, 조금만 진보적 색채를 띠어도 백색테러를 가하고는 헌재 결정문을 근거로 들 개연성이 아주 높아졌다.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에 대고 진보당과 야권연대를 도모했던 것을 사과하라고 겁박한다. 이것은 42년 전이 아니라 예수상을 밟아야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고 한 대원군 시대로 돌아가는 작태이다. 이렇게 되면 헌재야말로 대한민국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명백하게 현존하는 위협”을 조장한 것이다.
‘명백한 위협’ 조장한 헌재
그런데 비례대표 부정 선출, 여론조사 조작, 중앙위 폭력같이 당내에서 선거제도를 형해화한 진보당의 작태도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반하는 것으로 판시되었기 때문에 이번 결정이 정당민주주의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명지대 김형준 교수와 같은 의견도 있다. 그렇다면 당내에서 밀실공천 같은 비민주적 방식으로 후보를 선출한 의혹이 횡행하는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도 정당해산 요건을 충분히 갖춘 것이다.
순전히 법조계 출신으로서 단지 지명되었을 뿐인 재판관들의 손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큰 틀인 정당민주주의의 근간이 손상되었다는 것이 통탄스럽다. 선출이 아닌 고시공부로 최고 권력에 도달한 이들이 국가정치의 현실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이보다 더 여실하게 보여주는 전례가 없다. 그렇다면 독일공산당 해산을 마음에 깊이 두었을 테니까 헌재 재판관 구성도 이왕이면 현재 독일의 예를 따르면 어떨까? 즉 독일처럼 의회 내에 헌법재판관 선출위원회를 별도로 둬 여기서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재판관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이때 후보는 법률전문가뿐만 아니라 학계, 정치계, 시민사회 전반의 조류를 반영할 수 있는 대표 인물들로 확대해 그야말로 국민의 일반의지를 헌재가 구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단 한번도 진보당을 지지한 적이 없다. 과거 대학 시절에도 인혁당은 몰랐다. 그러나 인혁당을 법살했던 그 손길이 70년대 세대의 삶을 통째로 망가뜨렸다. 수천명의 진보당원을 추적하자면 그 옆에 섰던 이들은 몇명이나 다쳐 나갈까? 오늘 날씨가 흐리다. 대한민국의 민주정통성도 흐리다.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

2014년 12월 19일 금요일

민주주의의 죽음, 헌법재판소의 죽음

[한겨레 기사]

헌법재판소가 19일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했다. 소속 의원들의 국회의원직도 박탈했다. 그런 결정에는 제대로 된 증명도 확실한 근거도 없다. 다수에 거스른다고 소수 정당에 함부로 사형 선고를 내린 꼴이다. 관용과 다원성을 핵심 가치로 하는 민주주의는 이로써 송두리째 부인됐다. 지금 여기, 해산과 해체의 위험에 처한 것은 수십년 간 힘겹게 일궈온 한국의 민주주의다.

헌재 결정은 사법사에 남을 큰 오점이다. 법의 칼을 빌린 정치 탄압은 수십년 전부터 있었다. 1974년 박정희 정권의 인혁당 인사 사형이 그러했고, 1959년 이승만 정권이 진보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조봉암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한 일도 있다. 당시 진보당은 정부 부처의 등록취소로 해산됐지만, 1958년의 대법원은 ‘진보당의 정강·정책은 위헌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적어도 이번처럼 정당의 주요 인사와 정당 자체를 억지로 동일시하지는 않았다. 1960년 헌법에 정당해산 제도가 도입된 것도 ‘민주주의의 적에 대한 방어’보다는 행정부에 의한 등록취소 따위로부터 정당의 존속을 보장하고 ‘정당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정신은 지금 헌법에 오롯이 이어졌다.

그런 점에서 통합진보당 등이 대의민주체제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 민주주의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생각과 주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소수자를 배척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전체주의와 권위주의에서 해방된, 민주주의의 징표다. 진보 소수세력에 대한 축출 선언인 이번 결정은 그런 역사의 시계를 되돌린 것이다.
헌재가 이번 결정을 정당화한 논리와 명분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정당해산은 최후의 수단으로, 엄격한 기준에 따라 제한적으로 적용돼야 할 제도다.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성이 있어야 한다. 헌재는 당 강령 등에선 그런 위험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진정한 목적’이나 ‘숨은 목적’을 추정해보면 그런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숨은 목적’이야말로 엄격하게 증명되어야 하는데도, 헌재는 구체적 증거도 없이 이들의 주장이 북한의 그것과 유사하므로 북한 동조가 통합진보당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판단’했다. 권위주의 시절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검찰이 펴던 막무가내식 논리 그대로다.

시간에 쫓기듯 1년도 안 돼 결론을 서두른 점도 의아하다. 이석기 그룹의 활동이 잘못이더라도 이를 10만명의 당원을 지닌 통합진보당 전체의 행동과 곧바로 같이 볼 수는 없다. 그런데도 헌재는 이들이 ‘주도세력’이므로 정당의 활동이라고 곧바로 선언했다. 그들이 실제로 당 전체를 장악했는지, 당 전체가 그 의도대로 움직였는지 증명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단정했다. 그러고선 이들 주도세력의 성향과 활동 등에 비춰보면 ‘실질적 위험’이 있다는 비약적 논리를 폈다. 형사재판에서 ‘아르오’의 실체가 인정되지 않았고 내란음모에 무죄가 선고된 상태에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바로 그런 혐의를 이유로 앞질러 한 정당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 헌법과 법률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데도 의원직 상실까지 선고했으니, 헌법적 판단이라고 도저히 볼 수 없는 월권이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입을 피해는 막대하다. 정당의 강제해산으로 민주체제의 중요 요소인 정당의 자유, 정치적 결사의 자유는 심각하게 제한될 것이다. 진보 논리에 찬성했던 많은 이들의 정치적 의사는 위헌이나 종북 따위로 왜곡되고 제도권 밖으로 내쳐질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빚어질 갈등과 대립은 또 얼마나 심할 것인가. 지금은 통합진보당이 쫓겨나지만, 다음은 누가 당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1987년 헌법의 산물인 헌재가 87년 체제의 핵심인 관용과 상대성의 민주주의 정신을 스스로 부정한 상처도 오래 남을 것이다. 8대 1이라는 헌재 재판관의 의견 분포가 우리 사회의 의견 지형을 반영한 것인지를 묻는 헌재 구성의 문제도 불거질 것이니와, 헌재의 존립 근거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될 것이다. 헌재가 자신을 자해하면서 한국 민주주의를 저격한 결과다.

2014년 11월 14일 금요일

삼성 SDS 상장 차익

[한겨레 사설중]
1985년에 설립된 삼성에스디에스는 시스템통합(SI) 서비스를 해주는 업체다. 해마다 두자릿수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하며 급성장해 왔는데 배경은 그룹 계열사들의 전폭적인 지원이다. 이처럼 ‘땅 짚고 헤엄치기 식’ 경영을 하는 회사가 1999년 23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해 3자 배정 방식으로 이건희 회장의 세 자녀에게 헐값에 넘겼다.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의 핵심이었던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에게도 3자 배정이 이뤄졌다.

삼성에스디에스의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과 헐값 3자 배정은 2009년 삼성특검 수사와 재판을 통해 불법 판정을 받았다. 이건희 회장은 물론 이학수 전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이 배임죄로 처벌을 받았다. 이처럼 불법으로 취득한 삼성에스디에스 지분이 경위야 어쨌든 범죄 행위에 직간접으로 연루된 당사자에게 막대한 상장차익을 안겨주고 경영권 승계의 지렛대로 활용되는 걸 보는 심정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불법에 따른 징벌과 손실보다 그에 따른 부당이익이 훨씬 더 크다면 법과 제도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봐야 한다. 정치권은 앞으로라도 이런 불합리와 모순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 개선에 힘써야 할 것이다.





삼성에스디에스가 14일 유가증권시장에 화려하게 등단했다. 상장 첫날 주가가 액면가보다 655배 높은 32만7500원을 기록했다. 이로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기존 주주들이 천문학적인 상장차익을 얻게 됐다. 부러움을 사는 한편으로, 부당이득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삼성에스디에스 상장에 관심이 쏠린 이유는, 주가보다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변화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 등 이건희 삼성 회장의 세 자녀가 얻은 시세차익은 상장 첫날 주가만으로도 4조8000억원대에 이른다. 투자수익률이 무려 270배를 넘는다.

이재용 부회장 남매로서는 삼성에스디에스 상장 차익이 남다르다.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고 세금 문제 등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어느 정도 확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이 곱지 않다. 과정과 절차에 온갖 탈·불법과 부당행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삼성도 국민 정서와 경제정의에 부합하는 조처를 하길 기대한다. 가령 공익재단을 설립해 논란이 되고 있는 일부 지분을 출연 또는 위탁하는 방식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11월 10일 월요일

‘코퍼라토크라시’의 시대, 무너지는 삶과 농사

녹색평론 138호, 2014년 9-10월호

'코퍼라토크라시'의 시대, 무너지는 삶과 농사

대담자 ― 김성훈/김종철

이 기록은 김성훈 전(前) 농림부장관과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2014년 8월 4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 커피숍에서 가졌던 대담을 녹취, 정리한 것이다.


'몬산토'가 지배하는 국제정치

― 오랜만에 뵙습니다. 지난 7월 중순에 제가 전화 드렸을 때 며칠 외국에 다녀오실 예정이라고 하셨는데, 어디를 가셨던가요?



헝가리하고 우크라이나에 다녀왔습니다. 두 나라가 국경을 접하고 있지 않습니까. 헝가리는 아시다시피 유럽에서 유일하게 동양계 민족과 피가 섞인 나라예요. 물론 먼 옛날 얘기지만. 그리고 내가 볼 때는 가장 미인들이 많은 나라가 헝가리예요. 헝가리에 가면 기분이 좋아요. 사람들이 아주 정답습니다. 그리고 헝가리에서는 GMO(유전자조작식품)라면 생산도, 판매도, 거래도 못하게 돼 있어요. 우크라이나도 원래는 그래왔었지요.

근데 이번에 유럽에 가서 들었는데, 물론 엄밀한 과학적인 정보는 아니지만,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단순히 미국과 러시아의 전쟁이 아니라 그 이면은 GMO와 반GMO 간의 싸움이라는 겁니다. 그동안 세계적으로 GMO산업을 주도해온 몬산토가 아무리 유럽시장을 공략하려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EU의 반GMO 정책이 워낙 강경하죠. 특히 독일과 동구권 국가들이 똘똘 뭉쳐 있어요. 근데 EU의 곡물창고가 우크라이나입니다. 그래서 몬산토가 허술한 우크라이나를 통해 유럽으로 들어가려고 공작해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전(前) 대통령이 완강히 거부했어요.

그런데 몬산토 계열에 블랙워터(정규군 수준의 병력과 무기를 보유한 세계 최대 민간 용병회사 ― 편집자)가 있습니다. 전직 CIA 출신하고 전직 공수부대 출신들로 구성돼 있는 블랙워터를 2년 전에 몬산토가 인수·합병했지요. 그 블랙워터 용병들이 이번에 우크라이나에 들어가서 시위를 선동해 대통령을 몰아냈다는 겁니다. 그래서 소위 친미 인사가 새로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 사람은 GMO를 찬성합니다.

그런데 GMO에 대해서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게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입니다. EU는 물론 헝가리나 폴란드 등 동구권 나라들도 마찬가집니다. 지금 거기서는 GMO가 불임이나 난임(難姙)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유방암 등 종양 발생률을 높여 GMO를 도입하면 결과적으로 인종말살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푸틴은 의회 결의를 거쳐 GMO 식품은 판매도, 생산도, 가공도, 거래도 못하게 했습니다. 푸틴이 지금 러시아계 동포들을 보호한다는 정치적인 명분을 걸고 우크라이나 반군을 지원하고 있지만 근본 배경에는 이렇게 GMO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거죠.



― 무서운 세상이군요. 저도 GMO가 큰 문제라는 것은 알지만, 그것 때문에 이런 식으로 국가질서가 유린되고, 국제정치가 뒤틀리고, 진실이 무너지고 있는 건 몰랐습니다. 언론들이 늘 그냥 받아만 쓰지, 진실을 캐낼 의지도 능력도 없으니 말이죠. 근데 저도 뉴스의 이면을 꽤 살펴보려고 하는 편인데, 선생님은 참 어디서 그런 놀라운 이야기들을 듣게 되시는지….



〈RT〉 뉴스, 〈Natural〉 뉴스 등을 읽으면 다 나와요. 그리고 저는 옛날에 유엔(식량농업기구)에 근무할 때 맺었던 인연들이 있어요. 이제는 늙어서 그 사람들이 달리 할 일이 없으니까 IT로 이런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그럽니다.



― 아주 좋은 네트워크를 갖고 계시군요.







GMO, 불임과 난임을 유발한다

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때도 우리 정부보다 먼저, 더 정확한 정보를 파악해서 대안을 적시할 수 있었던 게 그 덕분입니다. 지금도 그렇지요. 원하신다면 내가 받은 자료, 특히 GMO 관련 자료는 얼마든지 보내드릴 수 있어요.

분명히 말하지만, GMO는 절대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해서는 안됩니다. 1998년에 영국의 푸스타이 박사가 이미 실험했던 것을 시작으로, 그 후 여러 독립연구가 있었죠. 그중 가장 완벽한 실험으로 인정받은 게 재작년 프랑스 파리대학의 셀라리니 교수팀이 발표한 연구결과죠. 실험용 쥐 2,000마리한테 2년 동안, 사람으로 치면 약 10년 동안, 계속해서 GMO옥수수와 GMO콩을 먹여봤는데, 결과는 각종 종양이 생기고, 장과 위장이 비틀어지고, 유방암이 생겼습니다. 피해는 암컷과 수컷이 7 대 3 비율로 나타나요. 특히 여성들은 절대로 GMO 콩나물, GMO 두부, 두유를 먹어선 안됩니다. 동물실험 결과로 볼 때 여성이 훨씬 더 취약합니다. 2세로 가면 자폐증과 불임증이 나타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종자를 계속 팔아먹으려고 GMO는 모두 불임이 되도록 미리 조작돼 있거든요. 유럽과 중국, 러시아에서도 동물실험을 한 여러 자료가 있지만, 가장 완벽에 가까운 게 셀라리니 교수의 실험이라고 합니다. 그 실험은 몬산토 스스로가 GMO의 효과가 좋다고 설명하기 위해서 썼던 수법을 그대로 썼으면서도 전혀 다른 결론을 얻어낸 것이니까요.



― 셀라리니 교수가 그런 독립적인 연구를 수행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전에 영국의 과학자 푸스타이는 GMO가 유해하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하자마자 목이 잘려버리지 않았습니까. 프랑스에서는 독립적인 과학실험이 어느 정도 허용되는 모양이죠?



프랑스가 그런 면에서는 좋은 나라죠. 그리고 지금 GMO는 주로 미국계 다국적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있겠죠. 몬산토, 듀퐁, 신젠타, 다우, 비앤에프 등 소위 다국적 농약·화학회사들이 제초제·농약을 겸사겸사 팔아먹기 위해 유전자조작 종자를 만들어내고 있죠. 그런데 종자 만들어낼 때 제초제에 강한 것, 병해충에 강한 것, 내한성을 가진 것들을 만들어내지만, 공통적인 것은 종자가 불임이 되도록 하는 거죠. 그래야 계속 GMO 씨앗을 팔아먹을 수 있으니까.

근데 웃기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부부입니다. 그들은 몬산토 주식 20퍼센트인가 샀어요. 그러고는 아프리카에 자선한다고 GMO 곡식을 무상원조하겠다고 하니까, 짐바브웨가 거부해버렸죠. 우리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사람이 먹어서는 안될 GMO 따위는 안 받겠다고요. 빌 게이츠 부부가 그런 망신을 당했습니다. '인도주의적 자선'을 표방했다가 웃음거리가 된 거죠.

지금 몬산토의 1년 매출은 대한민국 연간 예산과 맞먹습니다. 어마어마하죠. 그러니까 블랙워터 같은 용병회사도 경영하고, 한국에도 모 교수에게 GMO 연구재단 만들도록 지원하고, 그리고 바이오 분야 연구자와 학생들에게 정기적으로 장학금 주고, 농업연구기관을 비롯해서 학계, 관계, 언론계에 장학생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 한심한 이야기네요. 학자, 전문가, 언론인 등 소위 사회 엘리트라는 자들이 늘 돈이라면, 권력이라면, 그 앞에서 독립성과 자주성을 잃고 인간적 자존심도 내팽개쳐버리는 이 빈곤한 정신적 풍토가 개탄스럽습니다.



몬산토는 광화문에 사무소를 차려놓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은 매년 794만 톤씩 GMO 콩과 옥수수와 카놀라를 십수 년째 수입하고 있는데, 그중에 식용은 약 190만 톤입니다. 사료용까지 포함해서 해마다 794만 톤씩 들어옵니다. 한국이 세계에서 두 번째 GMO 농산물 수입국이에요.



― 첫번째는 어딘데요?



일본이죠. 근데 일본은 식용보다도 주로 사료용이에요. 그러니까 몬산토 쪽에서 볼 때 지금 한국은 아주 충성스런 '봉'이죠. 그래서 광화문의 좋은 위치에 자릴 차지하고, 각종 장학생 만들기 사업을 벌이고 있죠. 저한테도 초기에 식품산업협회를 통해서 접근해왔어요. 제가 속해 있는 경실련에서 GMO 표시제를 주장하니까 그거 좀 하지 말아달라고요. 그래서 당신네 협회가 결정한 것이냐 아니면 GMO 종자를 판매하는 쪽에서 부탁한 거냐고 물었더니, 어물어물 대답을 못해요. 몬산토가 돈을 댄다는 말을 할 수 없겠죠.









'몬산토'의 장학생들

― 농과대학 교수들도 많이 넘어갔죠?



