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8일 일요일

정만기 전 차관 “매년 20조 R&D 지원 밑빠진 독 물붓기” : 경제일반 : 경제 : 뉴스 : 한겨레

정만기 전 차관 “매년 20조 R&D 지원 밑빠진 독 물붓기” : 경제일반 : 경제 : 뉴스 : 한겨레:

페이스북트위터공유스크랩프린트크게 작게 산업부 실무경험 바탕 <한겨레> 인터뷰 정부 ‘탈일본 대책’ 발표 앞두고 소신발언 정부 R&D 예산지원 “생산성 너무 낮다” 정부가 공공연구소 과제 선정…시장성 낮아 연구예산 따주는 거간꾼·컨설팅 회사 즐비 “정부 직접지원 대신 기업세액공제 확대”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전 산업부 차관)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자동차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정부가 연구개발(R&D)에 매년 20조원의 예산을 지원하는데도 여전히 일본에 핵심 부품·소재를 의존하는 것은 연구개발 투자의 생산성이 낮아 ‘밑빠진 독에 물붓기’에 그치기 때문입니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정부가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핵심 소재·부품의 국산화 등 ‘탈일본’ 종합대책을 서두르는 것과 관련해 연구개발 지원방식을 개선해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개선방안으로 정부 직접 지원 방식 대신 기업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하고, 정부 지원금의 절반을 차지하는 출연연구소·국공립연구소를 민간과제 수행 중심으로 과감히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 회장은 산업부 차관 출신이다. 산업정책·통상·무역 업무를 두루 맡았고, 청와대 산업통상자원비서관도 지냈다. 그의 말에는 정부 연구개발 투자를 수행하는 주무부처 최고위급 인사의 솔직한 고백과 반성이 담겨 있어 주목된다. <한겨레>는 지난 24일 서울 서초동 자동차회관에서 그를 만났고, 26·27일 전화로 추가취재했다. -시장경제에서 연구개발은 기업 등 민간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연구개발에 예산을 지원하는 이유는? (2017년 기준 민간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는 59조원인데,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도 19조4천억원에 달한다) =연구개발 활동은 공공재적 성격을 갖는다. 한 기업이 연구개발에 성공하면 그 효과가 다른 기업으로 전파된다. 하지만 기업으로서는 투자를 해도 꼭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설령 성공해도 기술유출 등의 위험성도 있다. 이 때문에 연구개발은 사회적 필요 수준에 비해 항상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시장실패를 막기 위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가 부품·소재 국산화에 나선 것은 언제부터인가? =1970년대 전자·자동차·조선 등 조립가공 산업이 본격화하면서 국산화 필요성이 제기됐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이고, 1990년대부터 확대됐다. -길게는 50년, 짧게 봐도 40년 동안 정부 예산을 연구개발에 투입한 셈인데. =그동안 지원액을 모두 합하면 엄청난 규모일 것이다. 2013~2017년 5년 동안만 91조9천억원에 달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막대한 지원이 이뤄졌는데도 핵심 소재·부품을 여전히 일본에 의존하는 이유는? =한국의 지디피(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은 세계 1위다. (2017년 기준 4.6%로 일본 3.2%, 독일 3%, 미국 2.8%보다 높다) 절대 규모에서도 세계 5위다. 하지만 질적 수준은 그렇지 못하다. 연구개발의 생산성이 떨어진다. 예산을 쏟아붓지만, 실질적인 연구개발을 못하고, 구체적인 시장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다. -연구개발 생산성을 보여주는 지표는 우수한데? =정부 연구과제 성공률이 무려 98%에 달하지만, 믿을 수 없는 수치다. 실제 사업화까지 성공해야 진짜다. 연구개발 투자의 생산성이 높다면 왜 지금까지 일본에 의존하는가? 기술무역수지(기술수출액-기술수입액)도 매년 50억~60억달러 적자 신세다. -생산성이 낮은 이유는? =예산 가운데 절반가량은 정부출연연구소와 국공립연구소에 지원된다. 