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6일 토요일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 <34> 스토익과 그노스틱종교란 하늘과 땅 사이의 도랑을 메우려는 노력

도올 김용옥 제41호 20071223 입력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거느리고 수르 광야에 도착했을 때 마라의 쓴 샘물을 단물로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27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다: “그들은 샘이 열두 개 있고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 서 있는 엘림에 이르러 거기 물가에 진을 쳤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엘림이다. [임진권 기자]

아침에 눈을 뜨니
칠흑 같은 어둠에 가려
태양이 빛을 잃고
손가락마저 까딱할 수 없는
비곗덩어리는 혼불이 스러져
하데스의 동토처럼 얼어붙었도다.
선지자의 지혜도
예언자의 포효도 사라져 버린
어둠의 황야에서
귀에 걸린 금고리를 떼어내어 만든
수송아지 걸머메고
거짓말과 은폐와 권세의 탐욕에
지글지글 타오르는 삼겹살들이
혼음의 광무를 추네
상인방 유월절 피로
파라오의 맏아들을 쳐죽이고
모세의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고
만나와 마라의 단물로 먹여주고
호렙의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해주었건만
출애굽 해방의 결말이
고작 이런 광란이었더냐
난무의 무리들을 쳐죽일
야훼의 경판도 여기는 없다
승리의 노래도
패배의 곡성도 없다
지루한 진위의 공방 끝에
얻은 사실은 오직 허위 허상 허언
죽는 날까지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구가한 명동의 시인도
칼아 칼아 너를 위하여 우노라 한
단재의 싸늘한 주검도
허접스러운 세진(世塵)에 파묻히고 마는구나
가련다 가련다 나는
붓을 자르고 가련다
금송아지 예배하고 제물 드리는
그 함성을 멀리하고
역사를 역사에 묻어버리고
용담의 푸른 물가로
나는 가련다
거짓을 일삼는 췌론을 찬양하고
더러운 기름이 콸콸 쏟아지는
그 역사를 거짓 땜방으로 모면하려는
무리들이여
천심에 못 미친 민심을 믿고
계속 광란의 춤을 추시게
허나 제발 운하만은 뚫지 마소
인걸은 간데없으나 산천은 의구타 한
길재의 감회만은 남겨두오
스스로 국토를 농단하여
몽고의 말발굽보다
일제 강도의 칼날보다 더 끔찍한
유린만은 일삼지 말아주오
그리하면 도올은 침묵의 혼이나 되오리다
그리하지 않는다면 인당수에 풍덩
심청의 단심보다 더 붉은
환경 동지들의 주검을
저 푸른 한강에 던지고
그대 토목의 깃발을 휘날릴지니
결사의 항전이 있을 뿐
이 민족의 선택 앞에
단재의 서슬 퍼런 칼날에조차
버힐 수 없는 나
도올을 위해 우노라
호곡하노라
시일야 우(又)방성대곡!

도마복음에 들어가기 전 사해문서와 아람어, 구약학의 석학인 피터 플린트 교수와의 대담을 흘려버리기 아까워 여기 소개한다(Peter Flint, Ph.D., Trinity Western University).

-구약학의 세계적인 석학인 그대에게 묻겠다. 도대체 구약이란 게 무엇이냐?

사해문서, 아람어, 근동문명, 제2 성전시대 유대교의 연구를 깊게 한 석학 피터 플린트 교수는 사해사본 DJD 시리즈 중 25개 이상의 편집을 맡고 있으며 현재 이사야 사본을 편집하고 있다. 나는 15일 롯데호텔 35층에서 그와 아침 식사를 하며 대담했다. 그는 곧 출국했다. 나와의 해후 기간에 울먹일 정도로 매우 정감이 깊은 사람이었다.

“구약이란 기독교인들이 신약의 배경으로서 이해하기 이전에 이미 독자적으로 존재한 유대교의 경전이다. 물론 유대인들은 그것을 구약(옛 약속)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구약을 하나의 고정된 실체로 파악하는데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유대교의 경전’이라는 말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다. 예수의 시대에도 유대교라는 고정된 교리가 있지 않았다. 예수가 바리새인을 비판했다면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는 율법(토라)의 해석을 비판했을 뿐이다. 모두 개별화된 운동이었다. 경전(바이블)도 고착된 것이 아니었다. 쿰란 사해문서의 출현은 예수 시대에 바이블이 아직도 형성 중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다양한 경전의 다양한 판본이 다 바이블로서 받아들여졌다. 그중 메인 스트림이 나중에 마소라텍스트로 발전한 것이다.”

-구약은 언제 쓰였나?

