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5일 금요일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22>사도 바울의 예수예수에서 그리스도로

도올 김용옥 제29호 20070930 입력

이 사진은 예수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인 바로 그 장소에 세워진 교회의 내부를 찍은 것이다.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신도들이 항상 이와 같이 예배를 드린다. 내가 1970년대에 갔을 때만 해도 이런 거대한 석축 교회가 없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작은 천막교회가 외롭게 서 있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점점 우리를 역사적 예수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내가 70년대 느꼈던 예수는 갈릴리 풍진 속의 고독한 예수였다. 오른쪽 위 작은 사진은 이 교회의 앞쪽 제단 부분. [사진=임진권 기자]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는 현존하고 있는 ‘나’와 같이 시공의 인과성의 모든 제약을 받는 존재이다. 평범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33세쯤에 물리적 죽음을 맞이한, DNA 검출이 가능한 역사적 존재이다. 이 역사적 존재와 복음서에 기술되고 있는, 갈릴리 지평에 등장한 사건의 주체로서의 존재를 상응시키는 어떤 관계를 확정한다는 것은 매우 난감한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무심코 혼동하여 쓰지만 예수와 그리스도는 전혀 별개의 차원에 속한다. 예수는 ‘도올 김용옥’과도 같은 역사적 인간을 지칭하는 말이다. 예수는 역사적 실존인물의 이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역사적 실존인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메시아로서 사도들의 신앙 속에서 고백되어지는 대상이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예수교’와 ‘기독교’도 다른 개념이다.

요단강은 갈릴리 바다와 사해를 연결하는 강이다. 그런데 이 강은 지금 이스라엘과 요르단을 가르는 국경선이 되어 있다. 그래서 꼭 우리나라 임진강 같은 느낌이 난다. 갈릴리 바다(호수) 바로 아래쪽에 요단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Jordan Naharayim)가 하나 있다. 요단강을 찍을 수 있는 드문 곳이래서 그곳에 내렸는데 광풍이 휘몰아쳤다. 예수가 다닌 곳은 이토록 바람이 세게 부는 거친 들판이었다.

‘교(敎)’라는 것은 ‘가르침’이다. 그러니까 예수교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예수라는 사람의 가르침(Teachings of Jesus)이다. 나사렛에서 태어나 목수 일을 했고 갈릴리 지역에서 군중을 휘몰고 다니면서 천국의 도래와 같은 어떤 메시지를 전했던 사람의 가르침이 바로 예수교이다. 그러니까 예수교는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그리스도교)는, 이미 역사적 예수와는 무관하게, 역사적으로 실존했다고 상정되는 그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고 하는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뭉쳐진 사도들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것이다.

예수가 죽은 것이 AD 30년경이고 최초의 복음서가 작성된 것이 AD 70년경이라고 한다면 이 40년간의 공백기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예수교가 기독교로 전환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 변화는 매우 창조적인,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력들이 충돌을 일으키고 또 조정되어 간 과정이었다.

예수교의 직접경전이 있는가? 다시 말해서 역사적 예수가 살았을 당시 그의 가르침을 적어놓은 기록이 있는가? 단언컨대 이러한 기록은 없다. 예수는 행위자이지 이론가가 아니다. 실천가이지 웅변가가 아니다. 당대의 로마 철학자 키케로처럼 유려한 문장을 쓴 사람도 아니다. 더구나 그를 따르던 사람은 베드로가 상징하듯이 어부 수준의 사람들이거나 초라한 여인들이었으며, 대부분이 문맹이었다. 따라서 그의 가르침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의미가 없었다. 예수의 삶의 목적은 인간의 구원이었지 교단의 형성이 아니었던 것이다. ‘교단의 형성’에 관한 모든 움직임은 예수교의 운동이 아니라 기독교의 운동이다.

