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4일 일요일

[시사저널] 헛도는 청와대: 관료 통제 딜레마

시사저널 특집기사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76996#

 

[헛도는 靑①] “문제는 김동연·장하성이 아니다”관료 통제 딜레마 현실화 5년 단임 대통령에겐 ‘청와대 정부’가 현실적 대안
“개점휴업 상태.” 최근 청와대 정책파트에 대한 내부의 자조 섞인 평가다. 청와대 정책실 내부에서조차 “일이 안 돌아간다” “새로운 내용의 보고서는 볼 수가 없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집권 2년 차를 맞아 대선공약을 실천하고 민생·경제 이슈에 집중해야 할 정책실이 대체 왜 ‘개점휴업’ 상태가 됐을까. 

이 질문에 대한 유력한 대답이 세 가지 있다. 먼저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충돌하면서 청와대 정책파트가 헛돌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른바 ‘김앤장’ ‘장앤김’ 논란이다. 다음은 청와대와 관료사회의 갈등설이다. 청와대에 끌려가던 관료집단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본격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정부 내 균열이 표면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마지막은 청와대가 관료에 대한 장악력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가설은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이 8월9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서 확산됐다. 박 전 의원은 어떤 자리에서 한 청와대 핵심 인물을 만났는데 ‘대통령 말도 안 듣는다’ ‘자료도 안 내놓는다’ ‘조직적 저항에 들어간 것 같다’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소개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갈등과 대립의 정도 차이는 있었지만 ‘어공(어쩌다 공무원)’과 ‘늘공(늘 공무원)’ 사이에 정책 수립과 운용에 임하는 관점이 달라 티격태격하는 일은 어느 정부에서나 집권 2년 차에 불거졌었다. 집권 초기만큼의 장악력이 발휘되지 않으면서 청와대 조직 개편과 개각이라는 카드도 늘 이때쯤 사용됐다. 

‘늘공’과 ‘어공’의 대립 역사

대표적 예가 노무현 정부 2년 차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리면서 정책 결정 과정에서 관료들의 입김이 세졌다.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이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다. 이 부총리로 대표되는 ‘늘공’과 당시 386그룹(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으로 상징되던 ‘어공’은 경제에 대한 인식 차이가 컸다. 이들은 아파트 원가 공개 등 민감한 경제정책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했다. 이 부총리가 “386그룹은 경제 하는 법을 모른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결국 이 부총리는 취임 1년 만에 옷을 벗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문재인 정부는 중간선거 성격이 짙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압승했다. 최근 민생·경제 정책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관료들에 대한 장악력을 상실할 만큼 흔들리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청와대 정책파트를 ‘개점휴업’ 상태에 빠뜨린 걸까.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최근 청와대는 부처의 비협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두고 내부 회의를 가졌다. 문 대통령의 복심(腹心)이라 여겨지는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이 회의 때 관련 사안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청와대에서도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심지어 청와대 내부에서는 “개각 말고는 관료들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바로 정책에 있어 관료에 대한 의존성이다. 청와대는 정책 프로세스에서 절대적으로 관료집단에 기대고 있다. 관료집단을 신뢰하든 그렇지 않든 지금의 난관을 돌파할 정책은 기획재정부로 상징되는 부처에서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어공’들은 뛰어난 정무적 감각으로 선거에 이겨 정권을 잡는 데 압도적 실력을 갖췄지만, 집권 후 민생을 해결할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데는 ‘늘공’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교수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대선캠프가 있지만, 규모나 가용자원 등에서 관료집단에 비할 바는 아니다. 청와대라는 공적 영역이 사적 영역인 대선캠프에 의존하는 것은 민주적 원리에도 맞지 않다. 

대통령이 반드시 관료를 통제하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반대로 집권 2년 차 즈음부터 “정권이 관료들에게 포섭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 가능하다. 문제는 5년 단임제라는 제도적 성격상 정권의 성공이 꼭 관료의 성공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공’들은 임기 동안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다음 선거에서 바로 일자리를 잃는다. 하지만 ‘늘공’은 그렇지 않다. 고한석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누가 정권을 잡든, 그 정권이 성과를 내든 말든 이들에겐 별 상관이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화 이후 모든 대통령의 고민 ‘관료 통제’

