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6일 토요일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 <26> 복음서 속에 나타나는 다른 예수들Q자료의 발견

도올 김용옥 제33호 20071027 입력

갈릴리 바다는 바다가 아니라 완벽한 내륙 호수이다. 남북 21㎞, 둘레가 55㎞, 해수면보다 209m낮다. 비교적 강우량이 적은 아열대지역에 있는 기적적인 거대 호수이기 때문에 바다라고 부르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보통 킨네렛 호수(Lake Kinneret)라고 부른다. 상부 고원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수량이 흘러들어와서 형성된 것인데, 이스라엘의 식수원으로 쓰인다. 상부에서 물을 많이 퍼 쓰면 호수는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리고 주변의 도시 때문에 오염도 심해져 가고 있다. 역사적 예수는 이 갈릴리 바다의 북부 해안지역을 중심거점으로 활동했다. 12제자도 가롯 유다를 빼놓고는 다 이 지역 출신이다. [임진권 기자]

요세푸스와 같은 예수 당대의 역사가의 증언 속에서도 역사적 예수의 실상(實相)을 발견하기 어렵다면 과연 역사적 예수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일차적으로 복음서라는 위대한 예수의 전기문학 속으로 우리의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기독교가 오늘의 기독교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위대한 결단 중의 하나가 바로 동일한 인물에 대한 다른 전기문학을 4개나 한자리에 동일한 자격을 지니는 경전으로서 병렬시켰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정경 편찬자들의 위대한 결단이자, 초대교회를 만들어온 거대한 지식인들의 축적된 노력의 자연스러운 결실이기도 하다.

예수의 고향 나사렛에 있는 수태고지교회 마당의 회랑에 걸려 있는 아기 예수와 성모의 모자이크상. 마리아와 예수가 한복을 입고 있다. 이와 같이 예수의 모습은 한국인에게는 한국적 인식구조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꽃 장식도 무궁화. “평화의 모후여 하례하나이다”라는 표현도 격조가 있다.

그러나 예수에 대한 4개의 전기문학은 예리한 문헌학의 관점에서 고찰하면 심하게 충돌을 일으킨다. 다시 말해서 마태복음의 예수와, 마가복음의 예수와, 누가복음의 예수와, 요한복음의 예수가 서로 전혀 다른 것이다. 전혀 별개의 다른 인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르다. 물론 사도바울의 서한 속의 예수도 전혀 다른 예수일 수 있다. 그런데 보통 교회를 나가는 기독교인들은 신약성서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신약성서의 각 편이 어떠한 예수를 진술하고 있든지 간에 그들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예수는 그 모든 것이 두루뭉술 하나로 짬뽕된 예수인 것이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수많은 이적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전을 뒤엎으사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어 하늘에 오르신 그 단 하나의 예수! 오직 하나이신 그 예수만의 연역적 전제하에서 모든 예수에 관한 정보가 자연스럽게 융합되는 것이다. 매우 편리한 발상구조이긴 하지만 문헌의 엄밀성을 추구하는 신학도들의 정신세계 속에서는 그러한 안일한 신앙체계가 허용될 수 없었다.



대체로 가톨릭 전통에서는 성서만을 유일한 절대권위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 이후에 발전된 사도나 성자들의 언행을 성서와 동일한 자격을 지니는 신앙전통으로 받아들이거나, 또 교황의 무오류성을 인정할 만큼 성서외적인 권위도 인정해왔기 때문에 암암리 다양한 이방종교 전통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따라서 역사적 예수의 연구에 대한 필요성을 그다지 통감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의 사상가들은 그러한 가톨릭 전통의 오염성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리고 순결한 성서주의를 표방하기에 이르렀다. 성서주의의 순결성은 필연적으로 역사적 예수의 순결한 모습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 노력은 어떻게 불일치하는 4복음서의 기술을 정직하게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초점이 맞추어지게 마련이다.