농과대학의 바이오 전공 교수들, 또 식품영양학 연구자들 중 상당수가 넘어간 것 같아요. 어떤 고명한 영양학자도 우리나라에 GMO를 도입·개발해야 식량안보가 달성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고 있어요. 바이오 분야에 전문성도 없던 사람인데, 대학을 은퇴하자 부랴부랴 연구재단을 만들어 GMO 홍보원 노릇을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선 잡초가 농사를 망치니까 어차피 제초제는 써야 한다는 논리죠. 몬산토가 만든 제초제를 쓰면서 거기에 저항성을 가진 GMO 종자를 뿌리면 증산이 된다는 논리죠.

그러나 그런 몬산토의 신화도 벌써 깨졌어요. 2~3년 동안은 잡초 제거에 효과가 있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글리포세이트라는 몬산토 제초제에 내성이 생긴 새로운 잡초가 나와버려요. 슈퍼잡초죠. 그리고 제초제 때문에 토질이 악화되니까 생산성이 떨어져요. GMO를 재배하지 않는 EU의 과거 10년간의 곡물생산성과 GMO를 사용해온 브라질과 미국의 곡물생산성을 비교해보면 그 결과가 확연해요. 이젠 유럽의 농업생산성이 훨씬 앞서 있어요. 결국 GMO 농사가 식량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건 거짓말이죠.

그런데 이것을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이 보도를 안해요. 그리고 GMO가 인체에 무해하다고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어떤 관계기관도 과학적인 실험을 해본 적이 없어요. 대한민국의 어느 연구기관 또는 학자들에게도 그런 실험을 하라고 연구비가 주어지지도 않고요.



― 자기들한테 불리한 연구비를 줄 리가 없죠.



독립적인 연구는 국가가 지원해야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게 국가의 책무니까요. 그러나 많은 민간단체들이 그렇게 요구해왔는데도 한국정부는 귀를 닫고 있어요. 이게 다 국가가 기업(자본)에 휘둘려 있는 탓이겠죠.



― 지금 우리 정치권에도 로비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겠네요?



네. 현재 야당 국회의원 남윤인순, 홍종학 의원 등이 GMO 표시제를 하자고 입법 발의를 했는데도, 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야당 지도부가 말 한마디도 거들지 않는데, 무지한 탓인지 약 먹은 탓인지.



― '소비자의 알 권리' 차원에서 표시제를 하자는 건 지극히 정당한 요구인데요.

물론이죠. 그리고 GMO 표시제가 실제론 특별한 추가비용이 드는 게 아닌데도 생산비용이 많이 든다고 식품업계가 반대해요.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표시제를 반대하는 로비가 주로 재료의 70% 이상을 외국산으로 쓰고 있는 식품산업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어요. 몬산토는 직접 자기 얼굴을 내밀지 않아요. 관련 학계, 식품영양학자, 바이오 학자들 그리고 농약 및 GMO 연구기관 사람들이 알아서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농약은 과학이다!", "GMO, GAP도 친환경 농산물이다"라고요.



― 몬산토의 지배력이 생각보다 더 심하네요.



저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서 국민안전에 관련된 거의 모든 재앙이 코퍼라토크라시(corporatocracy)로 인해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용어를 김 선생님이 좀 잘 번역해주세요.



― 기업자본독재 혹은 기업전제정치라고 할까요.



데모크라시가 아니라 "기업(corporation)이 세상을 지배한다"라는 뜻이죠. 기업자본이 정치와 언론과 사회와 경제, 문화 모든 것을 지배하고, 우리 일상생활까지 지배한다는 뜻이거든요.



― 지금 한국에 들어오고 있는 GMO는 옥수수하고 콩하고….



카놀라도 있어요. 나는 참치통조림을 먹지 않아요. 깡통 열면 가득 찬 기름이 전부 GMO 카놀라기름이거든요. 캐나다산 카놀라는 거의 100%가 GMO예요. 그리고 하와이에 카우아이라는 섬이 있는데 거기서 생산되는 파파야도 GMO예요. 미국 사과도 그렇고. 그리고 미국의 양식 연어를 한국의 젊은이들이 지금 많이 사 먹는데, 이 양식 연어가 GMO일지 몰라요. 이러다간 우리 젊은이들이 장차 실험실 쥐 신세처럼 될지 모릅니다. 불임·난임률에 대한 보건복지부 통계 한번 보세요. 5년 이내에 아이 못 갖는 신혼부부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어요. 그래서 체외수정을 하는데, 또 이게 3,000만원 하다가 요즘 5,000만원으로 올라갔어요.



― 불임은 환경호르몬 영향도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가지 영향이 있죠. 그중에서 특히 GMO의 영향이 크다는 것은 셀라리니 교수 실험결과에서 밝혀졌어요. 우리나라에 GMO가 들어온 게 15년이 훨씬 넘었거든요.



― 그러니까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쌀 이외 농산물이 모두 개방되기 시작하면서…. 중국도 지금 GMO를 수입합니까?



우선 확실하게 수입하는 것은 GMO 옥수수, 대두 그리고 면화씨. 직접 먹는 것 아니니까 사료용으로 수입하는데….



― 면화씨로 기름을 내지 않습니까?



그게 문젭니다. 그리고 GMO콩을 수입할 수밖에 없어요. 워낙 중국이 콩기름 수요가 많으니까. 그런데 자기들이 안전성에 대해서 인정한 것만 수입해요. 인정하지 않은 GMO콩이 들어오면 바로 항구에서 돌려보내요. 최근에도 몇 차례 돌려보냈어요.



― 인정하는 GMO라는 건 뭡니까. 함유량을 말하는 겁니까?



모르겠어요. 외신 자료를 보면 중국에서 인정하는 어떤 특정 품종이라고 해요. 지금 탐문중이지만, 아마 자체의 분석결과가 있는 모양이에요. 근데 한국도 농촌진흥청 실험실에서 개발해놓은 GMO벼가 있어요. 황금쌀(golden rice) 종자라는 거죠. 그 외에 70여 품목 150여 GMO 종자가 개발되어 있다네요.

그런데 제가 농림부장관하면서 남겨놓은 게 뭐냐면 GMO 실험용 연구는 통상압력 방어용으로 학술적으로 계속해도 좋다, 다만 이것을 상용화하고자 할 경우엔 인체 및 생태계에 대한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규명된 다음, 생산자 및 소비자 단체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지침이에요. 미국으로부터 GMO를 받으라는 압력이 들어올 때마다 우리도 GMO 기술이 있지만 상용화하지 않고 있다, 왜냐면 생태계와 인체에 대한 안전성이 증명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논리로 미국의 통상개방 압력을 막았었죠. 우리 정부가 필요하다고 인정한 조건의 수량만 수입했죠. 국내산 GMO 종자, 이것을 상용화하려고 할 경우엔 생산자·소비자 단체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이 지침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소비자·생산자 단체들은 다 알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진흥청 자체 내에 GMO 상용화(실용화)사업단이 생겼다 하네요.







'창조경제'의 허구

― 소위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하겠네요.



'창조적인 씨앗' 장사죠. 그런데 몇해 전에 대한민국 소비자단체장들이 초청을 받아 미국에 다녀왔어요. 그런 다음 GMO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어요. 그때 초청여행을 거절한 예외적 인사가 송보경, 김재옥 씨들이에요.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모임'(소시모)을 이끌어온 분들이죠. 저도 '소시모' 창립멤버입니다.

그 '소시모'하고 경실련의 소비자정의센터가 주동이 돼서 '바이오 안전성 시민단체 연대회의'가 만들어졌어요. 39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모임이죠. 그래서 각 단체마다 GMO 의심 품목을 하나씩 조사하여 발표하고 있는데, 최근에 언론에도 보도됐지만, 어린애들이 즐겨 먹는 미국산 시리얼들이 전부 수입 옥수수와 수입 콩을 쓰면서 GMO 함유 표시가 돼 있지 않은 걸 밝혀냈지요. 심지어 어느 나라 것인지도 표시가 안돼 있어요. 경실련은 제일 먼저 두유를 조사했는데, 한살림 등 생협 제품을 제외하곤 거의 GMO콩 사용 제품이었어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지난 5월 24일 세계 200여 도시에서 'Non―GMO, Anti―Monsanto' 집회가 동시에 열렸어요. 서울에서도 열렸습니다. '슬로푸드연구원'을 비롯해서 50여 단체 대표들이 광화문 몬산토 사무소 앞에서 "GMO 물러가라, 몬산토 물러가라"며 데모를 하며 가두행진에 나섰는데, 경찰들이 와서 "저기 고엽제피해 전우회가 행사 중인데 충돌이 일어날지 모르니 행진에 나서지 말라"고 종용했답니다. 근데 고엽제가 뭡니까? 제초제와 사촌지간 아닙니까? 바로 몬산토가 전세계 고엽제(Agent Orange)의 80%를 공급하고 있는데….



― 자기들에게 피해를 입힌 그 기업을 옹호한다? 재미있네요.(웃음)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쓰는 사료는 전부가 GMO라고 봐야 됩니까?



곡물의 경우는 그렇죠. 배합사료를 만들 때 주로 옥수수를 많이 쓰고, 대두박을 섞습니다. 그래도 이런 현실이지만 희망적인 움직임도 있어요. 예를 들면, 지금 광주에서 우리가 기르는 닭들한테는 절대로 GMO 못 먹이겠다며 양질의 사료를 러시아에서 직접 계약·재배하여 가져와서 양계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화학제품, 항생제 없이 채란용 닭을 키우죠. 두부도 만들어 회원들에게 직접 배달을 해요. 꽤 규모가 큰 양계농장이에요.



― 러시아라면 연해주를 말씀하시겠죠. 연해주에서 한국인들이 농사 많이 짓습니까?



한국인들은 많지 않고요. 한국인들이 가서 땅을 계약해갖고 북한 노동자들이 일을 주로 하고 있지요.



― 거기서 오는 농산물이 몇 퍼센트나 됩니까?



몇 퍼센트라고 할 만큼은 안되죠. 그런데 예전에 대륙연구소의 장덕진 (전 농수산부 차관, 농업진흥공사 이사장) 씨가 중국의 삼강평원 개발계획에 착수한 적이 있죠. 옛 발해 땅인데 한반도보다 훨씬 더 넓은 땅입니다. 거창한 북쪽 황무지라는 뜻으로 '북대황(北大荒)'이라고 불렀죠. 그곳을 장덕진 씨가 배짱 좋게 50년 장기계약으로 빌렸죠. 추가로 50년 연장이 가능한 계약도 맺었습니다. 근데 노태우 정부의 눈 밖에 나서 계약금이 떼일 입장이 되었어요. 그래서 장덕진 씨가 어찌어찌 수출입은행에서 지원을 받기로 돼 있었는데, 정권이 바뀌었어요.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쌀 수입개방만은 절대로 막겠다고 해놓고는 못하게 되니까 대국민 사과를 하고, 급하니까 농어촌발전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위원장감을 모색하다가 장덕진 씨에게 맡아달라고 했어요. 그걸 장덕진 씨가 거절했어요. 그게 탈이었어요. 장덕진 씨는 몽땅 사재까지 털어 삼강평원에 몰입하던 때라 거절했을 것인데, 그게 밉보인 거죠. 그래서 수출입은행에서 돈을 받기로 한 약속이 대통령의 '안돼'라는 한마디로 물거품이 돼버렸어요. 중국정부는 장덕진 씨의 인품을 믿고 10년을 기다려줬는데 결국 나무아미타불이 돼버렸죠. 이미 삼강평원을 가로지르는 큰 수로도 개발해놓았는데 그대로 중국 것이 돼버리고 말았죠. 지금은 그곳이 중국의 대곡창이 되어 '북대창(북쪽의 큰 곡창)'이라고 부릅니다. 장덕진 씨는 그로 인해 좌절되었고.



― 그거 아깝네요. 국가가 왜 그리 생각이 없어요. 개인의 문제가 아닌데….



100년, 아니 10년도 내다보지 못하는 게 한국정부 지도자들입니다. '북대황'을 찾아내 소개를 했던 제가 잘못이죠. 그때 어떤 신문은 1면에다가 "영하 40도 동토에 웬 농사냐" 하고 반대 기사를 썼어요. 내가 캐나다에서 2년 넘게 살았는데, 거기는 삼강평원보다 위도가 더 높아서 겨울에 영하 50도까지 내려가지만, 여름엔 농사를 잘만 짓는 나라입니다. 농사를 짓는 여름엔 일조시간이 더 길어서 우리나라 여름철에 사흘 걸려 자랄 것이 거기선 하루에 다 자란다구요.











농지해외개발의 실태

― 궁금해서 여쭙는데 외국에 우리 기업들이 나가서 땅 확보해서 농사짓는 것, 해외개발이 어느 정도 됩니까?



박정희 정부 때 아르헨티나 땅 60만 평을 정부 돈으로 샀어요. 그걸 개척하기로 하고, 당시 농업경제 전문가를 농무관으로 파견했어요. 그런데 비전문가들이 부랴부랴 땅을 산 탓에 알고 보니 염분이 많은 간척지였어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을 산 것이에요.



― 어떻게 잘 알아보지도 않고 샀을까요?



대통령이 한번 관심을 보이고, 또 브로커가 좋은 땅이라고 하니까 현장조사도 안해보고 사버린 거죠. 그게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농업투자였어요. 결국 실패했는데, 그 뒤 노태우 정권 때 그런 오지를 개발하는 방법은 안되겠다고 아예 기존 농지를 사야 한다면서 다시 선경㈜을 앞세워 미국 워싱턴주의 농장을 20만 평인가 샀거나 빌렸어요. 밀과 옥수수 밭인데, 거기서 농사지어 수확해서 가져오는 것으로 했어요. 정부가 선경을 도와주고 선경이 주체가 되었죠. 그런데 그게 다국적 곡물기업들이 들여오는 농산물과 가격경쟁이 되지 않았어요. 두산과 삼성이 다국적기업 농산물들을 받아 파는데, 선경 것이 가격경쟁이 안된다는 거죠. 그래서 수지가 안 맞아 손들어버렸어요. 그게 두 번째의 공식적 해외농업개발이었죠. 세 번째가 장덕진 씨의 삼강평원이었고.

그 다음에 '월간 상업농경영'이라는 잡지를 지금도 발행하고 있는 국제농업개발원의 이병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제가 재직하던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에서 석사를 했어요. 그런데 고려합섬의 장치혁 회장이 장덕진 씨가 삼강평원 개발을 계획할 때 우수리강 오른쪽 땅 연해주에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자기 부친이자 역사학자인 장도빈 선생이 항일독립운동을 하던 곳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장덕진 씨와 부딪쳤어요. 그 영역 조정을 제가 했죠. 장덕진 씨는 말은 안했지만 발해의 고토에도 큰 애착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욕심을 줄여라, 우수리강 왼쪽 삼강평원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느냐고 조언을 했지요.

근데 당시만 해도 우수리강 이하는 황무지로 버려져 있었어요. 예전에 우리 동포들이 살다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를 당한 뒤에는 그곳이 사실상 방치돼 있었던 거죠. 그래서 영농의 타당성을 살피러 건국대학교 김모 교수 등 농업전문가들이 연해주에 갔는데 그때 제가 실무자로 이병화를 추천했어요. 그것을 계기로 이병화가 연해주 전문가가 된 거예요. 뇌물이 쉽게 통하는 구소련 관리들과 친해졌죠. 그래서 이병화 씨가 매년 10여 차례씩 오가며 연해주에 농사짓고 싶은 기업가들에게 소개를 했어요. 그래서 거기서 농사지어서 한국에 들여오면 수지가 맞을 거라는 단순계산을 믿고 10여 개의 기업들이 연해주에 진출했지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미국이 연해주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한국으로 들여올 때 미국산 농산물을 한국으로 수입할 때와 똑같은 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한 거예요. 원산지가 러시아니까 미국에서 들여온 농산물하고 동등한 관세를 매겨야 한다며 가트(GATT) 규약을 들이댔어요. 이들이 초기 개발비용을 회수하려면 한 10년 걸리는데도 막무가내였죠.



― 그러니까 1990년대 중반쯤이었겠군요. 그래서 미국이 관세 매겨야 한다고 해서 결국 물러났습니까?



네. 그래도 하나는 틀어잡았어요. 옥수수, 콩을 사 들여오되 품질과 안전성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갔죠. 흔히들 가격경쟁력을 말하지만, 먹는 것은 무엇보다도 품질과 맛과 향기와 안전성이 중요하거든요.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한 사회가 되면 자연히 그렇게 되지요.



― 그 이외 해외농지는 어떻습니까? 한때 대우 계열회사가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의 독재자에게 뇌물을 주고 전체 농지 중 절반을 헐값으로 99년인가 장기 임차를 했다가 국제적인 지탄을 받고 철수한 일도 있잖습니까?



대우는 동남아시아 쪽을 겨냥하기도 했지요. 그런 나라들은 기본적으로 식량공급이 불안정한 나라입니다.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엔 식량 때문에 폭동이 자주 일어났어요. 기본적으로 사회가 불안한 나라에서 농산물을 생산해서 가지고 나가려고 해보십시오. 그곳 국민들이 용인 못합니다. 그래서 대우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쪽에 욕심을 내다가 그만뒀어요. 그리고 우리 정부가 호주 쪽에서 쌀농사 해볼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논농사는 물이 제일 중요한데, 물싸움 벌어지면 환경론자들한테 밀려납니다. 결국 물 문제 때문에 중단했죠. 그래서 제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연해주나 삼강평야였죠. 남미에서 실패하는 것을 보면서 해외농지를 사거나 빌려서 농사짓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실은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충돌 때문에 어렵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흔히들 경제성만 가지고 해외개발을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죠.

근데 유심히 살펴보니 일본이 아주 영악해요. 일본은 아예 다국적 곡물 메이저를 사버립니다. 원래 세계를 주름잡던 곡물 메이저가 10여 개 있는데, 그중 2개를 미쓰비시(三菱)와 이토추(伊藤忠商事)가 사버렸죠. 이렇게 미국에 베이스를 둔 다국적기업을 장악해서 각 생산지마다 보유하고 있는 엘리베이터(곡물저장창고)를 확보하여 유통물량 확보를 하는 방법이죠. 그래서 제가 계속 건의를 했죠. 직접 투자하려고 하지 말고 일본처럼 유통과 상업부문에 투자해서 무역을 컨트롤하자. 농협에 그걸 맡기자고 했죠. 그런데 그 이야기가 나온 지 십몇 년이 흘렀는데도 못하네요. 농협 쪽에서는 정부가 돈을 줘야 하지 리스크가 부담스러워 못하겠다는 식입니다. 유통공사도 시작하다 그만두었어요.

