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31일 목요일

[중앙시평] 위안부 문제, 다시 시작하자./ 박명림

전쟁성노예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정부 간 "비가역적 최종합의"라는 당혹스러운 합의를 보고서 혼돈스러웠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다. 이 합의에 대한 박명림교수의 글은 국가가 어떻게 이러한 반인륜범죄를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부인하기 어려운 기본원리를 설명한다. 어쩌면 이런 합의는 힘의 논리와 약육강식의 원시사회를 벗어나지 못한 국제질서의 결과일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결과를 피할 수도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훨씬 더 현명한 지도자가 국민을 대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혼용무도昏庸無道", 현실을 어지럽히고 무도함을 일삼아 집권하게 내버려두는 민주주의는 우리를 원시적인 국제질서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게 할 뿐이다.
인류에게 가한 전체주의의 전쟁범죄와 성폭력에 대해 세계가 어떤 자세로 접근할 것인지를 묻는 세계 문제인 것이다. 전체주의의 전쟁범죄가 ‘국가 간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 선언으로 종식된다면 법적 시효조차 없는 ‘반(反)인도 범죄’와 ‘반평화 범죄’에 대해 인류는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   
<중략> 
세계 양심 인사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감사했던 이유는 묻혀 있던 인류의 집단범죄가 그분들의 감연한 자기희생적 용기로 인해 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숭고한 결단을 이렇게 봉합해 본질적인 인간윤리 문제를 계속 제기할 피해자들과 세계시민들을 최종적으로 해결된 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옹졸한 인간들로 만들어버린 우리가 너무 부끄럽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위안부 문제, 다시 시작하자http://news.joins.com/article/19342825?cloc=joongang|home|opinion

2015년 12월 20일 일요일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하다(혼용무도·昏庸無道).’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뜻하는 ‘혼용’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것은 우리 사회의 어지러움과 혼란의 근본에 박근혜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설문에 응답한 한 교수는 “대통령은 국가를 사유화하고 여당은 이에 굴종하고 있다. 모든 국가조직과 사조직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고 개탄했다고 교수신문은 전했다.



‘혼용무도’에 이어 127명(14.3%)의 교수가 ‘사시이비(似是而非)’를 선택했다. ‘겉보기에는 맞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석길암 금강대 교수(불교학)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비롯한 최근 정부정책을 보면 국민을 위한다거나, 공정하고 객관적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근거를 왜곡하거나 사실을 날조해 정당성을 홍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2015년 12월 10일 목요일

국정 국사 교과서 집필진에 대한 충격적인 기사

[경향신문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2102211035&code=940401

9년간 상업을 가르치다 역사를 가르친 지 불과 9개월밖에 되지 않은 교사가 자신이 “국정교과서 집필진”이라고 밝혔다.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역사 국정교과서 집필진 명단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 상황에서 ‘복면 집필진’의 선정 경위와 자격을 놓고 다시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밝혀진 집필진은 국편이 국정화 고시 직후 발표한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유일하다.

서울의 사립학교인 대경상업고 김형도 교사는 지난 8일 학교 전체 교원들에게 자신이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게 됐다는 집단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A4 용지 3장 분량의 메시지를 봤다는 한 교사는 “김 교사가 12월까지만 학교에 나오고 내년 1월부터 13개월간 역사교과서를 쓰게 됐다. 46명과 합숙에 들어간다”고 썼다고 전했다.

김 교사는 “자신이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고종사촌 동생인데 남 지사의 도움 없이 이 학교에 왔다. ‘대한민국 집필’ 후 13개월 뒤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며 “‘남경필 주니어’가 되어서 돌아오겠다”는 말까지 써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메시지 끝에는 ‘さよなら(사요나라·일본식 작별 인사)’라고 적었다.

이 학교 교감도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김 교사가 8일 보낸 메시지를 보고 집필진에 임명된 것을 알았다”고 확인했다.

10년차 교사인 김 교사는 이 학교에서 9년간 ‘상업’ 관련 교과를 가르치다가 올해 처음으로 1학년 4개 반의 ‘한국사’ 교과를 함께 맡았다. 이 학교 공식 홈페이지에도 김 교사의 담당 교과는 ‘상업’으로 소개돼 있다. 그는 서울의 한 대학원에서 역사 관련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사는 이날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스스로 집필진에 공모했느냐, 초빙을 받은 것이냐’는 물음에 “(국편이) 비밀로 하라고 했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 나중에 말하겠다”고 밝혔다. ‘집필진이 다 모여서 임명장을 받았느냐, 또 전체가 모이느냐’는 물음에는 “그렇다”고 덧붙였다. 이 학교 교장은 “교육부에서 공문이 오면 김 교사를 집필진으로 파견할 수밖에 없다”며 “김 교사가 학교 측과 협의 없이 집필진을 신청하고, 집필진으로 임명받은 사실을 메시지로 전체 교원에게 먼저 보낸 점에 대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상업을 9년 동안 가르치다가 한국사 수업을 하기도 힘든데 한국사 교과서를 쓰라는 상황 자체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며 “얼마나 필진을 구하기 어려웠으면 이랬을까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 교사의 문자메시지를 본 교사는 “역사를 배운다는 사람이 안 그래도 친일 서술 우려를 받고 있는 국정교과서 집필진으로 뽑혔다는 사실을 알리며 일본어 인사를 하다니 황당했다”고 전했다.

국편은 이날 오후 10시30분쯤 김 교사가 국편 측에 집필진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김 교사는 “자신이 집필진으로 공개된 것은 괜찮지만, 자신으로 인해 교과서 편찬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매우 죄송한 마음”이라고 전해왔다. 국편은 김 교사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국편은 다음주 초 국정교과서 집필 편찬기준을 공개할 예정이다. 집필기준을 심의하고 있는 전문가·교사·학부모 등 16명의 편찬심의위원회 명단 역시 비공개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송현숙·심진용 기자 song@kyunghyang.com>

노동법, 개혁이냐 개악이냐?/이정우교수(경북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노동법 개악에 나서고 있다. 지난 6일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기간제법을 ‘고용안정법’, 뿌리산업에서 55세 이상 노동자의 파견을 허용하는 파견법을 ‘중·장년일자리법’이라 미화했는데, 이는 ‘지록위마’ 어법이라 부를 만하다.
.......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고, 파견을 전면 허용하는 노동법을 통과시키면 비정규직은 더 늘어나고 노동자들의 삶은 더 피폐해질 것이다. ‘박근혜 노동법’이라는 괴물이 문을 두드리는데 집안싸움만 하는 야당은 정녕 국민이 두렵지 않은가. 내년 총선에서는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무능하고 독선적인 새누리당이 물론 심판 대상이지만, 사적 감정에 치우쳐 대의를 무시하고 집안 총질하는 사이비 야당도 심판을 면할 수 없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2102040415&code=990100

2015년 12월 1일 화요일

헌재 역사상 가장 수치스런 결정은? 세종시잡기

신행정수도와 혁신도시를 건설해 지역간 균형 발전을 추구하려 했던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일대 타격을 입은 것은 2004년 10월21일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대한 위헌 결정이었다. 이 결정에 따라 노무현 정부는 신행정수도 건설을 포기하고 ‘신행정수도 후속 대책을 위한 연기, 공주 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 규모가 절반 가량으로 축소된 세종시를 건설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의 내용은 크게 몇 대목으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결정 요지 1~2번은 수도란 국회와 대통령의 소재지이며, 신행정수도 건설은 수도 이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결정 요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번호는 헌재가 붙인 그대로다. “1.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국회와 행정부를 통할하며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소재지는 수도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2.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의한 신행정수도의 이전은 수도의 이전을 의미한다.”
http://blog.hani.co.kr/bum0823/44005?_fr=mb2

2015년 11월 7일 토요일

블로그 "오광수의 음악다방"

문화부에서 일해 온 경향신문 편집국 에디터 오광수선생님의 블로그. 문화부 기자 특유의 개성과 솔직담백한 시각으로 한국사회의 현재와 과거를 돌아보는 글들이 좋다. 블로그 글 다운 즉흥성과 솔직함 하지만 묵직한 무게도 느껴진다.


