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3일 수요일

[한겨레 사설] 재벌 총수가 딸 빵집 부당지원까지 지시해서야

신세계그룹이 총수의 딸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의 빵·피자 사업을 부당지원한 사실이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40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당했다고 한다. 흔히 ‘재벌 빵집’으로 불리며 그룹 유통망 등을 활용해 손쉽게 수익을 올려온 재벌 2·3세들의 사업 행태가 철퇴를 맞은 셈이다. 특히 신세계는 회장·부회장이 부당지원에 개입한 사실까지 드러났다고 하니, 재벌의 끝모를 탐욕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공정위의 조사 결과를 보면, 신세계는 2009년부터 그룹 차원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정 부사장이 대주주인 신세계에스브이엔(SVN)의 사업을 지원했다.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등 고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 그룹 소속 대형 유통업체에 빵집과 피자집 등을 운영하게 했고, 판매수수료는 다른 유사업종보다 훨씬 낮게 받았다. 그 결과, 신세계에스브이엔은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54.1%나 늘었으며, 피자사업은 한해 동안 514%라는 경이적인 매출 신장률을 기록했다. 그룹의 불공정한 지원 아래 목 좋은 자리에서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장사를 한 것이다. 이 과정에 정 부사장의 어머니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과 오빠인 정용진 부회장이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회의록 등이 드러났다.
이번에 적발된 신세계의 행위는 재벌의 묻지마식 확장이 어떤 폐해를 불러오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신세계에스브이엔이 편하게 배를 불리는 동안 ‘골목상권’으로 불리는 관련 업계는 수익감소와 퇴출 등으로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지난해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점포는 200개가 줄었고 피자사업에선 중소업체 매출이 34%나 급감한 것도 그런 여파와 무관하지 않다.
10대 재벌만 보더라도 지난해 총매출이 946조여원으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76.5%에 이르렀고, 계열사 수는 592개로 2002년(318개)에 견줘 거의 배로 늘어났다. 순대, 제빵, 레스토랑 같은 골목상권으로 문어발처럼 몸집을 늘린 결과다. 이런 재벌 독점 구조 아래서 경제·사회 생태계가 온전하게 보전되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번 대선의 화두인 경제민주화의 요체가 재벌 개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정위는 재벌의 부당한 계열사 지원 행위를 더욱 철저히 감시하고 처벌해야 한다. 여론의 질책에 밀려 최근 정 부사장이 신세계에스브이엔의 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은 바람직하나, 그 지분을 다른 계열사가 인수한다는 방침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신세계가 계속하려는 ‘재벌 빵집’은 사회적 책임이 큰 대기업이 할 일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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