근데 우리나라에서 곡물을 전문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기업이 두산이거든요. 그 다음에 삼성물산. 이런 기업들은 미쓰비시나 이토추처럼 유통과정에 투자할 생각이 없고, 그냥 편안하게 매판자본 역할이나 하려고 해요. 다국적기업이 가져오면 수수료 물고 한국에서 판매를 독점하는 것 말이에요.







한국의 대기업, 매판자본

― 결국 자기 동포들 등쳐먹는 짓이 더 쉽다는 거겠죠. 한국의 대기업이 장사하는 방식이 참 치사하네요.



그렇게 하면 위험이 없으니까. 앞잡이 노릇을 하면 안전하죠. 그래서 한국의 '코퍼라토크라시'는 뭐냐면 전부 외국자본, 외국 대기업하고 관계되어 있습니다. 가령 우리나라에서 농민들이 쓰는 화학농약 중 원자재가 국산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대부분 다 다국적기업인 신젠타, 몬산토, 듀퐁 등 외국 화학회사들이 만든 원자재를 우리나라에서 수입해 밀가루를 타고 희석해서 팔아먹는 거예요. 현재 우리나라의 농약회사들 대부분이 매판업자들입니다. 식품회사든 뭐든지 거의 다 그래요.



― 비료는 우리나라에서 생산하잖아요?



그건 질소비료들이고, 나머지 가리비료나 인산비료는 원재를 수입해서 희석해 팔고 있습니다. 농업 이외에서도 마찬가집니다. 각종 화학제품, 무기 등등, 세계를 실제로 지배하는 기업들은 다국적, 초국적 기업들입니다. 미국의 조지 소로스 같은 투자의 귀재가 앞으로 농업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하니까 박근혜 대통령도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앞으로 우리도 농업을 수출하는 미래성장산업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쌀 관세화(전면개방)는 말하자면 떡볶이를 만들어 수출 많이 해서 대처하자는 식이죠.

근데 왜 몬산토를 비롯한 미국의 초대형 다국적 대기업들이 농업에 투자하는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중동에서의 국지전 빼고는 오랫동안 평화시대가 계속되는 바람에 그동안 투자했던 무기산업이 생각만큼 돈벌이가 잘 안돼요. 전쟁이 나야 가장 큰 돈벌이가 되는 건데. 금융투자도 2008년에 위험이 드러났어요. 그래서 농업으로 눈을 돌린 거죠. 사람은 365일 하루 세끼 먹어야 하고, 세계 인구도 늘고 소비수준이 높아지면 육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납니다. 고기 수요가 늘면 종래보다 4~8배의 곡물 수요가 생기니까 곡물 생산과 유통에 미래의 농업성장동력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 제초제와 농약 그리고 GMO 종자산업의 전망이 좋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을 가공해서 파는 겁니다. 맛과 색깔과 향기를 화학적으로 조작하고, 인공첨가물 등으로 식품업을 확대합니다. 그리고 비타민이나 약품 만드는 분야도 액상과당을 쓰면 돈이 많이 드니까 값싼 GMO옥수수에서 추출해서 각종 약품을 만들어요. 작년에 고려은단㈜에서 "우리는 GMO가 아닌 옥수수에서 추출한 원료로 비타민C를 만듭니다, 재료가 다릅니다"라는 광고를 냈지요. 그러자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항의를 하고, 모처에서 그 광고 삼가도록 조처를 했다나요.



―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GMO만 보고 있으면 '코퍼라토크라시'로 인한 온갖 부조리, 비리가 다 보입니다. 약품회사건 식품회사건 대부분 GMO를 쓰고 있으니까. 요즘 인기 있는 막걸리에 들어가는 아스파탐도, 가축이나 젖소 성장촉진제도 GMO로 만들어요. 유기농제품에도 쓰고 있는 대부분의 올리고당, 포도당, 구연산, 이런 것도 원래는 과일에서 추출된 것이어야 하지만 요즘은 전부 값싼 GMO옥수수에서 추출해 만듭니다.



― 저도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습니다. GMO를 피할 길이 없군요. 이렇게까지 무방비로 침투됐을 거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유기농은 없다?

미국 같은 보수적인 나라에서도 소비자의 80%가 GMO에 반대하는데도 정치인들의 우선적 관심사는 기업의 이익입니다. 대부분이 주사약을 맞은 거죠. 몬산토 쪽에서 보면 문제는 EU입니다. 그래서 전략을 바꿨어요. 2012년 내부문서를 보면, EU는 씨도 안 먹히니까 EU를 회유하는 데 쓰는 자원을 당분간 GMO를 제일 많이 수입하고 있는 일본, 한국, 중국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중국에서는 정치싸움에 GMO가 끼어들어 후진타오(胡錦濤)에 맞선 왕리쥔(王立軍), 보시라이(薄熙來)가 GMO 반대편이었는데 쓰러졌고, 지금 시진핑(習近平)은 GMO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 중립적 입장을 표방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사천리예요. 이명박이나 박근혜 정부는 말할 것도 없지만, 노무현 정부 때도 아무것도 몰랐어요. 무능한 진보였죠. 지금 야당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몬산토에서 써먹어온 상투적 수법이 '유기농 죽이기'입니다. 사람들이 GMO를 싫어하는 이유는 우선 제초제·농약의 독성 때문이고, 두 번째는 유전자조작 식품의 인체 위해성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정반대에 유기농이 있죠. 당연히 몬산토의 결론은 유기농을 죽여야 GMO와 제초제 등 농약산업이 산다는 겁니다. 그래서 스탠퍼드대학에 5억 달러 연구용역을 주고, 또 3년 뒤에는 옥스퍼드대학에 용역을 줘서 유기농 평가를 의뢰했어요. 스탠퍼드대학의 연구보고서는 돈 준 쪽의 주문대로 유기농산물이 일반 농산물에 비해서 영양가가 별로 차이가 없다, 들이는 노력과 자원만큼 효과도 별로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죠. 이 결론을 스탠퍼드대학 이름으로 전세계에 뿌립니다. 옥스퍼드대학의 연구는 유기농이 농약과 화학비료 안 쓴다고 하지만 실은 그 효과가 별것 아니라고 발표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지금 이 논리를 펴고 있는데, 농진청의 일부 학자 관리들이 앞장을 서고 있죠. 국립대학의 농약·화학 교수들도 가세하고요. KBS가 '친환경유기농의 진실'이라는 2부작 프로그램을 7월 31일과 8월 7일에 방영했습니다. '유기농은 없다'가 원래 제목이었답니다. 공공연히 담당 PD가 그렇게 말했어요. 전국의 2,500여 유기농민들과 환경농업단체연합회가 KBS로 찾아가 데모하고, 간부들을 만나 고발하겠다고 했어요. 작년 1년 동안 우리 유기농 농가들을 찾아다니면서 부실한 방법으로 논밭의 토양을 조사하고, 그것을 화학농법을 옹호하는 교수들한테 의뢰하여 실험용 기계를 써서 ppm도 아니고 ppb 단위로 농약성분을 찾아내 가지고 농약이 나왔다고 과장된 주장을 한 겁니다. 그러니 유기농 농가들이 당연히 반발했지요.

KBS는 할 수 없이 프로그램의 일부 내용을 바꿔서 정부의 인증정책 공격에 집중했는데, 어쨌든 유기농을 폄훼하려는 의도가 명백했어요. 특히 땅속에서 농약성분 나왔다고, 그것도 극미량을 측정하는 실험실용 기계를 가지고 농약이 나왔다고 과장했지요. 선진국에선 농약의 반감기라는 것 때문에 하지 않는 조사방법입니다. 또 그것이 유기농 인증 이후에 검출된 것인지 인증 이전에 있었던 농약이 잔류한 것인지도 밝혀내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유기농가 인증 밭에서 농약이 나왔다고 했으니 유기농 농민들이 기가 찰 노릇이죠. KBS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은 제주도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만든 것인데, 취재비를 포함해서 비용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왜 하필이면 그런 주제를 정했을까요? 그래서 다들 여기에 GMO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몬산토 등 다국적 제약회사들과 국내 식품산업계 및 GMO 수입회사들이 개입돼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 그런데 몬산토가 쌀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쌀은 아직 건드리지 않고 있어요. 지금 몬산토가 밀 등 서구인들의 주곡을 건드릴까 말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미국 워싱턴주에서 일부 GMO밀을 실험하였지만. 미국 소비자들의 저항이 워낙 겁나거든요. 그래서 한국과 중국, 일본에 수출했는데 이명박 때 한국만 받아들였고 중국과 일본에서는 반송처리 되었죠.

유전자조작 쌀은 우리 진흥청이 스스로 만들었어요. 그 외에도 벌써 150여 종의 GMO 종자를 가지고 있으니 GMO 숭배자들은 이를 상용화하고 싶어서 안달일 겁니다. 좀 있으면 청와대로부터 농림당국을 통해 실용화하라고 지시가 나올지도 몰라요. 그러면 소비자단체, NGO들이 또 싸워야 할지 모릅니다. 원래 소비자단체와 생산자단체의 동의를 받아 상용화해야 한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지침이었는데, 문서가 없다고 나올지 모르죠. 그러나 정부방침은 한번 정해지면 건강, 생명, 환경문제에 관한 한 문서에 관계없이 따라야 하는 거예요.









쌀 전면개방, 예견되는 농사의 종언

― 이제 쌀 문제 좀 말씀해주시죠. 정부에서 내년부터 쌀 관세화 시작하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쌀 시장이 완전개방되면 우리 농업, 농촌, 농민이 더이상 존립할 수 없을 게 분명한데, 정부는 왜 이렇게 국민들의 동의도 없이 밀어붙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기본부터 따져봅시다. 우루과이협상 하면서 유일하게 예외를 인정받은 게 뭡니까. 쌀밖에 없습니다. 미국이 영화산업은 예외로 인정하기 곤란하니까 아예 빼버렸고요. 프랑스가 막판까지 우리 때문에 UR 협상이 깨지는 한이 있어도 프랑스의 영혼인 문화예술, 즉 영화시장을 개방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버티는 바람에 아예 협상 막판에 영화를 빼버렸지요. 그리고 쌀만 관세화(개방) 예외로 남았어요.

미국의 눈으로 볼 때는 당시 한국의 쌀 수출 비중은 일본의 10분의 1도 안되었죠. 그래서 우리는 개발도상국으로 분류가 되었습니다. 일본한테는 예외를 인정해주되, 3~4년 후 일본이 완전개방하면 그때 국내가격과 수입가격 차이에 따른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인정한다. 일본은 이미 우루과이라운드 전에 쌀을 수입한 적이 있으니까 그 제안이 가능했죠. 그리고 그때 UR 이행기준이 1986~1988년이었어요. 이 기준은 우루과이협상의 모든 개방계획이 타결되기 10년 전의 것이죠. 일본은 미일 간의 밀약대로 관세화 유예조건을 몇년 지키다가 높은 관세율(800% 상당)로 완전개방했죠. 사실상 의무 수입 물량(최소시장접근물량)도 별로였어요.

우루과이협상의 첫번째 목표가 예외없는 관세화, 두 번째가 정부의 농산물가격 지원 및 생산비 보조금지(de―coupling)였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쌀 시장 개방 예외로 인정을 받아 관세화가 유예되고, 그 대신 기준연도의 쌀 소비량의 4%를 2004년까지 단계적으로 수입하는 것으로 낙착되었죠. 그게 최소시장접근물량(MMA)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된 것도 전국의 180여 농민, 시민, 환경, 종교단체들이 치열하게 싸운 덕분이죠. 그러다가 10년이 지나서 2004년에 다시 협상을 하게 되는데, 당시 노무현 정부는 통상협상 개념이 전혀 없었어요. 협상의 기본이 여러 개의 카드를 갖고 있다가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수시로 변통해 그것을 적극 활용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협상팀은 처음부터 아무 전략도 없이 무조건 쌀 의무수입량을 4%에서 8%로 늘렸어요. 그것도 1986~88년의 우리 국민 수요량 기준을 그대로 둔 채 8%로 늘렸어요. 근데 그때는 국민 1인당 쌀 수요가 많이 줄어서 환산하면 실제로는 8%가 아니라 12%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그때 내가 글을 써서 이미 UR 타결이 10년이나 지났으니 1986~88년 기준을 고쳐서 이제는 그보다 10년 뒤 즉, 1996~98년을 기준으로 설정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당초의 4%를 고수하라고 했어요. 왜 4%냐. 당시 모든 우루과이라운드 이행계획이 2004년에 만료되고 다시 제2의 우루과이라운드에 해당하는 DDA(도하협상)가 성립돼야 했지만, 이것이 지연돼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면 모든 약속들이 1993년 타결될 때의 이행계획을 2004년까지 유지하도록 돼 있습니다. 당시 미국이건 일본이건 영국이건 1993년 타결 때 설정된 그 이행기준이 2004년에 멈춰져 있었어요. 그런데 왜 우리만 최소시장접근(의무수입량) 기준을 두 배로 더 늘린다는 것인가, 원래 예외로 인정받았으니까 우리는 그 기준을 고수할 기득권이 있다, 그러니 계속 4%를 유지하다가 정 안되면 기준연도를 10년 더 늦춰 변경하자고 역으로 제안하면 된다, 10년 전에는 기준을 1986~88년으로 했지만 10년이 흘렀으니 지금은 그 기준을 1996~98년으로 고치는 게 타당하다는 주장을 해야 한다, 그러면 설사 최종적으로 쌀 국내 소비량의 8% 요구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1996~98년에는 1인당 쌀 수요가 크게 줄어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4~5% 수준밖에 안된다, 그런 계산으로 하라는 것이었죠.

이런 게 협상의 기술인데도 장관이 미국 가서 기준연도를 1986~88년 그대로 두고, 의무수입 최소물량을 4%에서 8%로 늘려주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되자 1인당 수요량이 낮아졌기 때문에 1986~88 기준의 8%는 실제로는 2004년으로 볼 때 12%가 되었어요. 정말 잘못된 협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또 10년이 지나서 재협상을 할 때가 왔어요. 내년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원래 관세화 예외로 인정받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2004년에 이행계획이 다 끝나버렸으니까 남들처럼, 타 품목들처럼, 현상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야지요. 잘못된 협상이었지만 노무현 정권 때 정해버린 8%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고, 그 대신 이번에는 기준연도를 10년 전, 즉 2006~2008년으로 바꾸자고 주장을 해야 합니다. 설사 이것을 끝내 관철시키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자꾸 새 카드를 내면서 상대방과 협상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결렬과 중단을 거듭하면서 협상을 하는 거죠. 그것도 협상전략이거든요. 협상을 계속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이상 기한이 지났다고 페널티를 받지는 않아요. 필리핀도 2년 기한을 넘겨서 타결됐어요. 그리고 정부는 필리핀이 최소시장접근 물량을 2배나 늘려줬으니 우리도 지금보다 2배로 늘리라는 요구를 받을 것이라고 하는데, 실은 필리핀은 매년 쌀이 110만 톤씩 부족해서 수입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부족한 범위 안에서 늘린 거예요. 그것도 관세는 35%를 부과하고요. 우리는 MMA 관세가 단 5%에 불과해요. 자급하고 남아돌고 있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추가로 더 수입해야 하는 사정과 필리핀 상황은 180도 다릅니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도 자꾸 정부는 필리핀 자료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다가 전농에서 초청한 필리핀 대표가 국회 공청회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밝히자 정부의 거짓말이 들통 났죠. 정부는 필리핀도 양보했고, 더이상 관세화를 유예하면 우리가 더 많은 걸 내줘야 한다고 계속 말했지만, 필리핀 대표가 그게 아니고 자기들은 전략상 필요에 의해서 MMA를 늘렸다고 말하니 머쓱해졌죠.

결국 근본문제는 이 정부가 우리 쌀농사를 지킬 의지가 있느냐는 거예요. 정부는 완전개방하게 되면 고율의 관세를 매기면 된다고 주장하는데, 내기를 걸어도 좋습니다. 과연 정부 말대로 그렇게 될 것인지.



― 미국사람들이 관세 내리라고 하면 금방 내리겠죠.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가입하게 되면 불가능하죠.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UR협상 때 유일하게 얻어낸 '관세화 유예라는 예외'를 이번에 정부가 자진 포기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관세가 최소한 400% 되면 외국 쌀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하는데, 천만에, 우리는 그렇게 관세를 주장할 근거도 없어요.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이전에 쌀을 수입해본 적이 없어서 기준이 없고요. 또 설사 미국이 봐줘서 300%로 타결되었다고 합시다. 우리 정부는 대승리라고 선전하겠죠. 그럼 두산이나 삼성물산과 같은 미곡 수입상은 어떻게 할까요? 예를 들어, 쌀을 도정하다 보면 싸라기가 생기죠. 근데 싸라기는 미국서는 사료용으로 거의 내버리다시피 해요. 그러나 우리에겐 엄연히 쌀눈이 있는 현미 쌀이니까 헐값에 관세를 붙여 그걸 수입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현미로 떡 만들고, 기름 짜고, 효소 만들고, 각종 건강식 만들어 팔면 떼돈 벌죠. 중국에서는 3~4년 쌓아두었던 고미(古米)를 못 팔아서 현지에서 가마당 2만여 원에 팔아요. 오래되어 쌀이 노래지니까 이걸 쪄서 표백제를 뿌려요. 이것을 찐쌀이라며 우리나라에 한때 팔았어요. 한국에서 이걸 사다가 막걸리도 만들고 떡도 만들었는데, 그 유해 표백제 때문에 들통이 나버렸어요. 그래서 더이상 공개적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지만, 몇년 동안 큰 재미를 봤어요. 그것을 관세 300% 매겨 봤자 한 가마니에 6~7만원입니다. 우리 쌀이 17만원 하니까 누군들 유혹을 안 받겠어요? 음식점에서는 다투어 싼 중국 고미를 사 쓰지 않겠습니까?