오광수의 음악다방

신승훈은 원래 '얼굴없는 가수'였다. 

'근혜'와 '영자'사이

통일대박의 천박함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오적’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오적’ 
이이화

요즘 역사학계에서는 ‘역사 오적’의 이름이 심심찮게 떠돌고 있다. 한국사 국정화의 주역인 박근혜 대통령(아래에서는 존칭 생략)을 비롯해 그 하수인인 김무성과 황교안, 황우여, 김정배를 두고 일컫는다. 박근혜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깔아놓은 뉴라이트의 대안교과서를 찬양하더니 갑자기 역사학자 80%가 좌파라고 외치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들고나왔다. 그 의도를 짚어보면 5·16쿠데타와 10월 유신을 합리화하는 것일 테다.

유신시기 국정교과서였던 국사엔 “정부는 1972년 10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고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고자 헌법을 개정하고 10월유신을 단행하였다. 우리는 이제 한국 민주주의를 정립하고 사회의 비능률과 비생산적 요소를 불식하여야 할 단계에 와 있다”라고 기술돼 있다. 이런 내용을 국정교과서에 복원하고 싶을 것이다.

김무성은 뉴라이트 계열 학자를 초빙해 강의를 들으면서 자신의 아버지인 김용주의 친일 행각을 미화시키려 했다. 그는 국정화의 선봉에 서서 반대하는 시민을 상대로 “김정은의 지령을 받았다”고 시대착오적 또는 선동적인 언사를 뇌까렸고, 김일성이 한국전쟁을 도발하면서 스탈린의 지원을 받으려 회담하면서 찍은 사진을 두고 김일성을 찬양하는 사진이라고 얼토당토않는 말을 내뱉었다.

황교안은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민국 건국을 정부 수립이라고 잘못 기술하면서 조선인민공화국을 건국이라고 했다고 왜곡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은 헌법에 명기돼 있고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이라고 했지, 건국이라는 용어는 들어 있지도 않았다. 황우여는 온갖 불법·탈법으로 국정화 과정을 밀어붙이면서 규정에 따른 행정예고조차 왜곡했다.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설치한 팩스를 닫아놓고 예고기간을 이틀 앞당겨 마감하는 따위 사술을 쓰고 있다. 독재정권의 수법이다. 김정배는 전두환 신군부 집권 시기 국정교과서의 집필진에 참여했고, 오류투성이인 교학사 교과서 옹호에 나서기도 했다. 게다가 중립적인 학자를 필진으로 동원하겠다고 공언해 놓고는 신형식·최몽룡 같은 극우 계열 학자를 대표 집필자로 영입했다. 하지만 최몽룡은 성추행 의혹으로 필진에서 자진사퇴했다.

이와 함께 방계 하수인이 된 세력도 있다.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은 “일제의 쌀 공출은 수출이었다”고 기술했다. 쌀 생산자인 농민에게 자유판매를 금지하고 강제로 가격을 매겨 수탈해 일본의 군인과 노동자를 먹이려는 정책을 엉뚱하게 해석하고 있다. 교학사 집필자인 이들은 국정화의 선봉장이 되고 있다. 또 재향군인회, 어버이연합, 자유총연맹에 관계하는 인사들은 쉴 새 없이 종북 좌파와 빨갱이를 외치면서 행동대로 나서고 있다. 이들이 과연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세력인가? 절차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극심한 가치의 전도를 보여주고 있다. 종북 좌파를 외쳐대는 언사들은 거의 진실과 거리가 먼 문맹수준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아무튼 이를 묶어서 반민족적·반민주적·반헌법적·반통일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정화의 폐단은 역사 진실의 다양한 접근을 막고 비판기능을 저하시키며 역사적 상상력을 가로막는 결과를 빚는다. 긍정사관은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따위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검인정 교과서의 내용은 이런 폐단을 줄일 수 있다. 그러면 역사교과서 국정제도는 어느 국가에서 지정하고 시행하고 있는가? 해방이 된 뒤 미 군정 당국에서는 검인정 제도를 채택해 교과서를 발행하게 하였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에도 검인정 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런 교과서 정책은 2차대전 이후 유럽의 여러 국가 등 민주제도를 수립한 나라에서 공통으로 수용했던 것이다. 군국주의 국가였던 일본에서도 이 제도를 수용하였다. 다만 소련, 북한, 베트남 등 공산권 국가와 중동의 이슬람을 받드는 국가 등 일부 나라에서만 국정교과서를 고수하였을 뿐이다.

박근혜는 지난 5일 통일준비위원회 회의에서 “통일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과 역사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처럼 교과서를 국정으로 해야 민족통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요즘 박근혜를 두고, 어질용문(魚質龍紋)에 비유한다고 한다. 곧 물고기 바탕인데도 용의 무늬를 지녔다는 뜻이다. 을사오적은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오늘날의 오적은 우리 역사를 말아먹은 인물로 기록될 것인가? 미래의 역사학자들은 이를 범상하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당사자들은 한쪽 눈으로만 시대를 바라보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오적’이라는 오명을 쓰지 말고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이화 | 역사학자>

입력 : 2015-11-06 21:19:54ㅣ수정 : 2015-11-06 21:2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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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5일 일요일

그런 무식한 정치인이 과연 지도자가 될 수 있는지

지금처럼 투표권 행사나 정당 경쟁 기구가 적절히 작동하지 않는 때 이런 학계 원로의 회초리가 필요한 것 같다. 시원한 회초리!!! 학계원로들이 가끔 헛소리해서 설상가상이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아래 기사는 너무나 현실을 꽤 뚫는 시원한 회초리로 들린다. 정치적 의도 없이 객관적으로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원로들이 많아져서 가끔씩 이런 얘기를 해주어야 정치인도 투표자들도 정신을 차릴 것 같다.

아래 한겨레기사 내용에 덧붙이자면 김무성은 저자들이 주체사상을 설파할 감추어진 의도가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고 하는 연합뉴스 보도도 있다.