그렇기에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에게 관료조직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였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복지부동’,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관료 물갈이’, 박근혜 대통령 시절의 ‘관피아’ 등은 모두 대통령의 관료 통제 문제와 직결된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대통령들은 불리한 조건에 직면하게 됐다. ‘87년 헌법’은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제한했다. 제한된 시간 내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데 정작 대통령이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은 많지 않다. 이 문제를 심도 있게 연구한 신현기 가톨릭대 교수는 “민주화 이후 대통령은 권한과 자원이 현저히 감소한 반면 자신을 둘러싼 의회, 대중, 정당, 미디어 등 정치제도와의 관계에서 협상의 불확실성은 크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무슨 말일까. 과거와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과거 권위주의 대통령은 권위주의적 강압과 미래의 보상이라는 인센티브를 통해 관료들의 순응을 확보할 수 있었다. 대통령이 장기 집권했기 때문에 관료들은 정권 교체에 대한 불안감 없이 현재 권력에 충성하면 그 대가로 가까운 장래에 승진과 같은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정치권력의 교체가 현실화되자 현재 권력에 대한 복종과 미래의 보상이라는 교환관계는 더 이상 지속될 수가 없었다. 신 교수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료들은 독자적인 권력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합리적 대안이 된다. 권위주의 대통령들이 정치권력의 영속성을 통해 ‘주인-대리인 문제’를 해결했던 데 반해,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은 그런 기제가 사라지고, 이를 보완할 다른 제도적 대안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무원의 기회주의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사실 한국 대통령은 매우 어려운 자리라 할 수 있다. 기대치도 높다. 국민들은 국가적 재난이나 경제위기에 대통령이 등장해 얽히고설킨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길 기대한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설명처럼 박정희로 상징되는 강력한 리더십 아래 국가 주도의 경제성장에 성공했던 발전국가의 유산은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더 키웠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은 시간적 제약 내에 국정과제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조급증을 갖게 됐고, 청와대 비서실로의 강력한 집권화를 추진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로의 권력 쏠림 현상에 대한 대표적 비판이 바로 ‘청와대 정부’다. 정치학자 박상훈 박사는 대통령이 청와대에 권력을 집중시켜 정부를 운영하는 형태를 ‘청와대 정부’로 규정하고, 퇴행적 국정 행태라고 비판한다. 그는 대통령만 바라보는 정치는 민주정치의 기능을 해낼 수 없기 때문에 대통령이 체계적인 조직인 정부를 통해 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청와대 정부’ 담론은 문 대통령도 겨냥한다. 논리는 이렇다. 청와대 규모만 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줄였고, 박근혜 대통령은 변화가 없었는데, 문 대통령은 오히려 늘렸다. 청와대 직제, 예산, 인원을 따져보면 청와대가 거대해지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 때다. 대선 때 ‘민주당 정부’를 약속한 문 대통령은 청와대가 내각과 당을 이끌고 나가는 ‘청와대 정부’를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뒤를 잇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여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정당 책임 정부, 내각의 역할을 중시하는 책임총리 또는 책임장관은 원리적으로는 옳다”면서도 “실제 국정운영의 현실과는 일치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제한된 임기 안에 국정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대통령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다. “관료조직의 저항, 여당의 비협조, 의회관계의 비예측성, 여론의 비일관성 등 대통령이 재임 중 부닥치는 온갖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대통령 주변으로의 집권화는 대통령에게는 어쩌면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 부원장도 비슷한 설명을 한다. 그는 “청와대 정부가 문제라면 민주당 정부가 돼야 하는데, 그건 영국과 같은 의원내각제에서 가능한 얘기”라면서 “영국의 경우 총리실을 제외하고도 100여 명의 의원들이 행정부에 들어가 각 부처의 장·차관과 정책보좌관, 기조실장 등 정부의 주요 요직을 장악한다. 이게 바로 정당 정부의 모습이다. 그런데 한국은 대통령제라 정당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불가피한 ‘청와대 정부’ 

오히려 고 부원장은 “청와대와 행정부 관료조직 간 정책방향과 이해관계를 일치시켜야 정부가 성공할 수 있다”면서 “지금 청와대 규모로 거대한 관료조직을 장악하기엔 태부족하다. 청와대가 커서 문제가 아니라 작아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뭘까. 신 교수에 따르면, 관료가 강한 저항을 펼칠 때 대통령이 활용할 수 있는 통제 수단은 ‘정치적 임명’과 ‘청와대 집권화’ 두 가지다. 대통령제를 갖고 있는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정무적으로 임명할 수 있는 자리는 5500여 개에 달한다. 반면 한국은 130개가 안 된다. 이 정도의 정무직 규모로 행정부의 거대 조직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긴 쉽지 않다. 

