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5일 월요일

[송두율 칼럼]비난만으로 끝날 일인가 - 경향신문

[송두율 칼럼]비난만으로 끝날 일인가 - 경향신문: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의 등장으로 모습을 확실히 드러낸 신자유주의는 수요보다는 공급 위주, 통제보다는 시장을 경제사회의 동력으로 보았고 이러한 정책에 후에 ‘자유주의적 좌파’라 볼 수 있던 블레어의 영국 노동당이나 슈뢰더의 독일 사민당까지도 동의했다. 좌파는 신자유주의가 낳은 폐해를 지적하면서도 극단적 개인주의가 낳은 문화적 위기나, 이주자 문제가 제기하는 정체성 문제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보수주의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사회적 통합문제에 과한 개인주의의 부정적 역할에 대해선 경고했지만 사회적 공공재부의 확충을 등한시했고, 갈수록 심각해진 불평등 문제에도 무딘 반응을 보였다. 전통적 정치세력의 이런 한계를 직시한 포퓰리즘은 신자유주의가 낳은 극심한 경쟁에서 탈락되거나 소외된 계층과 점차 불안해진 중산층의 일부까지도 끌어들여, 불과 10여년 만에 새로운 정치공간의 창출에 성공했다.

이런 상황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나온 해법 중 하나는 신자유주의적인 동력을 유지하면서도 안정적인 사회통합을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패했던 블레어나 슈뢰더의 정책을 답습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더 이상의 대안은 없지 않는가 하는 반론도 많다. 그러나 이마저 현실화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좌우가 불안정한 연정을 유지하는 독일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이와 달리 프랑스의 마크롱은 전통적인 자유주의 정책을 고수하지만 이 역시 노조와 극우세력의 지속적인 협공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둘 때 현재 문재인 정부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 것처럼 보인다. 한편에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파괴하는 ‘좌익정권’이라 몰아붙이고 다른 편에선 ‘촛불혁명’ 정신을 망각하고 개혁에 너무 소극적이라고 질타한다. 한반도의 평화체제로의 이행이라는 난제까지 고려하면 위 언급된 나라들보다 한국 상황은 더 어렵다. 현재 한국사회의 심각한 갈등구조는 근본적으로 국가와 재벌이 주도하는 경제성장을 위해 오랫동안 모든 걸 걸었던 데 기인한다. 이는 비록 역동적 사회를 만들었으나 사회적 통합과 안정을 크게 훼손시켰다. 외환위기가 등장시킨 DJ정부나 참여정부도 이 길게 드리운 그림자를 쉽게 지울 수 없었다. 촛불혁명이 탄생시킨 현 정부도 이 점에선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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