연합뉴스기사
 "여러분의 자녀들이 배우는 중고교 역사교과서를 보라. 교과서에는 '악마의 발톱'을 교묘하게 숨겼지만 선생님들이 보는 교사용 지도서에는 좌편향으로 만들어졌다. 검정도 안거친다"며 "김일성 주체사상을 좋은 것이라고 가르친다"고 주장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0/05/0200000000AKR20151005031200001.HTML


한겨레기사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14330.html?_fr=mt2

이명박 정부에서 국사편찬위원장을 역임했던 정옥자(73) 서울대 명예교수가 “역사학계 90%를 좌파라고 몰아붙이는 그런 무식한 정치인이 과연 지도자가 될 수 있는지, 그 자격이 의심스럽다”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정면 비판했다. 김 대표는 지난 7일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세계한인회장단 초청 재외동포정책 포럼에서 “우리나라 역사학자 90%를 좌파학자가 점령하고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정 명예교수는 23일 교통방송 ‘퇴근길 이철희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김 대표의 주장에 대해 “하도 우스워서 말이 안 나온다. 정부에 적극 동의하지 않으면 좌파라고 몰아붙이는 모양인데 현 정권이 우파 전매특허 냈냐? 어떻게 역사학계 90%가 좌파냐.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10%가 그럴 수(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죠. 우리나라가 그런 사상(역사학자 90%가 좌파)의 자유까지도 어느 정도 허용하는 나라니까. 그런데 그런 무식한 정치인이 과연 지도자가 될 수 있는지 그 자격이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
정 명예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어른들이 사심과 정치적인 의도에서 이런 일을 벌이고, 아이들을 피해자로 만들고, 역사학계를 좌파로 몰아가면서 역사학계를 함부로 농단하고,…이게 지금 할 일이 아니잖나. 정치판이 할 일이 아니잖나”라고 반문한 뒤 “지금 사회통합을 하는 게 대통령의 의무지, 갈등을 일으키는 게 대통령 할 일이 아니지 않나. 평지풍파에요, 왜 이렇게 국력을 소모하고 국비를 낭비하냐. 계속 이걸 강행한다면 이 일이 박근혜 정권 최대의 실책이 될 것”이라고 꾸짖었다.

2015년 10월 21일 수요일

경악스러운 "국정화 지지하는 지식인(?) 500인의 선언문"

이 500인의 지식인들은 현재 채택되고 있는 역사교과서들이 "인류 보편의 가치"를 부정하고 청소년 "자살"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기존 교과서들에 불만이 있고, 그래서 국정화에 찬성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런 류의 선언문은 지나치다 못해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이들이 청소년 자살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하였길래 그런 비극적인 사회현상까지 국정화 문제에 끌어들이는 것인가? 도의에도 맞지않다.  이런 선언문을 쓰는 사람들이 한국의 지식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지식인이 이 정도라면 한국 사회의 불신과 갈등이 얼마나 크겠는가? 현실은 칠흑같은 밤이로다.

어쩌면 지식인만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희망을 한다. 이 밤을 밝히는 별빛과도 같이.



[선언문 전문]

올바른 교과서는 올바른 국정화를 통해 만들어진다.

지금 국사교과서는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수치스런 나라”로 폄훼하는 한편, 북한 전체주의 체제에 대한 일체의 도덕적 판단을 마비시키며 북한 전체주의 체제를 역성들거나 옹호하는 행위를 자못 도덕적인 것, 진보적인 것으로 착각하도록 만든다. 8종의 국사교과서 중에 오직 교학사 교과서 하나만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성취를 제대로 조명하면서, 북한을 전체주의 체제라고 올바르게 규정하고 있다.

북한 전체주의는, UN 인권보고서가 밝혔듯, 나치보다 더 지독한 민족지상주의 체제요, 일제 천황보다 더 지독한 김씨 집안 신격화 체제이며, 전 인구의 1/3을 순식간에 학살했던 캄보디아 크메르-루즈 정권보다 더 지독한 공산계열 학살 체제이다.

기존 국사교과서들은 이와 같은 끔직한 체제에 대해 ‘우리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주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반 인류성에 대한 일체의 선악 판단과 시비 판단을 마비시킬 의도로 만들어졌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부정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구렁텅이 속으로 우리 아이들을 떠밀어 넣고 있다.

또한 기존 국사교과서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대한민국이 수치스런 과거를 가진 부패한 사회라는 어두운 착각을 가지는 한편, 하루하루 땀 흘리며 살아가는 부모가 이 불의한 체제에 빌붙어 기생하는 존재라는 끔찍한 오해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같은 착각과 오해는 삶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도록 만듦으로써 청년층 자살 및 정신질환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자라나는 푸릇푸릇한 아이들에게 좋은 국사교과서에 바탕한 올바른 역사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만 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안위를 강화하는 것일 뿐 아니라 아이들의 정신과 영혼을 구조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국사학계의 현실은 암울하다. 북한 전체주의 체제를 정확하게 비판한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역사 교사들과 국사 교수들이 자행했던 조직적 음해와 채택 방해 활동은 우리 국사학계가 이미 모든 자정능력을 상실한 집단이라는 비참한 사실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국가가 직접 올바른 교과서를 마련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제공하는, 비상 구조 조치를 취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마땅히 공유해야 할 ‘과거에 대한 정확한 기억’을 구조하는 것이며, 삶에 대한 근본적 선악 판단, 가치 판단을 구조하는 조치이다. 이 까닭에 우리는 박근혜 정부의 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우리는 또한 올바른 국사교과서가 탄생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과 지지를 기울일 것을 다짐한다.

한마디로, 국사학계 전체가 지금과 같이 자정능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올바른 국사교과서는 올바른 국정화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올바른 국정화를 위해서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소신과 원칙을 가진 전문가들로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집필진에서 극우를 배제한다”는 10월12일 김정배 국편위원장의 발언,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은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에서 배제한다”는 10월14일 역시 김정배 위원장의 발언, “권희영 교수는 배제한다. 현재 집필을 거부하고 있는 연구자들을 삼고초려해서 모시겠다”는 10월16일 진재관 편사부장의 발언.

우리는 국사편찬위원회 원장 및 최고위 간부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국사교육 정상화를 위해 엄청난 용기로 희생을 치러 온 전문가 및 시민들을 모욕하고 ‘극우’라 매도하는 언행이기 때문이다.

국사편찬위원회야말로 오늘날 국사 교육이 이 지경까지 망가지도록 만든 책임 기관이기도 하다. 따라서 올바른 국사교과서를 위한 국정화는 당연히 국사편찬위원회의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환골탈태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에 우리는 국사편찬위원장을 포함한 국사편찬위원회 조직 전체의 자기반성과 자기 성찰을 강력히 촉구한다.

2015년 10월19일

2015년 9월 28일 월요일

[한겨레21] 행복지수 1위 국가 부탄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이 전하는 ‘행복지수’ 1위 국가 부탄의 모습…
국민소득 규모는 후진국이지만 삶의 만족도는 가장 선진국인 나라의 속살을 들여다보다
국내총생산(GDP) 같은 지표로는 한 사회의 경제를 측정할 수 없다는 반성과 함께 국내총행복(GDH)이 새로운 지표로 주목받고 있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로 알려진 부탄의 한 마을에서 주민이 밝게 웃고 있다. 한겨레 김현대
국내총생산(GDP) 같은 지표로는 한 사회의 경제를 측정할 수 없다는 반성과 함께 국내총행복(GDH)이 새로운 지표로 주목받고 있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로 알려진 부탄의 한 마을에서 주민이 밝게 웃고 있다. 한겨레 김현대
성장 귀신이 지배하는 나라가 있다.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오로지 경제성장 외길을 달려 100달러도 안 되던 1인당 국민소득을 단기간에 2만5천달러로 끌어올린 나라. 그래도 여전히 성장에 배고픈 나라. ‘경제’를 위해 천연기념물인 산양의 서식처를 앗아가는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나라. 대통령이 입만 열면 경제와 성장을 외치는 나라. 대통령과 대척점에 있는 야당 지도자들도 ‘유능한 경제정당’ ‘소득주도성장’ ‘공정성장’ 등 여전히 경제와 성장을 외치는 나라. 대통령 선거에서는 경제민주화와 복지 그리고 국민 행복을 다투지만 당선 뒤에는 도로 ‘경제성장’으로 돌아가는 나라. 정당은 유권자의 표를 의식하는 것이니, 국민 다수가 경제와 성장 귀신에 사로잡힌 나라.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이 발표한 세계의 국가별 행복지수에서 조사 대상 143개국 가운데 118위로 거의 꼴찌에 가까운 나라. 우리의 자랑스럽고 부끄러운 조국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이 2천달러에도 미치지 못함에도 유럽 신경제재단이 행복지수 1위, 국민의 97%가 행복하다고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한 나라가 있다. ‘국내총생산’(GDP·Gross Domestic Product)보다 ‘국민총행복’(GNH·Gross National Happiness)을 더 중시하는 나라. 한 푼의 외화가 아쉬움에도 나무를 잘라 팔지 않고 숲을 보호하는 나라. 그래서 호랑이 개체 수가 늘어나는 나라. 신호등을 거부하고 수신호로만 교통정리를 하는 나라. 히말라야 동쪽 산자락에 위치한 작은 왕국 부탄의 얘기다.
국민의 97%가 행복하다는 나라
남한 절반 면적의 부탄에는 대략 75만 명이 살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작은 나라는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인 중국과 인도 사이에 끼여 있다. 부탄이 외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는다. 부탄은 히말라야 산속 은둔의 왕국 혹은 마지막 샹그릴라로 불리기도 했다. 부탄에 라디오가 처음 개통된 것이 1973년이고,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한 것이 1999년이니 그럴 만도 하다.