그렇다면 AD 30년과 AD 70년 사이에 일체의 문헌이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 질문에 가장 결정적인 답을 주는 것이 바울 서한이다. 사도 바울(Paul the Apostle)은 어찌 되었든 역사적인 실존성이 확실시되는 인물이며, 초기 기독교공동체 형성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상가였다. 이 사도 바울은 소아시아·그리스 지역에서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하면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 비슷한 기독교 거점들을 만들었고, 그 교회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사상가로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유려한 희랍어 편지를 써서 보냈던 것이다. 이 편지들을 ‘바울 서한’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 서한들이 현재 기독교 정경의 최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때 중요한 사실은 역사적으로 ‘바울 서한’이 ‘4복음서’보다 더 빨리 집필된 문헌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신약성서는 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 사도행전·로마서·고린도 전·후서…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지만, 로마서·고린도서가 앞에 있는 4복음서보다 더 앞선 문헌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울의 서한 속에는 역사적 예수에 관한 언급이 일절 없다는 사실이다. 바울의 의식과 문장세계 속에는 나사렛 예수도, 갈릴리 군중도,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는 예루살렘의 예수도 없다. 예수의 제자들이나 주변인물이나 가족사항에 관한 일체의 구체적 언급이 없다. 바울의 예수는 다메섹(다마스쿠스)으로 가는 노상에서 계시된 예수일 뿐이다. 그 계시된 예수(Revealed Jesus)는 오직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예수(Resurrected Jesus)일 뿐이다. 그의 계시 속에 부활한 예수는 추상적 예수(Abstract Jesus)이며, 추상적 예수인 만큼 이론적 예수(Theoretical Jesus)였다. 바울에게는 추상과 이론이야말로 리얼한 것이었으며, 밥 먹고 똥 싸는 구질구질한 나사렛 촌동네의 인간 예수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서한문 전체가 초기기독교 교단 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론적 노력이다. 그 핵심은 ‘예수의 부활’인 동시에 예수를 그리스도로서 신봉하는 모든 사람들의 부활이다. 그 부활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그 부활사상의 핵심에 바로 그가 말하는‘하나님의 의(義)(the righteousness of God)’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미 바울은 예수교를 설(說)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설한 것이다. 그러니까 유감스럽게도 역사적 성격이 확실한 바울 서한을 통해서도 우리는 역사적 예수를 발견할 길이 없는 것이다.

최근 바울 서한 속에 역사적 예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사실에 착안하여 티머시 프레케(Timothy Freke)와 피터 갠디(Peter Gandy)는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the Jesus Mysteries Thesis)’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들의 가설에 의하면 예수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이집트·지중해연안·근동지역에 광범하게 유포되어 있었던 미스테리아 비교(秘敎)의 신화적 운동의 유대인적 버전 속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신인(godman)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는 역사적 실체가 아니라 신화운동의 한 가상적 주체이다. 이 가상적 주체야말로 우리 자신이 모두 그리스도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신화적 운동의 주체라는 것이다. 그것이 곧 미스테리아 비교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신화들의 골자를 간추려내면 곧 예수의 신화적 삶이 구성된다는 것이다.

1.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육화(肉化)된 신이며, 구세주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다.

2.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며, 어머니는 인간 동정녀이다.

3. 그는 3명의 양치기가 찾아오기 전, 12월 25일 동굴이나 허름한 외양간에서 태어난다.

4. 그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세례의식을 통하여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5. 그는 결혼식장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이적을 행한다.

6. 그가 나귀를 타고 읍내로 의기양양하게 입성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그를 찬양한다.

7. 그는 세상의 죄를 대속하여 부활절 무렵에 죽는다.

8. 죽은 직후에는 지옥으로 떨어졌다가 사흘 후에는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 광영 속에 하늘로 올라간다.

9. 그를 따르는 자들은 그가 최후심판의 날에 심판관으로서 되돌아오기를 기다린다.

10.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 의식으로써 기념된다.

이것은 예수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의 삶과 공통된 이집트·근동지역 신화의 매우 보편적인 설화양식이다. 따라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이야기의 골격은 당대에 유행하고 있었던 흔해빠진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복음서 기자들이 추상적 인물을 가지고도 마치 그것이 역사적 실존인물이었던 것처럼 기술함으로써 민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문화적 토양이 팽배해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예수는 픽션이라는 것이다. 픽션이 아니라도 전혀 그 실체를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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