그래서 한국 대통령은 정치적 임명보다는 청와대 주변으로 권한과 인력을 집중시키는 집권화를 선호한다. 이른바 ‘청와대 정부’다. 이는 미국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은 우리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한 백악관을 갖고 있다. 흔히 청와대 비서실에는 490명, 백악관 비서실에는 374명의 인원이 일해 한국의 청와대가 비대하다고 비판하는데, 이는 두 정부의 행정체계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에 가깝다. 

 

“미국 백악관과 한국 청와대를 단순 비교하게 되면 중요한 사실을 놓치게 된다. 우리가 보는 백악관은 우리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이다. 백악관에는 ‘대통령 집행부(Executive Office of President·EOP)’라는 거대한 정책 집행부서가 존재한다. 집권당의 ‘어공’들이 대거 들어가 있는 EOP는 각 부처의 인사권과 예산권을 갖고, 이를 기반으로 확실한 부처 장악력을 발휘하며 대통령의 핵심 공약을 추진한다. 한국과 비교하자면, 청와대 안보실과 정책실, 국무조정실 그리고 과거 기획예산처를 합친 규모다.” 고 부원장의 설명이다. 올해 8월 기준 백악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EOP엔 1800명이 넘는 인원이 있다. 사실상 백악관에는 2100명이 넘는 인원이 일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행정체계에서 EOP와 유사한 곳은 국무총리실과 대통령 직속 위원회라고 할 수 있다. 둘 사이의 차이는 크다. EOP 소속 공무원들은 ‘어공’이다. 정권의 성공과 이해관계가 같다. 반면 한국의 국무조정실은 ‘늘공’이 대부분이다. 고 부원장은 “국무조정실은 전체 정부 부처 중 ‘적당히’ 정신이 가장 잘 먹힐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다”며 “국무조정실이 놀고 있어도 부처 일은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즉 ‘어공’의 EOP는 백악관을 위해 뛸 유인이 충분하지만, ‘늘공’의 국무조정실은 정권이 아닌 자신이 파견 온 부처를 위해 뛸 유인이 크다는 지적이다. 

고 부원장은 대안으로 담대한 주장을 펼친다. 먼저 국무조정실 핵심 직위에 ‘어공’을 대거 임명하거나, 이들을 ‘어공’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제안은 일종의 ‘공공부문 환류 시스템’ 도입이다. 행정고시 출신 고위공무원단이 승진을 하려면 일정한 리스크를 지고 정당의 정책전문위원으로 들어간다. 정당의 선거 승리를 돕고, 집권 후엔 집권당의 정책을 집행하는 핵심 역할을 부처나 청와대에서 수행하게 하자는 제안이다. ​ 

※‘헛도는 청와대’ 특집 연관기사

☞[헛도는 靑②] “지금 청와대론 관료조직 장악 태부족” 

☞[헛도는 靑③] ‘책임총리·책임장관’? 국정운영 현실과 거리 멀다 

 

[헛도는 靑②] “지금 청와대론 관료조직 장악 태부족”
[인터뷰] 고한석 민주연구원 부원장 “국무조정실 ‘핵심 늘공’, ‘어공’으로 만들어야”
문재인 정부가 헛돌고 있다. 청와대는 관성에 젖은 관료 조직을 장악하지 못하고, 관료들은 정권의 성공보다 부처의 안위를 우선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그사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주요한 민생·경제 정책들은 삐거덕거리며 당초 목표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주요 경제지표들의 추락과 함께 지지율도 동반 하락하면서 정(政)·청(靑) 간 갈등은 심화되고 불신 역시 커지고 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문제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악마는 디테일이 아닌 ‘구조’에 있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을 이끄는 고한석 부원장은 “청와대와 행정부 관료 조직 간 정책 방향과 이해관계를 일치시켜야 정부가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 부원장은 “문제의 핵심은 ‘선출된 권력이 어떻게 해야 관료조직을 장악할 수 있는가’이다”라면서 “현재 청와대 규모로는 거대한 행정부 관료조직을 장악할 수 없다. 청와대가 커서 문제가 아니라 작아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비대한 청와대’ ‘청와대 정부’라는 비판과는 사뭇 결이 다른 주장이다. 여의도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는 최근 문제의 책임을 김동연 경제부총리나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등 특정 인물에게 돌리고 있는데, 이런 문제 진단과도 분명 다르다. 