부탄 국영항공사인 드루크항공을 통해 외국인이 처음 들어온 것이 1983년이고,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관광을 자유화했다. 1992년에 입국한 외국인 관광객은 2850명에 지나지 않고, 이 수는 1999년에도 8천 명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부탄을 찾는 외국인이 급격히 늘어나 2014년에는 6만3천 명의 ‘국제 관광객’이 부탄을 찾았다. 국제관광객 이외에 남아시아지역협력체(SARRC) 가운데 인도·방글라데시·몰디브 세 나라로부터 무비자 ‘지역관광객’ 6만5천 명이 부탄을 찾았다. 여기에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 초청비자로 입국한 사람, 취업비자로 입국한 사람도 상당수 있다. 이들을 모두 합치면 연간 부탄 인구의 약 20%에 가까운 외국인이 부탄을 찾고 있다. 부탄을 여행하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2008년 97명에서 2013년 596명으로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부탄은 독특한 비자 시스템을 갖고 있다. 부탄을 여행하려면 하루 250달러(성수기) 혹은 200달러(비성수기)를 여행사를 통해 미리 납부해야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여행사는 이 돈 가운데 65달러를 관광세로 정부에 바치고, 나머지 돈으로 관광객의 숙식·교통·가이드 등 관광에 필요한 일체의 비용을 지불한다. 부탄이 외국인 관광객을 국제관광객과 지역관광객으로 구분하는 이유는 인도 등의 지역관광객에게 비자를 면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사람이 부탄에 가려면 하루 200~250달러를 미리 지불하고, 희망 일정을 제시하면 그쪽 여행사가 제공하는 정해진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반면, 인도 등 지역관광객은 자유롭게 숙박과 식사, 관광 일정 등을 조절할 수 있다.
행복을 위한 정책은 어떤 모습일까?
이처럼 부탄이 국제관광객과 지역관광객에 대해 차별대우를 하는 것은 인도 등과의 특수한 외교관계 때문이다. 하루 200달러 혹은 250달러는 일체의 관광비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비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배낭여행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부탄이 이러한 관광정책을 견지하는 이유는 인구 소국인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들어오면 부탄의 환경이나 문화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이 때문에 부탄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 수를 제한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부탄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관광객 수를 현재로서는 연간 최대 20만 명(국제 및 지역 관광객)으로 설정하고 있다.
사람들이 적지 않은 돈을 내며 부탄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탄관광위원회 국장은 부탄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문화를 꼽는다.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에서 가난하지만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보전하면서 좋은 자연환경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고 있는 부탄 사람들의 모습은 물질 만능과 극심한 경쟁 그리고 개인주의적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경이와 선망의 대상인 동시에 위안을 준다. 그들의 눈에 비친 부탄의 이미지는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이다. 과연 부탄 사람들도 스스로를 그렇게 느끼고 있을까?
내가 부탄에 대해 꽤 오래전부터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직접적 동기는 그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2010년 8월부터 2013년 7월까지 충남발전연구원(지금의 충남연구원) 원장을 지냈다. 2010년 7월 시작된 민선 5기 충남도정은 ‘행복한 변화, 새로운 충남’을 표방하고 있었다. 나는 ‘행복한 변화’란 어떠한 변화인가, 행복은 주관적인 것인데 어떻게 정책적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다.
내가 대학교수 신분으로 외도를 해서 연구원장을 맡은 이유는 평소 주장해오던 ‘내발적 발전’을 충남도정에서 실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지역은 외부에서 공장이나 자본 혹은 정부 재정을 유치해 경제성장을 이루는 외생적 개발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외생적 개발로 경제성장에 성공한 예도 매우 적지만, 설사 지역경제가 성장해도 지역민의 행복 증진에는 기여하지 못한 게 대부분이다. 이에 반해 내발적 발전은 경제성장 중심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경제와 사회·문화 그리고 환경이 통합적으로 발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향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역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가 부탄에 주목한 이유는 GDP보다는 GNH를 중시하고, GNH의 증진을 위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기본 전략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지속 가능하고 공평한 사회·경제 발전. 둘째, 생태계의 보전과 회복. 셋째, 부탄의 전통과 정체성을 실현하는 문화의 보전과 증진. 넷째, 앞의 세 가지를 달성할 수 있는 좋은 거버넌스가 그것이다. 부탄의 이러한 GNH 전략은 내가 주장하는 내발적 발전 전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히말라야의 은둔국 부탄의 유권자들이 2008년 팀푸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하기위해 줄 서있다. 부탄은 100여년간의 절대왕정에 종식부를 찍고 새 의회선거를 치름에 따라 세계 최신생 민주국으로 변신했다. 팀푸/AP 연합
히말라야의 은둔국 부탄의 유권자들이 2008년 팀푸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하기위해 줄 서있다. 부탄은 100여년간의 절대왕정에 종식부를 찍고 새 의회선거를 치름에 따라 세계 최신생 민주국으로 변신했다. 팀푸/AP 연합
부탄을 직접 방문해 ‘행복한 나라, 부탄’을 만나보고 싶었다. 아직 부탄에 관한 여행 정보가 충분하지 않을 때라 비자 획득부터 비행기 예약까지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2011년 10월 말 연구원 4명과 함께 네팔의 카트만두를 경유해 부탄 여행에 나섰다. 부탄 입국 전 2박3일간 체류한 카트만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었음에도 심각한 가난과 환경오염 그리고 교통 지옥 등 한마디로 아비규환이었다.
무질서한 카트만두 공항을 뒤로하고 도착한 부탄의 파로 공항에서 우리 일행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깨끗한 공기와 맑은 하늘 아래 전통 양식으로 잘 지어진 공항청사, 그리고 전통 복장을 한 부탄 사람들의 친절한 미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한 나라’에 온 것을 실감했다. 3박4일의 짧은 체류 기간이었지만 부탄의 국민총행복위원회(GNHC)를 방문해 실질적 총책임자인 카르마 치팀 차관을 만나 장시간 설명을 듣고 토론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나는 2013년 5월의 두 번째 방문에 이어, 2015년 5월 세 번째로 부탄을 찾았다. 이번에는 여행이 아니라 두 달간 부탄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초청비자를 받았기 때문에 하루 250달러의 법정 체류비를 낼 필요가 없었고, 나 스스로 아파트를 빌려 생활했다.
절대군주국에서 민주국가로의 극적인 변화
2개월간의 부탄 생활 동안 나는 GNH 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부탄연구소 무급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부탄의 동쪽 끝까지 ‘고난의 여행’을 다녀왔고, 부탄 정부의 주요 기관을 방문해 그들이 국민의 행복 증진을 위해 어떤 정책을 사용하는지를 조사했다. 그리고 최고 관리부터 농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났다. 지난 두 번의 여행과 달리 부탄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2개월 동안 몸무게가 5kg이나 빠진 것이 단적인 예다.
부탄은 짧은 기간에 민주화와 사회·경제 발전을 함께 달성한 나라다. 1960년대의 부탄은 1500년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자동차 도로는 전혀 없었고, 국민 대부분은 문맹이었다. 의사는 단 두 명밖에 없었고, 평균수명은 38살에 지나지 않는 국민소득 51달러의 최빈국이었다. 그리고 국왕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절대군주국가였다.
그러나 오늘날 부탄은 전혀 다른 나라로 변모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약 2500달러로 우리나라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후진국이지만, 부탄 국민의 삶은 여느 후진국과는 전혀 다르다. 부탄에서는 모든 교육과 의료가 무상이다. 부탄 헌법은 “국가는 모든 어린이에게 10학년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하여야 하고, 기술적·전문적 교육을 일반적으로 보장하여야 하고, 실력에 따라 고등교육에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탄 어린이들은 모두 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여느 후진국과 달리 거리에서 구걸하는 어린이를 찾아볼 수 없다.
부탄 헌법 제9조는 “국가는 근대 의학과 전통 의학 모두에서 기본적인 공공의료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해야 하고,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이유로 적절한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질병이나 장애 혹은 부족이 발생한 경우에 안전장치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탄은 의료서비스 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적어도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일은 없다. 부탄 사람의 기대수명은 69살로 크게 높아졌다.
사회·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부탄은 환경보호에서도 놀라운 성취를 이룩했다. 전 국토의 70% 이상이 숲으로 덮여 있고, 생태적 보호지역이 전 국토의 51%에 달하고, 동식물의 다양성이 잘 보전되고 있다. 부탄은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에서도 다른 나라의 전범이 되고 있다.
부탄에서 국가 프로젝트는 총행복지수를 높여주는 것만 실행에 옮겨진다. 국민총행복지수를 처음 도입한 부탄의 싱기에 왕추크 국왕. 사진 한겨레 자료
부탄에서 국가 프로젝트는 총행복지수를 높여주는 것만 실행에 옮겨진다. 국민총행복지수를 처음 도입한 부탄의 싱기에 왕추크 국왕. 사진 한겨레 자료
부탄의 민주화 과정도 극적이다. 부탄은 1907년 통일 왕국을 수립한 이후 100년 동안 국왕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절대군주국이었다. 그러나 부탄의 4대 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는 “한 사람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로 인민들이 자신의 힘으로 결정하는 것이 좋다”는 신념으로 2001년 절대군주제를 폐지하고 민주적 입헌군주제로 전환하기 위한 헌법 초안의 마련을 지시했다.
2005년 헌법 초안이 토론을 거쳐 완성 단계에 이르자, 4대 왕은 민주화와 분권화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2006년 불과 51살의 젊은 나이에 왕좌를 아들에게 양위했다. 절대왕제에 익숙했던 부탄 국민은 절대군주제의 폐지와 왕의 선위에 두려움을 느끼고 반대했으나, 국왕 스스로 국민을 설득해 관철했다. 2008년 5대 왕에 의해 민주헌법이 선포되고, 상원과 하원 의원 선거를 실시해 의원내각제가 성립되었다. 2013년에는 선거를 통해 정권이 평화적으로 교체될 정도로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있다.
부탄이 짧은 기간에 민주화와 사회·경제 발전에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GDP보다는 GNH가 더 중요하다”는 발전 전략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통일 왕국 이전의 부탄 법전은 1729년 “정부가 백성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면, 정부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선언했다. 이 정신을 계승해 1972년 4대 왕은 즉위와 함께 GNH를 국정 비전으로 제시했다.
GNH는 개념적으로 그리고 정책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부탄 정부는 행복을 다차원적 그리고 집단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행복은 주관적 웰빙만이 아니라, 물질적 웰빙과 비물질적, 정서적·문화적 웰빙 사이의 균형에서 실현된다. 또한 행복은 개인과 사회의 상호 연관 속에서 실현되고, 개인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증진시킨다는 의미에서 집단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부탄 정부는 경제, 사회·문화, 환경 그리고 민주주의의 통합적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빠른 변화를 겪는 부탄은 어디로 가는가
놀라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부탄은 여전히 후진국이다. 생활수준은 매우 낮고 국민의 기본권은 충분히 보장돼 있지 않고, 시민의식과 시민사회도 성숙하지 않았다. 여기에 부탄은 경제성장에 따른 이농과 도시화, 개인주의의 만연, 공동체 붕괴와 사회안전망 위축, 청년실업과 늘어나는 자살률, 전통문화 훼손, 환경 파괴 등 성장통을 동시에 앓고 있다. 부탄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부탄은 동남아 국가에 비하더라도 특별히 행복하지는 않지만, 다만 다른 나라에 비해 정책적으로 국민 행복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나라”(부탄 관리)이다. 앞으로 부탄의 국민 행복과 그 정책의 실체를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자.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은 2000년대 중반 한국사회경제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원로급 경제학자다.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 소장 등도 맡아 이론과 현실을 함께 고민했다. 지난 5월부터 두 달 동안 박 이사장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불리는 부탄에서 지냈다. 부탄의 속살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구조와 역사를 살폈다. 경제학자의 눈으로 그 행복의 비결을 톺아보는 글을 <한겨레21>에 보내왔다. 앞으로 6차례 정도에 걸쳐 연재한다.