― 그런 관세마저 유지하지 못할 건 뻔하지 않습니까.



시작부터가 틀렸다니까요. 관세를 고율로 하자는 것은 수입을 막기 위한 것이라지만, 결국 둑이 허물어져버립니다. 상인들이 쓰는 수법들이 기기묘묘합니다. 국내업자들이 외국 수출업자들과 짜서 싸라기로 달라, 고미, 고고미를 쪄서 보내달라, 그러면 구멍이 뚫려버리는 거예요. 관세가 설사 500%가 된다 하더라도 안됩니다. 일단 뚫려버리면 국내 쌀값이 폭락할 거고, 농민들에게 생산의욕이 남아있을 리 없죠. 그럼 결국은 국내 쌀 생산이 부족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거꾸로 우리가 사정하면서 외국에서 사와야 됩니다. IMF 위기 때 인도네시아 등 다른 나라에서는 식량폭동이 일어나도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았던 것은 쌀과 연탄을 자급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년부터 쌀 시장이 완전개방 되면 2018년, 이 정권 끝나기 전에 우리나라 벼농사는 결딴이 나 있을 겁니다. 벼농사를 그만두면 그 논을 놀리겠어요? 거기서 돈이 될만한 딴 작물들이 과잉생산되어 결국엔 연쇄적으로 모두 폭락사태를 맞게 되겠죠. 그렇잖아도 작년, 금년 박근혜 정권 들어서 대부분의 채소, 과일들이 반토막 가격으로 떨어졌는데….



― 결국 우리나라는 농민과 농촌이 없는 이상한 사회가 되겠네요. 그런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농촌 존립 자체가 불가능해지죠. 농업이 망한 곳에 농민, 농촌이 있겠어요? 이 사태를 누가 책임지느냐고요? 그때쯤 박근혜 대통령도 담당 장관도 다 무대에서 사라져 있을 텐데. 뭐, 하기는 농업, 농촌이 망할 때를 호시탐탐 노리는 자들이 있죠. 카지노, 호텔 짓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땅 투기꾼들…. 거기에 편승하는 정치인, 법관, 외교관, 언론인….



―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군요.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이런 식으로 가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쉽게 알 것인데…. 지금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21세기는 다시 농업의 시대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떡볶이 수출'이 한국농업의 미래?

그래도 수출만 많이 하면 좋다고 생각하는 거죠. 심지어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떡볶이 수출로 재미를 본 어느 기업을 예로 들며, 쌀이 완전개방되더라도 농업수출을 미래 성장의 동력으로 삼으면 된다고 합니다. 근데 이 정부가 원하는 대로 수출 많이 했다고 합시다. 누가 재미봅니까. 그 원료는 외국산인데. 수출업자인 대기업, 자본가만 재미볼 뿐입니다. 경제가 성장을 해서 GNP가 높아졌다고 합시다. 그게 우리 국민의 개별 가처분소득이 높아진 것입니까, 노동자의 삶의 질이 높아진 것입니까? 대기업 주주들의 이익이 많아진 것일 뿐입니다.



― 게다가 요즘 대기업 주주는 거의 다 외국인들이잖아요.



결국 '코퍼라토크라시'로 인한 필연적 현상입니다.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주식가격 상승뿐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주가를 올리려고 기업한테 지원을 아끼지 않죠. 주가만 오른다면 노동자들 목을 몇백 개 잘라도 상관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수출 많이 하고 성장률 높여 봤자 더이상 일반 국민, 노동자, 일자리 찾는 젊은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불임경제' 현상이 고착될 것입니다.



― 앞으로 수출이 잘될 리도 없잖습니까. 지금 세계경제 전체가 헤어날 수 없는 총체적인 파국에 빠져 있는데, 어떻게 한국 기업만 수출이 잘되겠어요?



또한번 환율과 이자율을 가지고 장난칠지 모릅니다. '코퍼라토크라시'가 작동하면 대기업 자본의 이익 향방에 따라 이자율이나 환율이 대폭 변동하겠죠. 조세정책도 마찬가집니다. 이번에도 정부가 재벌들에게 엄청난 세금감면 혜택을 줬잖아요. 모든 게 '코퍼라토크라시'로 귀결됩니다. 이 총체적 사회적 위기, 국난 사태에 직면하여 그 대안은 오로지 '생명주의'입니다.









대안은 생명주의, 그러나 보수적 접근으로

― 그건 그렇습니다만, 생명주의란 게 이 현실에서 어떻게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그러나 한 가닥 실오라기 같은 희망은 우리 국민들, 소비자들이 스스로 깨우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기업자본 지배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깨어나고 있어요. 다만 지금과 같이 해서는 우리나라 진보정치는 희망이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선거에서 오히려 특권적 보수 정치세력을 지지한다는 게 이른바 '베블렌 효과'라는 것인데, 먹고살기 힘든 계층은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도 고달파서 진보적 정치세력이 말하는 주장이라든지 생명사상을 잘 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도토리 키 재기나 하고 있는 진보세력들한테 질려버렸습니다.



― 예, 뼈아픈 말씀이네요. 선거 때마다 확인되지만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자들의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율은 형편없죠.



거기다가 진보정당이 뿔뿔이 갈라지기까지 해버렸잖아요. 똘똘 뭉쳐서 감동을 줘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자기희생하는 모습이 안 보여요.



― 원래 좌파 쪽 사람들은 돈은 없지만 논리가 강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논리만 강하지 사람의 심리를 모른다는 점이죠. 그러니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없죠.



그러니까 생명주의도 진보주의 방식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생명주의가 성공하려면, 보수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해요. 어머니가 가장 걱정하는 게 자식들과 가족의 건강, 안전이죠. 거기서 출발하자는 거죠. 유기농의 목적이 물론 환경생태계를 살리는 것이지만, 그것은 좀 뒷전으로 돌리고, 이게 건강과 미용에도 좋다고 소비자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GMO나 가공식품 많이 먹으면 어떻게 건강을 망치는지도 말해줘야 합니다.

제가 농림부장관 재직 때 왜 먹거리를 강조했겠습니까. 이게 보수주의 전략이니까요. 제가 몇 년째 아파트 옥상에 농사를 짓고 있는데, 일부 주민들이 한때 반대했습니다. 왜 아파트에서 지저분하게 농사를 짓느냐고.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상추나 쑥갓은 한 달 반 정도면 자랍니다. 거기에 '도시 유기농 시범포'라고 써 붙여놓고, 유기농으로 길렀으니까 누구든지 자유로이 솎아 드세요, 라고 광고했습니다. 그리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수확한 것을 내가 직접 갖다주면서, 이것 드셔보세요, 옛날 어렸을 때 먹어본 맛일 겁니다, 라고 했어요. 먹어보니까 다르거든. 벌레 먹어 구멍이 송송 나 있지만, 이것은 농약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랬더니 여름철 지나고 나서 이런 것 어디서 살 수 있느냐고 물어와서 한살림 생협을 가르쳐줬죠. 지금 우리 동네에 한살림 매장이 하나 생겼는데, 성황입니다.



― 보수주의적 접근이란 게 그런 거군요. 재미있네요.



아무리 생명주의라 하더라도 일단 이익 중심으로 먼저 접근하고 그 다음에 이념, 원리로 다가가야 합니다. 이념, 원리가 처음부터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생활 속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외국에서 도입된 이념이나 원리를 가지고 먹고살기도 바쁜 대중들한테 생경하게 말해봤자 먹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나도 벤츠 타고 싶다, 나도 호텔 가서 호화음식 먹고 싶다, 그런 욕망을 갖고 삽니다. 이런 사람들한테 생태계가 어떻고 종(種)다양성이 어떻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귀에 들어갈 리가 없어요.



― 녹색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답답하죠. 틀린 말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안돼요. 대중 속으로 파고 들어가지 못하고 있죠. 생명주의, 민생주의에 대해 글로 쓸 때는 항상 이념이나 원리나 원칙에 대해서 쓰지만….



― 예, 그래요. 인간이란 누구나 자기한테 이익이 있어야 움직입니다. 물질적인 이익이 없다면 심리적인 이익이라도 있어야지, 그렇지 않고는 안 움직이죠. 그건 진리예요.



김종철 선생님이 내 말에 동의해줘서 놀랍네요. 근본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 제가 근본주의자라고요? 알고 보면 저만큼 현실주의자도 없을 텐데요. 녹색당의 젊은 동지들한테 제가 늘 하는 얘기가 그겁니다. 이념과 원칙에 찬동해서 움직이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녹색당이 일개 시민환경단체가 아니라 정당이 되기로 작정하고 나섰으면 현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파악하고 대중들의 먹고사는 생활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요. 예를 들어, 지금 우리나라에 많은 협동조합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한살림 같은 생협운동이 비교적 성공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이게 자식들 건강에 직결된, 쉽게 대중화될 수 있는 성격을 가진 운동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보의 길이 없는 게 아닙니다. 지금처럼 해서는 희망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들 주장이 틀려서가 아니라 국민들의 마음을 붙잡지 못하기 때문이죠.



― 변혁을 지향한다는 사람들이 너무 소심한 것도 문제예요. 부자도 아니면서 왜 몸조심을 그리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상을 타파하자면 실패를 각오하고, 과감하게 행동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이제 시간이 많이 되었네요. 오늘 긴 시간 동안 중요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마운 것은 제 쪽이죠. 이 늙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2014년 10월 23일 목요일

[한겨레사설] 전작권 이양 무기한 연기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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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의 국방정책 담당자와 강경보수 인사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한국군의 준비 부족을 환수 백지화의 근거로 든다. 하지만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은 지난해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작전권 전환 시점은 적절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는 미 행정부 외교안보 라인에 있는 인사들의 대체로 일치된 의견이다. 남북의 경제력 차이뿐 아니라 남한의 국방예산이 북한보다 30배나 많은 상황에서도 “독자적인 작전권을 행사할 준비가 안 됐다”고 한다면, 도대체 우리 군의 자주적인 운용은 언제 가능한 건지, 현 정부의 정책담당자들은 대답해야 한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지만, 전작권을 돌려받지 말자는 주장의 이면엔 결국 ‘미국에 의존해야만 안심이 된다’는 뿌리 깊은 대미 의존 의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 전작권 문제를 단순히 군사적 개념이 아닌 자주권의 차원에서 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워싱턴 안보협의회의 논의 내용을 살펴보면, 전작권 환수를 백지화한 대가로 우리는 미국에 더 많은 것을 내주는 게 불가피할 것 같다. 앞으로 우리 군이 전작권을 돌려받을 수준이 되려면 ‘한·미 연합방위를 주도할 핵심군사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이는 바꿔 말하면 미국의 군사무기를 훨씬 많이 구입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전작권 사슬에 매여 막대한 액수의 불필요한 방위비용까지 국민이 연년세세 부담해야 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현 정권은 이런 문제들을 국민에게 분명히 설명하고 역사적 평가를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2014년 10월 21일 화요일

박기서씨 최근 인터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0212111155&code=100100

1996년 10월23일 오전 11시30분,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가 살고 있는 인천의 한 아파트. 안두희의 부인이 외출하는 순간을 틈타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 장난감 권총으로 안두희를 위협하고는 미리 준비한 ‘정의봉’으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애초부터 ‘너(안두희)는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계획된 거사였다. 30분이 지났을까. 안두희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후 그는 택시를 잡아탔다. 시간이 멎은 듯했다. 공황 상태에 빠졌다. 집에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고교생인 작은딸이 울먹였다. “아빠, 지금 어디야? 집에 형사들이 왔어. 무슨 일이야?” 현장에서 피가 채 마르지도 않은 정의봉에 새겨진 그의 이름을 보고 경찰이 움직인 것이다. 천주교 신자인 그는 성당으로 가서 고해성사를 했다. 자수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그날 입건됐다. 1년5개월여간 옥살이를 한 그는 지금 개인택시를 몰고 있다.

18년 전 안두희를 죽인 박기서씨(64)를 21일 서울 효창동 백범 김구 묘소에서 만났다. 김구 선생을 뵙고 싶다는 그의 말에 따른 것이다. 그는 참배 후 제단에 놓인 한 장의 종이를 집어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생이라는 신모양의 글이었다. “백범 할아버지 책을 읽고 앞으로는 우리나라를 위한 어린이가 되어야겠다고 느꼈어요.” 박씨는 이 편지를 소리내어 읽다가 갑자기 흐느꼈다.

“가방끈이 짧은 저는 정치란 걸 몰랐습니다. 먹고사는 일에 정신이 없었죠.” 아이들이 갖고 있던 <백범일지>를 우연찮게 손에 잡은 후 수없이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는 박씨는 “1000만분의 1도 그의 성품에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그의 발자취를 조금이라도 더듬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백범을 존경하게 된 그는 “민족 지도자를 죽이고도 권력의 비호하에 호의호식해온 안두희를 가만둘 수 없다”는 다짐을 거듭했고, 그날 실행에 옮긴 것이다.

동기야 어쨌든 그는 법이 용납하지 않는 죄를 저질렀다. 그는 1997년 9월 대법원에 낸 상고이유서의 일부 내용으로 심경을 대신 전했다. “(신앙인으로서) 안두희의 영혼이 영면하기를 기원하며… 진심으로 마음 아프게 생각합니다. 죽는 날까지 내 안에 가슴앓이로 안고 살아갈 것입니다.”

박씨는 “안두희 살해사건을 한 개인의 사건으로만 치부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 ‘안두희’는 성명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반민족, 반통일, 반역사를 지칭하는 보통명사”라고 강조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되물었다. “권력의 이권 다툼, 역사를 기만하고도 응징되지 않은 세력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습니까. 세월호 참사는 또 어떻습니까. 이런 것들은 살인이 아닌가요.”

세월호 참사 후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아온 그로선 안두희가 핵심 간부로 몸담았던 ‘서북청년단’의 재현은 충격에 가까웠다. 서북청년단 재건위의 ‘노란 리본’ 철거 소동을 두고, “어처구니없다”고 운을 뗀 박씨는 “남북 화해를 꾀했던 백범을 암살한 사건은 안두희 세력에 의한 정치적 살해였다”면서 “지금이 어느 땐데 그런 조직이 나타나 세월호 참사를 막지 못한 정권의 무능을 감싸고 있는지, 난센스가 따로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박씨는 ‘통일’을 되뇌었다. 그는 “현 정권이 과연 통일에 의지가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대통령이 ‘통일 대박’이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서로를 못 믿는 마당에 통일이 가당키나 한 건가”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는 김구기념관을 둘러본 후 “대선 직후 박근혜 대통령이 이곳을 찾았는데, 김구 선생의 뜻을 조금이라도 헤아렸을지 궁금할 따름”이라며 몰고 온 택시에 몸을 실었다.

안두희를 살해한 박기서, 그후 1년 / 사회평론<길> 1998년 1월호

그는 '죄인' 부끄러운 역사는 '무죄'였다.

"탕! 탕! 탕! 탕!" 1949년 6월 26일 12시 30분경, 경교장에는 네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백범 김구는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에 그렇게 숨을 거두었다.
    그로부터 47년 뒤, 안두희는 양손이 하얀 노끈에 묶이고 목이 졸린 상태로
                    머리에 둔기를 맞아 피를 흘린 채 죽임을 당했다.
       그를 죽인 사람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온 박기서란 버스운전사였다.

