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0일 토요일

'헌재의 시계'는 유신인가?/홍윤기[한겨레 시론]

박한철 헌재 소장이 기각 사유를 읽은 시간은 인용 사유를 읽은 시간보다 약간 길었다. 그리고 박 소장이 결정문 낭독을 시작하면서 먼저 읽어준 헌법 제8조 ④항의 민주적 기본질서의 훼손이라는 정당해산 요건을 “최대한 엄격하고도 협소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르면, 진보당은 해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더 합당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은 해산한다”는 박한철 소장의 주문이 낭독되자 깜박했던 나의 의식은 돌연 42년 전인 1972년 10월17일 아침으로 날아갔다. 햇빛 찬란했던 그날 방송에 낭독되었던 박정희 대통령의 이른바 ‘10·17 특별조치’는 “1972년 10월17일 19시를 기하여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정치 활동의 중지 등 현행 헌법의 일부 조항 효력을 정지시킨다”로 시작하였다. 대한민국 제3공화국을 일거에 파괴한 이런 반헌법 조치를 발표한 동기는 딱 한 가지였다. 즉, 국회를 해산하고 그 업무를 대신하는 비상국무회의는 “1972년 10월27일까지 조국의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헌법개정안”을 만든다는 것뿐이었다. 당시 청년 검사로서 지금 대통령 비서실장인 김기춘의 주도로 작성된 유신헌법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 피격 때까지 공포통치의 명분을 제공했다.
42년 전과 포개진 박 소장의 음성
나는 그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을 과거 유신통치의 부활로 보지 않으려고 개인적으로 무진 애를 썼다. 체육관에서 투표 흉내만 했던 선친과 달리 그는 합법적·합헌적 선거로 정당하게 당선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국정원, 기무사 등 관권 개입으로 이루어진 댓글 공작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선거 공약을 하나하나 폐기하다가, 측근과 관련된 온갖 추문이 터지는 과정에서 소통을 거부하고 청와대에 들어앉아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그 모습에서 유신전체주의의 옛 그림자가 서서히 덮쳐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19일) 아침,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는 박한철 소장의 음성에 “국회를 해산한다”는 42년 전의 그 목소리가 마치 메아리처럼 포개졌다. 진보당 해산에 찬성한 재판관 8명은 자신들의 판결이 이 국가와 지구사회의 시민들에게, 그리고 미래 대한민국과 인류의 역사에 어떤 의미를 가질지 과연 제대로 생각해 보았을까?
진보당 해산에 찬성한 8명의 재판관은 진보당 소속 이석기 의원과 경기도당 당원들이 북한과 연계하여 아르오(RO) 조직을 결성하였다는 애초의 검찰 주장이 재판 과정에서 입증되지 않아 내란 음모죄 부분은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오늘의 결정에서 이들은 단지 이 의원이나 회합 당원 정도가 아니라 진보당 전체가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을 논의하는 회합을 개최하는 등 활동을 한 것”이라고 했다. 진보당 당헌이나 공식 문건 등에 기재되지 않은, 즉 공중에 공식적으로 공표된 바가 전혀 없는 “숨은 목적”에 따라 그들이 내란을 음모하는 회합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회합한 이들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한 “숨은 목적”에 따라 “회합”한 것을 두고,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험성”을 야기하는 “활동”으로 판정했다. 또 그런 현재의 상황은 “헌법을 수호한다는 방어적 민주주의 관점에서 비롯된” “비상상황”이므로 진보당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을 박탈한다고 선고하였다. 앞의 72년 10·17 조치에서 300명에 가까운 국회의원의 직을 일거에 박탈한 것에 비하면 규모는 5명으로 줄었지만 그 모양새는 왜 그렇게 닮았는가?
그렇다. 오늘부터 몇사람 모여 “대한민국에서 못 살겠다. 누구 물러나라 하자”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도 바로 이렇게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험성을 야기하는 활동”으로 간주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더 큰 문제는 위의 8명을 포함해 누구나 이렇게 나가면 안 된다는 점을 잘 알지만, 위와 같이 불만을 토로하다가 정권 담당자에게 미운털이라도 박히면 이번 헌재 결정을 근거로 진보당과 같은 혐의를 임의로 뒤집어씌울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런 점이 긴급조치를 남발하여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무한 유린하고, 인혁당 사건을 조작하여 관련자들을 일거에 사형시킨 과거 유신을 떠올린 연유이다.