고 부원장은 민주당에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고 있다고 인정받는 몇 안 되는 정책통(通)이다. 민주당이 선거에 빅데이터를 활용하게 이끈 장본인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정보기술(IT) 선거 전략을 분석한 ‘빅데이터 승리의 과학’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서울대 졸업 후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 IT정책으로 학위를 받고 SK와 삼성에서 IT와 글로벌 사업 파트를 담당했다. 이후 열린우리당(현 민주당) 정책연구원 정책기획 연구원을 거쳐 정세분석국장으로 여론조사 데이터를 관리했다.​

 

문재인 정부의 민생·경제 정책이 헛돌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책은 ‘정책입안-결정-집행’이라는 3단계에 걸쳐 이뤄진다. 한국의 경우 청와대가 하는 역할은 정책의 결정이다. 입안과 집행은 공무원 관료조직이 한다. 즉 공무원들이 청와대가 설정한 방향에 맞는 구체적인 정책을 제때 제대로 만들거나 집행하지 않으면 정책효과는 매우 떨어지게 된다. 다른 원인들도 존재하지만 현재 한국 행정체계에서 ‘정책입안-결정-집행’의 일체성이 약하다는 게 정부의 경제정책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구조적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정책실이 헛돌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한다. 특히 국무조정실의 ‘조정’ 기능에 대한 지적이 많다.

“국무조정실은 각 부처 공무원들이 파견 나와 일하는 곳이다. 업무를 ‘조정’한다는 말은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조정을 하는 사람이 그중 한 부처 출신이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상충한다. 게다가 조정을 요구받는 부처가 반발하면 그것을 강제할 동기와 권위가 약하다. 국무조정실은 전체 정부 부처 중 ‘적당히’ 정신이 가장 잘 먹힐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다. 국무조정실이 놀고 있어도 부처 일은 돌아간다.”

타개할 방법은 무엇인가.

“국무조정실의 문제는 크게 직업 공무원 제도, 부처 이기주의, 국무총리 제도 등으로 요약된다. 인간은 누구나 상벌체계에 반응한다. 선출직 공무원과 그들에 의해 임명돼 일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은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다음 선거에서 바로 일자리를 잃는다. 그러나 ‘늘공(늘상 공무원)’들에게는 그 정도의 상벌체계가 없다.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않는 한, 그만큼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별다른 상벌이 없다. 즉 누가 정권을 잡든, 그 정권이 성과를 내든 말든 이들에겐 별 상관이 없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에 너무 많은 권력을 집중시켜 국정을 운영한다며 ‘청와대 정부’라 비판한다.  

“청와대 정부가 문제라면 민주당 정부가 돼야 하는데, 그건 영국과 같은 의원내각제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영국의 경우 총리실을 제외하고도 100여 명의 의원들이 행정부에 들어가 각 부처의 장·차관과 정책보좌관, 기조실장 등 정부의 주요 요직을 장악한다. 이게 바로 정당 정부의 모습이다. 그런데 한국은 대통령제라 정당이 그렇게 할 수 없다. 핵심은 ‘선출된 권력이 어떻게 해야 행정부 관료조직을 장악할 수 있는가’다. 의원내각제에서는 의원과 당료들이,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과 참모들이 행정부 관료조직을 장악하는 것이 다를 뿐 본질은 같다. 지금 청와대 규모로 거대한 관료조직을 장악하기엔 태부족하다. 청와대가 커서 문제가 아니라 청와대가 작아서 문제다.”

‘청와대 정부’는 제왕적 대통령을 더 강화하는 것 아닌가.

“제왕적 대통령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관점이다. 대통령이 제왕처럼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 비대한 행정권력 탓이다. 강력한 손발이 있기에 대통령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청와대의 말을 손발이 잘 듣지 않으니 이들을 통제하는 척추신경을 강화해야 한다. 만약 막강한 행정부의 권력을 그대로 두고 의회가 선출한 총리가 실질적 권력을 행사한다면 제왕적 대통령과 같은 제왕적 총리의 출현을 야기할 수도 있다.”

 

우리처럼 대통령제를 갖고 있는 미국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나.

“미국 백악관과 한국 청와대를 흔히 단순 비교하는데, 이렇게 되면 중요한 사실을 놓치게 된다. 우리가 흔히 보는 백악관은 우리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이다. 백악관에는 ‘대통령 집행부(EOP)’라는 거대한 정책 집행부서가 존재한다. 집권당의 ‘어공’들이 대거 들어가 있는 EOP는 각 부처의 인사권과 예산권을 갖고, 이를 기반으로 확실한 부처 장악력을 발휘하며 대통령의 핵심 공약을 강하게 추진한다. 한국과 비교하자면, 청와대 안보실과 정책실, 국무조정실 그리고 과거의 기획예산처를 합친 규모다. 무려 2000여 명이 활동한다. 이들 중 책임자급 몇 명만 인사청문회를 거치고 대다수 직원은 대통령이 임의로 임명한다. 이들은 정권이 바뀌면 대부분 함께 바뀐다. 즉 핵심 정책의 경우 관료조직에 의존하기보다는 대통령과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직접 실행에 참여하도록 하고 관료들이 그것을 돕고 보좌하게 한 것이다.”