이들 기관의 연구과제 중 95%는 정부가 결정한다. 기업에서 위탁받는 과제는 5%에 불과하다. 정부 연구과제는 기업 과제보다 시장성이 떨어진다. 정부가 과제선정을 위해 이들 기관과 사전협의하는 과정에서도, 기업의 필요보다 연구자의 ‘입맛’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대학(정부 예산의 22% 차지)의 사정도 차이가 없다. -선진국은 어떤가? =독일이 제조업 강국이 된 데는 프라운호퍼연구소의 공이 크다. 프라운호퍼는 유럽 내 응용연구분야를 선도하며 국책연구기관의 모범으로 불리는데, 예산 배정과 관련해 중요한 원칙이 있다. 예산의 3분의 1은 기업이 맡긴 위탁과제에서 나온다. 이 위탁과제를 따내야만 연구소가 연구과제를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는 3분의 1의 예산이 추가 배정된다. 따라서 프라운호퍼의 최대 관심은 기업 위탁과제를 따내는 것이다. 기업 연구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한다.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화가 가능해야 한다. -정부가 연구과제를 수행할 연구자를 제대로 선정하면 도움이 될텐데? =연구자 선정을 위해 3만명이 넘는 평가위원 풀이 운영된다. 최종 평가위원은 보통 평가일 1~2일 전에 확정된다. 지원자와의 유착비리를 차단하기 위한 것인데,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자료를 제대로 검토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또 평가위원이 무작위로 선정되다보니 전문성이 떨어진다. 전기전자분야 평가위원만 4600명이다. 같은 전기전자라고 해도 세부 전문분야는 매우 다양하지 않나. 이렇다 보니 연구 능력보다 발표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심지어 정부 공모에 제출할 발표자료를 만들어주거나, 연구예산을 따내도록 도와주는 컨설팅회사, 거간꾼 회사도 많다. -감사원은 뭐하나? =감사원이 오히려 문제다. 감사원은 연구 결과보다 연구비 유용과 규정 준수 여부 등 연구과정의 합법성을 중점적으로 살핀다. 그러다보니 연구원들은 증빙서류 구비와 서류작성에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과제 보고서가 1천페이지, 2천페이지에 달하기도 한다. 최종평가 전에 중간평가도 받는다. 실제 연구 성과보다 서류작업만 번지르르한 셈이다. 오죽하면 연구자들이 “제발 연구 좀 하게 해달라”고 하소연하겠나? -정부 연구개발 예산 가운데 4분의 1 정도는 기업에 지원되는데. =기업 지원의 대부분은 중소·중견기업에 몰아준다. 이것은 일종의 ‘포퓰리즘’이다. 중소기업 위주로 지원하다 보니 중요한 대형 국책과제, 중장기과제는 제외된다. 대신 보다 많은 수의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예산이 잘게 쪼개진다. 실제 중소기업이 신청하면 대부분 지원이 이뤄진다. 일종의 ‘나눠먹기’ 식이다. 일부는 연구는 형식적으로 하고, 회사 운영비로 쓴다는 얘기도 있다. -대기업은 자력으로 연구개발을 할 수있지 않나?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싶으면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한다. 연구개발 지원은 사회복지정책이 아니다. 또 대기업의 연구개발도 글로벌 경쟁기업에 비하면 부족하다. 현대차의 경우 2018년 연구개발 투자가 40억달러다. 하지만 일본 도요타는 95억달러, 독일 폭스바겐은 160억달러로 2.4~4배에 달한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도 현대차는 2.9%인데, 도요타는 3.5%, 폭스바겐은 5.8%로 더 높다. -연구개발 투자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은?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에 세액공제를 해주면 된다. 이렇게 하면 연구과제나 연구팀을 선정할 때 발생하는 각종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 연구과제 선정과 연구보고서 작성에 시간을 낭비하는 일도 사라진다. 기업은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 실제 연구개발을 했다는 것만 입증하면 된다. -지금도 세액공제는 시행 중인데. =혜택이 너무 작다. 세액공제 한도가 투자액의 최대 2%(대기업 기준)다. 반면 호주 38.5%, 프랑스 30%, 일본 14%로, 한국의 7~19배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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