난국에 처했다! 국민만 몰랐다!
물론 이번 결정에 법무부가 꽤 정성 들여 정당해산의 판례로 제시한 1956년 8월의 독일공산당(KPD) 해산 결정은 판례로 인용되지 않았다. 당시 서독의 연방헌법재판소는 정당해산이 청구된 1951년 당시의 독일공산당 강령에 명시된 “프롤레타리아 혁명” 노선을 문제삼았다. 5년이 지나 해산 결정을 내릴 때 독일공산당은 이 강령을 삭제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해산 결정을 내린 1956년의 서독 헌재의 평결은 독일 민주주의의 미숙한 운용 사례로 꼽힌다. 그리고 이렇게 해산된 독일공산당은 당 이름의 단어들 순서만 바꾸어 1968년 9월 다시 독일공산당(DKP)으로 12년 만에 재창당되어 지금까지 존립한다. 누가 봐도 유사한 당명인데도 현재의 성숙한 독일 민주주의에서는 누구도 과거 KPD 해산을 근거로 DKP를 해산하자고 하지 않는다. 헌재는 독일 민주주의가 가장 약했던 1950년대의 판례로 21세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재단했다.
무슨 변명을 하든 대한민국 헌재의 이번 진보당 해산 결정은 42년 전 단 한명의 독재에 의한 10월 유신과 거의 상응하는 8명의 헌재 재판관이 발포한 12월 유신이다. 헌재는 국가와 국제사회에 잘못된 시그널을 보냈다. 헌재는 최고법인 헌법의 최종 해석권을 휘둘러 “명백하게 현존하는 위험성”이 없는 정당을 강제 해산하고 “비상상황”을 공표했다. 대한민국은 단 한줌도 안 되는 몇몇 진보당원 때문에 난국에 처했다! 우리 국민만 몰랐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스스로 비상상황이라면 주변국들은 긴장하지 않을까?
이미 종편 방송이나 일베의 부추김 정도로도 “종북” 토크쇼에 살상용 화염물질이 투척되고, 공공연히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헌재가 10여년 합법정당으로 활동한 진보당에 종북 낙인을 찍어 해산했으니, 조금만 진보적 색채를 띠어도 백색테러를 가하고는 헌재 결정문을 근거로 들 개연성이 아주 높아졌다.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에 대고 진보당과 야권연대를 도모했던 것을 사과하라고 겁박한다. 이것은 42년 전이 아니라 예수상을 밟아야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고 한 대원군 시대로 돌아가는 작태이다. 이렇게 되면 헌재야말로 대한민국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명백하게 현존하는 위협”을 조장한 것이다.
‘명백한 위협’ 조장한 헌재
그런데 비례대표 부정 선출, 여론조사 조작, 중앙위 폭력같이 당내에서 선거제도를 형해화한 진보당의 작태도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반하는 것으로 판시되었기 때문에 이번 결정이 정당민주주의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명지대 김형준 교수와 같은 의견도 있다. 그렇다면 당내에서 밀실공천 같은 비민주적 방식으로 후보를 선출한 의혹이 횡행하는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도 정당해산 요건을 충분히 갖춘 것이다.
순전히 법조계 출신으로서 단지 지명되었을 뿐인 재판관들의 손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큰 틀인 정당민주주의의 근간이 손상되었다는 것이 통탄스럽다. 선출이 아닌 고시공부로 최고 권력에 도달한 이들이 국가정치의 현실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이보다 더 여실하게 보여주는 전례가 없다. 그렇다면 독일공산당 해산을 마음에 깊이 두었을 테니까 헌재 재판관 구성도 이왕이면 현재 독일의 예를 따르면 어떨까? 즉 독일처럼 의회 내에 헌법재판관 선출위원회를 별도로 둬 여기서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재판관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이때 후보는 법률전문가뿐만 아니라 학계, 정치계, 시민사회 전반의 조류를 반영할 수 있는 대표 인물들로 확대해 그야말로 국민의 일반의지를 헌재가 구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단 한번도 진보당을 지지한 적이 없다. 과거 대학 시절에도 인혁당은 몰랐다. 그러나 인혁당을 법살했던 그 손길이 70년대 세대의 삶을 통째로 망가뜨렸다. 수천명의 진보당원을 추적하자면 그 옆에 섰던 이들은 몇명이나 다쳐 나갈까? 오늘 날씨가 흐리다. 대한민국의 민주정통성도 흐리다.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