왜 우리는 미국 EOP 같은 시스템을 이식받지 못했나.

“이승만 정부 당시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가 절충된 이원집정부제가 도입됐다. 그 결과 정당 정부라는 의원내각제의 장점도, 대통령 정부라는 대통령제의 장점도 살리기 힘든 관료 중심 정부가 만들어졌다. 1997년까지 사실상 정권교체 없이 권위주의 정권이 이어졌기 때문에 그때까진 선출직 공무원에 의한 관료조직의 통제라는 이슈가 등장할 여지가 없었다. 1997년 이후 정권교체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집권세력이 내세우는 정책 방향이 기존 관료조직의 관성과 다를 때 정부 성과의 발목을 잡는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대안은 무엇이 있나.

“개헌을 통해 국무총리제를 없애지 않는 이상 두 가지 대안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국무조정실을 어떻게 통제하느냐다. 국무조정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거취가 정권의 성과와 연동되게 제도를 짜야 한다. 국무조정실 핵심 직위에 ‘어공’을 대거 임명할 수 있도록 하든지, 국무조정실 핵심 직위 신분을 ‘어공’으로 만들어야 한다. 첫 번째 방안은 미국식, 두 번째는 독일식이다. 독일 연방정부는 집권정당이 바뀌면 새로운 총리가 부처 공무원들 중 집권정당의 이념과 가까운 공무원들을 국장급 이상 고위 공무원단으로 승진시켜 함께 일한다. 대신 이들의 신분은 ‘어공’이 된다. 정권이 바뀌면 함께 사직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 정책의 성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할 인센티브 기제가 생긴다. 이런 자리를 원하지 않고 오래 공무원을 하고 싶으면 중간급 공무원에 계속 머무를 수 있다.”

두 번째 방안은 뭔가.

“대통령 직속 행정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이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행정위원회와 자문위원회로 나뉘는데 자문위는 그야말로 자문을 하는 곳이기에 영향력이 세지 않다. 그러나 행정위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집행부서까지 가지는 ‘작은 부처’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민간 전문가와 관련 부처들에서 파견된 공무원, 정무직 공무원이 하나의 상설조직으로 통합돼 부처의 벽을 뛰어넘는 일을 기획하고 집행한다. 현재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규제개혁위원회 두 개만 있다. 과거 참여정부가 ‘위원회 공화국’이라고 보수 언론의 공격을 받았지만 역으로 위원회가 있었기에 부처 이기주의와 안일주의를 극복하고 실제로 성과를 남길 수 있었다. 그 대표적 예가 ‘균형발전위원회’다.”

모든 정부가 관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정당들이 정책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민주당의 경우 현재 원내 정책위원회 전문위원은 16개 상임위원회별로 고작 2명씩 배치돼 있다. 그것도 보건복지위의 경우 보건 전문 1명, 복지 전문 1명으로 나뉘는 등 실제로는 분야별 1명의 전문위원만 갖춘 셈이다. 이 정도 규모로는 한 부처에 십 수년 이상 근무한 공무원들을 내용적으로 장악할 수 없다. 정책은 다른 영역과 달리 무엇보다 ‘경험적 지식’이 중요하다. 실제 정책입안-결정-집행 과정에 참여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제대로 된 정책 역량을 갖추기 쉽지 않다. 능력 있는 공무원들 중에 영혼이 있는, 즉 정치적 가치관이 뚜렷하고 열정 있는 사람들을 정당의 정책전문위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독일의 경우 300여 명의 정책전문위원들이 의석 비율에 따라 각 정당에 채용돼 활동한다. 30여 명에 불과한 우리의 열 배에 이르는 수치다.”