가장 먼저 제기된 문제는 4복음서 중에서 어느 복음서가 가장 먼저 쓰여졌느냐 하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태복음이 제일 앞머리에 편찬되어 있기도 하지만, 신앙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마태복음의 종합점수가 매우 높기 때문에 당연히 마태복음이 먼저 쓰여졌을 것이라고 상식적으로 전제했다. 그러나 근세에 발전된 고등문헌비평학의 성과는 4복음서 중에서 가장 앞선 것은 마가복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마가복음이 집필된 시기는 AD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즉 유대인의 민족집단으로서의 세계사적 아이덴티티가 붕괴된 시점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최초로 AD 70년 전후로 집필된 마가복음! 이제 이 전제는 성서신학의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마가복음이 제일 먼저 쓰여졌다고 하는 사실은 아주 원초적으로는 요한복음과 나머지 3복음서가 워낙 다른 성격의 복음서라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즉 요한복음을 제외하면 마태, 마가, 누가 3복음서의 관점과 자료가 공통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태, 마가, 누가는 서로 관점(觀)이 공유(共)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 synoptic Gospels)라고 부른다. 즉 공관복음서라는 개념에는 요한복음이 들어가지 않는다. 공관복음서 중에서 마가복음이 시대적으로 제일 앞선다는 이야기는 곧 나머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마가복음을 공통된 원초자료로 활용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마태와 누가는 기존하는 책인 마가복음을 책상머리에 놓고 그것을 참고해 가면서 자신들의 복음서를 집필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마가복음은 661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600개 정도가 마태복음에 들어가 있고, 350개 정도가 누가복음에 들어가 있다.

자아! 그렇다면, 마태와 누가는 오로지 마가복음만 보고 나머지는 구전이나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때웠을까? 다른 자료는 없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1838년 라이프치히대학(University of Leipzig)의 철학·신학 교수였던 크리스티안 헤르만 바이세(Christian Hermann Weisse)는 ‘두 자료 가설(Two Document Hypothesis, 보통 TDH라 약어화한다)’이라는 매우 문헌학적으로 유력한 학설을 제시했다. 다시 말해 마태와 누가에서 마가 자료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또다시 공통된 또 하나의 자료가 있다는 것이다. 그 또 하나의 자료를 ‘자료’에 해당되는 독일어인 ‘크벨레(Quelle)’의 첫머리를 따서 보통 ‘Q자료’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마태와 누가는 마가복음 자료와 Q자료, 두 자료(TDH)를 보고 썼다는 것이다.

마가 자료와 Q자료를 제외하고 남는 부분은, 마태의 경우 마태 자신의 유니크한 자료가 될 것이므로 M자료라 부르고, 누가의 경우는 L자료라 부른다.

그런데 마가에 없고 마태와 누가에 공통된 Q자료를 세밀하게 검토한 결과,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즉 Q자료는 어록(Record of Sayings)일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즉 예수의 말씀, 그러니까 “예수께서 가라사대(Jesus said,)”로 시작되는 담화 부분만 있는 것이다. 이것을 나는 ‘가라사대 파편’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하자면, 『논어』는 공자에 관한 이야기(story-telling)가 없고 오직 “공자 가라사대(子曰)”로 시작되는 공자 말씀만 적혀 있는데, Q자료는 예수의 논어인 셈이다. 논어에 해당되는 희랍어가 로기온(Logion, 복수는 Logia)인데 Q자료는 ‘로기온 크벨레(Logion-Quelle)’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진전된 연구 결과는 Q자료가 단순히 원시적 말씀 모음집에 해당되는 기초자료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유니크한 복음서라는 것이다. 그 복음서는 논어복음서이며, 담화복음서이며, 말씀복음서이며, 가라사대복음서이다. 이 담화복음서는 예수의 생애를 이야기체로 서술한 서술복음서와 구분되는 오리지널한 복음서의 한 장르였다는 것이다.

이 담화복음서와 서술복음서의 대비야말로 우리가 역사적 예수를 탐구해 들어가는 새로운 열쇠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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