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4일 수요일

[신형철의 뉘앙스]신천지로 떠난 청년들 -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3042034005&code=990100 

신천지는 저 두 가지 기독교의 본질을 정확히 거꾸로 구현하고 있는 것 같다. 좋은 종교가 현재에 대한 어려운 질문을 제공할 때 나쁜 종교는 미래에 대한 쉬운 답을 제공한다. 신천지는 묵시록 문학 전통에 속하는 요한계시록의 환상적 이미지들을 일대일 번역이 가능한 암호로 취급하는 천진한 성서 해석학을 휘두르며 그렇게 한다. 덕분에 헬조선의 불안한 미래가 장밋빛 종말로 대체될 수 있었다. 또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144,000'이라는 숫자를, 구원이라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VIP 회원권의 장수로 치환하여 교인들에게 가슴 벅찬 소속감을 부여한다. 사회라는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기는커녕 내부에서 "서로 영광을 주고받으면서"(요한복음, 5:44) 특권의식을 향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가짜 미래의 유혹이 이 나라의 어떤 청년들을 사로잡았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거꾸로 말하면 이는 우리 사회가 그 청년들에게 그들이 합리적으로 상상하고 추구할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들을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다. 문화인류학자 백영경의 강연에서 나는 사회적 위기의 효과 중 하나는 그 위기를 통해 '언제나 이미' 위기 중에 있던 사람들의 존재가 비로소 드러난다는 데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공동체의 어떤 이들은 이미 '미래 없음'이라는 재난을 살아왔다. (그리고 그중의 일부는 신천지를 찾아 떠나버렸다.) 현재의 재난은 그 재난 속의 재난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재난을 극복한 뒤에 할 일은 계속 재난을 극복해 나가는 일일 것이다. 오랫동안 진행중이었던, 우리의 미래에 관한 재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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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3042034005&code=990100#csidx723aaf1ea58b3d983b2a1fcaf0c93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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