2015년 9월 24일 목요일

[한겨레기사] 김종인 “재벌 도와주면 경제 성장? 잘못된 정책 여전”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김종인(75) 전 의원이 재벌에 의존한 경제성장률 높이기 신화에서 벗어나 2%대 성장에서도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경제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 30년 전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진 경제민주화 헌법 조항에 대한 인식조차 부족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김 전 의원은 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25차 동반성장포럼에서 ‘한국경제가 나아갈 길’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박정희의 성장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해 너도 나도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는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있다”면서 “우리 경제의 현실에서는 3%대 성장도 힘들고 오히려 2.5% 정도의 성장이 정상”이라고 말했다. 동반성장포럼은 정운찬 전 총리가 주도하는 동반성장연구소가 주관하는 행사다.
김 전 의원은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의 대표공약인 경제민주화를 입안하는 등 핵심 역할을 했지만 대선 이후 박 대통령이 사실상 경제민주화 공약을 파기하면서 관계가 멀어졌다.
“이젠 성장 컴플렉스 벗어나야
2.5%대로도 조화로운 사회 가능
경제민주화 헌법조항 30년 돼가는데
박근혜 대통령 제대로 인식 못해”
김 전 의원은 “의사의 진단과 처방이 잘못되면 환자가 나을 수 없듯이, 경제정책 수립자들이 잘못하면 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면서 “정부가 재벌을 도와주면 높은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정책 때문에 외환위기를 자초했는데, 지금도 그런 잘못을 지속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최근 독일을 방문했다가 한국이 연간 3%의 성장을 지속하면 2030년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달성할 것이라는 예측 자료를 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한국이 연간 3% 성장을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면서 “선진국들은 성장률이 우리보다 낮아도 조화로운 사회를 이뤘듯이, 한국도 4% 성장에 연연하지 말고 2.5%대 성장을 하더라도 안정과 조화를 이룩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전 의원은 “2012년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면서 “대통령이 이에 대한 확실한 신념을 가져야 하는데, 1987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119조2항)을 넣은 지 30년 가까이 흘렀는데도 아직 제대로 인식을 못하고 있다”며 박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어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려면 리더의 결심이 중요한데 우리는 불행히도 그런 리더를 갖지 못하고 있다”고 탄식했다. 그는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를 못하면 결국 국민이 직접 경제민주화를 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다만 그렇게 될 경우 사회적 비용이 커지는 게 부담”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최근 최대 이슈인 노동시장 구조개편과 관련해서 “(정부가) 소수 강경 노조의 모습만 부각시키며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하는 것은 대한민국 전체 노동시장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않고 잘못된 처방을 내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2015년 8월 27일 목요일

