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7일 금요일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비 잦아 지붕에 신경…경회루, 안에서 밖을 내다봐야 제맛 - 중앙일보

비 잦아 지붕에 신경…경회루, 안에서 밖을 내다봐야 제맛 - 중앙일보:

최초의 문명은 건조기후대에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3500년께 수메르 문명의 도시 우루크의 집들은 진흙 벽돌로 만들어서 벽을 세우고 그 위의 평평한 지붕을 올렸다. 비가 적게 내리니 지붕은 그다지 중요한 건축요소가 아니었다. 대신 벽은 영역을 구분하고 지붕을 받치고 있었기에 중요한 건축요소였다. 수메르의 건축기술이 북서쪽에 있는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비가 적게 내리는 밀농사 지역에서는 자연스럽게 벽돌이나 흙을 이용해서 벽 중심의 건축이 발달했다.

그러나 벽 중심의 수메르 건축양식이 동쪽으로 전파되었을 때는 그 기술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게 된다. 왜냐하면 극동아시아에서는 장마철에 집중호우가 내리기 때문이다. 집중호우가 내리면 땅이 물러지게 되어서 벽돌 같은 무거운 재료로 만든 벽은 옆으로 넘어가서 집이 무너질 수가 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일부 북쪽을 제외한 대부분의 벼농사를 짓는 지역에서는 건축 재료로 가벼운 재료인 목재를 사용해야 했다. 목재를 사용하게 되면 다 좋으나 물에 젖으면 썩어서 무너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땅과 만나는 부분에는 방수재료인 돌을 사용하여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나무기둥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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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 뚫린 개방감이 동양 건축의 정수 
 
그런데 기둥구조는 지붕을 받치기 위한 벽이 필요 없다. 그러다 보니 기둥과 기둥 사이는 뻥 뚫린 개방감을 가지기 쉽다. 비가 오더라도 처마가 길게 가려주어서 창문을 열어놓아도 비가 들이치지 않기 때문에 창문을 열고 바깥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처마 아래에는 툇마루를 만들어서 빗소리를 들으면서 앉아 있을 수도 있다. 동양에서는 건축공간의 내부와 외부가 명확하게 나뉘는 대신 내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감이 발달하게 됐다.
 
상상해보자. 오랜 옛날 더운 여름 장마철에 비가 오면 밖에 나가지 않고 방안에서 큰 창문을 활짝 열고 밖을 쳐다보았을 것이다. 동양은 안에서 밖을 보는 일이 일상이었고, 집에서 안과 밖의 관계가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 경관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건축물의 배치를 결정한다. 안에서 밖이 어떻게 보이느냐가 건축디자인에서 중요한 결정요인이 될 수밖에 없는 건축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풍수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주변이 보이기 때문에 건축에서 주변 상황과 주변 환경요소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건물의 뒤에는 산이 있어야 하고, 남쪽을 향해서 창이 열려야 하며, 남쪽에는 물이 흐르면 좋다. 뒤에 산이 있고 아래에 강이 있어야 비가 왔을 때 배수가 잘되고 그래야 나무기둥이 썩지 않고 집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주변과의 ‘관계’가 중요한 건축으로 발전한 것이다.
 
동양에서는 건축물이 자연을 바라보게 하는 프레임으로서 작동한다면 서양에서는 건축물 자체가 목적이 되는 건축이 된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존속되는 건축물이 적은 것이다. 잘 썩는 목재라는 재료 자체의 제약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건축물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동아시아에서는 피라미드나 하기아소피아 같은 거대한 매스를 가지는 건축물이 적다. 대신 건축물 안에서 바깥 경치를 구경하기에 좋은 건물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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