정치는 관료를 불신하고, 관료는 정치가 무능하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공공부문 환류 시스템이 필요하다. 한국은 지금 행정부·정당·시민사회·학계 등 공공부문 주요 영역들 간 이동이 어려워 서로의 영역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각 영역 출신들이 서로의 조직에서 일하며 이해를 높이고 경험과 역량이 골고루 배치되는 ‘회전문 인사’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즉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들이 고위급 승진을 하려면 일정한 리스크를 지고 정당의 정책전문위원으로 일하며 정당의 선거 승리를 돕고, 집권 후엔 출신 부처로 돌아가 집권정당의 가치관에 맞는 정책을 집행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가장 중요한 비판 중 하나는 “대통령밖에 안 보인다”는 것이다. 취임 이후 줄곧 적폐청산 등을 명분으로 대통령이 국정 전면에 나서면서 총리도, 장관도 그리고 여당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가령 최근 폭염으로 인한 전기료 폭탄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이 정도 사안이면 관계부처 장관이 직접 챙기는 게 맞는데, 이런 것까지 대통령이 챙기면 장관들의 존재감은 사라진다. 

그런데 관계부처가 내놓은 전기료 인하 대책은 국민 기대에 한참 못 미쳤고, 그 여파로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했다. 이처럼 대통령이 국정 전면에 나설 경우 국민들의 불만은 고스란히 대통령에게 쏠림으로써 오히려 대통령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청와대 정부’라는 비판

정치학자 박상훈 박사는 이런 식의 국정운영을 ‘청와대 정부’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가 말하는 ‘청와대 정부’는 대략 두 가지 정도의 함의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청와대 정부’는 대통령이 의회·정당 등 기존 정치제도를 거치지 않고 대중들과 직접 소통하는 ‘대중 동원식’ 국정운영 방식을 말한다. 대통령이 공식 제도를 우회해 대중과 직접 관계를 맺고, 여론의 지지를 국정운영의 압력 수단으로 삼을 경우 시민의 대표를 통해 통치하는 대의정부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시민사회를 대통령의 지지자와 반대자로 분리함으로써 시민사회 내부의 분열을 가속화할 수 있다. 

둘째, ‘청와대 정부’는 대통령이 국정의 모든 사안을 직접 챙기면서 대통령 주변, 즉 청와대로 인력과 권한이 집중돼 내각·여당 등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국정운영을 말한다. 이는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이 국정을 주도하고 다음 선거에서 그 성과에 대해 심판받는 정당 책임 정부의 원칙에 어긋난다. 무엇보다 총리도, 장관도, 여당도 청와대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책임총리 또는 책임장관 공약을 껍데기로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청와대 정부’의 대안은 청와대를 슬림화하고 국정운영의 권한과 책임을 내각과 여당으로 분산해 공유하는 것이다. 이는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이 공통적으로 청와대 중심의 국정운영을 하다가 실패했다는 역사적 경험을 고려할 때, 매우 그럴싸한 대안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여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정당 책임 정부, 그리고 내각의 역할을 중시하는 책임총리 또는 책임장관은 원리적으로는 옳지만, 실제 국정운영의 현실과는 일치하지 않는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대통령의 고민이 무엇인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박 전 의원에 따르면, 청와대의 한 인사는 “대통령 말도 안 듣는다” “자료도 안 내놓는다” “조직적 저항에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정부 부처가 사보타주(태업)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우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른바 정부 관료제의 저항인데, 이런 저항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국정목표를 달성할 것인가는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이 공통적으로 부닥친 문제였다. 특히 정책의 이념적 성격과 관련 없이 기존 정책으로부터 급격한 이탈을 시도하는 대통령일수록 더욱 강한 관료 저항에 부닥치곤 했다. 이때 대통령이 활용할 수 있는 관료 통제 수단은 ‘정치적 임명(political appointment)’과 ‘집권화(centralization)’ 두 가지다. 

먼저 정치적 임명은 내각의 중요 자리를 대통령 측근으로 임명함으로써 관료제를 통제하는 방식이다. 미국 대통령 사례를 보면 카터·레이건 등은 정치적 임용을 통해 내각을 통제했다. 카터 대통령은 정부 고위직 중 정치적 임용이 가능한 직위, 이른바 SES(Senior Executive Service) 직위를 신설했는데, 이는 정부 고위직에 대통령 측근을 임명함으로써 내각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 연방정부의 대폭적 축소를 시도했던 레이건 대통령 역시 행정부 예산 등을 통제하는 관리예산처(OMB) 책임자에 최측근을 임명함으로써 관료 조직의 저항을 통제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오랜 엽관제(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은 사람·정당이 관직을 지배하는 정치적 관행)의 전통 때문에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임용의 폭과 깊이가 상당하다. 이에 비해 한국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임용할 수 있는 정무직은 법률적으로 채 130석이 안 된다. 이 정도 정무직으로 행정부의 거대 조직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 대통령은 정치적 임명보다는 청와대 주변으로 권한과 인력을 집중시키는 집권화를 선호한다. 이는 미국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청와대는 대통령의 비서 기능과 국정운영 기능을 모두 수행하지만, 미국의 경우 비서 기능은 백악관이 맡고 국정운영에 필요한 인사·예산·법률 사항 등은 대통령 부서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 집행부(EOP)에 집중돼 있다. 이 부서는 1939년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고, 이후 대통령의 역할이 커지면서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관료제에 대한 불신이 컸던 닉슨 대통령 때 OMB가 EOP 내에 신설되면서 행정부의 조직·인사·예산 등을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됐다. 이는 미국 대통령의 경우에도 관료제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임기 내에 국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통령 주변으로 권한을 모으는 집권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관료 저항을 어떻게 극복할까

