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30일 토요일

[한국기행] 장성 축령산 휴양림

숲으로 된 성벽

장성 축령산 휴양림




숲에 나이가 있을 리 없다. 있다면 계절을 이기고 살아온 나무들이 제 안에 해마다 둥그런 나이테를 하나씩 더해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축령산 휴양림에 들면 '도대체 이 울창한 숲이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을까?' 지나온 시간이 궁금하다. 나이는 잘 정리된 시간이다.
장성 서삼면 모임리와 북일면 문임리 일대를 뒤덮고 있는 삼나무와 편백나무들, 울창함을 거뜬히 넘어 빽빽한 그 숲. 축령산 휴양림이 간직한 모습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비집고 길게 이어지는 황톳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숲은 점점 더 깊어진다. 그 깊이는 단지 사람이 걷고 있는 거리의 개념이 아니다. 그 숲에 머물고 있는 아주 오래된 시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깊이는 숲이 만들어내는 풋풋한 향기와 함께 사람의 코끝으로 전달돼 맑은 기운으로 몸 속에 차 오른다. 축령산 휴양림 삼나무 숲은 깊은 심호흡 한 번만으로도 그렇게 삶의 재충전을 시켜준다.

4월은 생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달이라고 했다. 바꿔 말하면 세상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달이 4월이라는 말일 것이다. 사람은 단지 그 아름다움을 눈으로 담고 덤으로 생의 기쁨을 느낄 뿐이다. 초록의 연한 새순과 천지로 피어나는 꽃사태가 그것을 증명한다. 온갖 생명들의 힘이 진동하는 4월인 것이다.
이 계절에 만나는 축령산의 나무들은 생의 아름다움을 더욱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높이 15m를 훌쩍 넘긴 나무들이 곧게 뻗어 단단한 성벽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하늘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손바닥만큼이나 작아져 걸려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우리가 거대한 아름다움으로 대하는 저 나무들도 처음에는 어린 묘목에 불과했을 것이다.

축령산의 나무들을, 그 울창한 숲을 이야기하자면 춘원 임종국 선생의 삶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축령산 휴양림이 간직한 지금의 생명력을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선생이다. 때문에 축령산의 나무 하나하나 속에는 선생의 삶이 아주 깊게 담겨있다. 벌거숭이 땅에 1956년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해 87년 다른 세상으로 가는 순간까지도 그 나무들만 생각했다는 사람. 선생은 자신의 땅도 아닌 국유지에 나무를 심고, 그 나무들이 곧게 자랄 수 있도록 했다. 가뭄에 말라가는 나무들을 살리기 위해 물지게를 지고 다니며 그 많은 나무에 일일이 물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을 떠날 때 그 나무들은 선생의 것이 아니었다. 나무 심는 일에 모든 가산을 내어주고도 그 일을 멈출 수 없었던 선생은 다 자란 나무를 담보로 빚을 얻어 계속 나무를 심었다. 결국 그 빚을 감당하지 못해 선생에게는 자식 같았던 그 나무들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다만 다행인 것은 그 숲이 영원히 보존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선생에게 그 숲을 넘겨받은 사람들도 차마 그 나무들을 목재로 팔아 넘기지 못하고 산림청에 건의해 보존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10여 명의 사람들이 나누어 가졌던 그 숲이 이제는 산림청의 소유다.

시간이 지나 삼나무와 편백나무는 하늘 가까이 자랐고, 선생에 의해 만들어진 90만 평의 인공 조림지는 우리나라 전체를 통 털어 가장 아름답다는 숲이 되었다. 이 모든 변화는 아주 천천히 일어났다. 어쩌면 항상 그 숲을 대했던 선생 자신마저도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나무가 자라는 속도만큼이나 아주 느리게 진행된 변화가 거대한 '숲으로 된 성벽' 만들어놓은 것이다.

무려 6km나 길게 이어지는 황톳길을 사이에 두고 숲은 계속된다.
영화 '태백산맥'에서 빨치산들의 퇴로로 이 숲이 등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영화의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숲의 아름다움이 그 첫 번째 이유고, 숲이 가진 단단한 성벽 같은 이미지가 도주하는 빨치산들의 절박함을 더욱 강하게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권택 감독의 고향이 장성인 것은 아주 작은 우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축령산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에 기대어 삶의 위안을 찾는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숲을 통해 얻은 만큼의 행복을 임종국 선생에게 빚지고 있는 셈이다.

교통-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장성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나온다. 24번 국도를 타고 황룡면 방면으로 직진한다. 고가도로를 넘어 100m 정도 가면 나오는 삼거리에서 계속 직진한다. 5분 정도 가면 축령산 휴양림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가 나오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계속 직진하면 축령산 휴양림에 닿는다.
먹을거리-장성읍에
풍미회관(061-393-7744)이 있다. 여러 가지 한약재를 넣어 삶아서 낸 국물에 유황오리와 녹두, 찹쌀을 넣고 만든 유황오리한방탕은 몸에 좋은 약이 될 것 같다. 불판 위에 참기름 두르고 구워먹는 훈제오리구이도 별미다.
주변관광지-필암서원, 금곡영화마을, 백양사, 죽림사, 장성호

정상철 기자 dreams@jeonla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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