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일 금요일

영세중립국개념

 

영세중립국이란 개념이 확고해진 것은 1815년 빈 회의에서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의 나라가 스위스의 중립을 승인하는 조약을 맺음으로써였다. 조약의 내용은 스위스가 다른 나라를 적대시하는 동맹관계를 누구와도 맺지 않기로하며, 또 침략 전쟁을 하지 않기로 하는대신, 다른 나라들은 스위스의 독립과 중립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립보장은 강대국 사이에 긴 약소국의 안전 도모하며, 또 강대국 사이에 완충지대를 마련하여 세력 균형의 안정을 기한다는 데 목적이 있었다.

 1907년 헤이그 제2차 국제평화회의에A는 영세중립국의 권리(영토보전)와 의무(군사 원조나 지원금지 등)가 명확하게 구성되었다. 중립이 영세 또는 영구하다는 개념은 상황과 사건에 따라 중립이 흔들려서는 안되며 어느 때 어떤 경우에도 예외없이 중립이 지켜져야 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스위스의 경우 중립국은 진공 상태가 아니며 , 중립국은 충분한 자위력을 가져야 한다는 '무장된 중림'을 강조해왔으며, 48시간내에 동원이 가능한 예비군 병력 50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2차대전 때 히틀러가 tm위스를 침공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였겠으나 스위스의 이러한 자위 태세도 한가지요인이었을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19세기 중엽에 벨기에와 룩셈부르크가 각팍 1831년과 1869년 두차례 런던조약을 통해 영세 중립국가로 승인받았으나 벨기에는 1차대전 해 중립을 유린당한 후 중립 지위를 일었으며, 룩셈부르크는 1948년 베넬룩스 관세동맹이 생기면서 정식으로 중립을 포기했다.

 현재 중립국으로는 스위스 외에 오스트리아와 스웨덴이 있다. 스웨덴은 1차와 2차대전 동안 무장중립을 유지했다. 스웨덴의 중립은 독자적인 정책으로 추진되어왔으며외국과의 조약에 의한 것은 아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2차대전 후 득일에서 분리되어4대강국의 공동점령하에 있다가 1955년국권 회복과 동시에 4대국이 영세 중립을승인했다. 이것은 소련이 영세 중립을 조건으로 철군을 약속함으로써 이루어진 중립이나, 오스트리아가 스위스와 함께 유럽 중앙에 동서간의 완충지대를 형성했던것은 냉전시대에는 의의가 적지 않다는.평가도 받았다.

 스위스는 13세기 각 부족간의 동맹을 시작으로 중립이란 발상을 하게 되다가 점차 국제적 승인을 받게된 것으로, 벨기에나 룩셈부르크의 경우처럼 강대국들의 편의에 따라 중립의 지위가 주어진 것에 비하면 더욱 의의가 크다는 점을 자랑스럽게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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