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5일 월요일

[김종구칼럼] 조국이 어디냐고 묻는 당신에게

불불통 비보통(不不通 非普通). 불통이 아니고 보통이 아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김지하 시인이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를 한자 여섯 글자로 표현한 말이다. 박 후보가 원주로 김 시인을 찾아와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고 지학순 주교의 묘소를 참배했다는 소식을 듣고 흐뭇해진 김 시인은 박 후보가 불통하는 사람이 아니며 정치 단수가 높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김 시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박 대통령의 취임 이후 행태를 보면 실로 ‘비보통’이라는 말이 합당하다. 무소불위의 권력 행사, 웬만한 일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담대함, 교묘한 여론몰이 등의 정치행보는 보통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렇지만 소통은 제로다. ‘불통 비보통’, 소통하지 않으면서 보통이 아닌 국정운영 행보를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지금의 박 대통령에 대한 가장 적절한 묘사일지도 모른다.

사실 박 대통령이 눈 덮인 베론성지의 지학순 주교 묘소를 찾은 것은 유신에 대한 반성도, 피해자에 대한 속죄도, 통합을 위한 과거 껴안기도 아니었다. 단지 표를 얻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했음은 그 뒤의 행적이 웅변한다. 반유신운동의 정신적 지주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탄생의 모태였던 지 주교를 기리는 경건한 마음이 있다면 지금 정의구현사제단을 대하는 태도가 이럴 수는 없다.

박창신 원로신부의 연평도 포격 발언 등에 대해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그 사람들의 조국이 어디인지 의심스럽다”고 비난했고,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부대표는 “사제복 뒤에 숨어 대한민국 정부를 끌어내리려는 반국가적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박 신부 발언의 진의를 따질 겨를은 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 수석이나 윤 부대표가 박 신부를 향해 ‘조국’이니 ‘반국가적 행위’니 하는 말을 할 자격은 없다는 점이다.

박 신부는 신군부가 저지른 광주학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하다 무자비한 테러를 당했고 그 결과 평생 한쪽 다리를 저는 고통스런 삶을 살아왔다. 그때 두 사람은 무엇을 했는가. 한 사람은 광주의 선연한 핏자국 위에 전두환씨가 건설한 민정당을 위해 투신했고, 다른 한 사람은 한때 그의 사위로 부귀영화를 누렸다. 39년간의 사제 생활 동안 박 신부가 그려온 조국의 모습은 선명하다. 민주화된 나라, 소외된 이웃이 없는 나라,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다. 지금 박 신부를 향해 종북몰이를 하는 이들이 추구해온 조국은 과연 어떤 나라였던가.

여권은 박 신부 발언 중 몇 대목을 꼬투리 잡아 사제단에 대한 붉은색 덧칠하기에 열중하고 있다. 그렇지만 문제의 본질이 그것이 아님은 권력 스스로 잘 알 것이다. 지학순 주교는 40년 전 양심선언문에서 이렇게 포효했다. “(유신헌법은) 민주헌정을 배신적으로 파괴하고 국민의 의도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폭력과 공갈과 국민투표라는 사기극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무효이고 진리에 반대되는 것이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행위 역시 민주헌정의 파괴요, 국민의 의도와는 관계없는 일종의 사기극이며, 그래서 지난 대선은 무효이고 진리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박 신부는 느낀 듯하다. 야당도 시민사회단체도 결코 입 밖에 내지 못한 ‘대통령 사퇴’라는 말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으리라.

역사는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반복된다는데 지금은 비극의 시대다. 박정희 시대에 귀가 닳도록 들었던 “체제전복세력”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일부 종교인들”은 이제 ‘종북구현사제단’ 따위의 다른 버전으로 대체됐다. “정치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사목자가 할 일이 아니다”라는 대주교의 말씀은 지학순 주교 구속 사건을 접하고도 모호한 태도를 취했던 당시 주교단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사회정의를 위한 종교계 활동을 대하는 박정희-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은 참으로 닮은꼴이다. “국민분열 발언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박 대통령의 분노에 찬 발언은 민주화운동에 노발대발하며 “모두 잡아넣으라”고 다그친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 다가온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또다시 신부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될지 모르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대통령의 불통·비보통이 빚어내는 비극의 끝은 어디인가.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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