"기서야, 이놈아!"
96년 10월 23일 오후9시. 비명과 같은 외마디를 내지른 박준서씨는 살인을 저지른 동생의 모습을 보고 이내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옆의 '살인자'의 아내 원미자씨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진짜야?"라고 남편한테 되묻고 되물었다.
사실을 인정하는 남편 앞에 원씨는 자신을 속여왔던 남편이 원망스러워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안숙이 시험이 20일 밖에 안남았는데....세상에 어쩌자고...."
"나도 많이 걱정했어. 당신 눈치 안채게 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
'살인자'는 아내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미리 말하면 못하게 할 게 뻔하잖아..., 누군가 해야 할 일이었어..."
형사들은 조서에 그의 인적사항을 하나하나 써내려갔다. 1948년 생 주소/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직업/부천 소신여객 버스 운전사,. 가족/ 처 원미자. 맏딸 박안숙, 둘째딸 박정아, 막내아들 박찬종.
  경찰서에서 비극적으로 마주한 부부의 첫 대화는 딸애 시험 걱정을 나누는 것이었다. 하지만 집에 있던 안숙이는 오히려 아버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얼마 앞두지 않은 자신의 수능시험 때문에 아버지가 미안해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사건이 나고 이틀 뒤(10월25일). 안숙이는 점심시간에 학교 뒤뜰에 갔다가 밧줄에 묶여 경찰이 이끄는 데로 끌려가는 아버지를 가까이서 보았다. 현장검증을 하고 있었다. 이틀 동안 텔레비전에서만 만났던 아버지의 얼굴. 하지만 오랫동안 아버지를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한 일이 역사에 남을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기 전에, 한 생명을 죽였다는 현실 앞에 괴로워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아버지 눈에 띄지 않으려고 숨어서 보다가 그 표정을 읽고선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아빠! 왜 그렇게 우울한 표정을 짓고 계세요? 더 당당하게 걸으세요. 아빠가 밧줄에 묶여 경찰한테 질질 끌려 갈망정 다른 범죄자들과는 다르게 의연하셔야죠!"
박기서한테 죽임을 당한 안두희의 시신은 인천의료원으로 옮겨져 있었다. 이곳에 마련된 영안실에는 이날 밤 부인 김명희씨만 잠시 들렀을 뿐 그의 죽음을 애도하러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미국에 있는 아들딸들 조차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안두희. 수십년 동안 '진실'과 '분노'를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쳐왔던 그의 삶은 이렇듯 쓸쓸하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49년 6월 26일 백범을 살해하고도 버젓이 두 계급이나 특진했고, 제대후 군납공장을 지어서 군대부식을 공급하며 큰 돈을 벌었던 그. 그러나 4.19혁명은 이런 그의 생활이 정상적인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이때부터 도망자로서 그의 삶은 시작이 된다. 역사는 '잠시' 제대로 돌아가는 듯했다. 61년 4월. '김구선생진상규명투쟁위원회' 간사였던 김용희씨는 마침내 그를 붙잡아 경찰에 넘겼다. 하지만 경찰에서 돌아온 답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것. 역사에도 공소시효는 있었다. 이처럼 운좋게 풀려난 그였지만 4년 뒤 이번엔 곽태영씨한테 칼로 두군데나 목을 찔려 생사를 헤매야 했다. 87년에는 권중희씨한테 민족정기봉으로 머리를 맞았고 92년엔 권씨의 손에 이끌려 효창공원 백범묘소에서 뒤늦은 울음을 토했다. 하지만 '진실'과 '분노'가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버스운전사 박기서씨로부터 '정의봉'을 맞고 백범 살해 이후 47년을 비참하게 버티고 버텼던 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96년 12월18일부터 시작되어 13차례에 걸쳐 진행된 박기서에 대한 재판에는 문한성, 임통일 변호사 등 모두 7명의 변호인들이 참여했다. 그들은 박기서의 살인이 "올바르지 못한 역사가 개인한테 준 폭력"임을 분명히 하고 그에 대한 무죄를 일관되게 주장했다.  이를 위해 성대 사학과 서중석 교수를 증인으로 세우는 등 '현대사'에 대한 재판으로 밀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서교수에 대한 증인 신문 이후 더 많은 역사학자들을 증인으로 세우려 했던 변호인들의 노력에 "한 사람만 하면 됐지 않느냐"며 현대사 재판으로 이어지는 걸 가로 막았다. 그리고 97년 7월31일 재판부는 박기서한테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임통일 변호사는 지난 9월9일 이에 반발하고 상고를 냈다.
"비록 해방정국에서 미군정에 의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은 부인됐으나, 우리 헌법상 법통은 이어져 있으므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을 안두희가 살해하게 된 과정, 그리고 일제 패망 후 친일파의 현황과 백범 살해의 배후를 잘 살핀다면, 현 헌법체계하에서 피고인의 행위는, 다른 실정법적인 법적 절차를 통해 실현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불가피하게 택할 수밖에 없었던 정당한 행위로, 도저히 실형을 선고할 수 없음에도 원심은 이 문제에 대해 별다른 심리를 하지 않고 미진한 상태에서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 했습니다.
'피고'박기서는 상고 이유를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안두희는 한 개인의 생명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식민과 분단의 감옥에서 반민족, 반통일, 반역사를 지칭하는 보통명사를 뜻합니다. 설령 안두희가 자연사 했더라도 보통명사로서 안두희는 이미 역사의 족적을 새겼습니다. 한 자연인 안두희를 살해한 나의 행위가 실정법을 어긴 것이라고 법은 일심과 항소심에서 이미 지적했습니다. 전 여기에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법은 한가지를 더 발언해야 합니다. 보통명사로서 안두희를 우리 법이 어떻게 정리할 것이고, 그 정리가 우리의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 될 건지 걸림돌이 될 건지 법은 발언해야 합니다.
역사를 상대로 한 재판은 이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11월 17일. 이 상고에 대한 마지막 판결이 내려 졌다. "피고인의 이 사건이 범행동기나 목적이 주관적으로 정당성을 가진다 하더라도 우리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서는 사회적으로 용인할 만한 정당성을 가진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징역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다." 재판부의 판결에는 박기서와 변호인이 바랐던 현대사에 대한 '판단'은 없었다. 또 한사람의 징역 3년형 짜리 '죄인'은 이렇게 세상에 태어났다. 하지만 49년 6월 26일 백범의 몸에 총탄 네발을 퍼부어 그의 생을 끝장냈던 안두희의 죄과를 낱낱이 심판하지 못한 47년 동안의 부끄러운 "역사"한테는 단 하루의 징역형도 내려지지 않았다.
마지막 상고심을 지켜본 박기서의 아내 원미자씨는 그 판결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3년이란 시간은 너무 길게 느껴졌다. 또 볼엔 눈물이 흘러내렸다. 남편이 감옥에 있어 생계가 막막해진 아내는 사건이 있은 네달 뒤부터 시흥동 한 해장국집에 일을 나간다. 아는 친구 소개로 들어간 그 식당에선 한달에 70만원을 주고 여기다 택시비를 조금 보태준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시계는 4시를 가리킨다. 새벽, 이제 피곤한 몸을 누일 수 있다. 요즘은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하는 날이 잦아 졌다. 엄마는 꼭 깨우라고 일러두었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챙겨서 학교에 나가곤 한다. 비록 남편은 감옥에 있지만 이처럼 꿋꿋하게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 든든하기만 하다. 가정에 충실했던 남편은 아이들과 자주 어울려 대화를 나누곤 했다. 아이들은 그런 아빠를 그리워 한다. 지난 12월9일 원씨는 권중희씨, 조문기씨와 함께 남편 면회를 갔다. 이날은 남편의 50번째 생일날이었다.
"찬종이가 아빠 생일이라고 따라오려 했어요. 근데 학교에 가야 하니까..., 대신 아빠한테 이런 말을 전해 달래요. 독서학원 잘 다니고 글 잘써서 선생님들한테 칭찬듣고 있다구요. 그래서 아빠 기뻐하시라구요."
"아, 그래."
남편은 활짝 웃었다.
어느새, 면회시간 5분은 끝나가고 있었다. 원씨는 다음엔 곧 방학을 하는 아이들과 함께 온다는 약속을 하고, 언제 이감될지 모르는 남편을 뒤로 했다. 이날 원씨는 감옥에서 고생하는 남편이 힘들어할까봐 차마 입에서 떼지 못한 말이 있었다. 남편이 상고심 공판을 받은 다음날인 11월 18일 어머니(이순덕 옹)가 세상을 떠나 고향 정읍 선산에 묻히셨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한 주간지에 나온 아들의 사진을 일년 내내 보듬고 살다가 그렇게 가셨다고 한다.


(박기서 옥중인터뷰)
12월 10일 2시. 안양교도소 3호 면회실 투명플라스틱판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박기서의 얼굴은 추운 듯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쪽 편에서도 입김이 펄펄 나왔지만 건너편 박기서의 목소리에도 입김이 묻어 있었다.
그의 푸른 조수복에는 죄수번호 1552번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는 기자 옆에 있던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김인수 위원장이 반가웠는지 서로를 가르고 있던 '투명 플라스틱 판에' 손을 얹고 소리내어 웃었다.
"아이구, 안녕하셨어요."
"이게 얼마 만입니까. 그동안 면회도 못와서 죄송합니다."
둘은 박기서가 자수한 직후 경찰서에서 만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러니까 1년 만에 얼굴을 마주한 셈이었다. 잠시 둘 사이의 대화가 이어졌고, 김위원장은 곧 그한테 기자를 소개했다. "예....안녕하세요."인사를 건네는 그의 모습에서 '시골 아저씨' 분위기가 느껴졌다.
- 감옥생활을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 제가 독방에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혼자 책 읽고, 편지 쓰고... 운동은 하루 한시간 할 수 있지요."
- 어떤 책을 읽고 있나요
" 얼마전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다 읽었습니다. 요즘엔 '새벽에 길어 올린 한 생각'..."
- 박노해..<사람만이 희망이다>요?
" 예, 맞아요...
- 읽으니 어떻던가요.
"(쑥스럽게 웃으면서)아유, 그냥 좋죠...뭐."
- 편지는 누구한테 주로 보내나요.
" 가족들하구요. 요즘엔...이해인 수녀님하고 편지를 나누고 있어요."
- 이해인 수녀님이요? 어떤 내용으로 나누시는데요.
" 서로 시 써서 보내구...그러지요.(또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 3년형을 받았는데, 후회는 없습니까.
" 결코 후회는 안합니다. 가족들한테 미안하지만 적은 희생은 있어야지요. 전 머릿속으로 안두희를 수천번 죽였어요."
- 가족들이 상당히 그리워하고 있던데요....
" 저도 그렇죠. 아내가 아이들을 잘 키워주고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아이들이 밝고 힘차 보이더군요.
" 원래 없이 산 사람들은 그렇게 착하고 밝은 거예요."
- 감옥에 같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일을 했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 잘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 늙은 사람 왜 죽였냐고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그래도 이해해주는 사람이 많습니다.
- 보고 싶은 사람은 없나요.
" 편지도 많이 나누고, 사람들이 면회를 자주 와서 특별히 보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모두한테 고마울 뿐이지요."
건너편 문에서 교도관 한 사람이 문을 열었다. 끝났다는 신호였다. 시계는 2시 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박기서는 이쪽을 바라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고, 다시 차가운 독방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5일 후, 그가 "오늘(15일)새벽 청주교도소로 이감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014년 10월 9일 목요일

[한겨레] 이인호, 이명세, 친일유학/ 고명섭

“지난번에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기는 했어도, 한순간 꿈처럼 짧아서 의견을 깊이 물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1559년 1월 58살의 퇴계 이황이 32살의 고봉 기대승에게 편지를 보냈다. 조선 지성사의 최대 사건으로 불리는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의 시작이었다. 사단칠정 논쟁은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성리학의 종장인 퇴계가 26살 연하의 신참 유학자 고봉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의견을 구했다는 것도 유례가 없었고, 영남과 호남을 편지로 넘나들며 논쟁이 8년이나 지속됐다는 점에서도 유례가 없었다. 사단(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이라는 마음과 칠정(희·로·애·구·애·오·욕)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가 핵심 쟁점이었다. 성리학의 인간관으로 보면, 우리 본성은 본디 선하지만 그것이 욕망으로 분출될 때 세상사의 탁한 기운과 섞여 본래의 선함을 잃어버리기 쉽다. 어떻게 하면 이 욕망을 다스려 본성의 인의예지를 바르게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두 사람의 근본 관심사였다.
지난달 <한국방송>(KBS) 이사장이 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의 발언들이 우리의 역사의식을 흔들었다. 이 이사장은 친조부 이명세의 친일 행위를 변호하는 중에 “할아버지는 유학의 세를 늘려가기 위해 일제 통치 체제하에서 타협하며 사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를 보면 이 이사장의 조부 이명세는 천황을 떠받드는 황도유학을 주창하고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찬양했다. 일제 말기 징병제를 환영하기도 했다. 이명세의 친일은 타협이 아니라 명백한 부역이다. 매국행위와 다를 바 없다. 더 곱씹어볼 것은 조부의 친일 행위가 ‘유학의 세’를 늘리려는 것이었다고 변명한 대목이다. 유학의 세를 늘릴 수만 있다면 일제에 충성하는 것도 괜찮다는 뜻일 터인데, 아무리 봐도 이것은 유학의 정신에 맞지 않는 말이다.
유학의 정신, 다시 말해 선비정신이란 게 뭔가. 인의예지, 더 줄이면 인과 의를 목숨 걸고 지키는 것이다. 조선 성리학자들이 사단칠정을 놓고 그토록 치열하게 싸운 것은 세상의 더러움에 휘말려 인과 의,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을 잃어버리지 말자는 뜻이었다. 독립지사들을 잡아들여 고문하고 죽인 일제에 빌붙어 유학의 세를 키우려 했다니, 유학의 속을 파내버리고 껍데기를 키우겠다는 얘기다. 자가당착이고 언어도단이다. 유학자의 지조로 일제에 항거한 동농 김가진, 심산 김창숙 같은 분들을 농락하는 말이다. 이 뒤틀린 사고가 보여주는 건 ‘유학의 세’를 명분으로 삼아 자기 자신의 세를 키우겠다는 권세욕 아니겠는가. 퇴계가 “인욕(人慾)을 천리(天理)로 잘못 아는 병통”을 경계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사사로운 욕망을 하늘의 뜻인 양 윤색하는 것이야말로 유학자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 이사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전경련 강연에서는 해방 후 친일 청산이 소련의 지령에 따른 것이었다는 주장까지 했다. 한민족 절대다수의 염원이 한순간에 스탈린의 하명이 되고 말았다. 이쯤 되면 브레이크 없는 망언의 폭주다. 친일 청산이 소련의 지령이면 스탈린과 손잡고 일제와 싸운 미국의 루스벨트도 소련의 지령을 받은 것인가. 광복군도 소련의 지령에 따라 움직인 것인가. 집안의 명예를 지키겠다며 당치도 않은 말을 끌어다 대는 것은 조상을 두 번 치욕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일이다. 퇴계는 고봉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한다. “참된 강직함과 진실한 용기는 기세를 높여 억지를 부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고 의(義)를 들으면 바로 따르는 데 있습니다.” 선비의 지조가 그리운 시절이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2014년 9월 11일 목요일

국정원 댓글 판결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45·사법연수원 25기) 부장판사의 글 중에서]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는 어제 국정원 댓글 판결을 선고하였다.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에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정치개입’을 한 것은 맞지만, ‘선거개입’을 한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공직선거에 관한 무죄판결을 선고하였다. 그리고 위법적인 개입행위에 관하여 말로는 엄벌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동기참작 등의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슬쩍 집행유예로 끝내 버렸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판결문을 찾아 출력한 다음 퇴근시간 이후에 사무실에서 정독을 하였다. 판결문은 204쪽에 걸친 장문(長文)인데, 주로 개별적인 증거들의 취사선택에 관하여 장황하게 적혀 있고, 행위책임을 강조한다는 원론적인 선언이 군데군데 눈에 띄며,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선거개입의 목적』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공직선거법위반죄를 무죄로 선고하였다.

판결문을 모두 읽은 후에, 나는 이런 의문이 생겼다.

(1) 2012년은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해인데, 원세훈 국정원장의 계속적인 지시 아래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인 댓글공작을 했다면, 그것은 ‘정치개입’인 동시에 ‘선거개입’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도대체 ‘선거개입’과 관련이 없는 ‘정치개입’이라는 것은 뭘 말하는 것일까? 이렇게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형식논리가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것일까? ... 이것은 궤변이다!

(2) 판결문의 표현을 떠나서 재판장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에 따라 독백을 할 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할까?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선거개입의 목적이 없었다니...』 허허~~ 헛웃음이 나온다.

(3) 재판장은 판결의 결론을 왜 이렇게 내렸을까? 국정원법위반죄가 유죄임에도 불구하고 원세훈 국정원장에 대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하였으니, 실질적인 처벌은 없는 셈이다.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해에 국정원장이 정치적 중립의무를 저버리고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처리해도 되는 것인가? 이 판결은 ‘정의(正意)’를 위한 판결일까? 그렇지 않으면, 재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심사를 목전에 앞두고 입신영달(立身榮達)에 중점을 둔 ‘사심(私心)’이 가득한 판결일까? ...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2014년 8월 31일 일요일

[한겨레 사설] 이게 우리 사회의 도덕수준이란 말인가?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슬픔을 ‘참척’(慘慽)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근심이란 뜻이다.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겐 살릴 수도 있었던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더해진다. 누구보다 아픔이 크고 위로가 절실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더라도 상처를 헤집고 소금을 뿌려대는 일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사람의 도리다.

세월호 특별법 교착국면이 길어지자 유족을 향해 마구 돌팔매질을 해대는 이들이 있다. 여야의 대치가 전적으로 유족 책임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롱하고 손가락질하며 야유를 보낸다. 이들에겐 술집에 손님이 뜸한 것도, 부동산 거래가 한산한 것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것도 모두 세월호 탓이고 유족이 양보를 하지 않아서다. 유족이 철저한 진상규명에 더해 돈을 요구하는가, 보상을 더 해달라고 떼를 쓰는가. 참으로 본말이 전도된 상황 인식이요, 매몰차고 야박한 인심이다.

여론으로부터 유족을 고립시켜 냉소적 시선을 유발하는 데 크게 기여한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지방선거와 재보선 이후 눈에 띄게 유족과 거리를 뒀다. 한 번이라도 만나달라는 유족의 요구를 아직까지 외면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나서달라는 요구도 “국회가 결정할 일”이라며 단칼에 거부했다. 수많은 공식 행사에서 세월호를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경제 살리기’ 메시지만 되풀이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세월호와 거리를 두려는 의지가 묻어난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통령은 유족들이 청와대 앞으로 찾아간 바로 그날 민생 행보를 이유로 부산 자갈치시장으로 떠나버렸다. 유족이 단식하고 농성하는 광화문광장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영화를 보고 뮤지컬을 감상하기 위해 극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치 이런 일정을 보란 듯이 공개해 대통령이 관심을 쏟는 문제는 세월호가 아니라는 ‘무언의 시위’라도 벌이는 것처럼 비친다.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1일 유족은 새누리당과 3차 만남을 이어갈 예정이지만 타결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거리두기가 계속되는 한 새누리당도 소극적 태도를 따라갈 것이며, 유족을 향한 이유 없는 멸시와 냉소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유족의 뜻을 최대한 수용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박 대통령이었다. 이 말에 조금의 진심이라도 담겨 있었다면 박 대통령은 당장에라도 유족의 손을 맞잡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2014년 8월 10일 일요일

변희재 종북매도 발언 재판

재판부는 "남북이 분단됐고 국가보안법이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종북으로 지칭될 경우 반사회적 인물로 몰리거나 평판이 훼손될 수 있다"며 "구체적인 증거 없이 주사파·종북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대세력으로 취급하는 것으로서 불법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이념은 성질상 그 실체를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그렇기에 관련된 표현을 할 때는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고 모멸적인 표현의 사용을 삼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4년 8월 7일 목요일

[한겨레 김종구칼럼] 대통령에 대한 관음증을 부추기는 청와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50168.html?_fr=mt1

2001년 9월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테러 공격을 받고 있던 순간 조지 부시 대통령은 플로리다주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중이었다. 그리고 그는 워싱턴으로 바로 복귀하지 않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나중에 9·11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 부시 대통령의 행적과 동선에서는 애초 알려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 많이 발견됐다. “초등학교 대기실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했다는 보도를 봤다”는 주장과 달리 당시 대기실의 텔레비전에는 전원조차 연결돼 있지 않았다는 식이다.
케네디가 백악관에서 가끔 자취를 감추는 것이 딴 여성과 밀회를 즐기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골프를 치기 위해서인지를 미국 국민이 꼭 알아야 할지는 의문이다. 그것은 대중의 호기심이요 일종의 관음증이다. 하지만 9·11 사태 당시 부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궁금증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미국은 부시 대통령의 거짓말을 포함해 모든 사실을 꼼꼼히 조사해 밝히고 기록했다.
세월호 참사 발생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가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는 자명하다. 이런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이 어떻게 보고를 받고 어떻게 판단을 하고 어떤 조처를 내렸는지를 국민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분명히 ‘부시형 궁금증’이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청와대 부속실장의 국정조사 증인 채택을 거부하며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문제”라고 말했다는데, 결론은 다르지만 국가안보라는 말은 맞다. 국가에 중대한 변고가 일어났는데 대통령의 소재를 몰라 대면보고를 못 했다면 국가안보에 큰 구멍이 뚫려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행적 문제를 스스로 ‘케네디형 스캔들’로 만들어버렸다. 새누리당 역시 “대통령의 사생활”이니 뭐니 하는 말로 대통령을 ‘관음증’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데 일조했다.

