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7일 화요일

코로나19, 세계 경기를 덮치다 - 시사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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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정책 통한 위기 극복 쉽지 않아
상황이 장기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전 세계 경제가 '글로벌 공급망(value chain)'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상품을 만들려면 수많은 나라의 기업과 사람, 물자(원자재와 중간재) 등을 조밀하게 엮어야 한다. 아이폰을 사례로 들자면, 미국 애플 사가 설계한 뒤 그에 걸맞은 중간재를 상당수 국가들의 기업에서 수배한다. 이런 중간재들이 중국에서 조립되어 미국 등 다른 나라로 납품된다. 지구 차원에서 촘촘하게 구성된 원·하청 관계에 따라 수많은 사람과 물자가 국경을 넘나들어야 아이폰이라는 제품이 생산·판매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행병으로 국가 단위의 방역이 시행되면, 중간재나 원자재를 조달하기 어렵고, 노동력도 부족해지며(전염을 피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자가격리), 완성품을 수송하는 데도 곤란을 겪게 된다. 공급망을 새로이 구축하려 해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사이에 유행병이 새로운 지역으로 침범할 수도 있다.

코로나19가 확산 중인 한국·중국·일본·서남아시아 등은 제조업 부문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핵심적 지위를 점유하고 있다. 의류나 장난감 등 경공업 제품에서 스마트폰 같은 하이테크 제품까지 이 국가들의 기업이 참여하지 못하면 만들 수 없는 재화들이 무수하다. 특히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점유하는 비중은 지난 20년 동안 엄청나게 불어난 상태다.

스페인 경제학자인 알리시아 가르시아 에레로가 아시아금융협력협회(AFCA)에 제출(2월18일)한 논문(The impact of "Novel Coronavirus Pneumonia" on global value chain)에 따르면, 중국산 중간재의 공급망이 깨지면 "일본·한국·타이완·베트남 등이 대체할 중간재를 조달하기 어려워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한국을 포함한 중국 이외 나라의 기업들이 수출품 생산을 위해 수입하는 중간재 가운데 중국산의 비중이 2003년 24%에서 2018년에는 32%로 늘어났다. 주로 한국의 주력 업종인 전자제품, 자동차, 기계 부문의 중간재들이다. 중국의 공급망이 깨지면, 한국과 일본은 해외직접투자(FDI) 부문에서도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양국 기업들은 중국과 서남아시아에 현지 공장을 가동 중인데, 서남아시아 기업들은 중국으로부터 중간재를 수입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서는 중국과의 경제·외교 관계에 극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코로나19의 확산이 글로벌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이미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 당시처럼 국제공조 아래 기준금리 인하, 양적완화 등의 통화정책을 잇달아 입안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화정책의 한계는 명확하다. 선도적으로 기준금리를 내린 미국 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했다. "우리는 금리 인하가 감염률을 떨어뜨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금리를 내린다고 부서진 글로벌 공급망이 복원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연준의 조치가 경제에 의미 있는 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결국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잡힌 다음에야 금리 인하이라는 경기부양책이 유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는 '금융 문제'에서 발생한 사태가 아니다. 방역을 위한 강력한 국제공조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통화정책을 통한 위기 극복을 기대할 수 없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이번 위기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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