독립운동가 고(故) 최능진씨 64년 만에 재심서 ‘무죄’ [중앙]

광복, 6.25 전쟁 전후 그리고 이승만과 군사독재의 기간동안에 무고하게 공권력이 동원되어 죽어 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지...이런 일들을 덮어두고서 개개인의 인권과 자유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은 착각이나 자기기만일 뿐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생생히 기억하는 인권유린과 살인 조차도 소명하지 않는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소원하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런 일들이 모든 이들의 기억의 한 쪽 구석에서 조차 소멸했을 때 비로소 가능하겠지.

[중앙일보 기사]
과거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공산당 부역자’로 몰려 총살 당한 독립운동가 고(故) 최능진씨가 64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부장 최창영)는 27일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최씨의 재심에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가기록원과 국방부 감찰단에 당시 재판 기록을 촉탁했지만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사실상 판결문이 유일한 증거”라며 “판결문에 기재된 피고인의 진술을 보면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취지라고 보기 어렵고 법을 위반하려는 고의도 없었다고 기재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사정리위원회 자료 등을 보면 피고인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평화통일운동은 김일성 등에게 전쟁을 중지하고 민족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목적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또 “피고인이 평남에서 출생해 미국과 중국 등을 거치며 흥사단에 가입하고 후학 육성을 위해 노력하다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 후엔 건국준비위에서 활동하며 친일파 숙청을 요구하기도 했다”며 “그의 생애와 경력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무죄 선고 뒤 짧은 소회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우리 사법체계가 미처 정착·성숙되지 못한 혼란기에 6·25를 맞은 시대상황 속에서 그릇된 공권력 행사로 허망하게 생명을 빼앗긴 고인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표한다”며 “이번 판결이 고인의 인격적 불명예를 회복하고 과거사를 바로잡으며 유가족이 자긍심을 되찾는 위안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최씨는 1948년 제헌 의회 선거에서 이승만에 맞서 출마했다가 그의 눈 밖에 나 정부 수립 후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는 죄목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50년 한국전쟁 발발 뒤 인민군에 의해 풀려난 최씨는 서울에서 정전ㆍ평화운동을 벌이다 이승만 정권에 의해 친북 활동가로 몰려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2월 총살당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9년 9월 최씨가 이승만 정권에 맞선 뒤 헌법에 설치 근거도 없고 법관 자격도 없으며 재판권도 없는 군법회의에서 사실관계가 오인된 판결로 부당하게 총살당했다고 결론짓고 재심 수용을 권고했다.

최씨는 60년대 외무부 대변인과 대통령 의전비서관, 공보 비서관 등을 거치고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내기도 한 고(故) 최필립씨의 선친이기도 하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2015년 7월 12일 일요일

[한겨레] “물신숭배는 ‘악마의 배설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물신숭배는 ‘악마의 배설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현대 세계 자본주의의 물신숭배 풍토를 다시 한번 강도 높게 비난하고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경제모델”을 세우라고 촉구했다.
지난주 남미를 순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볼리비아 방문 첫날인 9일 원주민 풀뿌리운동 활동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돈의 지배에 대한 고삐 풀린 탐욕을 4세기 로마 주교의 말을 빌려 ‘악마의 배설물’로 비유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교황은 생태계까지 망가뜨리는 현대 물신주의의 심각성을 경고한 뒤 “이 모든 고통, 죽음, 파괴의 뒤에는 성바실리우스(4세기 로마 주교)가 ‘악마의 배설물’이라고 했던 것의 악취가 난다 ‘돈에 대한 고삐 풀린 추구’가 그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무절제한 탐욕을 ‘악마의 배설물’에 빗댄 표현은 ‘빈자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12세기 수도자 성프란치스코도 즐겨 인용했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남미(아르헨티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교황에 즉위하면서 로마가톨릭 2000년 역사상 처음으로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선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앞서 지난 3월에도 이탈리아 협동조합연합 회의에 참석해 “사람이 돈을 숭배하면 결국 돈의 노예가 될 것”이라며, “(물신이 된) 돈은 악마의 배설물”이라고 경계한 바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일 파라과이 방문길에서도 세계 지도자들에게 ‘인간의 생명을 돈과 이윤의 제단에 갖다바치는 정책’을 철폐하라”며 “돈에 대한 탐욕의 체계는 단지 나쁜 것을 넘어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교묘한 독재”라고 질타했다. 그는 “식탁에 빵을 놓는 것, 아이들의 머리 위에 지붕을 만들어주고 교육과 보건을 제공하는 것, 이런 것들이 인간 존엄성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뉴욕 타임스>는 “교황의 연설은 ‘성서적 분노’와 ‘묵시록적 심판론’을 블렌딩(조화)할 수 있다”고 촌평했다. 미국 가톨릭대의 스티븐 슈넥 가톨릭연구소장은 “교황의 발언은 통상적인 신학이 아니라, 산꼭대기에서 외치는 함성”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볼리비아 방문 첫날인 9일엔 원주민 풀뿌리운동 활동가들과 만나 유럽의 남미 식민지배 시절 가톨릭교회의 잘못을 사과했다. 그는 “이른바 ‘아메리카 정복’ 기간에 교회가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해 겸손하게 용서를 구한다”며 머리를 숙였다. 원주민들은 뜨거운 박수로 교황의 발언에 화답했다. 원주민그룹의 한 지도자인 아돌포 차베스는 <에이피>(AP) 통신에 “프란치스코 교황 같은 분에게 우리가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는가?”라며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고 힘차게 새로운 시작을 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78살의 고령에다 10대 때의 질환으로 한쪽 폐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해발 3000~4000m에 이르는 남미 고산 지대의 순방을 별 탈 없이 소화해냈다. 수행원들은 만일에 대비해 휴대용 산소탱크를 준비했으나 교황은 이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한겨레] 이희호 평전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699850.html?_fr=mt4

사카린 밀수 사건은 정권과 재벌이 공모해 저지른 불법행위였다. 전말은 이랬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이 울산에 한국비료 공장을 지으면서 일본으로부터 4200만달러의 상업차관을 얻었다. 정부가 지불보증을 섰다. 일본 미쓰이물산은 차관을 공장 건설용 자재와 기계로 대신 제공하면서 리베이트로 100만달러를 삼성에 주었다. 현금 100만달러를 뒤탈 없이 가져올 방법이 없었다. 삼성은 이 돈으로 사카린 2259포대를 사서 백색 시멘트로 위장해 몰래 들여왔다. 또 에어컨·냉장고·전화기·양변기·욕조 같은 사치품도 함께 밀수했다. 시중에 내다 팔면 몇 배가 남는 것들이었다. 부산세관이 1966년 5월 사카린 밀수 사실을 적발했다.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은 9월15일 신문에 보도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여론이 끓어올랐다.

