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3일 일요일

[한겨레] 심층 리포트 검찰 1

우리만의 검찰을 ‘위하여!’
“한번 검사는 영원한 검사”
한겨레 이본영 기자기자블로그 송권재 기자 메일보내기
» 우리만의 검찰을 ‘위하여!’. 그래픽 송권재 기자 cafe@hani.co.kr
[심층 리포트 검찰] ① 엘리트주의와 집단의식

<피디(PD)수첩> 보도로 촉발된 검사 스폰서 파문. 그러나 검찰 자체조사는 검사 1명만 형사처벌(징계는 9명)하라는 의견을 내놓은 채 끝났다. 사상 처음으로 외부 인사까지 참여한 진상규명위를 꾸렸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그 대신 검찰은 기소배심제 도입 등 제도 개선을 하겠다고 말한다. 검찰은 왜 항상 남의 티끌은 잘 보면서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걸까.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쥔, 거대한 공룡으로 변한 한국 검찰의 현실을 세차례에 걸쳐 들여다본다.

“검사라는 공직 24년을 마치고 14억~15억 재산, 보기 드물게 청렴하게 살아왔다고 저는 판단하고 싶습니다.” (주성영 의원)

“특별히 재산 관계에 대해서 이의를 달 게 없습니다.” (박민식 의원)

“총재산이 14억6000만원 정도에 이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청렴하다고 생각합니다.” (주광덕 의원)

“아파트 한 채라면 상당히 청렴하고 검소한 공직생활을 했다 이렇게 생각이 되는데….” (장윤석 의원)


“우리가 최고다” 엘리트주의
조직비판에 ‘똘똘뭉쳐’ 대응

지난해 7월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한 공직 후보자를 향해 찬사가 쏟아졌다. 검증이 목적인 국회 인사청문회에선 쉽게 듣기 힘든 얘기들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열띤 응원에도 불구하고,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는 이튿날 후보직을 사퇴했다. 사실 천 후보자와 기업인들의 부적절한 관계가 계속 드러나면서, 그의 인준은 이미 물건너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천 후보자는 28억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이 중 15억여원을 기업인으로부터 시중보다 훨씬 싼 이자로 빌린 사실이 공개됐다.

7월13일 청문회에서 여론에 아랑곳 않고 딴세상 얘기를 한 법사위원들은 모두 검사 출신이다.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 ‘한번 검사는 영원한 검사’라는 말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검찰 출신 인사들은 ‘골수에 박힌 엘리트주의와 패거리 문화가 상식적인 판단을 그르치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초임 검사 때부터 철저히 내면화된 이런 의식은 어지간해서는 벗어나기 어렵다고 한다.

대형 로펌에서 일하는 검사 출신의 ㄱ변호사는, 1990년대 말 검사로 임용될 때의 일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한달간의 법무연수원 교육에서 선배 검사들은 반복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러분은 대한민국 검사다.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들이다. 누구든지 잡아넣을 수 있고, 어느 사건이든지 수사 못할 게 없다.” 검사의 자긍심을 불어넣기 위한 이 말은 오만과 직결된다. 이 변호사는 “임용 초기부터 이런 얘기를 듣는 검사들은 ‘우리가 최고 엘리트’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생각이 외부의 비판에 대해 똘똘 뭉쳐 대응하는 배타적인 문화로 나타나는 거 같다”고 말했다.

“술자리에 두번 빠지면 아웃”
관계맺기 우선, 실력은 다음

엘리트주의는 패거리 문화로 연결된다. 자신들과 견줄 집단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부와 소통하려고도, 바깥의 시선에 신경 쓰려고도 하지 않는다. 권력집단인 정치권도, 재계도 이들에겐 ‘비리가 활개치는 수사대상’일 뿐이다. 술과 골프 같은 놀이 문화가 검사들 사이의 끈끈함에 접착제로 쓰인다. 검찰 간부 출신인 ㄴ변호사는 부산 스폰서 파문이 변호사들의 식사 자리에서 화제에 올랐는데, 패거리 문화가 주범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부장검사가 주재하는 술자리에 두번 빠지면 아웃되는 게 검찰 문화였다. 잘 어울려야 인정을 받으니, 검찰은 다른 실력은 내세워봤자 의미 없는 무경쟁 조직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패거리 문화에선 ‘원만한 대인관계’가 중요해진다는 뜻이다.