이른바 ‘청와대 정부’는 정당 책임 정부라는 현대 대의정부의 운영원리에는 맞지 않지만 제한된 임기 안에 국정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대통령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관료조직의 저항, 여당의 비협조, 의회관계의 비예측성, 여론의 비일관성 등 대통령이 재임 중 부닥치는 온갖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대통령 주변으로의 집권화는 대통령에게 어쩌면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책임총리와 책임장관을 세우고 여당과 함께 의회와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현실정치 관점에서 현실적이지 않고,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의 이해에 부합하지 않는다. 

트루먼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부통령에서 갑자기 대통령이 됐다. 문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갑자기 대통령이 됐다. 트루먼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1952년 대선은 공화당 후보였던 아이젠하워의 승리가 거의 확정적이었다. 자신의 후임자가 될 아이젠하워를 생각하며 트루먼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이젠하워가 이 자리에 앉게 되겠지. 그는 이렇게 말할 거야. 이걸 해라! 저걸 해라!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적폐청산을 들고 국민의 선택을 받았던 문 대통령도 청와대 안에서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이는 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공통된 고민이었다. 현실정치의 관점에서 청와대 정부는 바람직하지는 않더라도,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 

※‘헛도는 청와대’ 특집 연관기사

☞[헛도는 靑①] “문제는 김동연·장하성이 아니다”

☞[헛도는 靑②] “지금 청와대론 관료조직 장악 태부족” 

 

 

[헛도는 靑③] ‘책임총리·책임장관’? 국정운영 현실과 거리 멀다
관료 통제 위한 ‘청와대 집권화’, 현실정치의 관점에서 봐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가장 중요한 비판 중 하나는 “대통령밖에 안 보인다”는 것이다. 취임 이후 줄곧 적폐청산 등을 명분으로 대통령이 국정 전면에 나서면서 총리도, 장관도 그리고 여당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가령 최근 폭염으로 인한 전기료 폭탄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이 정도 사안이면 관계부처 장관이 직접 챙기는 게 맞는데, 이런 것까지 대통령이 챙기면 장관들의 존재감은 사라진다. 

그런데 관계부처가 내놓은 전기료 인하 대책은 국민 기대에 한참 못 미쳤고, 그 여파로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했다. 이처럼 대통령이 국정 전면에 나설 경우 국민들의 불만은 고스란히 대통령에게 쏠림으로써 오히려 대통령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청와대 정부’라는 비판

정치학자 박상훈 박사는 이런 식의 국정운영을 ‘청와대 정부’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가 말하는 ‘청와대 정부’는 대략 두 가지 정도의 함의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청와대 정부’는 대통령이 의회·정당 등 기존 정치제도를 거치지 않고 대중들과 직접 소통하는 ‘대중 동원식’ 국정운영 방식을 말한다. 대통령이 공식 제도를 우회해 대중과 직접 관계를 맺고, 여론의 지지를 국정운영의 압력 수단으로 삼을 경우 시민의 대표를 통해 통치하는 대의정부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시민사회를 대통령의 지지자와 반대자로 분리함으로써 시민사회 내부의 분열을 가속화할 수 있다. 