2015년 7월 7일 화요일

[유승민]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당원 동지 여러분!
저는 오늘 새누리당 의원총회의 뜻을 받들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납니다.
무엇보다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된 나날을 살아가시는 국민 여러분께 저희 새누리당이 희망을 드리지 못하고, 저의 거취 문제를 둘러싼 혼란으로 큰 실망을 드린 점은 누구보다 저의 책임이 큽니다. 참으로 죄송한 마음입니다.
오늘 아침 여의도에 오는 길에, 지난 16년간 매일 스스로에게 묻던 질문을 또 했습니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정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열린 가슴으로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진흙에서 연꽃을 피우듯, 아무리 욕을 먹어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라는 신념 하나로 저는 정치를 해왔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입니다.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오늘이 다소 혼란스럽고 불편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가치에 매달리고 지켜내야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2주간 저의 미련한 고집이 법과 원칙, 정의를 구현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저는 그 어떤 비난도 달게 받겠습니다. 거듭 국민 여러분과 당원 동지 여러분의 용서와 이해를 구합니다.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나면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난 2월 당의 변화와 혁신, 그리고 총선 승리를 약속드리고 원내대표가 되었으나, 저의 부족함으로 그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습니다.
지난 4월 국회연설에서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겠다. 제가 꿈꾸는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길로 가겠다.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던 약속도 아직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원내대표가 아니어도 더 절실한 마음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계속 가겠습니다.
저와 꿈을 같이 꾸고 뜻을 같이 해주신 국민들, 당원 동지들, 그리고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5년 6월 29일 월요일

[한겨레/시론] 메르스, 국회법, 논리 결핍과 도덕주의

메르스 발병 초기, 정부는 유언비어 엄벌과 정보 통제로 일관했다. ‘정보 통제가 혼란을 막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왜 그런가에 대한 논리는 없었다. ‘병원을 공개하면 환자들에게 혼란을 야기한다’고도 했다. 이는 궤변에 가깝게 느껴졌다. 병원을 공개해 사람들이 스스로 경계를 강화하는 것을 도저히 혼란이라 보기 어려웠다.
이 와중에, 입법부가 제정한 법 취지를 행정부가 행정입법으로 무력화하는 것을 방지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결정에서도 논리의 결핍과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97979.html?_fr=mt5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 용계동 일대에 29일 유 원내대표를 비난하면서 사퇴를 요구하는 현수막들이 걸렸다. 대구 동구청은 불법 현수막으로 판단하고 이날 오후 철거했다. 대구/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 용계동 일대에 29일 유 원내대표를 비난하면서 사퇴를 요구하는 현수막들이 걸렸다. 대구 동구청은 불법 현수막으로 판단하고 이날 오후 철거했다. 대구/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2015년 5월 28일 목요일

[기사]주한미군, 한국에 통보 않고 맹독성 ‘탄저균’ 반입해왔다

미국 군 연구소가 실수로 살아있는 탄저균을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로 배송해 요원 22명이 균에 노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또 이를 통해 주한미군이 그동안 한국 정부에 알리지 않고 훈련용 탄저균을 국내에 반입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치사율이 95%에 이르러 생물학전 무기로 이용되는 맹독성 세균이 사실상 한국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국내로 반출입돼왔던 셈이다.
관련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93376.html?_fr=mt1

2015년 3월 23일 월요일

[Wiki] The Year 1905 by Dmitri Shostakovich

The symphony has four movements played without break, and lasts approximately one hour.

Adagio (The Palace Square)
The first movement is cold, quiet, and somewhat menacing, with transparent strings and distant though ominous timpani motifs. This is underscored with brass calls, also as though from a great distance.
Allegro (The 9th of January)
The second movement, referring to the events of the Bloody Sunday, consists of two major sections. The first section probably depicts the petitioners of 22 January 1905 [O.S. 9 January], in the city of Saint Petersburg, in which crowds descended on the Winter Palace to complain about the government's increased inefficiency, corruption, and harsh ways. This first section is busy and constantly moves forward. It builds to two steep climaxes, then recedes into a deep, frozen calm in the prolonged piccolo and flute melodies, underscored again with distant brass.
Another full orchestra build-up launches into a pounding march, in a burst from the snare drum like gunfire and fugal strings, as the troops descend on the crowd. This breaks out into an intense section of relentless strings, and trombone and tuba glissandos procure a nauseating sound underneath the panic and the troops' advance on the crowd. Then comes a section of mechanical, heavily repetitive snare drum, bass drum, timpani, and tam-tam solo before the entire percussion sections breaks off at once. Numbness sets in with a section reminiscent of the first movement.
Adagio (Eternal Memory)
The third movement is a lament on the violence, based on the revolutionary funeral march "You Fell as Victims". Toward the end, there is one more outbreak, where material from the second movement is represented.
Allegro non troppo (Tocsin)
The finale begins with a march, (again repeating material from the climax of the second movement), which reaches a violent climax, followed by a return to the quietness of the opening of the symphony, introducing a haunting cor anglais melody. After the extended solo, the bass clarinet returns to the earlier violence, and the orchestra launches into a march once again. The march builds to a climax with snare drum and chimes in which the tocsin (alarm bell or warning bell) rings out in a resilient G minor, while the orchestra insists a G major. In the end, neither party wins, as the last full orchestra measure is a sustained G natural, anticipating the future events of 1917.

http://en.wikipedia.org/wiki/Symphony_No._11_(Shostakovich)

[Wiki] Bloody Sunday (1905)

Bloody Sunday (Russian: Крова́вое воскресе́нье; IPA: [krɐˈvavəɪ vəskrʲɪˈsʲenʲjɪ]) is the name given to the events of Sunday, 22 January [O.S. 9 January] 1905 in St Petersburg, Russia, where unarmeddemonstrators led by Father Georgy Gapon were fired upon by soldiers of the Imperial Guard as they marched towards the Winter Palace to present a petition to Tsar Nicholas II of Russia.
Bloody Sunday caused grave consequences for the Tsarist autocracy governing Imperial Russia, showing disregard for ordinary people which undermined the state. The events in St. Petersburg provoked public outrage and a series of massive strikes that spread quickly throughout the industrial centres of the Russian Empire. The massacre on Bloody Sunday is considered to be the start of the active phase of the Revolution of 1905. In addition to beginning the 1905 Revolution, historians such as Lionel Kochan in his book Russia in Revolution 1890-1918 view the events of Bloody Sunday to be one of the key events which led to the Russian Revolution of 1917.
The drought of 1905 in Russia had made the people helpless. In 1904-05 war Japan defeated Russia. This created an anti-Tsar climate in Russia. The battle against Japan had weakened the economy of Russia. The workers, the common people and the intellectuals of Russia rose Under the guidance of Father Gapon to revolt against the royal reign. The soldiers of the Tsar attacked the revolting people. This armed conflict caused a big loss of human life. As this event took place on the Sunday in 1905, it was called the 'Bloody Sunday'.

http://en.wikipedia.org/wiki/Bloody_Sunday_(1905)

2015년 2월 26일 목요일

2015년 2월 25일 수요일

[경향] 국정원은 "정치 개입/ 수사 조작원"

새정치민주연합은 국가정보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내용을 과장·왜곡해 언론에 흘렸다는 의혹과 관련해 26일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하는 ‘수사조작원’이었음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했던 강도높은 국정원 개혁도 촉구하고 나섰다.