검사장 출신인 ㄷ변호사는 “검사가 출세하는 데는 첫째가 친소관계이고, ‘칼잡이’로서의 실력은 그다음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조직문화는 술을 못하는 검사들에게는 고역이다. ‘열외’를 인정하지 않는 폭탄주 문화 때문에 술을 한 방울도 못 마시는 사람은 맹물이라도 들이켜거나 폭탄주를 자기 머리에 붓기도 한다. 술자리를 주재한 상관에 대한 ‘성의 표시’인 셈이다. 폭탄주 잔에 금장을 해서 상관에게 선물했다는 어느 검사의 얘기는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검찰이란 조직 자체가 피라미드형 구조라, 승진하려면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한다. 그러니 내부엔 작은 패거리 문화도 뿌리깊다. 학연과 지연에, 같은 곳에서 근무한 사람들의 ‘근무연’이 중요하다. 어느 나라에서 연수했는지를 가지고도 미국파, 프랑스파 같은 말이 나온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지난해 7월 후보자가 됐을 때, 경쟁자 쪽에서 모함을 해 괴로웠다며 기자간담회 중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갈등은 내부 자리다툼을 설명할 때에만 유효하다. 외부의 비판에 대해선 말 그대로 ‘검사동일체 원칙’이 철두철미하게 관철된다.

후배 챙기기가 ‘주종관계’로
전관예우 거부하면 곧 배신

노무현 정부 때 판사 출신인 강금실 변호사의 법무부 장관 기용에 검찰이 집단적으로 반발했던 사례나, 변호사 출신인 천정배 법무부 장관 때 수사지휘권 문제로 검찰 수뇌부와 갈등을 빚은 일은 검찰 순혈주의의 농도를 보여준다. 조직 배타성이 훨씬 강한 국방부에서도 차관은 직업군인 출신이 아닌 사람을 기용하지만, 검사들은 검찰 조직은 물론이고 법무부까지 장악하고 있다. 그러니 법무부가 검찰에 손을 대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국방부는 물론 육해공군 장관을 모두 민간인이 맡는 것과 견줘보면, 한국 검찰은 문민통제를 원천적으로 거부한다고 볼 수도 있다. ㄱ변호사는 검찰 문화가 “총 없는 군대” 같은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패거리 문화는 경계의 이쪽과 저쪽에 다른 잣대를 적용하기 때문에 사법의 공정성이 궁극적 피해자가 된다. 검찰 조직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적당히 넘어가는 게 상례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04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직무태만, 품위손상, 금품·향응 수수 혐의로 적발된 98명 가운데 징계를 받은 검사는 18명에 그쳤다. 나머지는 대부분 ‘경고’와 ‘주의’처럼 가벼운 처분을 받았다. 법무부와 대검찰청은 2008년 감찰기능 수장직을 외부개방직으로 만들어놓고도 검찰 내부인사로만 채우는 배짱을 보여줬다.

선배가 후배를 챙기는 미덕은 봉건적 주종관계로 변질될 위험성을 내포한다. 물심양면으로 보살펴준 선배를 받들지 못하는 것은 ‘배신’으로 여겨지기 쉽다. ㄴ변호사는 “지청장으로 나갔더니 차장이 하는 말이 ‘선배님, 사건 관련해서 할 말씀 있으면 저한테 언제든지 말씀하세요’였다. 내 민원을 알아서 챙겨주겠다는 얘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 출신 변호사는 별로 무죄를 다투려고 하지 않는데, 적당히 검사의 면을 세워주고 자기도 실리를 챙기겠다는 뜻”이라며, 서로 적당히 챙겨주는 문화가 사법의 엄정성을 위협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검찰 출신이 모두 ‘식구’ 대접을 받는 건 아니라고 변호사들은 말한다. 요직을 거쳤거나,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변호사들이 패거리 문화의 주된 수혜자라는 것이다.

한 부장검사는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의 청탁을 들어주지 않았더니 ‘두고 보자’는 식의 반응이 나와 당혹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배신자’로 낙인찍히면 입지는 훨씬 좁아진다. 검찰 스폰서 파문을 다룬 문화방송 <피디수첩>을 보면, 박기준 부산지검장이 건설업체 대표 정아무개씨에게 “김용철 변호사 봐라, 어찌 되던데? 매장 안 되더냐”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용철 변호사는 “왜 멀쩡한 사람을 매장당했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면서도 “(삼성 떡값을 받은 검찰 간부 명단을 폭로한 뒤) 내 의뢰인들이 오히려 피해를 볼까봐 수임료를 돌려주고 스스로 변호사 사무실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우리 검찰”을 입에 달고 사는 검찰 출신 의원들이 ‘친정’에 대한 호의도 품고 있겠지만, 검찰이 노리면 무사하기 힘들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러지 않겠냐고 분석했다. 인정과 배려, 조직에 대한 애착이라는 패거리 문화의 이면에 탐욕과 뒷거래, 불안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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