“구약을 태고적에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쓰인 것이라고 믿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구약의 대부분이 히브리어 문헌으로서 기록된 것은 바빌론유치 시대 이후, 그러니까 대강 BC 516년 이후의 사건이다(고레스 칙령은 BC 538년). 그만큼 바빌론유치는 그들에게 민족 아이덴티티를 각성시켰고, 고등한 문명들과 접촉하는 기회를 제공했으며, 특별히 역사의식을 고취시켰다. 그러나 신화적 상상력이 풍부한 유대인들에게는 역사란 문학이었다. 그들의 역사는 사실이기에 앞서 문학이었다. 그런데 문학적 상상력은 국가나 민족의 한계를 초월한다. 예루살렘 성전(Second Temple)을 재건한 스룹바벨(Zerubbabel, 스 2:2, 마 1:12)만 보아도 그 이름은 ‘바빌론의 후손’이라는 뜻이다. 그 자신이 완전히 바빌론화된 인간이었다.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이야기는 완벽하게 바빌론의 신화를 각색한 것이다. 그것은 유대인의 창안이 아니다. 그 신화의 원형을 정확하게 바빌론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신화의 주인공인 마르둑(렘 50:2)을 야훼로 갈아 끼운 것뿐이다. 예를 들면 보리수 밑에 앉아 있는 싯다르타 대신 한국인의 조상인 단군을 갈아 끼우고 그 신화를 다 계승하면 단군불교가 탄생할 것이다.”

- 그런 얘기를 한국에서 하면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다.

“성서를 역사와 문학으로부터 분리시키면 그것은 성서가 아닌 교조일 뿐이다. 크리스마스트리나 부활절 달걀은 성서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방인의 생산성 숭배(fertility cult)를 교회가 수용한 것이다. 남아프리카의 줄루(Zulu)족 교회에 가면 하나님을 운쿨루 쿨루(Unkhuluh Kulu)라고 부른다.”

-쿰란 공동체는 지독하게 종말론적이었다.

“그 빛과 어둠이라는 아이디어도 자라투스트라가 창시한 조로아스터교의 개념이다. 쿰란에 속한 사람은 빛의 자녀고 속하지 않은 다른 유대인이나 이방인은 어둠의 자녀라는 이원론적 생각이 종말론적 발상을 가능케 한 것이다. 빛과 어둠의 이원론적 우주론은 본시 유대교의 발상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러한 쿰란에서 드러나는 조로아스터교의 사상이 요한복음의 빛·어둠에까지 계승되고 있다. 그것은 나그함마디 영지주의 이전의 계보에 속한다.”

- 그러나 요한의 로고스 사상은 조로아스터교와는 다르다.

“요한복음의 로고스는 스토아학파의 영향이다. 로고스가 신이라는 빛의 파편으로서 이성의 형태로 인간에게 육화되었다는 생각은 단순화된 이원론을 거부하는 위대한 사상이다. 영지주의는 이 육화를 인정하지 않고 이 세계를 단지 데미우르고스(Demiurge)의 타락한 창조로 보기 때문에 부정의 대상으로만 간주한다. 육화는 이 세계의 긍정이다. 영지주의는 이 세계를 거부한다는 맥락에서 반(反)에콜로지 사상이다.”

-당신의 영지주의 개념은 너무 나이브하다. 그러나 당신과 논쟁할 시간이 없다. 예수는 묵시론적 사상가였는가?

“역사적 예수를 말하는 학자들은 예수의 신성을 거부하기 때문에 묵시담론을 거부한다. 그러나 예수의 자기이해 속에는 ‘신의 아들’이라는 의식과 ‘종말로서의 십자가’가 반드시 내포된다. 나의 죽음으로서 타인의 카르마(業)가 완벽하게 해소될 수 있다는 구원의 사상이 예수의 묵시론이었고 혁명관이었다. 예수에게는 유대교의 예언자, 랍비 스승, 정치해방론자, 메시아의 이미지가 겹친다. 어느 한 면을 배제할 수는 없다.”

-지혜담론으로써만 예수를 말할 수는 없는가?

“그런 예수는 우리 구원의 주체로서의 예수가 될 수 없다. 예수가 라오쯔(老子)일 수는 없다. 예수의 신성을 인정해야 한다.”

-예수의 신성을 100% 인정한다면 인간이 곧 신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그건 곤란하다. 우리는 죄가 있고 예수는 죄가 없다.”

-당신은 생각보다 보수적이다. 종교란 도대체 무엇인가?

“땅과 하늘의 갭을 메우려는 노력이다. 그 사이에는 넘기 어려운 홍구(鴻溝)가 있다. 그 도랑을 불교도들은 대각(大覺)을 통해, 유교도들은 인의(仁義)를 통해 넘는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오직 예수만을 통해 넘는다.”

-하늘과 땅을 대적적으로 설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의 심오한 고견을 더 듣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 유감이다. 내년에 다시 와서 더 깊은 논쟁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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