새정치연합 신경민 의원은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이인규 전 중앙수사부장의 폭로는 국정원이 악의적인 ‘수사조작원’이었다는 감춰진 진실을 알려줬다”며 “이는 전두환의 5공 시절보다 더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앞서 이 전 중수부장은 경향신문과 만나 “‘논두렁’ 등 노 전 대통령 수사 내용 일부를 과장해 언론에 흘린 건 국정원이며, 당시 행태는 익명의 취재원 역할을 넘어 공작 수준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 때 국정원이 온라인·오프라인 공작을 했던 싹이 여기서 보인다”면서 “지금 알려진 국정원 공작은 극히 일부라는 그동안의 짐작이 맞았던 것이다. 국정원은 MB정권 첫 해부터 총체적으로, 장기적으로 썩어있음이 다시 규명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최근 항소심 결과 국정원법 뿐 아니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까지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대법원이 원 전 원장에 대해 다른 결론을 낼 가능성은 이제 전무하다”며 “박 대통령이 약속했던 대로 국정원 개혁 시늉이라도 내려면 이제 이 전 중수부장 폭로에 대해 조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 첫번째로 이명박 대통령 조사 필요성을 주장했다.

[경향] 국정원, 원세훈, 검찰 수사 언론플레이 기사

국가정보원이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하던 검찰에 ‘시계 언론플레이’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하자 직접 공작에 나섰다는 검찰 관계자의 발언이 나왔다. 국정원은 이병기 원장 지시로 관련 의혹에 대한 사실 확인에 착수했다.

옛 대검 중앙수사부 출신 인사는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을 앞둔 시점에 국정원 측이 시계 얘기를 (언론에) 강조하자는 의견을 전해왔고, 검찰은 수사기법상 소환 전 ‘오픈’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소환 직전 시계 수수 의혹이 집중적으로 보도됐고, 소환 이후엔 ‘논두렁에 버렸다’는 내용까지 나왔다”고 밝혔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분명 우리(검찰)는 그런(논두렁 시계) 내용을 언론에 말하지 않았다. 그럼 누구겠느냐”고 했다.

검찰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당시 국정원의 ‘언론플레이’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국정원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건넸다는 시계 선물세트 얘기를 특정 언론에 흘렸으며, 소환 후엔 검찰 조서에도 없는 ‘논두렁’까지 덧붙였다.

국정원은 당시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검찰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원세훈 국정원장이 이런 작업을 직접 지휘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소환 조사한 뒤 서거 때까지 한 달 가까이 구속 영장 청구나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검찰 주변에서는 청와대와 국정원의 수사개입 논란이 일었다.

국정원은 이날 곧바로 사실 확인 작업에 착수했다. 노 전 대통령 수사를 담당한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구체적인 발언(경향신문 2월25일자 1·2면 보도)이 나온 만큼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2015년 1월 21일 수요일

[한겨레/정석구 칼럼] ‘종북 대통령’을 위하여

용어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수구언론이 ‘종북 콘서트’라고 규정한 행사의 공식 명칭은 ‘평양에 다녀온 그녀들의 통일이야기-신은미&황선 전국순회 토크문화콘서트’다. 이를 둘러싼 논란은 ‘종북 공안몰이’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떻게 확대 재생산 되는지를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였다. 처음부터 되짚어 보자.

‘통일 토크콘서트’는 지난해 11월19일 서울 조계사에서 처음 열렸다. 100여명의 청중이 모인 콘서트에서 두 사람은 평양 방문 때 보고 들은 경험을 풀어놓았다. 이미 알려진, 그렇고 그런 내용들이었다. 북한 사람들의 김정은에 대한 평가, 세쌍둥이 출산 얘기 등등. 어디에도 ‘종북’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종편들이 가세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보수(수구) 논객들과 탈북자들이 종편에 출연해 두 사람이 북한을 찬양했다며 통일 콘서트를 ‘종북 콘서트’로 규정했다. 티브이조선은 급기야 신씨 등이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찬양”했다(경찰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몰아붙였다.

그 뒤 보수단체들이 두 사람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고, 경찰은 기다렸다는 듯 수사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종북 콘서트” 운운하며 종북몰이에 가세했다. 그 뒤 검찰이 본격 수사에 나서 지난 10일 신씨를 미국으로 추방하고, 14일 황씨를 구속했다. 경찰은 ‘종북 콘서트’의 배후를 캐겠다며 황씨의 남편까지 조사하고 있다.

사건 경과에서 보듯 종북몰이의 발단은 수구언론이다. 수구언론은 때때로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내심으론 북한을 전쟁 상태에 있는 적국으로 상정한다. 이런 수구언론의 시각에서 보면, 북한과 화해하고 협력하려는 세력은 모두 적국과 내통해 아국을 괴멸시키려는 첩자로 비친다. 적국인 북한을 ‘비난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종북 세력’이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정보기관 안에 공안(수구냉전)세력은 수구언론과 같은 뿌리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주류 기득권층과 이해를 직간접적으로 공유하면서 북한이란 존재를 기득권 유지에 최대한 활용한다. 일부 보수단체는 공안몰이를 일으키는 바람잡이 노릇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들은 때로는 국가 안보와 정권 안보를 동일시하면서, 때로는 정권 안보를 국가 안보로 교묘히 위장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해 나간다. 전가의 보도인 국가보안법은 공안세력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수구언론과 공안세력의 부침은 집권 세력의 속성에 좌우된다. 남북 화해를 주창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아래서 수구냉전 세력은 잠시 힘을 잃은 듯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그들은 다시 살아나 점점 몸집을 불려왔다. 이제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힘을 실어주는 정권의 비호까지 받고 있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되풀이되는 종북 공안몰이의 작동 방식이다. 참으로 단세포적이고 유치하지만 이게 바로 21세기 대한민국의 수준이다. 이 가운데 어느 한 고리라도 깨어지지 않는 한 종북몰이는 계속될 것이다.

물론 남북이 휴전선에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대치 상황을 무시할 수는 없다. 튼튼한 국방력을 키워 북한의 위협에 대처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북한에 당당히 대응하는 것과 레드 콤플렉스를 악용해 국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파괴하면서 수구반공세력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건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다. 국가 지도자라면, 이 둘의 차이를 혼동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해선 안 된다.

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통일 대박’을 원한다면 남북 화해의 물꼬를 트려 했던 통일 콘서트를 종북이라고 처벌할 게 아니라 오히려 권장해야 한다. 박 대통령도 2002년 방북 때 파격적인 환대를 받았고, “김정일 위원장은 솔직하고 거침없는 사람”이라고 호평하지 않았던가. 신은미와 황선이 종북이면 박 대통령도 종북이다. 그런 의미에서의 종북이라면, 박 대통령도 더욱 치열한 ‘종북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종북몰이’의 굴레를 하나씩 벗겨내야 한다. 적과 아군을 가르는 이분법적인 ‘종북몰이’와 ‘통일 대박’은 양립하기 어렵다.
정석구 편집인 twin8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