2014년 8월 3일 일요일

서민 "이제는 유권자를 욕할 때다"

의대교수가 허튼소리 하는 것 같지만 알맹이가 있습니다.  이런 얘기 과감하게 할 수 있는 용기에 경의를...
이건 정치의 막다른 골목. 정치의 한계. 투표자가 변해야 정치가 변한다!!!

글 링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8031841141&code=940100


[서민교수의 글 중에서]
......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 국민 수준과 일치한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정치라는 게 유권자의 정치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는 바, 국민 수준이 엄청나게 높은데 정치만 진흙탕에서 뒹구는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국민은 위대하다”는, 정치인들이 노상 하는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정치인들 중 정말로 국민을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정말 국민이 똑똑하다고 생각한다면 지난 대선 때 정보기관이 댓글 공작을 벌이고, 몇 십 년 간 우려먹은 구태의연한 색깔론을 선거의 주된 쟁점으로 부각시킬까?

대운하 사업에는 반대하면서 이름을 4대강 사업으로 바꾸자 찬성으로 돌변하는 게 우리 국민들이라면, 여당과 야당이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정확히 우리 수준의 반영이라 봐야 한다. 

....

2012년 대선은 야당으로서는 선거에서 이길 절호의 기회였다. 허풍으로 끝난 747공약을 비롯해서 이명박정부는 민간인 사찰, 내곡동 땅, 친인척 비리 등 숱한 잘못들로 점철된 5년을 보낸 터였으니까.

2014년 7월 29일 화요일

가자지구 학살

경향신문 기사에서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7292235015&code=970209


"탱크 3930대와 F16 전투기 326대 vs 조악한 사제 로켓. 대다수가 군인인 50여명의 사망자 vs 80%가량이 민간인인 1100명의 사망자…. 이제까지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으로 6500여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부상하고 11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이들은 모두 이름과 가족, 직업을 가진 ‘인간’들이었다. 웃을 줄 알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로 이뤄진 한 가족 전체가 지난 3주 동안 흔적도 없이 몰살당했다."

"가자지구에서 일어나는 참극은 지난 6월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서 실종된 유대인 청소년 3명의 죽음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에서 촉발됐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 어떤 팔레스타인 단체도 자신들이 했다고 밝힌 적이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애초부터 하마스를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스라엘 정부는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즉각 하마스의 탓으로 돌렸다. 하마스 지도부가 계속해 여러 차례 자신들은 그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는데도 말이다."

2014년 7월 23일 수요일

Deep Purple, Child in Time

Sweet child in time
You'll see the line
The line that's drawn between
Good and bad

See the blind man
Shooting at the world
Bullets flying
Ohh taking toll

If you've been bad
Oh Lord I bet you have
And you've not been hit
Oh by flying lead

You'd better close your eyes
Ooohhhh bow your head
Wait for the ricochet

Oooooo ooooooo ooooooo
Oooooo ooooooo ooooooo
Ooo, ooo ooo
Ooo ooo ooo

Oooooo ooooooo ooooooo
Oooooo ooooooo ooooooo
Ooo, ooo ooo
Ooo ooo ooo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hh, aahh aahh
Aah I wanna hear you sing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hh, aahh aahh
Aaahhhh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hh, aahh aahh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hh, aahh aahh

Sweet child in time
You'll see the line
The line that's drawn between
Good and bad

See the blind man
Shooting at the world
Bullets flying
Mmmm taking toll

If you've been bad
Lord I bet you have
And you've not been hit
Oh by flying lead

You'd better close your eyes
Ooohhhhhhh bow your head
Wait for the ricochet

Oooooo ooooooo ooooooo
Oooooo ooooooo ooooooo
Ooo, ooo ooo
Ooo ooo ooo

Oooooo ooooooo ooooooo
Oooooo ooooooo ooooooo
Ooo, ooo ooo
Ooo ooo ooo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hh, aahh aahh
Aah I gotta hear you sing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hh, aahh aahh
Aah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hh, aahh aahh
Aah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aahh
Aahh, aahh aahh

Oh..God oh no..oh God no..oh..ah..no ah
AAh..oh..
Aawaah..ohh
Songwriters: Lord, Jon / Paice, Ian Anderson / Gillan, Ian / Glover, Roger David / Blackmore, Ritchie
Child In Time lyrics © EMI Music Publishing

2014년 7월 20일 일요일

심재철 ‘세월호 특별법 반대’ 카톡 퍼날라 ‘파문’

[사례: 시장의 실패와 공공부문의 역할]

세월호 사건에서 생각해 봐야할 공공부문의 역할은 많지만 아래의 기사에서는 국정조사와 같은 특별한 방식의 국가의 감독 기능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것.
국정조사 특별위원장의 이런 행동을 하는데 과연 특별위원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있을까?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647645.html?_fr=mt1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정조사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이 세월호 특별법을 반대하는 내용의 글을 휴대전화 메시지(카카오톡)로 지인들에게 보내 논란이 되고 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는 심 의원의 국정조사 특위 위원장 사퇴와 새누리당의 공식 해명을 요구했다.
20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가족대책위)가 공개한 심 의원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면, 그는 “학교 수학여행을 가다가 희생된 사건을 특별법을 만들어 보상해 달라는 것은 이치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봅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당직자들과 지인들에게 지난 18일 오후에 보냈다. 이 글은 한달 전부터 인터넷과 모바일 메신저에 오가던 글로 세월호 특별법의 취지를 왜곡하고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글은 “세월호 사망자들이 수억원의 보험금을 받는다”며 “안전사고로 죽은 사망자들을 국가유공자들보다 몇 배 더 좋은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 세월호 특별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야탑역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원인은 ‘짝퉁 부품’

[사례: 시장의 실패와 공공부문의 역할]

http://economy.hankooki.com/lpage/society/201407/e2014072009154093780.htm

지난해 7월 39명의 부상자를 낸 분당선 야탑역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의 원인은 짝퉁 부품을 사용했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2부(황의수 부장검사)는 에스컬레이터 고장 수리 점검 과정에서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역주행 사고를 야기한 혐의(업무상과실치상)로 보수정비업체 이사 정모(41)씨와 한국철도공사 분당건축팀 선임설비장 임모(47)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20일 밝혔다.

검찰은 같은 혐의로 한국철도공사 분당건축팀 팀장 강모(42)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정씨는 지난해 7월 3일 야탑역 에스컬레이터 이상소음 고장 접수를 받고 점검하면서 감속기와 모터를 연결하는 피니언기어를 강도가 떨어지는 짝퉁 부품으로 교체, 사고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4년 7월 14일 월요일

[한겨레 곽병찬] 사고 발생 8시간후, "구명조끼 입었다고 하는데 발견하기 힘듭니까?"


http://www.hani.co.kr/arti/politics/bluehouse/646811.html?_fr=mt1

(사고발생 8시간 후) 17:15에야 중대본에 모습을 나타낸 대통령의 첫 마디는 이러했습니다.

“구명조끼 입었다고 하는데 발견하기 힘듭니까, 지금은?”

“갇혀 있기 때문에 구명조끼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안행부2차관)

“아 갇혀 있어서요?”

이 천연덕스런 말처럼 국민의 복장을 뒤집는 건 없었습니다. 대통령은 사고 후 8시간이 지나서도 아무런 상황 파악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이들이 배 안에 갇혀 버둥대다 죽어가고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때까지 유선 및 서면 보고가 스무번 이상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사고 발생 후 8시간이 지날 때까지도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비서실이나 안보실이 보고를 제대로 한 게 사실이라면, 대통령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보고를 제대로 읽거나 듣지도 않은 셈입니다. 대통령이 보고를 읽거나 들었다면 비서실이나 안보실이 엉터리 보고를 한 셈입니다. 누구의 책임입니까.

2014년 7월 7일 월요일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행방도 모르는 청와대 비서실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 주소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이하 박) :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님, ‘대통령께 세월호 참사가 있던 날 서면 보고로 10시에 했다’라는 답변이 있었지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하 김) : 예.

박 : 지금 이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이때 대통령께서는 어디에 계셨습니까?

김 : 그것은 제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국가안보실에서 1보를 보고를 드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 : 그러니까 대통령께서 어디에 계셨는데 서면 보고를 합니까?

김 : 대통령께 서면 보고하는 경우는 많이 있습니다.

(중략)

박 : 그럼 대통령께서 집무실에 계셨습니까?

김 : 그 위치에 대해서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박 : 비서실장님이 모르시면 누가 아십니까?

김 : 비서실장이 일일이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박 원내대표는 8일 원내대책회의에서도 “세월호 희생자가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며 사경을 헤맬 때, 청와대는 멈춰 우왕좌왕 했고 국민을 지키는 대한민국은 작동하지 않았다”며 “그런데도 이 시간까지 그 누구도 책임을 안 지고 있다. 사퇴한 (정홍원) 국무총리는 유임됐고 (김기춘) 비서실장은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박완주 의원은 원내대책회의에서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오후 5시30분 중대본을 방문한 시점까지 무려 7차례 보고를 했는데, 모두 서면과 유선으로만 보고했다고 한다. 단 한차례 대면 보고도 없었다고 한다”며 “정말 장관은 물론 수석들조차 대통령께 대면 보고를 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고 꼬집었다.

"종북", 이 시대착오적 사고 틀에서 남북관계 개선은 없다.

[한겨레 정세현 칼럼] 종북 논쟁 끝장내지 않으면 통일은 없다.
원문 링크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45631.html?_fr=mr1
중에서
.....
남북 체제경쟁은 70년대 중반에 남한의 절대적 우위로 끝났다. 남한은 이제 G-15 경제대국이 되었고 국제적 위상도 매우 높아졌다. 반면 90년대 중반에 시작된 탈북행렬이 아직도 이어질 정도로 북한은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핵·미사일 문제 때문에 여러해 국제적 제재를 받고 있다. 국가 이미지도 나쁜 편이다. 이렇게 남한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는 북한을 추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금 이 시기에도 남한에 있다는 것인가? 종북 논쟁은 참으로 시대착오적이고 비현실적인 정치공세다.

좌익 빨갱이도 실체가 없는 공격용 용어다. 6·25를 전후하여 북한 체제가 좋다고 자진 월북한 사람들이 제법 된다. 그들은 스스로도 좌익임을 자처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사람이 남한에는 없다고 본다. 다만, 정부 정책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람이 없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들도 북한을 기준으로 삼지는 않는다. 자본주의의 폐단을 지적하더라도 북한이 아니라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수준의 복지나 분배를 요구한다. 이 정도면 좌익이라 할 수도 없고 빨갱이는 더더욱 아니다.
.....
종북-좌빨 논쟁이 우리 사회를 풍미하는 한, 남북 대화와 교류는 할 수 없다. 화해와 협력은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원리상, 이런 과정과 절차를 밟지 않으면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2014년 7월 2일 수요일

"그냥 받아 적어!"

[한겨레기사에서]
오전 10시25분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관계자는 해경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해경 상황실장에게 “그냥 (받아) 적어”라는 말과 함께 다음과 같은 지시사항을 전한다. “첫째 단 한 명도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여객선내에 객실·엔진실 등을 포함해서 철저히 확인해 (구조에)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하라.” 이는 “박 대통령이 해경에 지시한 내용”이라며,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언론에 공개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 시각 세월호는 이미 바닥을 드러낸 채 뒤집혀 선내 진입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사고 발생 2시간이 될 때까지 ‘컨트롤타워 기능’은 고사하고, 기초적인 상황 파악도 못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겨레기사] 청와대, 구조 골든타임에 대통령 보고 몰두 “현지 영상 달라” 해경에 수차례 독촉


청와대는 그 직후부터 ‘대통령 보고용’ 현장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해경 상황실을 추궁한다. 오전 9시39분 청와대 국가안보실 상황반장은 해경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구조작업 진행상황을 몇 가지 확인하고는 곧바로 “현지 영상 있느냐”고 묻는다. 해경이 머뭇거리자 구조작업중인 ‘해경 123정’을 지목한 뒤 “지금 브이아이피(VIP·대통령) 보고 때문에 그러는데, 영상으로 받은 거 핸드폰으로 보여줄 수 있느냐”며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준다.

현지 영상 요구는 30분 뒤 또 이어진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상황반장은 “사진 한장이라도 빨리 보내달라”고 해경 상황실에 거듭 요구한다. 6분 뒤 청와대는 다시 해경에 전화를 걸어 “(현장) 영상 갖고 있는 해경 도착했느냐”고 묻고는 “(전화) 끊지 말고 (도착 시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해보라”고 재촉한다. 오전 10시32분에도 영상 송출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아, 그거 좀 쏴 가지고 보고 좀 하라고 하라니까, 그거 좀”이라고 역정을 낸다. 해경 근무자가 “알겠다”고 답하자, 청와대는 “브이아이피(가 요구하는 것)도 그건데요, 지금”이라며, 현지 영상 확보가 대통령의 관심사항임을 강조하며 해경 상황실을 압박한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645268.html?_fr=mt1r


2014년 6월 24일 화요일

극악무도 인터넷 활동한 국정원 직원 '좌익효수' 기소

‘좌익효수’라는 아이디로 인터넷에서 활동하면서 호남지역과 여성, 야당 정치인 등을 폄훼하는 글을 올린 혐의로 고소·고발된 국가정보원 직원을 검찰이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이 직원의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하고 조만간 그를 기소할 예정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정회 원주지청장)은 국정원법 위반과 모욕,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된 국정원 직원 ㄱ씨를 소환조사한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ㄱ씨가 사용한 아이디 ‘좌익효수’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 ‘절라디언(호남 주민을 비하해 부르는 말)’들은 전부 씨족을 멸해야 한다” 등 호남지역을 비방하는 글을 올렸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의 심리전에 넘어간 광주인들’이라고 표현해 광주 시민들을 비하했다. 또 인터넷방송 진행자 ‘망치부인’ 이모씨에 대해 “죽이고 싶은 빨갱이” 등 폭언을 담은 댓글을 게시하고, 열두 살인 이씨의 딸을 지칭하며 성폭력적 욕설을 올리기도 했다.

ㄱ씨가 올린 글 중에는 지난 대선 야당 후보인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가리켜 “문죄인 뒈져야 할 텐데”라는 글도 있다. 한명숙 전 총리, 배우 문근영씨, 배우 김여진씨 등 촛불집회에 참여한 여성들을 비하하는 글도 작성했다.

ㄱ씨는 2011년 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인터넷 게시판에 16개의 글과 3451개의 댓글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해당 글은 모두 삭제됐다.

지난해 7월 통합진보당 오병윤 의원과 광주시당은 국정원법 위반 및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ㄱ씨를 고발했다. 이어 지난해 10월 인터넷방송 진행자 이씨도 모욕과 명예훼손, 협박 등 혐의로 ㄱ씨를 고소했다.

검찰은 지난 1월 고소·고발인을 불러 조사했다. 이후 ㄱ씨를 불러 글을 올린 경위 등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ㄱ씨의 모욕 및 명예훼손 등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하고 기소할 방침이다. 검찰은 ㄱ씨가 야당 정치인을 비방한 글을 올린 행위에 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ㄱ씨는 국정원의 간첩 증거조작 사건 당사자인 탈북 화교 유우성씨 사건 수사에도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결과 국정원이 유씨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 중국 공문서를 위조한 것으로 드러났고 일부 직원들은 위조사실을 시인했다.

2014년 6월 23일 월요일

[한겨레시론] 끝내야 할 한국전쟁/ 이수훈

다시 6·25를 맞는다. 6·25 전쟁이 발발한 지 64년이 되었다. 너무나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한국전쟁은 아직도 휴전 상태일 뿐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았다. 1953년 여름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전쟁도 아니고 진정한 평화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우리 민족이 정전협정체제를 종식시키고 평화체제로 대체해야 할 큰 숙제를 풀지 못하고 긴 세월을 살아왔던 셈이 된다. 이 숙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현재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는 적대와 대결, 군사적 긴장과 안보 위협은 말할 것도 없고 평화정착을 통한 통일의 돌파구도 열 수가 없다.

한국 사회에는 근년 들어 6·25 전쟁을 잊지 말자는 담론이 위정자들의 사고에 편승하여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 분위기가 한때 존재하였던 화해협력 분위기를 대체해가고 있다. 혹여 화해와 관용의 정신이 증오와 적대의 마음자세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이렇게 되면 그 지긋지긋한 전쟁을 어떻게 종결짓고 다시는 그런 전쟁을 예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분위기가 위축된다. 정부와 다른 차원의 대안적 사고를 해야 마땅한 한국 시민사회의 숙제라고 하겠다.
지난 정부도 그랬고 현 정부마저 통일을 무척 강조한다. 근래에는 독일 통일을 우리가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정치사회적 분위기도 드높다. 통일을 강조하는 것이야 탓할 일이 못 되고, 다른 사례를 참고하자는 취지도 시비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통일이 평화정착이라는 어려운 단계를 건너뛰어 이루어지리라는 사고는 잘못된 것이고, 독일 사례만 하더라도 우리 같은 동족상잔의 참극을 겪지 않았다는 점은 반드시 지적되어야 할 일이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통일이 구두선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현재의 정전협정체제를 어떻게 평화체제로 바꿀 것인가에 대한 깊은 전략적 고민이 있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의 과제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평화정착과 그 토대 위에 통일기반을 구축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가동되지 못하는 배경에 북핵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북핵문제 해결에 최소한의 진전이라도 있어야 비로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생각인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년간 한 발언들을 곰곰이 따져볼 때 이런 짐작이 가능하다. 북핵문제는 남북 간의 대화와 협상은 말할 것도 없고 6자회담에 참여하고 있는 나머지 동북아 국가들 간의 대타협이 있어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최소한 미-중 간의 전략적 타협이 전제되어야 할 일이다. 이 역시 정전협정을 종식시키고 평화체제로 가는 과제와 엮여 있다. 미국과 중국은 정전협정 체결 당사국들이고, 북핵문제는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체제를 종식시키는 것은 실로 엄청난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지도자의 정치적 의지, 긴밀한 남북 간의 대화, 국제사회와의 공조가 요구된다. 지금 한반도의 남북과 동북아 지역에 이를 위한 분위기가 있느냐는 회의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대통령이 결단하면 가능하다. 마침 2007년 남북 정상 간의 ‘10·4 선언’에는 바로 이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 조항이 들어 있다.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미·중 4자 정상들이 만나서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 선언이 정전협정체제를 곧장 끝낼 수는 없어도 한반도 평화정착을 본격 개시하는 정치적·상징적 출발이 될 것이다.