둘째, ‘청와대 정부’는 대통령이 국정의 모든 사안을 직접 챙기면서 대통령 주변, 즉 청와대로 인력과 권한이 집중돼 내각·여당 등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국정운영을 말한다. 이는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이 국정을 주도하고 다음 선거에서 그 성과에 대해 심판받는 정당 책임 정부의 원칙에 어긋난다. 무엇보다 총리도, 장관도, 여당도 청와대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책임총리 또는 책임장관 공약을 껍데기로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청와대 정부’의 대안은 청와대를 슬림화하고 국정운영의 권한과 책임을 내각과 여당으로 분산해 공유하는 것이다. 이는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이 공통적으로 청와대 중심의 국정운영을 하다가 실패했다는 역사적 경험을 고려할 때, 매우 그럴싸한 대안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여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정당 책임 정부, 그리고 내각의 역할을 중시하는 책임총리 또는 책임장관은 원리적으로는 옳지만, 실제 국정운영의 현실과는 일치하지 않는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대통령의 고민이 무엇인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박 전 의원에 따르면, 청와대의 한 인사는 “대통령 말도 안 듣는다” “자료도 안 내놓는다” “조직적 저항에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정부 부처가 사보타주(태업)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우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른바 정부 관료제의 저항인데, 이런 저항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국정목표를 달성할 것인가는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이 공통적으로 부닥친 문제였다. 특히 정책의 이념적 성격과 관련 없이 기존 정책으로부터 급격한 이탈을 시도하는 대통령일수록 더욱 강한 관료 저항에 부닥치곤 했다. 이때 대통령이 활용할 수 있는 관료 통제 수단은 ‘정치적 임명(political appointment)’과 ‘집권화(centralization)’ 두 가지다. 

먼저 정치적 임명은 내각의 중요 자리를 대통령 측근으로 임명함으로써 관료제를 통제하는 방식이다. 미국 대통령 사례를 보면 카터·레이건 등은 정치적 임용을 통해 내각을 통제했다. 카터 대통령은 정부 고위직 중 정치적 임용이 가능한 직위, 이른바 SES(Senior Executive Service) 직위를 신설했는데, 이는 정부 고위직에 대통령 측근을 임명함으로써 내각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 연방정부의 대폭적 축소를 시도했던 레이건 대통령 역시 행정부 예산 등을 통제하는 관리예산처(OMB) 책임자에 최측근을 임명함으로써 관료 조직의 저항을 통제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오랜 엽관제(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은 사람·정당이 관직을 지배하는 정치적 관행)의 전통 때문에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임용의 폭과 깊이가 상당하다. 이에 비해 한국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임용할 수 있는 정무직은 법률적으로 채 130석이 안 된다. 이 정도 정무직으로 행정부의 거대 조직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 대통령은 정치적 임명보다는 청와대 주변으로 권한과 인력을 집중시키는 집권화를 선호한다. 이는 미국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청와대는 대통령의 비서 기능과 국정운영 기능을 모두 수행하지만, 미국의 경우 비서 기능은 백악관이 맡고 국정운영에 필요한 인사·예산·법률 사항 등은 대통령 부서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 집행부(EOP)에 집중돼 있다. 이 부서는 1939년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고, 이후 대통령의 역할이 커지면서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관료제에 대한 불신이 컸던 닉슨 대통령 때 OMB가 EOP 내에 신설되면서 행정부의 조직·인사·예산 등을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됐다. 이는 미국 대통령의 경우에도 관료제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임기 내에 국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통령 주변으로 권한을 모으는 집권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관료 저항을 어떻게 극복할까

이른바 ‘청와대 정부’는 정당 책임 정부라는 현대 대의정부의 운영원리에는 맞지 않지만 제한된 임기 안에 국정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대통령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관료조직의 저항, 여당의 비협조, 의회관계의 비예측성, 여론의 비일관성 등 대통령이 재임 중 부닥치는 온갖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대통령 주변으로의 집권화는 대통령에게 어쩌면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책임총리와 책임장관을 세우고 여당과 함께 의회와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현실정치 관점에서 현실적이지 않고,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의 이해에 부합하지 않는다. 

트루먼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부통령에서 갑자기 대통령이 됐다. 문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갑자기 대통령이 됐다. 트루먼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1952년 대선은 공화당 후보였던 아이젠하워의 승리가 거의 확정적이었다. 자신의 후임자가 될 아이젠하워를 생각하며 트루먼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이젠하워가 이 자리에 앉게 되겠지. 그는 이렇게 말할 거야. 이걸 해라! 저걸 해라!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적폐청산을 들고 국민의 선택을 받았던 문 대통령도 청와대 안에서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이는 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공통된 고민이었다. 현실정치의 관점에서 청와대 정부는 바람직하지는 않더라도,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 

※‘헛도는 청와대’ 특집 연관기사

☞[헛도는 靑①] “문제는 김동연·장하성이 아니다”

☞[헛도는 靑②] “지금 청와대론 관료조직 장악 태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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