2014년 12월 19일 금요일

민주주의의 죽음, 헌법재판소의 죽음

[한겨레 기사]

헌법재판소가 19일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했다. 소속 의원들의 국회의원직도 박탈했다. 그런 결정에는 제대로 된 증명도 확실한 근거도 없다. 다수에 거스른다고 소수 정당에 함부로 사형 선고를 내린 꼴이다. 관용과 다원성을 핵심 가치로 하는 민주주의는 이로써 송두리째 부인됐다. 지금 여기, 해산과 해체의 위험에 처한 것은 수십년 간 힘겹게 일궈온 한국의 민주주의다.

헌재 결정은 사법사에 남을 큰 오점이다. 법의 칼을 빌린 정치 탄압은 수십년 전부터 있었다. 1974년 박정희 정권의 인혁당 인사 사형이 그러했고, 1959년 이승만 정권이 진보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조봉암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한 일도 있다. 당시 진보당은 정부 부처의 등록취소로 해산됐지만, 1958년의 대법원은 ‘진보당의 정강·정책은 위헌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적어도 이번처럼 정당의 주요 인사와 정당 자체를 억지로 동일시하지는 않았다. 1960년 헌법에 정당해산 제도가 도입된 것도 ‘민주주의의 적에 대한 방어’보다는 행정부에 의한 등록취소 따위로부터 정당의 존속을 보장하고 ‘정당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정신은 지금 헌법에 오롯이 이어졌다.

그런 점에서 통합진보당 등이 대의민주체제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 민주주의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생각과 주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소수자를 배척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전체주의와 권위주의에서 해방된, 민주주의의 징표다. 진보 소수세력에 대한 축출 선언인 이번 결정은 그런 역사의 시계를 되돌린 것이다.
헌재가 이번 결정을 정당화한 논리와 명분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정당해산은 최후의 수단으로, 엄격한 기준에 따라 제한적으로 적용돼야 할 제도다.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성이 있어야 한다. 헌재는 당 강령 등에선 그런 위험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진정한 목적’이나 ‘숨은 목적’을 추정해보면 그런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숨은 목적’이야말로 엄격하게 증명되어야 하는데도, 헌재는 구체적 증거도 없이 이들의 주장이 북한의 그것과 유사하므로 북한 동조가 통합진보당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판단’했다. 권위주의 시절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검찰이 펴던 막무가내식 논리 그대로다.

시간에 쫓기듯 1년도 안 돼 결론을 서두른 점도 의아하다. 이석기 그룹의 활동이 잘못이더라도 이를 10만명의 당원을 지닌 통합진보당 전체의 행동과 곧바로 같이 볼 수는 없다. 그런데도 헌재는 이들이 ‘주도세력’이므로 정당의 활동이라고 곧바로 선언했다. 그들이 실제로 당 전체를 장악했는지, 당 전체가 그 의도대로 움직였는지 증명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단정했다. 그러고선 이들 주도세력의 성향과 활동 등에 비춰보면 ‘실질적 위험’이 있다는 비약적 논리를 폈다. 형사재판에서 ‘아르오’의 실체가 인정되지 않았고 내란음모에 무죄가 선고된 상태에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바로 그런 혐의를 이유로 앞질러 한 정당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 헌법과 법률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데도 의원직 상실까지 선고했으니, 헌법적 판단이라고 도저히 볼 수 없는 월권이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입을 피해는 막대하다. 정당의 강제해산으로 민주체제의 중요 요소인 정당의 자유, 정치적 결사의 자유는 심각하게 제한될 것이다. 진보 논리에 찬성했던 많은 이들의 정치적 의사는 위헌이나 종북 따위로 왜곡되고 제도권 밖으로 내쳐질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빚어질 갈등과 대립은 또 얼마나 심할 것인가. 지금은 통합진보당이 쫓겨나지만, 다음은 누가 당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1987년 헌법의 산물인 헌재가 87년 체제의 핵심인 관용과 상대성의 민주주의 정신을 스스로 부정한 상처도 오래 남을 것이다. 8대 1이라는 헌재 재판관의 의견 분포가 우리 사회의 의견 지형을 반영한 것인지를 묻는 헌재 구성의 문제도 불거질 것이니와, 헌재의 존립 근거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될 것이다. 헌재가 자신을 자해하면서 한국 민주주의를 저격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