이수훈 경남대 교수·정치사회학

2014년 6월 21일 토요일

7인회 김용갑 인터뷰

경향신문 김용갑 인터뷰 기사 중

7인회는 김 전 의원을 비롯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강창희 전 국회의장,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멤버다.

대표적인 보수정치인인 김 전 의원은 지난 19일 서울 반포의 한 커피숍에서 기자와 만나 문 지명자와 관련해 “보수라고 무조건 꼴통이 아니다. 어떻게 그런 분이 후보가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누가 그 사람을 믿고 일을 추진하겠느냐. 국가개조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을 향해선 “정치를 쉽게 하면 좋을 텐데 왜 이렇게 어렵게 하는지 아쉽다”고 말했다.

“(예전에) 박 대통령에게 (청와대) 민정수석을 잘 쓰라고 했다. 검사 출신(김영한 신임 민정수석은 검사 출신이다)은 하면 안된다. 검사들은 많이 굳어가지고. 내가 민정수석을 해봐서 아는데 참 중요하다. 민정수석은 민심동향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직언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신문 보니까 민정수석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를 안 하고 실장을 통해서 한다고 하더라. 그러면 안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6210600025&code=910100

2014년 6월 20일 금요일

[한겨레 사설] 국제기준 및 법 취지에 어긋나는 전교조 판결

15년 동안 합법적 지위를 누려온, 6만 조합원의 전교조가 하루아침에 법의 울타리 밖으로 쫓겨났다. 법원이 19일 “전교조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가 너무 법조항의 문구에만 매달려 애초 법을 만든 취지를 가볍게 본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노동조합에 대해 정의를 내린 노조법 제2조에 대한 법원의 해석이 특히 그렇다. 이 조항은 노동자가 자주적으로 단결하도록 하고, 사용자의 입김이 미치는 어용노조를 막고자 하는 게 목적이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6만여 조합원 중 9명의 해고자로 인해 노조의 자주성이 침해되는지 여부를 따져봤어야 한다. 그런데 재판부는 문제가 된 해고자 가입 부분을, 경비의 주된 부분을 사용자로부터 원조받는 경우나 사용자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는 경우와 똑같이 취급해버렸다. 노조법의 통일적·유기적 해석을 위한 거라는 설명이 고작이다. 노조의 자주성을 보장해주기 위한 조항을 가지고 거꾸로 자주성을 질식시켜버리고 만 꼴이다. 법조문에 대한 기계적 해석이 낳은 비극이다.
전교조는 1심 판결에 대해 즉각 항소하고 법외노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을 낸다고 하니 이 부분은 상급심에서 더 깊게 다뤄질 것이다. 하지만 애초 법률 자체가 해석상의 혼선을 부를 여지가 있는 만큼 국회가 법을 개정해 그 취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와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이미 여러 차례 법개정을 권고한 만큼 국회가 서둘러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의 태도가 소극적이라 그동안 법개정이 진척되지 않았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날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결”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이미 전교조에 대해서는 국민의 심판이 내려졌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 중 진보 교육감이 13명이나 당선됐고 그 가운데 8명이 전교조 출신이다. 전국의 초·중·고 학생의 85%가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에서 공부하게 된 게 현실이다.
정부와 여당은 더 이상 민심을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그동안 전교조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대립만으로도 우리 사회는 충분한 비용을 치렀다. 앞으로도 이런 소모전이 지속된다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일 뿐이다. 정부 여당의 성찰을 기대한다

2014년 6월 10일 화요일

[한겨레: 박노자] 학피아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필자가 여태까지 들은 노엄 촘스키의 명언 중 이 말은 가장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최악의 학살자는 현장에서 직접 살인을 벌이는 졸개들이라기보다는, 멀리에서 정장을 입고 조용한 사무실에 얌전히 앉아 있는 고학력자 출신의 지휘자다." 이번 세월호 학살도 마찬가지다. 주류 언론들이 도망친 선장 등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지만, 비정규직이기도 한 선장은 촘스키가 이야기한 '졸개'에 불과했다. 고물 선박 구입과 관련된 규제를 풀고 선박에 대한 감독을 해운업자 조직에 맡기는 등 과적 운항을 상습화시킨 '조용한 사무실에서의' 관피아야말로 이 학살의 원흉임을 이제는 삼척동자도 알게 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관피아보다 훨씬 더 그늘에 가려 있는 초대형 조직은 바로 학피아, 즉 정부·기업들과 긴밀히 유착돼 있는 학계다. '규제완화' 등 관피아가 추진하는 범죄적 정책들의 골간을 학피아가 만들어내고, 곡학아세하면서 합리화하기에 이번 학살의 원인을 논할 때 학피아를 빠뜨릴 수 없다.

그러나 관피아와 함께 이 학살이 일어나도록 공을 들였으면서도, 관피아보다 훨씬 더 그늘에 가려 있는 초대형 조직은 바로 학피아, 즉 정부·기업들과 긴밀히 유착돼 있는 대학가 내지 학계다. '규제완화' 등 관피아가 추진하는 범죄적 정책들의 골간을 학피아가 만들어내고, 곡학아세하면서 합리화하기에 이번 학살의 원인들을 논할 때 학피아를 빠뜨릴 수 없다. 하지만 국내는 아니지만 일단 대학 교원인 나 자신에 대한 반성문을 쓰는 입장에서 학피아 문제를 본격 거론하기 전에 몇가지 단서를 달아야 할 것이다.

첫째, 나는 국내 대학의 모든 정규직 교원들을 뭉뚱그려 '학피아'로 보려 하지 않는다. 그들 중에서도 주류에의 편입을 거부하고 노동운동에 앞장서는 '작지만 큰' 용감한 소수는 있다. 하지만 변혁을 지향하는 소수는 있다 하더라도 하나의 조직체로서 학계·대학가는 대한민국에서 신자유주의 도입의 전위대 노릇을 해왔다. 또 밑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대학사회만큼 신자유주의 원칙이 철저히 적용되는 곳도 드물다.

둘째, 대한민국 학계라고 해서 꼭 특별한 것은 아니다. 정학(政學)·경학(經學) 유착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우리 식민 모국을 보라. 이미 1969년에 촘스키는 베트남 침략의 원흉으로 아서 슐레진저(1917~2007)나 새뮤얼 헌팅턴(1927~2008)처럼 '효율적인 제3세계 개입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어용 '정치학자'들을 지목했다. 1973년에 촘스키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정치외교학 계통 논저의 95% 정도는 미국 재벌기업의 이해관계와 대외정책의 연관성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자들이 재벌들 앞에서 이 정도로 '얌전하게 구는' 데는 당연히 대학가의 이해관계가 있다. 전체 미국 대학이 수령하는 연구비의 약 60%를 재벌이 움직이는 국가가 대주고, 약 6%를 사기업들이 직접 대주고 있다. 많은 대학의 경우 기업들의 지원은 거의 결정적이다. '진리 탐구'나 '상아탑의 자율성'은 옛말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다른 나라라고 해서 본질적 차이는 그다지 없는데 하필이면 한국 학계를 특별한 문제로 삼는 까닭은 무엇인가?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관피아와 함께 학피아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어느 나라보다도 한국 '명문대학'의 전임교원들은 사회 귀족으로서의 신분을 과시한다. 미국이라고 해서 폴리페서가 없는 것이 아니고 위에서 언급한 슐레진저와 같은 사람들은 사실 그 정의에 그대로 부합할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만큼 폴리페서들이 판치는 세상도 참 드물다.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공공기관 고급 임원 중 교수와 연구원 출신은 24%나 됐다. '재벌정부'라는 누명을 썼음에도, 사기업 임원 출신은 약 8%에 그쳤다. 박근혜 초기 내각에서는 연구원 출신만 약 28%에 달했다. 즉, 두 극우적인 신자유주의 정권의 공통점이라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바로 '고급 두뇌'들이 추진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유독 '교수 출신 장관' 따위가 많은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그중 하나 특기할 만한 이유는 바로 학벌 카스트 제도의 작동 방식이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이라는 세 대통령의 하나의 공통점을 지적하자면, 그들 중에서는 그 누구도 감히(?) '서울대 마피아'라고 호칭할 수 있는 학벌조직이 대한민국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건드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각각 임명한 정무직 공무원 중 서울대 출신 비율은 47% 정도였으며, 이명박 시절에는 고려대 출신에 약간 밀린 결과 40%로 깎이긴 했지만 그대로 우세를 유지했다. 특정 대학이 국가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상황에서 그 대학 전임교원의 정치·사회적 비중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둘째, 그 어느 나라에서도 대학들이 신자유주의적으로 개편되지 않는 곳은 거의 없지만, 그 일부(성균관대·중앙대 등)를 아예 재벌기업이 소유하는 한국만큼 저질스럽고 졸속적인 신자유주의화를 볼 수 있는 곳은 드물다. 예컨대 정부의 정원감축이나 특성화 사업에 발맞추느라고, 도살하듯이, 학생의 의견을 무시해 가면서 여러 대학에서 벌어지는 학과 통폐합을 보라. '비인기'라고 해서 독일·프랑스어, 사회학이나 철학 등의 학과들을 폐품 처리하듯이 단숨에 없애버리는 것은 과연 학술적 전통이 있는 대학에서 가능한 일일까? 아니면 '영어 논문' 광풍이나 '유명 해외 학술지' 광풍을 보라. 내가 있는 오슬로대학을 포함해서 세계 대부분의 대학들은 교원들이 학술 활동을 영어로 하는 것을 유도하고, 교원들의 영미권 유명 학회지 논문 게재를 선호한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영미권 학계의 패권이 강한 것은 현실이다. 한데 외국의 유명 학술지에 논문을 실었다고 하여 그 저자로 돼 있는 교수에게 수천만원의 포상금을 내놓는 대학은 한국 말고 과연 어디에 더 있는가? 더군다나 국내의 논문생산 시스템에서 상당수 교수들이 대학원생이나 비정규직들을 무상 착취해 가며 논문을 만드는 것까지 생각한다면, 국내 대학들을 기초 상식이 없고 기본 인권도 지킬 줄 모르는 신자유주의적 착취공장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장하준 교수는 케임브리지대에 취직할 수 있어도 국내의 '명문대' 경제학과 같으면 취직하기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경제학과 교수들은 비정규직 양산부터 '규제완화'까지 서민들 삶의 기반을 뒤흔드는 데 앞장섰다. 학피아의 주변부에 속하는 인문학의 가장 큰 문제는 고질적인 현실도피다.

세월호 학살로 귀결된 대한민국의 신자유주의화를 이끈 것은, 학피아의 하나의 중심이라고 할 '명문대'들의 경제학과였다. 거기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는 고사하고 제도주의 학파 등 온건 케인스주의자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온 시장주의자 일색이다. 시장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큰 인기를 얻은 장하준 교수는 케임브리지대에 취직할 수 있어도 국내의 '명문대' 경제학과 같으면 취직하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경제학과 교수들이 역대 정권에 의해서 가장 자주 정무직으로 등용됐으며, 비정규직 양산부터 범죄적인 '규제완화'까지 서민들의 삶의 기반을 뒤흔드는 데 앞장섰다.

경제학과들을 점령하다시피 한 시장주의자들의 범죄성이야 노골적이지만, 학피아의 주변부에 속하는 인문학의 가장 큰 문제는 고질적인 현실도피다. 예를 들어 여러모로 가장 현재성이 강할 수도 있는 역사학을 보라. 최근의 '문화 중시'와 같은 포스트모던 추세로 한참 '뜨고 있는' 식민지시대 영화 연구로 지난 10년 동안 적어도 50개 이상의 연구논문이 발표됐다. 그러나 삼성가의 자본축적 경위나 그 과정에서의 식민지 당국이나 독재정권과의 유착을 본격적으로 다룬 저서 내지 논문은 3~4편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어차피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민족주의는 학계에서 비판의 대상에 올라도, 한국 대학에 대한 자본 지배의 현실은 거의 학술적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국가와 자본의 명령대로 인문학은 '가만히 있는' 것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세월호에서 수장당한 아이들에게, 시장주의와 순응주의가 당연시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온 고등교육기관 교원인 우리가 속죄하자면, 이제라도 학피아의 테두리를 안으로부터 과감히 부숴야 한다. 국가와 자본을 끊임없이 문제시하고 도전하는 학문만이 새로운 학살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새로운 '실학'이 된다. '가만히 있지 않기'를 실천하고 가르쳐야 우리에게 속죄의 길이 열릴 것이다. 착취공장으로 전락한 대학의 틀 안에서 안주하는 순간 우리도 종범이 된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2014년 5월 28일 수요일

[경향신문] 조국교수 칼럼

안녕하십니까. 저는 실장님의 까마득한 대학 후배로, 많은 부족함에도 모교에서 형사법을 가르치고 있는 '백면서생(白面書生)'입니다.

실장님의 이력, 대단합니다. 1960년 서울대 법대 3학년 재학 중 고시에 합격하여 1964년 검사가 된 후, 1979년 청와대 법률비서관을 거쳐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1988년, 1991년 연달아 역임했습니다. 보안사 세력과의 갈등으로 관운이 약해진 전두환 정권 시기를 빼고는, 박정희 정권 이후 지금까지 승승장구하였습니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후에도 요직을 거쳤고, 최근의 국정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여전한 신뢰를 받으며 사실상 '부통령'으로 국정운영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이 국무총리로 지명되었지만, 그는 실장님이 검찰총장 시절 평검사 아니었습니까. 안 후보자는 "김 실장에 비하면 나는 발바닥이다. 우리 아이큐가 130~140 수준이라면 그분은 170대"라고 칭송하였더군요.

그런데 실장님의 화려한 경력 뒤에는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30대 초반 검사로, 박정희 영구집권을 보장하고 시민의 기본권 행사를 금압(禁壓)한 '유신헌법' 초안 작업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1972년 12월 대검찰청이 발간한 '검찰' 48호에 발표된 '유신헌법 해설'이라는 글, 기억나십니까. 실장님은 "유신헌법은 우리의 현실에 가장 알맞은 민주주의 제도를 이 땅 위에 뿌리박아 토착화시키는 일대 유신적 개혁의 시발점"이며, 국민은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구국영단"을 지지한다고 강변하였지요. 박정희에 대한 충성심, 유신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은 실장님 자기정체성의 핵심일 것입니다. 이는 육영수 여사 살해범 문세광의 자백을 받아냈던 '공훈'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이 실장님에게 혈육적(血肉的) 신임을 주는 이유일 것입니다.

1974년 실장님은 35세에 유신체제의 폭압과 공작의 요새였던 중앙정보부의 대공수사국장이 되었습니다. 박근혜 정권하에서 공안검사 출신들이 곳곳의 요직에 발탁되는 것이 실장님의 이런 성향 및 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장님 직할 친위부대의 위세가 대단합니다.

14대 대통령 선거 직전인 1992년 12월, 실장님은 전 법무부 장관으로 '초원복국집'에 부산 지역 주요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관권부정선거를 추진했습니다. 제19대 대선 국정원 선거개입의 원조 격인 범죄였습니다. 당시 실장님의 놀라운 발언 중 지금도 회자되는 최악의 지역감정 조장 발언이 있습니다. "우리가 남이가."

'아방'을 묶어세우고 '타방'은 쪼개고 찌르고 베는 냉혹한 정치전술은 계속되었습니다. 2004년 3월,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의 선봉에 서서 대통령의 목에 칼끝을 들이댔습니다. 탄핵이 실패한 이후에도 실장님은 2006년 12월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노무현은 사이코다"라는 발언을 하여 '적장'(敵將)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표명했습니다. 최근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노무현 대통령을 수사한 우병우 전 대검수사기획관이 발탁된 이유가 짐작됩니다. 믿을 만한 '살수(殺手)'로 일찌감치 찍어두셨겠지요.

지금 제 책상 위에는 <형법개정시론>(1984)이란 두꺼운 책이 놓여 있습니다. 실장님이 '5·16 장학금'을 받으며 쓴 서울대 박사논문을 출간한 책이지요. 학생 시절 이 책을 읽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과잉도덕화'되고 '과잉범죄화'된 형법을 비판하고 개정방향을 제시한 이 책은 당시는 물론 지금도 의미 있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실장님은 "시민사회의 질서원리는 최소한의 자유의 제약을 통하여 최대한의 자유를 보호하는 데 있다"(26쪽), "국가권력을 '절대적 정의의 집행자'가 아니라 오로지 '시민적 행복의 옹호자'로서 이해"(36쪽)한다고 썼습니다. 동의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실장님은 이 명제를 실천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윗분의 뜻"을 대대로 받들며 '연성(軟性) 유신체제'를 도모하고 있습니까?

박근혜 정권의 국정기조, 바뀌어야 합니다. 그 첫걸음은 실장님의 사퇴입니다. 실장님이 끌고 온 공안통치 방식으로는 대한민국은 물론 박근혜 정권도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실장님은 이미 박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1972년 유신헌법이 아니라 1987년 민주헌법의 정신에 충실한 대통령 비서실장과 참모진이 필요합니다. 간명히 말씀 드립니다. 실장님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물러나십시오. 후배의 직언이 무례하였더라도 혜량해주시길 바랍니다.

