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5일 금요일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18> 프로이트와 융나는 신화를 창조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도올 김용옥 제25호 20070901 입력

우리가 어렸을 때는 기차간이나 버스간에서도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내놓고 먹이고 있는 광경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 초기 콥틱 기독교 성화에서도 마리아는 예수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마리아의 유방이 강조되어 나타난다. 못 찍게 하는 것을 어렵게 촬영했다(오른쪽·카이로 콥틱 박물관 소장). 그런데 이집트 전통에서는 호루스에게 아버지 오시리스가 젖을 먹이기도 하고 어머니 이시스가 젖을 먹이기도 한다(왼쪽·아비도스 신전 벽화). 호루스-이시스와 예수-마리아는 동일한 아키타입을 나타낸다. 같은 신화전통 속에서 이해되었던 것이다. [임진권 기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해석기하학의 창시자이며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르네 데카르트(RenDescartes, 1596~1650)의 명언이다. 나의 존재를 확보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때 “생각한다”는 것은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수학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존재의 주체가 곧 이성(Reason)인 것이다. 근대적 인간은 바로 이러한 이성을 주체로 하는 인간이다. 그러니까 근대적 인간(Modern Man)은 이성적 인간(Rational Man)이다.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인간은 근대적 인간이 아니다. 이러한 이성의 선험적 과학주의가 인류의 근대를 지배해온 것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이러한 이성주의적 노력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엄연한 역사적 과제상황이다.

그런데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과학주의 신화가 깨지기 시작한다. 이성의 지나친 독재에 항의하는 많은 이론들이 생겨났다. 인간이 과연 이성주의적 합리성의 틀 속에서만 규정될 수 있는 존재인가? 과연 인간은 이성적으로만 살아야 할까? 이성적으로 살 때만이 행복하단 말인가? 이러한 이성주의적 세계관에 가장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한 사상가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를 들 수 있다. 그의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나는 꼴린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인간존재의 주체를 이성으로 파악한 데 반하여, 프로이트는 인간존재의 주체를 “꼴림”으로 파악한다. 나는 이성적이기 때문에 인간이 아니라, 꼴리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것이다. 꼴림이라는 성적 에너지야말로 나의 존재의 주체적 실상이라는 것이다. 이성주의적 에고(Ego)의 가려진 근원에는 광대한 비이성주의적 “꼴림”의 바다가 있다는 것이다. 이 무의식의 바다를 그는 이드(Id)라고 불렀고, 이드야말로 인격의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뿌리이며, 이 뿌리로부터 현실감각(reality principle)을 지닌 에고와 도덕적 가치관(morality principle)을 지닌 수퍼에고가 분화된다고 보았다. 이드를 지배하는 본능적 충동을 그는 대체적으로 성적 에너지로 파악하였고, 이 성적 에너지를 리비도(libido)라고 불렀다. 이 리비도의 억압의 역사가 문명의 역사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정신분석학은 억압된 리비도의 해방, 즉 성적 억압을 빙자한 모든 윤리적 질곡에서 인간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20세기적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이러한 해방론의 메시지는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의하여 마르크스의 유물주의적 해방론과 결합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인간의 문명의 성취를 “꼴림의 승화(sublimation)” 현상으로 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성적 에너지를 부정적이고 파괴적으로 바라본다.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예술적 성취가 결국 그의 “꼴림”의 에너지의 고상한 전위 형태라는 것이다. 이러한 범색론(汎色論, pan-sexualism)은 그럴듯하면서도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남는다. 그렇다면, 위대한 예술가는 다 위대한 색골이어야 하는가?

파바우 수도원 본부에서 나귀 타고 동네 아이들과 활짝 웃고 있는 도올. 이곳 도서관에 도마복음서가 소장되어 있었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범색론에 새로운 인간관을 제시한 매우 창조적인 심리학자가 카를 구스타프 융이다. 프로이트는 그의 클리닉에 찾아오는 뉴로시스 환자들의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국부적인 의료심리학에 주력했지만, 융은 건강한 인간의 총체적 심리의 이해를 도모한 순수이론심리학을 건설하려 했다. 프로이트는 그가 산 시대의 문제에 충실하려 했지만, 융은 시대성과 무관한 보편적 인간학을 정립하려 했다. 융이 프로이트를 만났을 때 이미 융은 6년에 걸친 독자적인 정신분석의 연구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융의 학설을 프로이트에 대한 반동으로서 이해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프로이트가 유대인인 데 반하여, 융은 유대인이 아니다. 융은 프로이디안이 되기 이전에 이미 독자적 인간관을 성숙시키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에 있어서 인격의 분열을 주안점으로 삼았지만, 융은 인격의 조화를 주안점으로 삼았다. 프로이트가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라면, 융은 긍정적이고 건설적이다. 융의 학설의 핵심은 무엇인가? “나는 신화를 창조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 create myth, therefore I am).”

“나는 꼴린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은 우리의 사타구니에서 항시 경험되는 사태이므로 이해가 매우 쉽다. 그러나 “신화를 창조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은 매우 우회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말하는 이드적 세계의 더 밑바닥에, 불교 유식(唯識)에서 말하는 아라야식보다도 더 근원에 “신화를 창조하는 의식의 기층(the myth-creating substratum of the mind)”이 있다고 융은 보는 것이다. 이 신화창조의 의식의 기층을 융은 집단무의식(the collective unconscious)이라고 불렀다. 나는 신화를 창조하기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의 존재성은 “신화를 창조함”에 의하여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1906년 어느 날 융이 병원 복도를 거닐고 있는데 과대망상증에 걸린 정신분열증 환자(a paranoid schizophrenic)가 그를 창가로 데리고 갔다. 그러더니 그는 실눈을 치켜뜨면서 태양을 가리켰다. 그러면서 자기처럼 실눈을 뜨고 태양을 잘 지켜보면 “태양의 거대한 자지(the phallus of the sun)” 가 보일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머리를 좌우로 천천히 흔들었다. 자기의 머리가 흔들리는데 따라 태양의 자지도 동으로 서로 흔들린다는 것이다. 그 움직임에 따라 세상의 “바람”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몇 년 후 융은 미트라스 컬트(the cult of Mithras)의 찬송으로 간주되는 희랍어 고문서를 소개하는 알브레히트 디터리히(Albrecht Dieterich)의 저서를 읽게 된다. 미트라스는 원래 조로아스터교 이전부터 존재했던 이란의 토착신이었다.

그러나 로마시대의 미트라스 종교(Mithraism)는 기독교와 혼동될 정도로 유사한 성격을 많이 지니고 있었고, 이미 플라톤의 데미우르고스 사상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인 콤모두스 황제 시대 때 로마병사들 사이에서 극성했던 종교였다. 융은 그 희랍어 고문서 텍스트에서 정신분열증 환자가 이야기한 것과 동일한 내용의 언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환자가 지껄였을 때는 이 책은 출판되지도 않았고, 그 환자는 계속 병원에 갇혀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 환자가 그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도 확실했다.

융은 정신분열증 환자를 단순하게 비정상인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 환자의 신화의 체계가 우리의 신화 체계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신화 체계는 오히려 미트라스 종교를 만들어냈던 사람들의 신화 체계와 동일했던 것이다. 그것은 어떤 특수한 문화유형론으로 설명되어서는 아니된다. 그 신화는 어떤 보편적 인간의 의식구조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신화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이 바로 이제 우리가 영지주의 문서라고 애매하게 불러왔던 나그함마디 코우덱스의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 이론적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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