2014년 5월 23일 금요일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
차마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났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고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던 천진난만한 학생들, 무고한 시민들이 배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가족들과 함께 온 국민이 지켜보아야 했다. '나라초상'을 당하여 참으로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오월'이었다. 무책임한 어른들 때문에 졸지에 자신의 꿈을 난파당한 어린 영혼들이 저 세상에서나마 평화와 안식을 얻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유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겠지만, 3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낳은 이 대재난을 근원적으로 성찰하는 길만이 희생자들에 대한 최선의 애도이고, 또 이 땅에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져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가 지닌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드러냈다. 세월호 침몰에는 생명과 안전을 도외 시하고 오직 돈만을 추구한 '청해진 해운'의 천박한 기업행태와 함께, 감독기관의 부패와 행정 공백, 그리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를 위한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더 근본적으로 온갖 종류의 '관피아'로 지칭되는 일련의 '연줄관계망'의 구조적 폭력과 이윤, 결과, 속도, 효율성만을 강조해온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의 논리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작동했다.

하지만 국민을 진정으로 분노하게 만든 것은 세월호 구조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국가'의 부재였다. 승객들과 선박을 돌보지 않고 제일 먼저 탈출한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스스로 '재난의 컨트롤 타워(관제탑)'임을 부정한 청와대의 대응과 판박이거니와, 사고 발생 직후 해양경찰의 초기 대응 실패는 이번 참사가 무엇보다도 인재(人災)임을 보여준다. 정부의 재난관리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은 채 해양경찰이 해군 및 민간잠수사의 활동을 방해하고, '언딘'이라는 일개 민간업체가 구난과 구조 업무를 사실상 이끌었으니 해양경찰과 해양수산부는 직무유기를 넘어 그 존재가치를 스스로 부정하였다. 이는 그간 정부 자체가 공공성을 허물면서 '기업 프렌들리'를 외쳐온 '기업국가'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것도 나라인가?' 하는 자조가 국민의 분노를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고 이후 정부 및 정권의 대응은 분노를 넘어서 정부와 국가에 대한 신뢰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다. 정부는 자신의 무능은 아랑곳 하지 않고 언론과 국민 여론을 통제하고 사건을 축소·은폐하려고 했고, 사복경찰을 동원하여 피해자 가족의 동정을 살피고 심지어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등 피해 가족 및 시민들을 부당하게 감시했으며, 비판자들에게 압력과 협박을 가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정부 관리와 여당 의원, 언론사 간부는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은 정부의 부실하고, 무능하며, 무성의한 사태 해결 노력에 대해 정부의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기보다는 유족 대신 조문객을 위로하는 보여주기식 정치와 행정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정부의 구조 행위에 대하여 '살인행위'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지만, 대통령과 정부는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의 몫을 과거 정부로 떠넘기며 적폐(積弊)를 운운하고 있다. 현 정권 들어서 국정원의 선거 개입, 간첩 조작 등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사건이 연이었고, 그에 대해 우리 사회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시종일관 요구했지만 그러한 국민적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위기의 징후는 곳곳에 있었으나 그 경고음을 현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현 정부에 의한 민주주의의 훼손과 비판·감시 기능의 상실이야말로 적폐를 키울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적폐의 온상은 현 정부의 비민주성과 무능, 무책임성이고, 그 정부를 이끌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적폐' 그 자체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세월호 참사를 취재하던 기자들이 희생자 가족들은 물론 온 국민으로부터 '기레기' 취급을 받았고, 유가족들은 국내 언론을 불신하고 외국 언론을 상대하였다. 해외 교포들은 세월호 참사에서 나타난 한국 정부와 언론의 행태를 비판하는 전면광고를 세계적으로 유수한 신문들에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든 데 대해 언론인들의 자성과 자기개혁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시급한 것은 정부의 언론 통제 철폐와 권언유착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KBS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정부의 방송 장악 기도, 언론 통제와 권언 유착의 실상이 낱낱이 폭로되고 있지만 청와대를 비롯하여 관련 기관 어느 곳도 사실을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대통령 인수위원회 관여 인물을 방통심의위원장에 내정하는 등 정부의 언론 장악 획책은 지칠 줄을 모른다. 이제 국민들은 언론을 정부의 홍보 대행기구, 선전도구 정도로 여기게 되었다. 실상이 그렇다면 국민의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세월호 참사 수습의 중심에 언론 통제 철폐와 언론 개혁이 있다.

많은 분들이 현 대통령의 복지 공약을 보고 그녀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 정권의 복지공약은 어디로 갔는가? 현 정부는 복지는커녕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책임지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임을 세월호 참사가 증명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안보가 어디 있을 것이며, 그 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정부로서 자격도 없는 것이 아닌가. 또 현 정부는 대선부정 문제를 비롯하여 자신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종북으로 몰거나, 전 검찰총장의 실례에서 보듯 개인적 문제를 트집 잡아 인격살인을 통해 비판자를 몰아내는 일 따위를 자행함으로써 사회구성원들이 사회적 현안에 대해 정당한 문제제기를 하고 자기교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거해 왔다. 정부가 돌아봐야 할 것은 과거의 적폐나 일개 기업의 비리, 한낱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들의 무능력과 공약 위반, 그러한 사태를 낳은 자신들의 허물과 국정철학, 그리고 집권 이래 현 정부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훼손해가며 쌓고 있는 적폐들이다. 이번 참사는 근본적인 인적 쇄신 없이 부서 이름 바꾸기 차원의 재난 대응과 말만 번지르르 한 안전대책들로 수습될 문제가 아니다. 담당 부서와 안전대책들이 없어서 눈앞에서 어린 영혼들을 수장시킨 것이 아니지 않는가?

대통령이 뒤늦게 책임을 인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해경해체만으로 모든 책임을 면하려는 태도는 스스로의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철저한 진상조사와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진단을 통해서 책임소재를 밝히고, 그에 상응한 개혁을 즉각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 그 전에 이 정부의 국정을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는 청와대와 권력기관들의 인적쇄신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구시대적인 적폐의 근원이 되고 있는 청와대 비서실장, 국정원장, 안보실장, 홍보수석, 그리고 검찰총장의 자리를 쇄신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숨 쉬기도 미안한 4월, 또 미래세대의 교육을 담당한 사람으로서 제자들 얼굴 보기가 부끄러운 5월을 보내고 있다. 침몰 현장에서 인명 구조를 위해 대기했던 민간 잠수사들, 진도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밤을 지새운 자원봉사자들, 분향소마다 길게 줄을 이어 늘어선 조문객들, 어린 영혼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켜진 촛불들, 그리고 이 모든 사태를 묵묵히 지켜본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앞장서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줄 줄 아는 정부, 의사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언론통제가 없는 나라, 그리고 이 땅의 모든 부모형제들이 더 이상 슬픔과 분노로 자신의 눈자위가 붉어지지 않는 사회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온 국민의 비탄과 공분을 받들어 우리는 다음 사항을 요구한다.

1. 해경해체 등 조직개편 이전에 철저한 진상규명이 우선이다. 정부는 진상 조사의 주체 이전에 조사 대상이니 유가족 대표와 시민 대표가 주도하는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좌초와 침몰의 원인, 각 단계별 인명구조가 지연되고 실패한 원인, 무책임한 정부 대응을 한 점 의혹 없이 규명해야 한다.

1. 청와대부터 정부 각 부처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이고 철저한 인적 쇄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1. 정부는 그동안 자행한 언론 통제에 대해서 사과하고, 언론 통제 철폐를 약속해야 한다. 또한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1. 세월호 사건의 뿌리는 지난 정권부터 계속된 무분별한 친기업 규제 완화이다. 정부는 제2의 참사를 예고하는 과잉친기업 정책을 즉각 폐기하고 생명과 안전을 중심에 두는 국정을 운영하여야 한다.

1. 대통령은 이번 사고 대처에서 나타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최고책임자일 뿐만 아니라 이번 참사의 근원적인 수습에 대해서도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위의 요구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대통령은 다시 국민적 사퇴 요구에 부딪힐 것이다.

2014년 5월 20일
서울대 민주화 교수협의회 

2014년 5월 17일 토요일

KBS 김시국 보도국장 발언내용과 언론노조 KBS본부 성명서


[KBS본부에서 낸 성명서 전문]



김시곤 전임 보도국장의 사의 표명 과정에 청와대, 아니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세월호 보도에서도 해경을 비판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전 국장은 오늘 KBS 기자협회 총회에 참석해, 재임 기간 중에 벌어진 청와대가 KBS 뉴스와 인사에 직접 개입했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제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이 답하라!

김 전 국장의 발언 내용을 다음과 같이 공개한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하라! 길환영 사장은 즉각 사퇴하라!



다음은 KBS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이날 발언을 정리한 것이다.



● 김시곤 전임 보도국장은 오후 7시 30분 기자협회 총회가 열리는 KBS 신관 5층 국제회의실에 도착했고, 곧바로 조일수 기자협회장의 안내가 있었습니다. 본사 촬영 카메라가 녹화를 시작했고, 김시곤 국장의 모두 발언과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기자회견 형식으로 진행된 질의 응답은 약 2시간 가량 이어졌고, 이후 김시곤 국장은 퇴장, 기자들만 남아서 향후 기자협회의 대응 방안을 놓고 총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기자협회는 오늘 밤 뉴스라인에 이와 관련된 보도를 하기로 하고 야간발생 아이템에 준하는 계통을 밟아 당직국장 주간 등과 협의를 하고 있습니다. 



■ 모두 발언



먼저 보도책임자로서 제 소명을 다하지 못해서 죄송스럽다. 외부의 보이기에 너무나 부끄러운 이야기를 후배들에게 할 수 있게 한데 기회를 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후배들도 마찬가지이고 외부에서 가장 궁금해 하는 사항은 보도 독립성 침해 사례, 또 하나는 5월9일 무슨 일이 있었나. 보도 독립성 침해 사례는 정확히 1년 5개월 보도국장했는데 가장 최근에 5월 사례만을 정리해서 기자협회에 넘겼다. 나머지 14개월 동안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유추하면 되겠다.



■ 보도국장 사임 관련 청와대 인사 개입



5월 9일 있었던 일만 설명하겠다. 유가족들이 회사 앞에 몰려와서 KBS를 강력히 비난하면서 제 이름을 불렀고, 저희 사퇴와 사장의 사과를 요구하는 농성이 있었다. 농성 끝난 게 새벽 2시 40분. 새벽 3시에 6층 임원 회의실에서 사장. 부사장. 임원, 보도본부 국장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 요구에 대해 본부노조 일방적 주장이기 때문에 정면 돌파하는 것으로 사장이 결정하고 확인했다. 당일 오후 2시에 본부노조 주장을 반박하는 공식 기자회견을 하기로 확정. 5시간 후인 오후 8시 같은 장소에서 비상 임원회의 열렸고, 새벽 3시 방침을 재확인했다. 



오후 12시 25분 사장 비서로부터 사장이 면담하겠다는 연락 와서 6층에 올라갔다. 사장의 전언은 "주말에 대규모 촛불집회가 예정돼 있어 위기국면이다. 기자회견 잘 해 주길 바란다" 이야기 들었다. 정확히 1시간 뒤인 오후 1시 25분, 즉 기자회견 35분 남은 시각에 휴대전화로 사장 휴대전화 왔다. 올라오라고 했다. 사장은 BH, 청와대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제게 회사를 그만 두라고 했다. 잠시 3개월만 쉬면 일자리를 찾아보겠다고 회유를 했다. 그러면서 이걸 거역하면 자기 자신도 살아남을 수 없고, 이건 대통령의 뜻이라고 까지 말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너무도 부끄럽고 창피하고 참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분노했다. 이 말을 어디에 가서 할 수 있겠나. 저 자신도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 사람이 과연 언론기관의 수장이고, 이곳이 과연 언론기관 인가하는 자괴감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했다.



■ 구체적인 보도 개입 사례



분야를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있다. 정치를 제외하고는 거의 개입이 없었고, 매우 독립적이었다고 자평한다. 정치 부분은 통계를 봐도 금방 아는데 대통령 비판은 단 한 차례도 없었고, 새로 정부 출범하는 1년 동안 허니문 기간은 비판 자재. 2월 25일 허니문 끝나고 대통령 비판은 단 한 차례도 없다. 정부 여당 비판도 제가 기억하기로는 한 차례만 있었다. 서울시당의 내부 문제 비판했었고, 마찬가지로 민주당 비판 못했다. 민주당도 비판의 대상에서 성역이 돼버린 측면 있다.



■ 청와대 직접 지시 여부



청와대로부터 전화는 받았다. 그건 내가 판단하기에는 어떻게 보면 그쪽 사람들의 소임이기도 하고, 그건 우리뿐만 아니라 타사에도 할 거다. 진보지에도 할 거다. 소화를 하거나 걸러 내거나 하는 건 바로 보도책임자, 경영진의 소임이라고 생각. 그 자체를 문제 있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 역대 사장들의 뉴스 개입 여부



기본적으로 사장 선임 구조 자체가 대통령 임명 구조여서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회 될 때마다 얘기했듯이 선임 구조 바뀌어야 하고, 정권에 유리한 보도 해 달라고 요청 있겠지. 뉴스에 대한 개입을 안 했던 사장이 정연주, 이병순 전 사장이었다. 두 사람은 가편집, 큐시트 받지 않아. 이병순 전 사장도 뉴스 관여 안한다고 천명. 외부 전화도 하지 말라고 반드시 이야기한 걸로 알고 있다. 뉴스 큐시트를 받기 시작한 게 김인규 사장이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다만, 사장은 그런 전화를 받게 되면 걸러내고 저항할 건 해야 하는데 그걸 더 증폭시켜서 100의 내용을 200, 300배 증폭시키는 사장이 있는 반면, 50 정도로 걸러서 내려보내는 사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 최근 문제 제기된 지하철 사고 확대 보도 



완전 코미디다. 그런 조작은 절대 한적 없다. 우리 뉴스 블록화 돼 있기 때문에 꼭지를 늘린 건 맞다. 2꼭지 늘었는데 본부장이 제안했고, 그 뉴스는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안전불감증의 연속, 세월호 이후 이어진 사고여서 키울만한 가치가 있었다. 절대로 뉴스를 조작해서 선거에 개입하겠다는 건 무시무시한 생각이다. 하느님 믿지 않지만 하늘에 걸고 맹세한다.



■ 세월호 보도 관련 청와대 개입



세월호 참사 관련해서 가장 비판적인게 K, 그다음 s, m은 반 밖에 안 됐다. 후배들도 많이 발제했고, 세월호 참사에 관한한 우리 보도가 결코 뒤지지 않고 비교적 잘한 보도라고 자평한 적 있다. 다만, 정부쪽에서는 해경을 비난하지 말 것을 여러 번 요청, 받아들이기 나름이고 우리가 많이 비판했다. 밖에서 연락이 오더라도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전화 받을 때, 보도국장 방이 비상상황실 비슷해서 내가 앉아있으면 오른쪽 편집주간. 왼쪽 제작2부장, 취재주간, 4명이 같이 일을 했는데 청와대 연락이 왔다. 오픈해서 받았고, 항의해도 받아 들이냐의 문제다. (청와대 요청 내용은?) 한참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니까 해경 비판을 나중에 하더라도 자제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해경 관련 보도가 꾸준히 나갔고, 그런 요청이 잘 안 받아들여지니까 다른 루트를 통해서 전달된 것 같다. (다른 루트라면?) 사장을 통한 루트인데 5월 5일에 사장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보도본부장실을 방문, 사장 주재 작은 모임이 있었는데 보도본부장. 나. 취재. 편집주간 4명이 해경에 대한 비판은 하지 말라달라는 지시가 있었다. (청와대에서는 보통 누가 연락했나?) 당연히 대 언론 역할을 맡은 자리가 있다. (홍보수석?) 끄떡..



■ 청와대 출입기자 관련 인사 개입



(새 정부 들어서고 청와대 모 인사가 이화섭 전 본부장에게 특정 기자를 청와대 출입기자로 발령 낼 것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자 사장과 불화 시작돼서 자리를 그만 둔 사실 있나?) 인사 문제는 대상자가 있어서 말할 수 없지만, 당시 보도국장, 본부장까지 보도본부에 있는 간부들은 다 그 의견(청와대 요청)에 반대했다.



■ 길환영 사장, 대통령-정치 관련 보도 원칙



길환영 사장이 대통령을 모시는 원칙이 있었다. 대통령 관련 뉴스는 러닝타임 20분 내로 소화하라는 원칙이 있었다. 정치부장도 고민 했는데 순방 때마다 몸살을 앓았다. 이른바 꼭지 늘리기 고민이지. 뉴스 전반에 있어서 사장이 개입한 부분은 다른 건 거의 없었고, 정치 아이템이다. 분명히 짚어야 할 부분인데 여당의 모 의원이 TV에서 얘기하는 날은 반드시 전화가 왔다. 어떤 이유가 있든 그 아이템을 소화해라. 일방적으로 할 수 없으니까 야당과 섞어서라도 해라. 누구라고 말을 안 해도 정치부 기자들이라면 모두 알 것이고, 화면에 가장 많이 등장한 사람 헤아려보면 금방 알 것이다.



■ 국정원 관련 보도 개입

(국정원 관련 기사에도 영향력이 있던 건지?) 사장의 개입이 다른 부분에 거의 없었는데. 국정원 수사에는 일부 있었다. 순서를 좀 내리라던가, 이런 주문이 있었지. (단독 빼는 건?) 단독을 뺀 적은 없는 걸로 안다. 그건 문제가 크지.

■ 채동욱 검찰총장 관련 TV조선 보도 인용 문제

(TV조선 인용 보도 관련해서 지시 있었나?) 결코 없었다. 양심에 걸고. 두 번째인가 올라갔는데 본부장실에서 최종 라인업하는데 본부장이 톱 이야기했고, 모두 올릴만하다고 판단했다. 끝.

2014년 5월16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